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의 고장, 함양의 화림동계곡을 걷다
소개
함양은 안동과 함께 경상도를 대표하는 양반 고장이다. 점필재 김종직의 고향이자 그의 묘와 서원도 만나볼 수 있다. 양반의 고장답게 육십령으로 넘는 길에는 화림동계곡이 있어 예로부터 선비들이 시를 읊고 노닐던 정자가 남아 있으며, 선비문화탐방로로 개설되어 있어 계곡과 정자를 따라 산책하듯 거닐어보는 것도 좋다.
코스 지도
함양의 중심에 위치한 개평한옥마을은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유학자들 배출한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선비마을로 조선조 오현 중 한 분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 그리고 초계 정씨 3개 가문이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면서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일두 정여창 선생, 옥계 노진 선생 등 역사적 위상이 높은 선생을 배출하였다. 개평마을은 일두고택(국가민속문화유산)을 비롯한 많은 전통가옥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선조들이 풍류를 즐겼던 교수정(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일두선생의 명상의 장소였던 개평리소나무군락지(경상남도 자연유산) 등 조상의 의식주와 생활풍습 등을 알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자원이 많이 남아있어 민속자료로써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함양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년) 개암(介庵) 강익(姜翼)에 의해 남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도심(道心) 회복(유학 교육)과 일두(一蠹) 정여창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되었다. 1566년(명종 21년)에 ‘남계(蘫溪)’라는 이름으로 사액되었다. 정유재란(1597년)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1603년(선조 36년)에 나촌으로 옮겼다가, 1612년(광해군 4년) 옛 터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남계서원은 경사의 지형 조건을 활용하여 앞쪽은 강학공간, 뒤쪽은 제향공간이라는 전학후묘(前學後廟) 서원의 독창적 건축 배치형식의 기준을 마련하였고, 이후 건립되는 서원들의 전형이 되었다. 함양 남계서원은 1868년(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아있던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경남 유일의 존속서원이다. 함양 남계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2019년 등재되었다.
기백산 용추계곡은 옛날 안의현에는 세 곳의 빼어난 절경을 간직한 곳이 있어 ‘안의 삼동’이라 하고, 그중 한 곳인 용추계곡은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 삼매경에 빠졌던 곳’이라 하여 ‘심진동’이라 불리기도 한다. 용추계곡 입구에 들어서면 심진동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심원정 정자가 있고 마음이 맑아진다는 청신담과 층층이 포개진 화강암 무리가 한눈에 펼쳐지며 심원정을 지나 3㎞가량 더 들어가면 넓은 주차장 뒤로 장수사 조계문(일주문)이 외롭게 솟아 있다. 신라 소지왕 9년 각연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장수사는 일주문만 남긴 채 6.25 전쟁으로 소실되어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일주문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용추사가 나오며 절 앞에는 우레와 같은 물소리가 들리는 용추폭포가 있다. 용추계곡 끝에는 함양군에서 조성한 용추자연휴양림이 있으며 아담하고 멋스럽게 꾸며진 산막들과 넓은 주차장 그리고 물놀이장과 전망대 등의 휴양시설을 갖추고 있는 자연휴양림으로 남덕유산의 줄기인 기백산과 황석산을 등반할 수 있는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화림동계곡은 해발 1,508m의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남강의 상류)이 서상~서하를 흘러내리면서 냇가에 기이한 바위와 담소를 만들고 농월정에 이르러서는 반석 위로 흐르는 옥류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장장 60리(15km)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정자 문화의 메카라고 불리는 곳답게 계곡 전체의 넓은 암반 위에 수많은 정자와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진 곳이다. 계곡에는 조선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판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대첩 시 장렬히 전사한 이 고장 출신 지족당 박명부 선생이 머물면서 시회를 열기도 하고 세월을 낚기도 했다는 농월정이 있고, 농월정 주변은 함양군에서 국민관광 단지로 조성하여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코스 구성
함양의 중심에 위치한 개평한옥마을은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유학자들 배출한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선비마을로 조선조 오현 중 한 분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 그리고 초계 정씨 3개 가문이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면서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일두 정여창 선생, 옥계 노진 선생 등 역사적 위상이 높은 선생을 배출하였다. 개평마을은 일두고택(국가민속문화유산)을 비롯한 많은 전통가옥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선조들이 풍류를 즐겼던 교수정(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일두선생의 명상의 장소였던 개평리소나무군락지(경상남도 자연유산) 등 조상의 의식주와 생활풍습 등을 알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자원이 많이 남아있어 민속자료로써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함양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년) 개암(介庵) 강익(姜翼)에 의해 남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도심(道心) 회복(유학 교육)과 일두(一蠹) 정여창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되었다. 1566년(명종 21년)에 ‘남계(蘫溪)’라는 이름으로 사액되었다. 정유재란(1597년)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1603년(선조 36년)에 나촌으로 옮겼다가, 1612년(광해군 4년) 옛 터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남계서원은 경사의 지형 조건을 활용하여 앞쪽은 강학공간, 뒤쪽은 제향공간이라는 전학후묘(前學後廟) 서원의 독창적 건축 배치형식의 기준을 마련하였고, 이후 건립되는 서원들의 전형이 되었다. 함양 남계서원은 1868년(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아있던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경남 유일의 존속서원이다. 함양 남계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2019년 등재되었다.
기백산 용추계곡은 옛날 안의현에는 세 곳의 빼어난 절경을 간직한 곳이 있어 ‘안의 삼동’이라 하고, 그중 한 곳인 용추계곡은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 삼매경에 빠졌던 곳’이라 하여 ‘심진동’이라 불리기도 한다. 용추계곡 입구에 들어서면 심진동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심원정 정자가 있고 마음이 맑아진다는 청신담과 층층이 포개진 화강암 무리가 한눈에 펼쳐지며 심원정을 지나 3㎞가량 더 들어가면 넓은 주차장 뒤로 장수사 조계문(일주문)이 외롭게 솟아 있다. 신라 소지왕 9년 각연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장수사는 일주문만 남긴 채 6.25 전쟁으로 소실되어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일주문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용추사가 나오며 절 앞에는 우레와 같은 물소리가 들리는 용추폭포가 있다. 용추계곡 끝에는 함양군에서 조성한 용추자연휴양림이 있으며 아담하고 멋스럽게 꾸며진 산막들과 넓은 주차장 그리고 물놀이장과 전망대 등의 휴양시설을 갖추고 있는 자연휴양림으로 남덕유산의 줄기인 기백산과 황석산을 등반할 수 있는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화림동계곡은 해발 1,508m의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남강의 상류)이 서상~서하를 흘러내리면서 냇가에 기이한 바위와 담소를 만들고 농월정에 이르러서는 반석 위로 흐르는 옥류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장장 60리(15km)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정자 문화의 메카라고 불리는 곳답게 계곡 전체의 넓은 암반 위에 수많은 정자와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진 곳이다. 계곡에는 조선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판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대첩 시 장렬히 전사한 이 고장 출신 지족당 박명부 선생이 머물면서 시회를 열기도 하고 세월을 낚기도 했다는 농월정이 있고, 농월정 주변은 함양군에서 국민관광 단지로 조성하여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 소요시간
- 7시간
- 코스거리
- 44.6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7시간
- 코스거리
- 44.6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