호국돈대길의 풍광 좋은 바다를 걸어보자
소개
갑곶돈대에서 출발하여 해안도로를 따라 뚝길을 걷는 코스로 봄, 가을에 풍광이 좋다. 코스 중간에 있는 돈대들은 많은 항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코스 중간에 있는 돈대들은 많은 항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간조시 해안 바위길을 돌아 걷는 재미도 있고, 코스 중간에 사진 찍기 좋은 장소도 많은 편이다. 코스 대부분 평탄한 뚝방길로 되어 부담 없이 걷기 좋다.
코스 지도
진이란 군인이 머물러 있던 무장 성곽도시를 이른다. 용진진은 조선시대 각 진에 배치되었던 병마만호의 관리하에 있었던 곳으로, 101명의 병력이 주둔해 있었다 한다. 포좌(포를 놓는 자리) 4개소, 총좌(총을 놓는 자리) 26개소의 시설물이 있었으나 석축 대부분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을 이루고 있는 출입문 2곳만이 남아 있었는데, 1999년 그 위로 누각을 새로이 복원해 놓았다. 조선 효종 7년(1656)에 축조되었으며, 가리산돈대·좌강돈대·용당돈대 등 3개의 돈대를 관리하였다고 한다. (출처 : 국가유산청)
강화 나들길은 해안을 따라 1.3km마다 자리한 돈대와 강화산성 사이를 잇는 길, 그리고 고려왕릉을 에둘러 도는 길 등을 이어 만든 탐방로를 가리킨다. 또한, 산과 들판, 바다와 같은 자연과 문화재를 함께 즐기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강화는 섬 전체가 박물관일 만큼 유적지가 많은 곳이다. 고인돌을 비롯한 청동기 유적, 몽골의 침입에 항쟁하고자 강화로 천도한 고려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고려궁지와 고려 왕릉이 남아 있다. 또 조선시대 유물로는 강화산성과 해안가에 설치된 5진, 7보, 8포대, 54 돈대가 남아 있다. 그리고 서해안의 아름다운 낙조와 천혜의 자원 갯벌, 마리산과 고려산, 한가로운 농촌 마을의 풍경 등을 코스별로 즐길 수 있다.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외성을 쌓았는데, 이 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으로 바닷길을 따라 길게 만들어졌다. 광해군 때 다시 고쳐 쌓은 후 효종 9년(1658)에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숙종 때 일부를 돌로 고쳐서 쌓았으며,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 돈대가 만들어졌다. 영조 21년(1745)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었는데 ‘안해루’라 하였다. 이곳은 1871년의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용감히 싸우다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으며 문의 누각과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파괴되었다. 1976년 다시 복원하였으며, 광성보 경내에는 신미양요 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와 신미순의총 및 전적지를 수리하고 세운 강화전적지, 수리한 것을 기록한 비석 등이 건립되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고려시대에 강화해협을 지키던 외성의 요충지이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내성·외성·돈대·진보 등의 12 진보를 만들었는데 그중의 하나이다. 현종 7년(1666) 국방력 강화를 위해 해군주둔지(수영)에 속해 있던 덕진진을 덕포로 옮겼으며, 숙종 5년(1679)에 용두돈대와 덕진돈대를 거느리고 덕진포대와 남장포대를 관할함으로써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로 알려져 있었고, 강화 12 진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을 지키고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의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였으며,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그러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군대에 의하여 점령당하였다. 이때 건물에 몸을 숨겨서 적과 싸울 수 있도록 쌓았던 낮은 담은 모두 파괴되었다. 1976년 성곽과 돈대를 고치고 남장포대도 고쳐 쌓았으며, 앞면 3칸·옆면 2칸의 문의 누각도 다시 세웠고, 당시의 대포를 복원하여 설치하였다. (출처 : 국가유산청)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구축한 요새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 초지진 설치에 대한 기사에 따르면 조선 효종 6년(1655)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침략하였을 때 이들과 맞서 싸운 곳으로 1871년에 미국 해병이 초지진에 침략해 왔을 때 전력의 열세로 패하여 점령당하였다. 이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의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 뒤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초지돈을 복원하였다. 민족시련의 역사적 현장이었던 이곳은 호국정신의 교육장이 되도록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진열하였다. (출처 : 국가유산청)
코스 구성
진이란 군인이 머물러 있던 무장 성곽도시를 이른다. 용진진은 조선시대 각 진에 배치되었던 병마만호의 관리하에 있었던 곳으로, 101명의 병력이 주둔해 있었다 한다. 포좌(포를 놓는 자리) 4개소, 총좌(총을 놓는 자리) 26개소의 시설물이 있었으나 석축 대부분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을 이루고 있는 출입문 2곳만이 남아 있었는데, 1999년 그 위로 누각을 새로이 복원해 놓았다. 조선 효종 7년(1656)에 축조되었으며, 가리산돈대·좌강돈대·용당돈대 등 3개의 돈대를 관리하였다고 한다. (출처 : 국가유산청)
강화 나들길은 해안을 따라 1.3km마다 자리한 돈대와 강화산성 사이를 잇는 길, 그리고 고려왕릉을 에둘러 도는 길 등을 이어 만든 탐방로를 가리킨다. 또한, 산과 들판, 바다와 같은 자연과 문화재를 함께 즐기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강화는 섬 전체가 박물관일 만큼 유적지가 많은 곳이다. 고인돌을 비롯한 청동기 유적, 몽골의 침입에 항쟁하고자 강화로 천도한 고려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고려궁지와 고려 왕릉이 남아 있다. 또 조선시대 유물로는 강화산성과 해안가에 설치된 5진, 7보, 8포대, 54 돈대가 남아 있다. 그리고 서해안의 아름다운 낙조와 천혜의 자원 갯벌, 마리산과 고려산, 한가로운 농촌 마을의 풍경 등을 코스별로 즐길 수 있다.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외성을 쌓았는데, 이 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으로 바닷길을 따라 길게 만들어졌다. 광해군 때 다시 고쳐 쌓은 후 효종 9년(1658)에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숙종 때 일부를 돌로 고쳐서 쌓았으며,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 돈대가 만들어졌다. 영조 21년(1745)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었는데 ‘안해루’라 하였다. 이곳은 1871년의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용감히 싸우다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으며 문의 누각과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파괴되었다. 1976년 다시 복원하였으며, 광성보 경내에는 신미양요 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와 신미순의총 및 전적지를 수리하고 세운 강화전적지, 수리한 것을 기록한 비석 등이 건립되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고려시대에 강화해협을 지키던 외성의 요충지이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내성·외성·돈대·진보 등의 12 진보를 만들었는데 그중의 하나이다. 현종 7년(1666) 국방력 강화를 위해 해군주둔지(수영)에 속해 있던 덕진진을 덕포로 옮겼으며, 숙종 5년(1679)에 용두돈대와 덕진돈대를 거느리고 덕진포대와 남장포대를 관할함으로써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로 알려져 있었고, 강화 12 진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을 지키고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의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였으며,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그러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군대에 의하여 점령당하였다. 이때 건물에 몸을 숨겨서 적과 싸울 수 있도록 쌓았던 낮은 담은 모두 파괴되었다. 1976년 성곽과 돈대를 고치고 남장포대도 고쳐 쌓았으며, 앞면 3칸·옆면 2칸의 문의 누각도 다시 세웠고, 당시의 대포를 복원하여 설치하였다. (출처 : 국가유산청)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구축한 요새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 초지진 설치에 대한 기사에 따르면 조선 효종 6년(1655)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침략하였을 때 이들과 맞서 싸운 곳으로 1871년에 미국 해병이 초지진에 침략해 왔을 때 전력의 열세로 패하여 점령당하였다. 이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의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 뒤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초지돈을 복원하였다. 민족시련의 역사적 현장이었던 이곳은 호국정신의 교육장이 되도록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진열하였다. (출처 : 국가유산청)
- 소요시간
- 4시간
- 코스거리
- 14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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