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야 넒은 호남땅의 나주로 마실가자!
소개
‘나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나주평야와 영산강, 수려한 강산에 살기도 좋으니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지사.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나주에 쌓여 있다. 영산강 물결을 따라 나주의 그림 같은 풍광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신선놀음이 또 있을까.
코스 지도
나주 읍성의 동문인 동점문을 지나 나주초등학교 방향으로 중앙로를 달리다보면 도로 한복판에 큰 성문이 있는데, 이것이 남내동에 자리잡은 나주 읍성의 남문, 즉 남고문이다. 남고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 남문을 나서면서 임금님이 계신 곳인 금성관쪽을 돌아보았다고 하여 남고문이라 했다고 한다. 삼봉 정도전이 나주로 귀향 오면서 여기에 올라 ‘유부로서’를 읊었다고도 한다. (출처 : 나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고대문화 중심지인 나주는 영산강유역을 배경으로 일찍이 염색 문화와 실크 생산의 큰 역할을 하여 왔다. 영산강과 바닷물이 합류했던 지리적 환경은 쪽 재배와 뽕나무를 재배하기에 적합하여 이곳은 천연 염색의 최적지이자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가 무형문화재 염색장 기능 보유자도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과 지역의 문화를 발굴 계승하기 위해서 마련된 곳이 나주 천연 염색 문화관이다. 문화관은 천연 염색 전통 계승 발전과 천연 염색산업 진흥 계기를 마련하고 천연 염색 상품을 개발하여 관광자원화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특별교부세를 지원받아 건립하였다. 나주시 천연 염색문화관은 한국 천연 염색 문화를 대표하고 향후 천연 염색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천연 염색의 요람이 될 것이다.
영산강 하구가 둑에 막히면서 자연산 장어가 거의 잡히지 않지만, 영산강의 열두 구비 중 아홉 번째 구비라 하여 이름 붙여진 나주의 구진포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이어서 예로부터 장어가 유명하다. 특히 구진포 장어는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맛이 뛰어나다. 현재는 구진포 삼거리를 중심으로 7~8곳의 장어집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 1940년대에 들어서기 시작하였으며 이곳만의 조리법으로 조리하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맛을 낸다. 구진포는 영산강 물길이 구부러지는 곳에 있는 나루라 해서 ‘구부나루’라 불렸고 예전에는 영산강의 물이 앙암바위를 돌아 이곳에서 모여 다시 굽이친다 해서 회진포라고 불렀다. 차량 이동 약 10분, 4.2㎞ 거리에 영산강 황포돛배 나루터와 나주 홍어거리가 있다. 나주 반남 고분군은 삼국시대의 고분이다. 일제강점기에 처음으로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진 이 고분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대형 옹관과 함께 금동관, 금동신발, 봉황문 고리자루칼(환두대도) 등 최고 권력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옹관고분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달리 영산강 유역에만 분포하던 독특한 묘제이다. 초기의 옹관고분은 지면을 파고 옹을 반쯤 안치한 후 그 위에 낮은 분구를 쌓았으나 후대에는 분구를 쌓은 후 정상부에 흙을 되파고 옹관을 안치하였고 분구의 규모도 커진다. 이처럼 옹관을 묘제로 사용하는 형식은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며, 한국에서도 신석기시대부터 묘제의 일부로 사용하던 것이다. 그러나 영산강 유역의 옹관고분처럼 대형 전용 옹관을 사용한 예는 없으며 영산강 유역 토착세력에 의해 완성된 묘제로 이해되고 있다. 대안리 일대에는 12기가 분포하는데 제9호 분은 대안리 고분군 중 최대 규모이며 9기의 옹관과 함께 금반지, 큰칼, 구리팔찌, 유리구슬, 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촌리 일대에는 9기가 분포하는데 일제강점기에 9호 분 등 고분 일부가 발굴되었으며 이때 금동관(국보)을 비롯한 금동신발, 금반지, 봉황문 고리자루칼(환두대도), 구리팔찌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1999년 신촌리 9호 분을 재발굴 조사한 결과, 고분 정상부를 두르며 장식한 원통형 토기 32개가 출토되었다. 원통형 토기는 일본의 고분에서 출토된 ‘하니와’라는 유물과 같은 성격으로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 교류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덕산리 일대에는 14기 이상이 분포하고 있으며 중심 축조 연대는 신촌리, 대안리와 유사한 5세기 중엽~후반 경으로 판단된다. 반남 고분군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10호 분은 석실분으로 6세기 중엽 이후 백제 세력이 진출하면서 토착세력의 옹관묘가 소멸되는 과정에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인근의 국립나주박물관을 함께 방문하는 것도 좋다.
국립나주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속 기관으로 영산강 유역에 남아있는 고고자료를 보존하고 전시하며 호남지역 발굴매장 문화재에 대한 수장고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국립박물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도심이 아닌 전원 속에 자리잡은 나주박물관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느림을 통해 휴식의 시간을 제공하는 역사공원의 기능도 수행하며, 첨단 기술을 문화영역에 접목한 새로운 개념의 열린 문화공간이다. 국내 박물관 최초로 스마트폰의 NFC기술을 이용한 전시 안내 시스템을 전시실 전관에 도입하여, 관람객이 스마트폰으로 전시 내용을 안내받고 이를 다시 SNS상에서 서로 주고 받는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도록 설비되어 있다. 6곳의 수장고 가운데 2곳의 수장고에 대형 관람창을 설치하여 관람객들이 수장고 내부를 직접 볼 수 있는 개방형 수장고를 운영하며 체험 전시 공간을 확대하고, 박물관 옥상정원을 개방하여 박물관의 여러 공간을 보다 생생하게 체험하고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국립나주박물관은 신촌리고분군, 반남고분군, 덕산리고분군 등과 인접하므로 함께 방문하기 좋다.
코스 구성
나주 읍성의 동문인 동점문을 지나 나주초등학교 방향으로 중앙로를 달리다보면 도로 한복판에 큰 성문이 있는데, 이것이 남내동에 자리잡은 나주 읍성의 남문, 즉 남고문이다. 남고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 남문을 나서면서 임금님이 계신 곳인 금성관쪽을 돌아보았다고 하여 남고문이라 했다고 한다. 삼봉 정도전이 나주로 귀향 오면서 여기에 올라 ‘유부로서’를 읊었다고도 한다. (출처 : 나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고대문화 중심지인 나주는 영산강유역을 배경으로 일찍이 염색 문화와 실크 생산의 큰 역할을 하여 왔다. 영산강과 바닷물이 합류했던 지리적 환경은 쪽 재배와 뽕나무를 재배하기에 적합하여 이곳은 천연 염색의 최적지이자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가 무형문화재 염색장 기능 보유자도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과 지역의 문화를 발굴 계승하기 위해서 마련된 곳이 나주 천연 염색 문화관이다. 문화관은 천연 염색 전통 계승 발전과 천연 염색산업 진흥 계기를 마련하고 천연 염색 상품을 개발하여 관광자원화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특별교부세를 지원받아 건립하였다. 나주시 천연 염색문화관은 한국 천연 염색 문화를 대표하고 향후 천연 염색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천연 염색의 요람이 될 것이다.
영산강 하구가 둑에 막히면서 자연산 장어가 거의 잡히지 않지만, 영산강의 열두 구비 중 아홉 번째 구비라 하여 이름 붙여진 나주의 구진포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이어서 예로부터 장어가 유명하다. 특히 구진포 장어는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맛이 뛰어나다. 현재는 구진포 삼거리를 중심으로 7~8곳의 장어집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 1940년대에 들어서기 시작하였으며 이곳만의 조리법으로 조리하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맛을 낸다. 구진포는 영산강 물길이 구부러지는 곳에 있는 나루라 해서 ‘구부나루’라 불렸고 예전에는 영산강의 물이 앙암바위를 돌아 이곳에서 모여 다시 굽이친다 해서 회진포라고 불렀다. 차량 이동 약 10분, 4.2㎞ 거리에 영산강 황포돛배 나루터와 나주 홍어거리가 있다. 나주 반남 고분군은 삼국시대의 고분이다. 일제강점기에 처음으로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진 이 고분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대형 옹관과 함께 금동관, 금동신발, 봉황문 고리자루칼(환두대도) 등 최고 권력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옹관고분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달리 영산강 유역에만 분포하던 독특한 묘제이다. 초기의 옹관고분은 지면을 파고 옹을 반쯤 안치한 후 그 위에 낮은 분구를 쌓았으나 후대에는 분구를 쌓은 후 정상부에 흙을 되파고 옹관을 안치하였고 분구의 규모도 커진다. 이처럼 옹관을 묘제로 사용하는 형식은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며, 한국에서도 신석기시대부터 묘제의 일부로 사용하던 것이다. 그러나 영산강 유역의 옹관고분처럼 대형 전용 옹관을 사용한 예는 없으며 영산강 유역 토착세력에 의해 완성된 묘제로 이해되고 있다. 대안리 일대에는 12기가 분포하는데 제9호 분은 대안리 고분군 중 최대 규모이며 9기의 옹관과 함께 금반지, 큰칼, 구리팔찌, 유리구슬, 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촌리 일대에는 9기가 분포하는데 일제강점기에 9호 분 등 고분 일부가 발굴되었으며 이때 금동관(국보)을 비롯한 금동신발, 금반지, 봉황문 고리자루칼(환두대도), 구리팔찌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1999년 신촌리 9호 분을 재발굴 조사한 결과, 고분 정상부를 두르며 장식한 원통형 토기 32개가 출토되었다. 원통형 토기는 일본의 고분에서 출토된 ‘하니와’라는 유물과 같은 성격으로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 교류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덕산리 일대에는 14기 이상이 분포하고 있으며 중심 축조 연대는 신촌리, 대안리와 유사한 5세기 중엽~후반 경으로 판단된다. 반남 고분군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10호 분은 석실분으로 6세기 중엽 이후 백제 세력이 진출하면서 토착세력의 옹관묘가 소멸되는 과정에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인근의 국립나주박물관을 함께 방문하는 것도 좋다.
국립나주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속 기관으로 영산강 유역에 남아있는 고고자료를 보존하고 전시하며 호남지역 발굴매장 문화재에 대한 수장고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국립박물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도심이 아닌 전원 속에 자리잡은 나주박물관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느림을 통해 휴식의 시간을 제공하는 역사공원의 기능도 수행하며, 첨단 기술을 문화영역에 접목한 새로운 개념의 열린 문화공간이다. 국내 박물관 최초로 스마트폰의 NFC기술을 이용한 전시 안내 시스템을 전시실 전관에 도입하여, 관람객이 스마트폰으로 전시 내용을 안내받고 이를 다시 SNS상에서 서로 주고 받는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도록 설비되어 있다. 6곳의 수장고 가운데 2곳의 수장고에 대형 관람창을 설치하여 관람객들이 수장고 내부를 직접 볼 수 있는 개방형 수장고를 운영하며 체험 전시 공간을 확대하고, 박물관 옥상정원을 개방하여 박물관의 여러 공간을 보다 생생하게 체험하고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국립나주박물관은 신촌리고분군, 반남고분군, 덕산리고분군 등과 인접하므로 함께 방문하기 좋다.
- 소요시간
- 6시간
- 코스거리
- 29.04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6시간
- 코스거리
- 29.04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