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도 역사 문화길을 따라 걷다
소개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여 강화읍내 주요 문화유적지를 돌아보는 코스로 초반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탐색해야 한다. 오읍 약수터에서 약수 한 모금을 마시며 잠시 휴식을 갖고 연미정까지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걷는다. 코스 중간에 식사할 수 있는 곳은 연미정이고 갑곶성에서는 조용히 둘러보길 권한다.
코스 지도
강화성당은 고요한 (Chari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 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1981년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유산으로 처음 지정된 이래 강화군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인천지방유형 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가 2001년 1월에 국가사적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을 붙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기둥머리에서 보와 도리가 직교하여 직접 결구되는 민도리양식이다. 용흥궁은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건물이다. 정궁 이외에도 행궁·이궁·가궐을 비롯하여 많은 궁궐이 있었다. 정문은 승평문이었고 양쪽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이 있었다. 39년 동안 사용되었고 1270년 강화조약이 맺어져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했다.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다. 그 후 다시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이 남아있다. 이곳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곳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인 강화향교는 지방의 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한 교육기관이다. 고려 1127년 현재 내가면 고천리에 창건되었다. 1232년 강화읍 갑곶리로 옮겼다가 이후 서도면 볼음도로 옮겼다. 1624년 당시 강화유수였던 심열이 송악산 기슭으로 또다시 향교를 옮겼다. 1629년 명륜당을 세워 학교로 승격시켜 학궁이라 칭했다. 1673년 유수 민시중이 남산 근처로 옮겼다가 1731년 유수 유척기가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강화향교의 건축물은 대성전, 동무와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와 서재, 외삼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명륜당은 향교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던 강당이다.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제사와 교육의 기능을 담당하였으나 현재는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배향 기능만 남아있다.
강화 산성 북문을 지나 숲 속 오솔길을 따라가면 오읍(五泣) 약수터가 있다. 고려 고종 때 북문 건축 시 기우제를 올려 하늘에서 내려주었다는 약수이다. 오읍약수터의 약수는 그 효능이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물을 마시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약수터 주변은 푸르른 숲과 맑은 공기로 둘러싸여 있어,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이상적인 곳이다. 또한, 오읍약수터는 넓은 휴식 공간과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이곳은 단순히 약수를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로도 사랑받고 있다. 오읍약수터는 강화도의 역사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명소로, 힐링과 건강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에 위치한 연미정은 자연경관을 보며 풍류를 즐기거나 학문을 공부하던 정자로, 최초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전쟁을 거치며 여러 차례 시련을 겪고 파손된 것을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정자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의 겹처마로 돌기둥 위에 10개의 기둥을 얹어 건축한 민도리집이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강화도 동북단에 이르러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하여 연미정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로, 조선시대 강화도 해안에 돌로 쌓은 돈대 53개가 설치됐다. 갑곶돈대는 1679년 5월에 완성된 48 돈대 가운데 하나이다. 강화 돈대는 황해도·강원도·함경도 승군 8,900명과 어영청 소속 어영군 4,262명이 80일 정도 걸려서 쌓았다. 갑곶돈대는 망해돈대·제승돈대·염주돈대와 함께 제물진의 관할 하에 있었으며, 포좌가 있는 본래의 갑곶돈대는 옛 강화대교 입구 북쪽 언덕에 있었다. 지금 사적으로 지정된 갑곶돈대는 제물진과 강화 외성의 일부이다. 갑곶돈대에서는 강화전쟁박물관,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홍이포, 이섭정, 비석군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출처: 강화군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
코스 구성
강화성당은 고요한 (Chari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 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1981년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유산으로 처음 지정된 이래 강화군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인천지방유형 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가 2001년 1월에 국가사적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을 붙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기둥머리에서 보와 도리가 직교하여 직접 결구되는 민도리양식이다. 용흥궁은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건물이다. 정궁 이외에도 행궁·이궁·가궐을 비롯하여 많은 궁궐이 있었다. 정문은 승평문이었고 양쪽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이 있었다. 39년 동안 사용되었고 1270년 강화조약이 맺어져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했다.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다. 그 후 다시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이 남아있다. 이곳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곳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인 강화향교는 지방의 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한 교육기관이다. 고려 1127년 현재 내가면 고천리에 창건되었다. 1232년 강화읍 갑곶리로 옮겼다가 이후 서도면 볼음도로 옮겼다. 1624년 당시 강화유수였던 심열이 송악산 기슭으로 또다시 향교를 옮겼다. 1629년 명륜당을 세워 학교로 승격시켜 학궁이라 칭했다. 1673년 유수 민시중이 남산 근처로 옮겼다가 1731년 유수 유척기가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강화향교의 건축물은 대성전, 동무와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와 서재, 외삼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명륜당은 향교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던 강당이다.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제사와 교육의 기능을 담당하였으나 현재는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배향 기능만 남아있다.
강화 산성 북문을 지나 숲 속 오솔길을 따라가면 오읍(五泣) 약수터가 있다. 고려 고종 때 북문 건축 시 기우제를 올려 하늘에서 내려주었다는 약수이다. 오읍약수터의 약수는 그 효능이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물을 마시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약수터 주변은 푸르른 숲과 맑은 공기로 둘러싸여 있어,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이상적인 곳이다. 또한, 오읍약수터는 넓은 휴식 공간과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이곳은 단순히 약수를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로도 사랑받고 있다. 오읍약수터는 강화도의 역사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명소로, 힐링과 건강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에 위치한 연미정은 자연경관을 보며 풍류를 즐기거나 학문을 공부하던 정자로, 최초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전쟁을 거치며 여러 차례 시련을 겪고 파손된 것을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정자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의 겹처마로 돌기둥 위에 10개의 기둥을 얹어 건축한 민도리집이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강화도 동북단에 이르러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하여 연미정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로, 조선시대 강화도 해안에 돌로 쌓은 돈대 53개가 설치됐다. 갑곶돈대는 1679년 5월에 완성된 48 돈대 가운데 하나이다. 강화 돈대는 황해도·강원도·함경도 승군 8,900명과 어영청 소속 어영군 4,262명이 80일 정도 걸려서 쌓았다. 갑곶돈대는 망해돈대·제승돈대·염주돈대와 함께 제물진의 관할 하에 있었으며, 포좌가 있는 본래의 갑곶돈대는 옛 강화대교 입구 북쪽 언덕에 있었다. 지금 사적으로 지정된 갑곶돈대는 제물진과 강화 외성의 일부이다. 갑곶돈대에서는 강화전쟁박물관,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홍이포, 이섭정, 비석군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출처: 강화군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
- 소요시간
- 4시간
- 코스거리
- 14.5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4시간
- 코스거리
- 14.5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