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하고 경건하게, 천주교 성지 여행
소개
한티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에 위치한 해발 600m가 넘는 깊은 산골이다.
코스 지도
칠곡군 동명면에 있는 천주교 성지인 한티 순교성지는 해발 600m의 깊은 산중에 1815년 을해박해 때부터 형성되었다. 을해박해 때 경상도에서 정해박해 때는 전라도에서 수백 명의 신도가 수난을 당하였다. 신도들은 대구 인근의 산간벽지로 피해 화전을 일구고 옹기와 숯을 구우며 한데 모여 살았는데 이때 정착한 곳이 한티였다. 그러나 이곳에 정착한 후에도 몇 번이나 포졸들의 습격을 받고 많은 신도들이 순교하게 되어 한티성지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 한티 순교성지는 무명 순교자들의 묘와 피정의 집, 대신학교 영성관, 순례자 성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사와 순교성지순례, 피정의 집을 운영한다. 이 외에도 이곳을 기점으로 출발하는 십자가의 길, 인내의 길, 겸손의 길이라는 세 가지 순례길이 있으며 각각 30분 정도 소요되며 사전 예약하면 성지 안내 해설도 들을 수 있다.
가실성당은 1895년에 조선 교구의 11번째 본당으로 초대본당신부는 파리외방선교회의 하경조 신부다. 본당의 넓은 관할 지역 안에는 공소 31개가 있으며, 현재의 성당 및 사제관은 1924년에 완성되었다. 성당의 주보성인 성당은 인민군 병원으로 그대로 남아있으며, 전쟁 관계로 월남한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신부들은 1952년부터 가실성당을 위한 사목을 맡고있다. 가실성당에 속하고 있다가 본당이 된 곳은 모두 4개이며, 김천 황금동, 용평, 퇴강, 왜관이 있다. 1995년 100주년 사업으로 현재 성모당이 형성되었고 성당의 거룩한 분위기를 높이는 색유리화가 설치되었다.
달성군 묘골마을은 낙동강 동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전통마을로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순천 박 씨 집성촌이다. 박팽년은, 세조 2년인 1456년 사육신들과 모의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멸문의 화를 입게 되었다. 그러나 박팽년이 혈통을 보전하게 된 이유는 당시, 박팽년의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 이 씨 부인이 임신 중이었기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뱃속에 든 아이까지도 아들일 경우 죽이라고 명하였고, 이 씨 부인은 친정인 묘골에 내려와 살다가 아이를 낳으니 아들이었다. 혈손을 보전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데리고 있던 노비가 딸을 낳자 서로 바꾸어 그 이름을 박 씨 성을 가진 노비라는 뜻으로 ‘박비’라고 짓고. 아들을 노비로 둔갑시켜 혈통을 보전한 것이다. 박비가 장성한 후인 조선 성종 때, 아버지와 동서지간이던 이극균이 경상 감사로 내려와 자수를 권유하자 임금을 찾아가 박팽년의 자손임을 이실직고하였다. 성종은 크게 기뻐하면서 특사령을 내리는 동시에 이름도 박일산으로 고쳐 주었다. 이리하여 은둔의 세월은 막을 내리고 묘골이 충절의 본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도 마을 한옥들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 마을 전체가 잘 관리되고 있으며, 마을에는 묘골 박 씨들의 전통을 자랑하는 육신사와 달성 태고정, 도곡재, 달성 삼가헌 등의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달성 삼가헌은 사육신의 한 분인 충정공 박팽년의 자손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는 박씨마을 묘골과 낮은 산 하나를 경계로 하여 자리 잡은 조선시대의 주택이다. 넓은 터에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별당, 연못이 배치되어 있다. 박팽년의 11대 손인 성수가 1769년에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신의 호를 현판으로 걸어 삼가헌이라 이름 지었으며 그 뒤 그의 아들 광석이 1783년 이웃하고 있는 묘골에서 현재 위치로 분가한 다음 1826년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이며, 안채는 사랑채를 거쳐야 출입을 할 수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대략 트인 'ㅁ자형'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안채로 드나드는 중문채와 곳간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서쪽으로 장독대, 곳간채, 안변소가 자리 잡고 있다. 삼가헌의 백미, 별당인 하엽정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으로 1826년 집을 지을 당시 많은 흙을 파낸 자리에 박광석의 손자 규현이 1874년에 연못으로 꾸며 연을 심고 파산서당을 앞으로 옮겨 지으면서 누마루를 한 칸을 늘여 현재의 모습으로 건축하였다. 원래 서당으로 쓰던 곳이라 하엽정이라는 현판과 함께 방앞 처마에는 파산서당 편액을 같이 볼 수 있다. 연못은 앞쪽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이고 가운데 원형 섬을 두고 섬까지는 외나무다리가 있다. 여름철 연못에 연꽃이 피고 주변 배롱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풍광이 삼가헌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전체적으로 조선 중기에 건축된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남긴 주택이다.
코스 구성
칠곡군 동명면에 있는 천주교 성지인 한티 순교성지는 해발 600m의 깊은 산중에 1815년 을해박해 때부터 형성되었다. 을해박해 때 경상도에서 정해박해 때는 전라도에서 수백 명의 신도가 수난을 당하였다. 신도들은 대구 인근의 산간벽지로 피해 화전을 일구고 옹기와 숯을 구우며 한데 모여 살았는데 이때 정착한 곳이 한티였다. 그러나 이곳에 정착한 후에도 몇 번이나 포졸들의 습격을 받고 많은 신도들이 순교하게 되어 한티성지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 한티 순교성지는 무명 순교자들의 묘와 피정의 집, 대신학교 영성관, 순례자 성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사와 순교성지순례, 피정의 집을 운영한다. 이 외에도 이곳을 기점으로 출발하는 십자가의 길, 인내의 길, 겸손의 길이라는 세 가지 순례길이 있으며 각각 30분 정도 소요되며 사전 예약하면 성지 안내 해설도 들을 수 있다.
가실성당은 1895년에 조선 교구의 11번째 본당으로 초대본당신부는 파리외방선교회의 하경조 신부다. 본당의 넓은 관할 지역 안에는 공소 31개가 있으며, 현재의 성당 및 사제관은 1924년에 완성되었다. 성당의 주보성인 성당은 인민군 병원으로 그대로 남아있으며, 전쟁 관계로 월남한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신부들은 1952년부터 가실성당을 위한 사목을 맡고있다. 가실성당에 속하고 있다가 본당이 된 곳은 모두 4개이며, 김천 황금동, 용평, 퇴강, 왜관이 있다. 1995년 100주년 사업으로 현재 성모당이 형성되었고 성당의 거룩한 분위기를 높이는 색유리화가 설치되었다.
달성군 묘골마을은 낙동강 동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전통마을로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순천 박 씨 집성촌이다. 박팽년은, 세조 2년인 1456년 사육신들과 모의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멸문의 화를 입게 되었다. 그러나 박팽년이 혈통을 보전하게 된 이유는 당시, 박팽년의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 이 씨 부인이 임신 중이었기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뱃속에 든 아이까지도 아들일 경우 죽이라고 명하였고, 이 씨 부인은 친정인 묘골에 내려와 살다가 아이를 낳으니 아들이었다. 혈손을 보전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데리고 있던 노비가 딸을 낳자 서로 바꾸어 그 이름을 박 씨 성을 가진 노비라는 뜻으로 ‘박비’라고 짓고. 아들을 노비로 둔갑시켜 혈통을 보전한 것이다. 박비가 장성한 후인 조선 성종 때, 아버지와 동서지간이던 이극균이 경상 감사로 내려와 자수를 권유하자 임금을 찾아가 박팽년의 자손임을 이실직고하였다. 성종은 크게 기뻐하면서 특사령을 내리는 동시에 이름도 박일산으로 고쳐 주었다. 이리하여 은둔의 세월은 막을 내리고 묘골이 충절의 본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도 마을 한옥들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 마을 전체가 잘 관리되고 있으며, 마을에는 묘골 박 씨들의 전통을 자랑하는 육신사와 달성 태고정, 도곡재, 달성 삼가헌 등의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달성 삼가헌은 사육신의 한 분인 충정공 박팽년의 자손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는 박씨마을 묘골과 낮은 산 하나를 경계로 하여 자리 잡은 조선시대의 주택이다. 넓은 터에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별당, 연못이 배치되어 있다. 박팽년의 11대 손인 성수가 1769년에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신의 호를 현판으로 걸어 삼가헌이라 이름 지었으며 그 뒤 그의 아들 광석이 1783년 이웃하고 있는 묘골에서 현재 위치로 분가한 다음 1826년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이며, 안채는 사랑채를 거쳐야 출입을 할 수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대략 트인 'ㅁ자형'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안채로 드나드는 중문채와 곳간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서쪽으로 장독대, 곳간채, 안변소가 자리 잡고 있다. 삼가헌의 백미, 별당인 하엽정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으로 1826년 집을 지을 당시 많은 흙을 파낸 자리에 박광석의 손자 규현이 1874년에 연못으로 꾸며 연을 심고 파산서당을 앞으로 옮겨 지으면서 누마루를 한 칸을 늘여 현재의 모습으로 건축하였다. 원래 서당으로 쓰던 곳이라 하엽정이라는 현판과 함께 방앞 처마에는 파산서당 편액을 같이 볼 수 있다. 연못은 앞쪽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이고 가운데 원형 섬을 두고 섬까지는 외나무다리가 있다. 여름철 연못에 연꽃이 피고 주변 배롱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풍광이 삼가헌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전체적으로 조선 중기에 건축된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남긴 주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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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5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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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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