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위에 피어난 봄
소개
익산의 벚꽃 여행지로는 보석박물관과 왕궁리 유적지, 송천마을이 유명하다. 보석박물관은 희귀한 보석과 광물 등 11만 8,000여 점을 소장, 전시한 곳으로, 박물관 옆에 보석을 파는 주얼펠리스에서 나오면 함벽정이 기다린다. 함벽정 아래 벚꽃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왕궁저수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봄꽃 향기가 느껴진다. 웅포관광지에서의 캠핑과 벚꽃의 향연을 놓치지 말자.
코스 지도
함벽정은 1930년에 왕궁저수지의 제방이 완성된 것을 기념하여 이 고장의 부호였던 송병우[宋炳雨]가 건립하였다. 푸른빛이 감도는 저수지의 맑은 물을 그려 ‘함벽정’이란 이름을 붙였다. 특히 기둥 위의 공포는 이익공계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평주 위 공포의 쇠서가 전면으로만 돌출되는데 비해 이 건물에서는 좌우 대각선 방향으로도 돌출시켜 마치 귀기둥에서의 공포결구수법과 같이 짜여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주변 연지에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백련을 갖다 심었다고 전한다.
‘보석박물관’은 백제문화유적과 보석 생산으로 유명한 익산시를 알리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이곳은 국내 유일한 보석박물관이며 실내놀이체험시설, 다이노키즈월드, 공룡테마공원 등이 있다. 인근에는 화석전시관과 귀금속 전시판매장인 ‘주얼팰리스’가 개관하여 무수한 보석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수장고, 기계실, 기획전시실, 보석판매코너, 상설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 야외에는 각종 조형물과 야외공연장, 어린이 놀이시설, 식당, 보석광장, 칠선녀광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서해 낙조 5선 중 하나인 웅포관광지 캠핑장은 금강 하류 지역에 있으며, 철새의 군무와 어우러져 해가 강물로 가라앉는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캠핑장 위 덕양정에서 금강을 내려다보면 마치 곰이 입을 벌려 물을 마시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곰개라고 불린다. 캠핑장은 오토캠핑장 6면, 일반캠핑장 58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년 12월 말일이면 웅포 해넘이 행사가 열리고 있으며 다양한 체험행사를 경험하고 새해의 다짐을 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강과 산이 어우러진 천연의 캠핑 장소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답답한 도시 생활에 지쳐있는 도시민들에게 최고의 힐링을 경험하게 한다.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한 후 왕이 된 마동 즉, 무왕(백제 30대 왕 600~641)이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이를 계기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삼존을 위하여 전(금당), 탑, 낭무(화랑)를 세웠다고 한다. 이와 달리 미륵사의 창건에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신앙만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즉 백제의 국력을 확장하기 위해 마한 세력의 중심이었던 이곳 금마에 미륵사를 세웠을 거라는 추측이다.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를 세우는 데에는 당시 백제의 건축·공예 등 각종 문화 수준이 최고도로 발휘됐을 것으로 짐작할 뿐만 아니라, 신라 진평왕이 백공을 보내 도와주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당시 삼국의 기술이 집결되었을 것이다. 미륵사가 백제불교에서 미륵신앙의 구심점이었음은 분명하며, 신라최대의 가람인 황룡사가 화엄사상의 구심점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황룡사가 1 탑 3 금당식인 것과 달리 미륵사는 3 탑 3 금당식 가람배치이다. 황룡사는 왕을 정점으로 하는 화엄사상, 미륵사는 미륵사상을 가람에 구현하고 있다. 미륵사는 일반평민 대중까지 용화세상으로 인도하겠다는 미륵신앙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 미륵사지의 또 다른 유물, 미륵사지 석탑과 당간지주 * 미륵사지에는 두 가지의 유물이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그 하나는 미륵사지 석탑이고, 다른 하나는 미륵사지 당간지주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로 현재 높이 14.24m이고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석탑이다. 석탑은 거의 전면이 붕괴되어 동북면 한 귀퉁이의 6층까지만 남아있으나 본래는 9층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은 1974~1975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조사에 의하여 동쪽탑은 목탑이 아니라 석탑임이 밝혀져 이른바 동서 쌍탑의 배치였음을 알게 되었다. 동탑은 그 뒤 발굴조사에 의해서 9층으로 확인되어 1993년에 9층(높이 27.67m)으로 복원되었다. 이 석탑을 우리나라 최고의 석탑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이 탑의 양식이 그 이전에 성행하였던 목탑의 각부 양식을 나무 대신 돌로써 충실하게 재현하였기 때문이다. 당간지주란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운 기둥, 즉 지주를 말한다.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보물로, 높이 395㎝이며 통일신라시대 중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 남쪽에 2개의 지주가 동서로 약 90m 간격을 두고 동서로 마주보고 있다.
코스 구성
함벽정은 1930년에 왕궁저수지의 제방이 완성된 것을 기념하여 이 고장의 부호였던 송병우[宋炳雨]가 건립하였다. 푸른빛이 감도는 저수지의 맑은 물을 그려 ‘함벽정’이란 이름을 붙였다. 특히 기둥 위의 공포는 이익공계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평주 위 공포의 쇠서가 전면으로만 돌출되는데 비해 이 건물에서는 좌우 대각선 방향으로도 돌출시켜 마치 귀기둥에서의 공포결구수법과 같이 짜여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주변 연지에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백련을 갖다 심었다고 전한다.
‘보석박물관’은 백제문화유적과 보석 생산으로 유명한 익산시를 알리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이곳은 국내 유일한 보석박물관이며 실내놀이체험시설, 다이노키즈월드, 공룡테마공원 등이 있다. 인근에는 화석전시관과 귀금속 전시판매장인 ‘주얼팰리스’가 개관하여 무수한 보석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수장고, 기계실, 기획전시실, 보석판매코너, 상설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 야외에는 각종 조형물과 야외공연장, 어린이 놀이시설, 식당, 보석광장, 칠선녀광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서해 낙조 5선 중 하나인 웅포관광지 캠핑장은 금강 하류 지역에 있으며, 철새의 군무와 어우러져 해가 강물로 가라앉는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캠핑장 위 덕양정에서 금강을 내려다보면 마치 곰이 입을 벌려 물을 마시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곰개라고 불린다. 캠핑장은 오토캠핑장 6면, 일반캠핑장 58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년 12월 말일이면 웅포 해넘이 행사가 열리고 있으며 다양한 체험행사를 경험하고 새해의 다짐을 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강과 산이 어우러진 천연의 캠핑 장소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답답한 도시 생활에 지쳐있는 도시민들에게 최고의 힐링을 경험하게 한다.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한 후 왕이 된 마동 즉, 무왕(백제 30대 왕 600~641)이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이를 계기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삼존을 위하여 전(금당), 탑, 낭무(화랑)를 세웠다고 한다. 이와 달리 미륵사의 창건에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신앙만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즉 백제의 국력을 확장하기 위해 마한 세력의 중심이었던 이곳 금마에 미륵사를 세웠을 거라는 추측이다.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를 세우는 데에는 당시 백제의 건축·공예 등 각종 문화 수준이 최고도로 발휘됐을 것으로 짐작할 뿐만 아니라, 신라 진평왕이 백공을 보내 도와주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당시 삼국의 기술이 집결되었을 것이다. 미륵사가 백제불교에서 미륵신앙의 구심점이었음은 분명하며, 신라최대의 가람인 황룡사가 화엄사상의 구심점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황룡사가 1 탑 3 금당식인 것과 달리 미륵사는 3 탑 3 금당식 가람배치이다. 황룡사는 왕을 정점으로 하는 화엄사상, 미륵사는 미륵사상을 가람에 구현하고 있다. 미륵사는 일반평민 대중까지 용화세상으로 인도하겠다는 미륵신앙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 미륵사지의 또 다른 유물, 미륵사지 석탑과 당간지주 * 미륵사지에는 두 가지의 유물이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그 하나는 미륵사지 석탑이고, 다른 하나는 미륵사지 당간지주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로 현재 높이 14.24m이고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석탑이다. 석탑은 거의 전면이 붕괴되어 동북면 한 귀퉁이의 6층까지만 남아있으나 본래는 9층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은 1974~1975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조사에 의하여 동쪽탑은 목탑이 아니라 석탑임이 밝혀져 이른바 동서 쌍탑의 배치였음을 알게 되었다. 동탑은 그 뒤 발굴조사에 의해서 9층으로 확인되어 1993년에 9층(높이 27.67m)으로 복원되었다. 이 석탑을 우리나라 최고의 석탑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이 탑의 양식이 그 이전에 성행하였던 목탑의 각부 양식을 나무 대신 돌로써 충실하게 재현하였기 때문이다. 당간지주란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운 기둥, 즉 지주를 말한다.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보물로, 높이 395㎝이며 통일신라시대 중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 남쪽에 2개의 지주가 동서로 약 90m 간격을 두고 동서로 마주보고 있다.
- 소요시간
- 1박 2일
- 코스거리
- 29.77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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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거리
- 29.77km
- 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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