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아래서 즐기는 천연염색체험
소개
나주는 영산강을 중심으로 한 고대 문화의 중심지로 직물문화가 발달했던 고장이다. 천연염색 문화와 전통을 지속적으로 전승, 발전시켜온 덕분에 천연염색문화관에서 다양한 천연염색체험을 해볼 수 있다. 영산강을 따라 걸으며, 옛 고대 도시의 흔적인 반남 고분군과 복암리 고분군도 빼놓지 말고 둘러보자.
코스 지도
고대문화 중심지인 나주는 영산강유역을 배경으로 일찍이 염색 문화와 실크 생산의 큰 역할을 하여 왔다. 영산강과 바닷물이 합류했던 지리적 환경은 쪽 재배와 뽕나무를 재배하기에 적합하여 이곳은 천연 염색의 최적지이자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가 무형문화재 염색장 기능 보유자도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과 지역의 문화를 발굴 계승하기 위해서 마련된 곳이 나주 천연 염색 문화관이다. 문화관은 천연 염색 전통 계승 발전과 천연 염색산업 진흥 계기를 마련하고 천연 염색 상품을 개발하여 관광자원화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특별교부세를 지원받아 건립하였다. 나주시 천연 염색문화관은 한국 천연 염색 문화를 대표하고 향후 천연 염색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천연 염색의 요람이 될 것이다.
영산포 홍어거리는 전라남도 나주시 영산포 일대에 조성된 음식거리로, 나주의 대표 향토음식인 삭힌 홍어를 맛볼 수 있는 명소이다. 과거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영산강 뱃길을 따라 영산포까지 운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숙성되면서 특유의 깊은 풍미를 갖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영산포는 홍어의 본고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옛 영산포구 일대에는 40여 곳의 홍어 전문 음식점과 도매상이 모여 있어 홍어 특유의 향과 맛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조선 후기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나주 사람들이 삭힌 홍어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질 만큼 오랜 식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영산강 황포돛배나루터와 영산강체육공원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나주 영산포 등대는 1915년 영산강의 가항 종점인 영산포 선창에 건립된 등대이다. 한국의 내륙 하천에 있는 유일한 등대로 해마다 범람하던 영산강의 수위 측정과 등대의 기능을 겸했으며 1989년까지 사용되었다. 영산포 선창은 일제 강점기에는 곡창지대인 호남 지역의 수탈의 거점으로 이용되었으며 1960년대까지 각종 선박이 왕래하면서 많은 수산물이 유통되었다. 영산포 등대는 흰색 원통형의 콘크리트 구조이며, 높이는 다른 등대에 비해 크기가 작은 편에 속하며 본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밤이 되면 등대는 불을 밝혀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산포 등대 바로 앞 선착장에는 영산강 황포돛배 체험장이 있고, 주변에 나주 홍어거리가 있다.
영산강 하구가 둑에 막히면서 자연산 장어가 거의 잡히지 않지만, 영산강의 열두 구비 중 아홉 번째 구비라 하여 이름 붙여진 나주의 구진포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이어서 예로부터 장어가 유명하다. 특히 구진포 장어는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맛이 뛰어나다. 현재는 구진포 삼거리를 중심으로 7~8곳의 장어집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 1940년대에 들어서기 시작하였으며 이곳만의 조리법으로 조리하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맛을 낸다. 구진포는 영산강 물길이 구부러지는 곳에 있는 나루라 해서 ‘구부나루’라 불렸고 예전에는 영산강의 물이 앙암바위를 돌아 이곳에서 모여 다시 굽이친다 해서 회진포라고 불렀다. 차량 이동 약 10분, 4.2㎞ 거리에 영산강 황포돛배 나루터와 나주 홍어거리가 있다. 나주 반남 고분군은 삼국시대의 고분이다. 일제강점기에 처음으로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진 이 고분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대형 옹관과 함께 금동관, 금동신발, 봉황문 고리자루칼(환두대도) 등 최고 권력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옹관고분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달리 영산강 유역에만 분포하던 독특한 묘제이다. 초기의 옹관고분은 지면을 파고 옹을 반쯤 안치한 후 그 위에 낮은 분구를 쌓았으나 후대에는 분구를 쌓은 후 정상부에 흙을 되파고 옹관을 안치하였고 분구의 규모도 커진다. 이처럼 옹관을 묘제로 사용하는 형식은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며, 한국에서도 신석기시대부터 묘제의 일부로 사용하던 것이다. 그러나 영산강 유역의 옹관고분처럼 대형 전용 옹관을 사용한 예는 없으며 영산강 유역 토착세력에 의해 완성된 묘제로 이해되고 있다. 대안리 일대에는 12기가 분포하는데 제9호 분은 대안리 고분군 중 최대 규모이며 9기의 옹관과 함께 금반지, 큰칼, 구리팔찌, 유리구슬, 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촌리 일대에는 9기가 분포하는데 일제강점기에 9호 분 등 고분 일부가 발굴되었으며 이때 금동관(국보)을 비롯한 금동신발, 금반지, 봉황문 고리자루칼(환두대도), 구리팔찌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1999년 신촌리 9호 분을 재발굴 조사한 결과, 고분 정상부를 두르며 장식한 원통형 토기 32개가 출토되었다. 원통형 토기는 일본의 고분에서 출토된 ‘하니와’라는 유물과 같은 성격으로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 교류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덕산리 일대에는 14기 이상이 분포하고 있으며 중심 축조 연대는 신촌리, 대안리와 유사한 5세기 중엽~후반 경으로 판단된다. 반남 고분군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10호 분은 석실분으로 6세기 중엽 이후 백제 세력이 진출하면서 토착세력의 옹관묘가 소멸되는 과정에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인근의 국립나주박물관을 함께 방문하는 것도 좋다.
코스 구성
고대문화 중심지인 나주는 영산강유역을 배경으로 일찍이 염색 문화와 실크 생산의 큰 역할을 하여 왔다. 영산강과 바닷물이 합류했던 지리적 환경은 쪽 재배와 뽕나무를 재배하기에 적합하여 이곳은 천연 염색의 최적지이자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가 무형문화재 염색장 기능 보유자도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과 지역의 문화를 발굴 계승하기 위해서 마련된 곳이 나주 천연 염색 문화관이다. 문화관은 천연 염색 전통 계승 발전과 천연 염색산업 진흥 계기를 마련하고 천연 염색 상품을 개발하여 관광자원화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특별교부세를 지원받아 건립하였다. 나주시 천연 염색문화관은 한국 천연 염색 문화를 대표하고 향후 천연 염색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천연 염색의 요람이 될 것이다.
영산포 홍어거리는 전라남도 나주시 영산포 일대에 조성된 음식거리로, 나주의 대표 향토음식인 삭힌 홍어를 맛볼 수 있는 명소이다. 과거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영산강 뱃길을 따라 영산포까지 운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숙성되면서 특유의 깊은 풍미를 갖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영산포는 홍어의 본고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옛 영산포구 일대에는 40여 곳의 홍어 전문 음식점과 도매상이 모여 있어 홍어 특유의 향과 맛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조선 후기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나주 사람들이 삭힌 홍어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질 만큼 오랜 식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영산강 황포돛배나루터와 영산강체육공원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나주 영산포 등대는 1915년 영산강의 가항 종점인 영산포 선창에 건립된 등대이다. 한국의 내륙 하천에 있는 유일한 등대로 해마다 범람하던 영산강의 수위 측정과 등대의 기능을 겸했으며 1989년까지 사용되었다. 영산포 선창은 일제 강점기에는 곡창지대인 호남 지역의 수탈의 거점으로 이용되었으며 1960년대까지 각종 선박이 왕래하면서 많은 수산물이 유통되었다. 영산포 등대는 흰색 원통형의 콘크리트 구조이며, 높이는 다른 등대에 비해 크기가 작은 편에 속하며 본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밤이 되면 등대는 불을 밝혀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산포 등대 바로 앞 선착장에는 영산강 황포돛배 체험장이 있고, 주변에 나주 홍어거리가 있다.
영산강 하구가 둑에 막히면서 자연산 장어가 거의 잡히지 않지만, 영산강의 열두 구비 중 아홉 번째 구비라 하여 이름 붙여진 나주의 구진포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이어서 예로부터 장어가 유명하다. 특히 구진포 장어는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맛이 뛰어나다. 현재는 구진포 삼거리를 중심으로 7~8곳의 장어집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 1940년대에 들어서기 시작하였으며 이곳만의 조리법으로 조리하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맛을 낸다. 구진포는 영산강 물길이 구부러지는 곳에 있는 나루라 해서 ‘구부나루’라 불렸고 예전에는 영산강의 물이 앙암바위를 돌아 이곳에서 모여 다시 굽이친다 해서 회진포라고 불렀다. 차량 이동 약 10분, 4.2㎞ 거리에 영산강 황포돛배 나루터와 나주 홍어거리가 있다. 나주 반남 고분군은 삼국시대의 고분이다. 일제강점기에 처음으로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진 이 고분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대형 옹관과 함께 금동관, 금동신발, 봉황문 고리자루칼(환두대도) 등 최고 권력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옹관고분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달리 영산강 유역에만 분포하던 독특한 묘제이다. 초기의 옹관고분은 지면을 파고 옹을 반쯤 안치한 후 그 위에 낮은 분구를 쌓았으나 후대에는 분구를 쌓은 후 정상부에 흙을 되파고 옹관을 안치하였고 분구의 규모도 커진다. 이처럼 옹관을 묘제로 사용하는 형식은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며, 한국에서도 신석기시대부터 묘제의 일부로 사용하던 것이다. 그러나 영산강 유역의 옹관고분처럼 대형 전용 옹관을 사용한 예는 없으며 영산강 유역 토착세력에 의해 완성된 묘제로 이해되고 있다. 대안리 일대에는 12기가 분포하는데 제9호 분은 대안리 고분군 중 최대 규모이며 9기의 옹관과 함께 금반지, 큰칼, 구리팔찌, 유리구슬, 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촌리 일대에는 9기가 분포하는데 일제강점기에 9호 분 등 고분 일부가 발굴되었으며 이때 금동관(국보)을 비롯한 금동신발, 금반지, 봉황문 고리자루칼(환두대도), 구리팔찌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1999년 신촌리 9호 분을 재발굴 조사한 결과, 고분 정상부를 두르며 장식한 원통형 토기 32개가 출토되었다. 원통형 토기는 일본의 고분에서 출토된 ‘하니와’라는 유물과 같은 성격으로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 교류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덕산리 일대에는 14기 이상이 분포하고 있으며 중심 축조 연대는 신촌리, 대안리와 유사한 5세기 중엽~후반 경으로 판단된다. 반남 고분군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10호 분은 석실분으로 6세기 중엽 이후 백제 세력이 진출하면서 토착세력의 옹관묘가 소멸되는 과정에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인근의 국립나주박물관을 함께 방문하는 것도 좋다.
- 소요시간
- 6시간 30분
- 코스거리
- 28.7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6시간 30분
- 코스거리
- 28.7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