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에게 가다
소개
국립경주박물관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종이 보인다. 경덕왕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만든 성덕대왕신종이다. 신라의 황금 같은 문화유산을 보기 좋은 코스로 각 유적지마다 담긴 이야기를 주시해 돌아보면 뜻 깊은 체험 여행이 될 것이다.
코스 지도
경주 무열왕릉은 신라 제29대 태종(太宗) 무열왕(재위 654∼661, 김춘추)의 능이다. 경주 북서쪽에 있는 선도산(仙桃山)에서 남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해 있다. 김춘추는 신라 중대(中代)의 첫 진골(眞骨) 출신 왕으로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병합하고 통일 대업의 기반을 닦았으나 통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능은 밑둘레 114m, 높이 8.7m로 비교적 큰 편이며 능 아래쪽은 자연석을 쌓고 드문드문 큰 돌로 받쳤으나 지금은 흙 속에 묻혀 있다. 동쪽에 비석을 세웠던 돌거북 받침돌과 머릿돌이 남아있는데,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金仁問)이 쓴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씨가 돋을새김 되어 있어 이곳이 무열왕의 능임을 알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의 문화유산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기원전 57년부터 기원후 935년까지 이어진 천년왕국 신라의 압축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경주 여행 시 가장 먼저 방문해 사전 지식을 쌓은 뒤 유적지를 둘러보면 더욱 알찬 여행이 된다. 박물관은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 신라천년보고, 옥외전시 등 5개의 상설전시관과 특별전시관으로 구성된다. 신라역사관에서는 신라의 역사적 흐름을, 신라미술관에서는 찬란한 미술문화와 유물을 볼 수 있다. 월지관은 통일신라시대 왕실의 생활문화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옥외전시장에는 범종, 석탑, 석불, 석등, 비석받침 등 석조 유물 1,3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인근에는 2019년 개관한 영남권 수장고인 신라천년보고가 있다. 이곳은 영남지역에서 출토된 유물 약 60만 점을 보관하며, 3,000여 점은 전시수장고에서 관람할 수 있다.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에서는 전시해설 프로그램도 운영되니 관람 전 시간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경주 동궁과 월지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 많은 건물 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주 계림은 첨성대(瞻星臺)와 월성(月城)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경주 김씨의 시조 알지(閼智)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 탈해왕(脫解王) 때 회공(瓠公)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金櫃)가 빛을 내며 걸려 있었다.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렸다. 뚜껑을 열자 궤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하여 성(姓)을 김(金), 이름을 알지라 하고, 본래 시림(始林), 구림(鳩林)이라 하던 이 숲을 계림(鷄林)으로 부르게 되었다. 계림은 신라의 국호(國號)로도 쓰이게 되었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후에 왕위는 박씨 왕족인 파사왕에게 계승되어 왕이 되지 못했고, 후대인 내물왕 대부터 신라 김씨가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경내의 비는 조선 순조(純祖) 3년(1803)에 세워진 것으로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신라 왕성 가까이에 자리한 계림은 신라 김씨 왕족의 탄생지로 여겨져 신성시되고 있다. 지금도 왕버들과 느티나무가 하늘을 가릴 듯이 우거져 있으며, 북쪽에서 서쪽으로 작은 실개천이 굽이쳐 흐른다. 대릉원-계림-반월성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옆에는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피어나 유적지의 운치를 한층 더해 준다.
경주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천문관측대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의 천문 관측과 과학 기술을 보여주는 국가유산이다. 전체 높이는 약 9m다. 네모난 기단 위에 술병 형태의 원통부를 세우고, 꼭대기에 우물 정(井)자 모양의 석재를 배치했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을 27단으로 쌓아 만들었다. 남동쪽에 난 창 아래의 내부는 막돌로 채워져 있으며, 창 위쪽부터 정상까지는 비어 있다. 정상부의 동쪽 절반은 판돌로 덮여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오늘도 사랑스럽개」 과거의 특별한 인연으로 묶인 보겸과 지아가 서로를 스쳐 지나갔던 첨성대는 경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다. 유적으로서 관람가치가 뛰어난 것은 물론 계절마다 다양한 꽃과 식물이 피어나 나들이를 즐기려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경주 대릉원 안에 위치한 천마총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 이전 신라의 고분이다. 1973년에 발굴되었으며,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 형태를 하고 있다. 무덤은 높이 12.7m, 지름 50m 규모로 봉토 안에는 냇가의 돌로 쌓은 적석층이 있으며 적석층 내부에는 길이 6.5m, 너비 4.2m, 높이 2.1m의 나무로 만든 방이 있고 그 중앙에 목관을 두어 시신을 안치했다. 천마총은 대릉원 고분군 가운데 유일하게 일반에 공개된 고분으로 인근의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전에 시범적으로 조사되었다. 당시 기술로는 황남대총처럼 거대한 규모의 무덤을 바로 발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출토된 유물은 금관, 금모자, 새날개 모양의 관식, 금허리띠, 금동신발 등 피장자가 착용한 장신구류를 포함해 총 11,526점에 달한다. 이 중 대표 유물인 금관은 전형적인 신라 금관의 형태로 앞면에는 나뭇가지 모양의 세 줄 장식이 솟아 있고 뒷면에는 사슴뿔 모양의 두 줄 장식이 있다. 또한 나뭇가지 장식에는 생명력을 상징하듯 돋아나는 싹 모양과 곡옥 장식들이 달려 있으며, 지금까지 출토된 금관 중 가장 크고 화려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천마총의 이름은 이 무덤에서 발견된 ‘천마도’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말다래(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가죽 같은 것을 말의 안장 양쪽에 늘어뜨려 놓은 기구)로 우리나라 고분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회화작품이며, 신라 회화의 대표작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아 국보로 지정되었다. 현재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푼 장소이다. 신라가 멸망한 후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와 기러기 안과 오리 압을 써서 예전엔 안압지로 불렸으나 2011년에 경주 동궁과 월지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 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궁에는 임해전을 비롯해 총 27동의 건물이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현재는 3채만 복원되었고 그 건물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과 월지에 반사된 모습은 경주의 대표 야경명소로 뽑힌다.
코스 구성
경주 무열왕릉은 신라 제29대 태종(太宗) 무열왕(재위 654∼661, 김춘추)의 능이다. 경주 북서쪽에 있는 선도산(仙桃山)에서 남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해 있다. 김춘추는 신라 중대(中代)의 첫 진골(眞骨) 출신 왕으로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병합하고 통일 대업의 기반을 닦았으나 통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능은 밑둘레 114m, 높이 8.7m로 비교적 큰 편이며 능 아래쪽은 자연석을 쌓고 드문드문 큰 돌로 받쳤으나 지금은 흙 속에 묻혀 있다. 동쪽에 비석을 세웠던 돌거북 받침돌과 머릿돌이 남아있는데,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金仁問)이 쓴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씨가 돋을새김 되어 있어 이곳이 무열왕의 능임을 알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의 문화유산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기원전 57년부터 기원후 935년까지 이어진 천년왕국 신라의 압축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경주 여행 시 가장 먼저 방문해 사전 지식을 쌓은 뒤 유적지를 둘러보면 더욱 알찬 여행이 된다. 박물관은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 신라천년보고, 옥외전시 등 5개의 상설전시관과 특별전시관으로 구성된다. 신라역사관에서는 신라의 역사적 흐름을, 신라미술관에서는 찬란한 미술문화와 유물을 볼 수 있다. 월지관은 통일신라시대 왕실의 생활문화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옥외전시장에는 범종, 석탑, 석불, 석등, 비석받침 등 석조 유물 1,3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인근에는 2019년 개관한 영남권 수장고인 신라천년보고가 있다. 이곳은 영남지역에서 출토된 유물 약 60만 점을 보관하며, 3,000여 점은 전시수장고에서 관람할 수 있다.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에서는 전시해설 프로그램도 운영되니 관람 전 시간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경주 동궁과 월지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 많은 건물 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주 계림은 첨성대(瞻星臺)와 월성(月城)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경주 김씨의 시조 알지(閼智)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 탈해왕(脫解王) 때 회공(瓠公)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金櫃)가 빛을 내며 걸려 있었다.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렸다. 뚜껑을 열자 궤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하여 성(姓)을 김(金), 이름을 알지라 하고, 본래 시림(始林), 구림(鳩林)이라 하던 이 숲을 계림(鷄林)으로 부르게 되었다. 계림은 신라의 국호(國號)로도 쓰이게 되었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후에 왕위는 박씨 왕족인 파사왕에게 계승되어 왕이 되지 못했고, 후대인 내물왕 대부터 신라 김씨가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경내의 비는 조선 순조(純祖) 3년(1803)에 세워진 것으로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신라 왕성 가까이에 자리한 계림은 신라 김씨 왕족의 탄생지로 여겨져 신성시되고 있다. 지금도 왕버들과 느티나무가 하늘을 가릴 듯이 우거져 있으며, 북쪽에서 서쪽으로 작은 실개천이 굽이쳐 흐른다. 대릉원-계림-반월성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옆에는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피어나 유적지의 운치를 한층 더해 준다.
경주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천문관측대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의 천문 관측과 과학 기술을 보여주는 국가유산이다. 전체 높이는 약 9m다. 네모난 기단 위에 술병 형태의 원통부를 세우고, 꼭대기에 우물 정(井)자 모양의 석재를 배치했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을 27단으로 쌓아 만들었다. 남동쪽에 난 창 아래의 내부는 막돌로 채워져 있으며, 창 위쪽부터 정상까지는 비어 있다. 정상부의 동쪽 절반은 판돌로 덮여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오늘도 사랑스럽개」 과거의 특별한 인연으로 묶인 보겸과 지아가 서로를 스쳐 지나갔던 첨성대는 경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다. 유적으로서 관람가치가 뛰어난 것은 물론 계절마다 다양한 꽃과 식물이 피어나 나들이를 즐기려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경주 대릉원 안에 위치한 천마총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 이전 신라의 고분이다. 1973년에 발굴되었으며,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 형태를 하고 있다. 무덤은 높이 12.7m, 지름 50m 규모로 봉토 안에는 냇가의 돌로 쌓은 적석층이 있으며 적석층 내부에는 길이 6.5m, 너비 4.2m, 높이 2.1m의 나무로 만든 방이 있고 그 중앙에 목관을 두어 시신을 안치했다. 천마총은 대릉원 고분군 가운데 유일하게 일반에 공개된 고분으로 인근의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전에 시범적으로 조사되었다. 당시 기술로는 황남대총처럼 거대한 규모의 무덤을 바로 발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출토된 유물은 금관, 금모자, 새날개 모양의 관식, 금허리띠, 금동신발 등 피장자가 착용한 장신구류를 포함해 총 11,526점에 달한다. 이 중 대표 유물인 금관은 전형적인 신라 금관의 형태로 앞면에는 나뭇가지 모양의 세 줄 장식이 솟아 있고 뒷면에는 사슴뿔 모양의 두 줄 장식이 있다. 또한 나뭇가지 장식에는 생명력을 상징하듯 돋아나는 싹 모양과 곡옥 장식들이 달려 있으며, 지금까지 출토된 금관 중 가장 크고 화려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천마총의 이름은 이 무덤에서 발견된 ‘천마도’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말다래(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가죽 같은 것을 말의 안장 양쪽에 늘어뜨려 놓은 기구)로 우리나라 고분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회화작품이며, 신라 회화의 대표작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아 국보로 지정되었다. 현재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푼 장소이다. 신라가 멸망한 후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와 기러기 안과 오리 압을 써서 예전엔 안압지로 불렸으나 2011년에 경주 동궁과 월지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 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궁에는 임해전을 비롯해 총 27동의 건물이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현재는 3채만 복원되었고 그 건물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과 월지에 반사된 모습은 경주의 대표 야경명소로 뽑힌다.
- 소요시간
- 1일
- 코스거리
- 10.33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1일
- 코스거리
- 10.33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