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 슬로우시티에서 즐기는 느릿느릿 시간
소개
섬진강과 지리산이 어우러진 하동군 악양은 우리나라에서 5번째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다. 특히 악양면은 소설과 드라마 '토지'의 배경이 된 곳으로 악양 들판과 동정리 소나무, 최참판댁 등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들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지리산의 능선과 섬진강이 굽이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고소산성과 악양읍내의 매암차문화박물관도 함께 들러볼만하다.
코스 지도
조선 영조 21년(1745년), 도호부사 전천상이 광양만의 해풍과 섬진강의 모래바람을 막아 하동읍(당시 청하읍)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송림이다. 조성 당시 약 1,500그루의 소나무가 식재되었으며, 현재는 후계목을 포함해 약 900여 그루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260여 년의 세월을 견뎌온 노송과 맑은 섬진강, 드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하며, 예로부터 시인과 묵객의 발길을 머무르게 했다. 이로 인해 하동은 ‘백사청송’, ‘백사청죽’의 고장으로 불린다. 하동송림은 예로부터 아낙네들의 화전놀이가 펼쳐지던 공간이었으며, 송림 앞 백사장은 바닷물이 드나들어 내륙 해수욕장의 역할도 해왔다. 오늘날에는 지역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자연 학습과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정월 대보름이면 백사장에서 하동군민의 소망을 담은 달집태우기 행사가 열려, 이웃 전라도 지역민과 함께하는 화합의 장이 펼쳐진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이곳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그 기둥을 세운 이유 세 가지 중의 첫 번째가 이곳 평사리들판이다. 만석지기 두어 명쯤은 능히 낼 만한 이 넉넉한 들판이 있어, 3대에 걸친 만석지기 사대부 집안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모태가 되었다. 생전 박경리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로 세 가지를 얘기하셨는데, 그중 하나가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였다. 그렇듯이 넉넉한 들판은 모든 생명을 거두고, 자신이 키워낸 쌀과 보리로 뭇 생명들의 끈을 이어준다. 섬진강 오백 리 물길 중 가장 너른 들판을 자랑하는 평사리들판은 83만여 평에 달한다. 평사리들판에는 최참판댁 한옥, 부부송, 동정호, 동정호조각공원, 박경리문학관 등 많은 관광 명소가 있다.
신라 때 돌로 쌓은 산성으로 능선을 따라 5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성의 내력에 대해서는 하동군읍지가 유일한 자료이다. 기록과 성의 위치 및 규모로 보아 신라가 군사적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보이나, 최근에는 5세기 전반 고구려 광개토왕이 신라를 거쳐 왜군을 토벌하면서 남하했을 때 쌓은 고구려 계통의 성으로 보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사용하여 견고하게 쌓았다. 산성의 성벽은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으나, 서남쪽 섬진강을 굽어보는 구간은 허물어져 돌무더기만 남아있다. 지리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의 중턱의 고지에 있으며, 그 단면이 사다리형인데, 가공한 장방형 석재를 써서 견고하게 쌓고, 남북에 두 개의 성문을 설치하였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악양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몸에 받은 땅이다. 평사리 논길을 따라 들어가면 들판 가운데에 소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서서 정겹게 맞이하고 지리산 자락에는 초가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 중턱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댁이다.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우리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이곳 평사리에 소설 속의 최참판댁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우리 민족의 생활 모습을 재현해 놓은 드라마 세트장도 조성되어 있다. 매년 가을이면 전국 문인들의 문학축제인 토지문학제가 이곳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문학마을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슬로시티는 느리게 살기 미학을 추구하는 도시를 가리키는데 2009년 2월 6일 슬로시티 국제조정이사회에서 하동군 악양면이 상정되어 우리나라 다섯 번째의 슬로시티로 인증받았다. 하동 악양은 세가지의 향기가 있다. 평사리 최참판댁의 서희가 악양의 넓은 논두렁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소설 속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하동은 섬진강과 함께 여러 지류가 있어 안개가 많고, 다습할 뿐 아니라 일교차가 커서 차나무를 재배하기 쉽고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토질을 가지고 있다.
코스 구성
조선 영조 21년(1745년), 도호부사 전천상이 광양만의 해풍과 섬진강의 모래바람을 막아 하동읍(당시 청하읍)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송림이다. 조성 당시 약 1,500그루의 소나무가 식재되었으며, 현재는 후계목을 포함해 약 900여 그루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260여 년의 세월을 견뎌온 노송과 맑은 섬진강, 드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하며, 예로부터 시인과 묵객의 발길을 머무르게 했다. 이로 인해 하동은 ‘백사청송’, ‘백사청죽’의 고장으로 불린다. 하동송림은 예로부터 아낙네들의 화전놀이가 펼쳐지던 공간이었으며, 송림 앞 백사장은 바닷물이 드나들어 내륙 해수욕장의 역할도 해왔다. 오늘날에는 지역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자연 학습과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정월 대보름이면 백사장에서 하동군민의 소망을 담은 달집태우기 행사가 열려, 이웃 전라도 지역민과 함께하는 화합의 장이 펼쳐진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이곳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그 기둥을 세운 이유 세 가지 중의 첫 번째가 이곳 평사리들판이다. 만석지기 두어 명쯤은 능히 낼 만한 이 넉넉한 들판이 있어, 3대에 걸친 만석지기 사대부 집안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모태가 되었다. 생전 박경리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로 세 가지를 얘기하셨는데, 그중 하나가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였다. 그렇듯이 넉넉한 들판은 모든 생명을 거두고, 자신이 키워낸 쌀과 보리로 뭇 생명들의 끈을 이어준다. 섬진강 오백 리 물길 중 가장 너른 들판을 자랑하는 평사리들판은 83만여 평에 달한다. 평사리들판에는 최참판댁 한옥, 부부송, 동정호, 동정호조각공원, 박경리문학관 등 많은 관광 명소가 있다.
신라 때 돌로 쌓은 산성으로 능선을 따라 5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성의 내력에 대해서는 하동군읍지가 유일한 자료이다. 기록과 성의 위치 및 규모로 보아 신라가 군사적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보이나, 최근에는 5세기 전반 고구려 광개토왕이 신라를 거쳐 왜군을 토벌하면서 남하했을 때 쌓은 고구려 계통의 성으로 보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사용하여 견고하게 쌓았다. 산성의 성벽은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으나, 서남쪽 섬진강을 굽어보는 구간은 허물어져 돌무더기만 남아있다. 지리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의 중턱의 고지에 있으며, 그 단면이 사다리형인데, 가공한 장방형 석재를 써서 견고하게 쌓고, 남북에 두 개의 성문을 설치하였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악양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몸에 받은 땅이다. 평사리 논길을 따라 들어가면 들판 가운데에 소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서서 정겹게 맞이하고 지리산 자락에는 초가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 중턱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댁이다.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우리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이곳 평사리에 소설 속의 최참판댁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우리 민족의 생활 모습을 재현해 놓은 드라마 세트장도 조성되어 있다. 매년 가을이면 전국 문인들의 문학축제인 토지문학제가 이곳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문학마을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슬로시티는 느리게 살기 미학을 추구하는 도시를 가리키는데 2009년 2월 6일 슬로시티 국제조정이사회에서 하동군 악양면이 상정되어 우리나라 다섯 번째의 슬로시티로 인증받았다. 하동 악양은 세가지의 향기가 있다. 평사리 최참판댁의 서희가 악양의 넓은 논두렁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소설 속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하동은 섬진강과 함께 여러 지류가 있어 안개가 많고, 다습할 뿐 아니라 일교차가 커서 차나무를 재배하기 쉽고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토질을 가지고 있다.
- 소요시간
- 6시간
- 코스거리
- 20.1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6시간
- 코스거리
- 20.1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