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자연 경관과 굵직한 산업시설로 가득한 고래들의 고향
소개
산업도시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울산. 그러나 울산은 산과 바다를 둘러싸고 보석처럼 빛나는 관광지를 골고루 품고 있는 도시다. 숨겨진 울산의 속살을 깨알같이 누비다 보면 운 좋게도 고래를 만나게 될지 누가 아는가.
코스 지도
세계 유일한 옹기 생산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전국 50% 이상의 옹기를 생산하고 있는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외고산 옹기마을은 옛 조상의 지혜와 슬기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전통과 문화의 산실인 전국 최대의 민속 옹기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1950년대부터 현재의 옹기를 굽기 시작하여 천혜의 옹기장소로 알려져 6~70년대부터는 전국각지에서 350여 명의 옹기 장인과 도공들이 모여 서울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외국에까지 옹기를 생산 수출하였고, 1980년대에는 책자로 소개되어 외국 도예가들이 방문하는 등 번성하였다. 1980년대 이후 산업화로 인한 옹기수요의 부족 및 옹기전통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지면서 지금은 128가구 중 40여 가구가 옹기업에 종사하면서 그 맥을 잇고 있다. 지금의 옹기마을주민들은 고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현대인들의 취향에 맞는 옹기 및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등 옹기제조의 활성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옹기마을은 1957년 허덕만 옹이 이곳에 자리 잡으며 형성되기 시작한 옹기촌으로 마을 전체가 옹기로 어우러진 모습이 독특하고 멋스럽다. 외고산 옹기마을은 전국 옹기의 50% 이상을 생산하며, 옹기박물관에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최대 규모의 옹기가 전시되어 있다. 또한 매년 울산 옹기축제가 개최되어 다양한 체험과 행사를 관람할 수 있다. 이 외에 옹기아카데미관, 발효아카데미관, 울주민속박물관과 같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울산 울주군에 위치한 간절곶은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으로, 매년 새해 첫날이면 해맞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찾는 대표적인 명소이다. 이곳에서는 포항 호미곶보다 1분, 강릉 정동진보다 5분 정도 일찍 해가 떠오른다. 간절곶의 상징 중 하나인 간절곶등대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세워진 유서 깊은 등대로, 지금은 공원과 어우러져 멋진 산책 코스이자 사진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하얀 등대는 간절곶의 풍경을 더욱 인상 깊게 만든다. 이곳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볼거리, 세계 최대 크기의 소망우체통이 있다. 실제로 엽서를 넣으면 전국 어디든 배달되며, 간절곶해올제 (울주군 특산품 판매장)에서는 무료 엽서를 배부하고 있어 관광객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한다. 간절곶 일대는 유채꽃밭, 기암괴석, 울창한 송림 등으로 사계절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인근에는 여름철 울산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는 진하해수욕장과 함께 서생포왜성, 나사봉수대, 온양옹기마을 등 다양한 볼거리도 함께 즐길 수 있다. 탁 트인 수평선, 이른 새벽의 햇살, 그리고 고즈넉한 등대 풍경이 어우러진 간절곶은 누구나 한 번쯤은 찾아가야 할 여행지이다.
1960년 이후 중화학공업을 위주로 한 공업도시로서 울산의 이미지는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공해도시 그리고 삶의 질이 열악한 도시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부각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청정제 역할을 할 공원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1986년부터 울산광역시는 남구 공업탑 로터리 주변 신정동과 옥동 일대 364만여㎡의 부지를 매입ㆍ제공하였고, SK주식회사는 1996년부터 10년 동안 울산대공원 시설을 조성한 후 이를 울산광역시에 무상 기부하였다. 이렇게 설립된 울산 대공원은 시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함은 물론, 도시의 균형적 성장의 시작점이 되고 있으며, 산업도시 울산이 산업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로 전환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울산대공원은 시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하며, 풍부한 산업환경과 울산의 문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남녀노소 다양한 계층을 위한 체험의 장이자 문화와 휴식의 공간이며, 공원의 효율적인 관리를 통하여 생동감 넘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주민들에게 부담 없이, 지속적해서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자연생태에 관한 교육 및 체험 학습도 제공하고 있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는 경승지인 반구대가 있는데, 연고산의 한 자락이 뻗어 내려와 이곳에 와서 우뚝 멎으면서 기암괴석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으며 마치 거북이 넙죽 엎드린 형상이므로 반구대(盤龜臺)라 한다. 두동면 천전계곡(川前溪谷)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옥류가 이곳에 모여 호반을 형성하니 절승가경(絶勝佳景)으로 이름이 높다. 그래서 옛날부터 경향각처의 시인묵객들은 이곳을 찾아 시영(詩詠)으로써 경관을 즐겼다고 한다. 암각화란 선사시대의 사람들이 생활 주변에서 일어난 갖가지 일들을 주제로 삼아 그것을 바위에 새겨서 그린 그림이다. 주로 커다란 바위 등 집단의 성스러운 장소에 그렸는데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서 각종 의례를 거행하였다고 추측된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태화강의 한 지류인 대곡천의 소위 ‘건너 각단’이라고 부르는 곳에 그려져 있으며, 그림이 집중된 곳의 바위면의 크기는 너비 10m, 높이 3m이다. 그러나 그 좌우에서도 적지 않은 형상들이 확인되고 있어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는 모두 10여 개에 이른다. 이 암각화는 신석기시대부터 여러 시기에 걸쳐서 제작되었으리라 여겨지며 시대별 양식의 차이를 살필 수 있다. 표현 대상의 내부를 모두 쪼아낸 면쪼기 기법과 윤곽만을 쪼아낸 선쪼기 기법으로 나눌 수 있다. 새겨진 물상은 크게 바다동물과 육지동물, 사람, 도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바다동물로는 고래, 물개, 거북 등이, 육지동물로는 사슴, 호랑이, 멧돼지, 개 등이 많이 보인다. 사람은 얼굴만 그려진 경우와 바로 선 모습, 옆으로 선 모습, 배에 탄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도구로는 배, 울타리, 그물, 작살, 노(弩)와 비슷한 물건 등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선사인들의 사냥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것으로 여겨지는데, 동물과 사냥 장면을 생명력 있게 표현하고 사물의 특징을 실감나게 묘사한 사냥미술인 동시에 종교미술로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살필 수 있는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인류 최초 포경기록이자 한반도 최초 미술작품 반구대 암각화 및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 천전리각석은 대한민국 대표 역사 관광 자원이다. 2025년 7월 12일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아우루는 약 3㎞의 ‘반구천의 암각화’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신라의 충신 박제상과 그의 일가족을 제향하는 서원으로 보기 드문 서원 중 하나이다. 치산서원의 기원은 박제상의 처를 제사 지내기 위해 신라시대 경주 묵장산의 치술령이라는 고개에 세워졌던 신모사에서 시작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영조 21년(1745)에 영해박씨 주도로 신모사가 있던 두동면에 다시 건립하여 박제상과 그이 부인 및 두 딸을 제향하고 있다. 박제상은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신라 눌지왕으로부터 실성왕 때 고구려와 왜국에 볼모로 간 아우들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 복호를 먼저 데려온 후 왜국으로 가 미사흔을 구출하고 자신은 심한 고문 끝에 불에 타 숨졌다. 두동면 만화리 동쪽 치술령에는 박제상의 부인이 두 딸과 함께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 망부석이 되었고 영혼은 새가 되어 날아가 숨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망부석과 은을암이 남아 있다. 그 후 눌지왕은 박제상에게는 대아찬을 추증하고 그 부인은 국대부인에 추봉하였다. 치산서원의 인접한 박제상 기념관에는 삼국시대의 생활상과 4~5세기의 국제정세와 박제상의 활약상 등이 전시되어 있으니 연계하여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코스 구성
세계 유일한 옹기 생산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전국 50% 이상의 옹기를 생산하고 있는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외고산 옹기마을은 옛 조상의 지혜와 슬기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전통과 문화의 산실인 전국 최대의 민속 옹기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1950년대부터 현재의 옹기를 굽기 시작하여 천혜의 옹기장소로 알려져 6~70년대부터는 전국각지에서 350여 명의 옹기 장인과 도공들이 모여 서울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외국에까지 옹기를 생산 수출하였고, 1980년대에는 책자로 소개되어 외국 도예가들이 방문하는 등 번성하였다. 1980년대 이후 산업화로 인한 옹기수요의 부족 및 옹기전통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지면서 지금은 128가구 중 40여 가구가 옹기업에 종사하면서 그 맥을 잇고 있다. 지금의 옹기마을주민들은 고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현대인들의 취향에 맞는 옹기 및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등 옹기제조의 활성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옹기마을은 1957년 허덕만 옹이 이곳에 자리 잡으며 형성되기 시작한 옹기촌으로 마을 전체가 옹기로 어우러진 모습이 독특하고 멋스럽다. 외고산 옹기마을은 전국 옹기의 50% 이상을 생산하며, 옹기박물관에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최대 규모의 옹기가 전시되어 있다. 또한 매년 울산 옹기축제가 개최되어 다양한 체험과 행사를 관람할 수 있다. 이 외에 옹기아카데미관, 발효아카데미관, 울주민속박물관과 같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울산 울주군에 위치한 간절곶은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으로, 매년 새해 첫날이면 해맞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찾는 대표적인 명소이다. 이곳에서는 포항 호미곶보다 1분, 강릉 정동진보다 5분 정도 일찍 해가 떠오른다. 간절곶의 상징 중 하나인 간절곶등대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세워진 유서 깊은 등대로, 지금은 공원과 어우러져 멋진 산책 코스이자 사진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하얀 등대는 간절곶의 풍경을 더욱 인상 깊게 만든다. 이곳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볼거리, 세계 최대 크기의 소망우체통이 있다. 실제로 엽서를 넣으면 전국 어디든 배달되며, 간절곶해올제 (울주군 특산품 판매장)에서는 무료 엽서를 배부하고 있어 관광객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한다. 간절곶 일대는 유채꽃밭, 기암괴석, 울창한 송림 등으로 사계절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인근에는 여름철 울산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는 진하해수욕장과 함께 서생포왜성, 나사봉수대, 온양옹기마을 등 다양한 볼거리도 함께 즐길 수 있다. 탁 트인 수평선, 이른 새벽의 햇살, 그리고 고즈넉한 등대 풍경이 어우러진 간절곶은 누구나 한 번쯤은 찾아가야 할 여행지이다.
1960년 이후 중화학공업을 위주로 한 공업도시로서 울산의 이미지는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공해도시 그리고 삶의 질이 열악한 도시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부각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청정제 역할을 할 공원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1986년부터 울산광역시는 남구 공업탑 로터리 주변 신정동과 옥동 일대 364만여㎡의 부지를 매입ㆍ제공하였고, SK주식회사는 1996년부터 10년 동안 울산대공원 시설을 조성한 후 이를 울산광역시에 무상 기부하였다. 이렇게 설립된 울산 대공원은 시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함은 물론, 도시의 균형적 성장의 시작점이 되고 있으며, 산업도시 울산이 산업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로 전환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울산대공원은 시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하며, 풍부한 산업환경과 울산의 문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남녀노소 다양한 계층을 위한 체험의 장이자 문화와 휴식의 공간이며, 공원의 효율적인 관리를 통하여 생동감 넘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주민들에게 부담 없이, 지속적해서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자연생태에 관한 교육 및 체험 학습도 제공하고 있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는 경승지인 반구대가 있는데, 연고산의 한 자락이 뻗어 내려와 이곳에 와서 우뚝 멎으면서 기암괴석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으며 마치 거북이 넙죽 엎드린 형상이므로 반구대(盤龜臺)라 한다. 두동면 천전계곡(川前溪谷)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옥류가 이곳에 모여 호반을 형성하니 절승가경(絶勝佳景)으로 이름이 높다. 그래서 옛날부터 경향각처의 시인묵객들은 이곳을 찾아 시영(詩詠)으로써 경관을 즐겼다고 한다. 암각화란 선사시대의 사람들이 생활 주변에서 일어난 갖가지 일들을 주제로 삼아 그것을 바위에 새겨서 그린 그림이다. 주로 커다란 바위 등 집단의 성스러운 장소에 그렸는데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서 각종 의례를 거행하였다고 추측된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태화강의 한 지류인 대곡천의 소위 ‘건너 각단’이라고 부르는 곳에 그려져 있으며, 그림이 집중된 곳의 바위면의 크기는 너비 10m, 높이 3m이다. 그러나 그 좌우에서도 적지 않은 형상들이 확인되고 있어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는 모두 10여 개에 이른다. 이 암각화는 신석기시대부터 여러 시기에 걸쳐서 제작되었으리라 여겨지며 시대별 양식의 차이를 살필 수 있다. 표현 대상의 내부를 모두 쪼아낸 면쪼기 기법과 윤곽만을 쪼아낸 선쪼기 기법으로 나눌 수 있다. 새겨진 물상은 크게 바다동물과 육지동물, 사람, 도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바다동물로는 고래, 물개, 거북 등이, 육지동물로는 사슴, 호랑이, 멧돼지, 개 등이 많이 보인다. 사람은 얼굴만 그려진 경우와 바로 선 모습, 옆으로 선 모습, 배에 탄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도구로는 배, 울타리, 그물, 작살, 노(弩)와 비슷한 물건 등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선사인들의 사냥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것으로 여겨지는데, 동물과 사냥 장면을 생명력 있게 표현하고 사물의 특징을 실감나게 묘사한 사냥미술인 동시에 종교미술로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살필 수 있는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인류 최초 포경기록이자 한반도 최초 미술작품 반구대 암각화 및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 천전리각석은 대한민국 대표 역사 관광 자원이다. 2025년 7월 12일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아우루는 약 3㎞의 ‘반구천의 암각화’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신라의 충신 박제상과 그의 일가족을 제향하는 서원으로 보기 드문 서원 중 하나이다. 치산서원의 기원은 박제상의 처를 제사 지내기 위해 신라시대 경주 묵장산의 치술령이라는 고개에 세워졌던 신모사에서 시작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영조 21년(1745)에 영해박씨 주도로 신모사가 있던 두동면에 다시 건립하여 박제상과 그이 부인 및 두 딸을 제향하고 있다. 박제상은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신라 눌지왕으로부터 실성왕 때 고구려와 왜국에 볼모로 간 아우들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 복호를 먼저 데려온 후 왜국으로 가 미사흔을 구출하고 자신은 심한 고문 끝에 불에 타 숨졌다. 두동면 만화리 동쪽 치술령에는 박제상의 부인이 두 딸과 함께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 망부석이 되었고 영혼은 새가 되어 날아가 숨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망부석과 은을암이 남아 있다. 그 후 눌지왕은 박제상에게는 대아찬을 추증하고 그 부인은 국대부인에 추봉하였다. 치산서원의 인접한 박제상 기념관에는 삼국시대의 생활상과 4~5세기의 국제정세와 박제상의 활약상 등이 전시되어 있으니 연계하여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 소요시간
- 1일
- 코스거리
- 83.21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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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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