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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코스

신라의 불국토 남산에서 부처를 만나다

소개

경주 동남산 자락에는 탑곡, 미륵곡, 불곡 등 골짜기마다 신라의 부처님들이 새겨져 있다. 남산의 또 다른 코스인 칠불암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칠불암 마애불상군과 속세를 굽어보는 듯한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등 신라 최고의 불상을 만날 수 있다. 소나무 숲길이 아름다운 정강왕릉과 헌강왕릉 진입로는 동남산 여행의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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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산56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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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경주 남산 동쪽 기슭 부처 골짜기의 한 바위에 깊이가 1m나 되는 석굴을 파고 만든 여래좌상이다. 이 석불은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삼국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으로 인하여 계곡 이름을 부처 골짜기라고 부르게 되었다.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덮어쓴 것 같은데, 이것은 귀 부분까지 덮고 있다. 얼굴은 둥그렇고 약간 숙여져 있으며, 부은 듯한 눈과 깊게 파인 입가에서는 내면의 미소가 번지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아래로 길게 흘러내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는데, 옷자락이 물결무늬처럼 부드럽게 조각되어 전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2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경주 남산 이 일대는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다. 남쪽의 큰 바위에는 목조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석탑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남쪽면의 불상을 주존으로 하여 남향 사찰을 경영했었음을 알 수 있다. 9m나 되는 사각형의 커다란 바위에 여러 불상을 회화적으로 묘사하였다. 남쪽 바위면에는 삼존과 독립된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고, 동쪽 바위면에도 불상과 보살, 승려, 그리고 비천상을 표현해 놓았다. 불상, 보살상 등은 모두 연꽃무늬를 조각한 대좌와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 한 광배를 갖추었으며 자세와 표정이 각기 다르다. 비천상은 하늘을 날고 승려는 불상과 보살에게 공양하는 자세이지만, 모두 마멸이 심해 자세한 조각 수법은 알 수 없다. 서쪽 바위면에는 석가가 그 아래에 앉아서 도를 깨쳤다는 나무인 보리수 두 그루와 여래상이 있다. 하나의 바위면에 불상·비천·보살·승려·탑 등 다양한 모습들을 정성을 다하여 조각한 것은 장인의 머릿속에 불교의 세계를 그리려는 뜻이 역력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조각 양식은 많이 도식화되었으나 화려한 조각을 회화적으로 배치하여 보여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특이한 것이다.

3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신라시대의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 있는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석불좌상으로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한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게 솟아 있으며, 둥근 얼굴에서는 은은하게 내면적인 웃음이 번지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힘없이 축 늘어진 느낌이며, 군데군데 평행한 옷주름을 새겨 넣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고 왼손은 배부분에 대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데 다소 연약해 보인다. 불상과는 별도로 마련해 놓은 광배(光背)는 매우 장식적인데, 광배 안에는 작은 부처와 보상화·덩쿨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특히 광배 뒷면에는 모든 질병을 구제한다는 약사여래불을 가느다란 선으로 새겨 놓았는데, 이러한 형식은 밀양 무봉사나 경북대 광배 등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예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4 경주 헌강왕릉
경주 헌강왕릉

이 능은 신라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의 무덤이다. 경문왕의 맏아들로서 왕위를 이었다. 헌강왕은 불교와 국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문치를 지향하였다. 재위 기간에 해마다 풍년이 들어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헌강왕이 죽은 후에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이 있는 곳은 경주 남산 북동쪽의 자락이다. 무덤은 높이 4.2m, 지름 15.3m의 둥근형태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무덤 밑둘레에 돌을 4단으로 쌓았다. 1993년에 발굴조사로 석실 내부 구조를 확인했다. 동남쪽으로 널길이 있고, 서쪽으로 석실을 배치하였다. 석실 입구에 돌문, 문지방, 폐쇄석 등이 있으며, 서쪽 벽 접하여 시신을 안치한 시상이 있다.

5 통일전(경주)
통일전(경주)

통일전은 삼국 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고, 다가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국민의 전당이다. 경내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통일을 위한 격전을 생생히 보여주는 기록화가 긴 회랑을 따라 전시되어 있다. 통일전은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만큼, 초·중등학생들의 이념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삼국 통일 당시의 전투 장면이 여러 액자에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며, 남산 답사 중 잠시 호국영령에게 참배하고, 넓은 잔디밭에서 쉬어가는 것도 좋다.

6 경주 서출지
경주 서출지

신라 21대 소지왕이 서기 488년 정월 보름날 행차에 나설 때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말했다. “이 까마귀 가는 곳을 살피십시오” 왕은 장수를 시켜 따라가게 했다. 동남산 양피촌 못 가에 이르러 장수는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이때 갑자기 못 가운데서 풀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장수께서는 이 글을 왕에게 전하시오” 노인은 글이 써진 봉투를 건넨 뒤 물속으로 사라졌다. 왕이 봉투를 받아보자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적혀있었다. 이를 본 신하가 말했다. “두 사람은 평민이고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킴이오니 열어보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왕은 신하의 조언에 따라 봉투를 뜯었다. ‘사금갑(射琴匣)’ 즉 ‘거문고 갑을 쏘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대궐로 간 왕은 왕비의 침실에 세워둔 거문고 갑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거문고 갑 속에는 왕실에서 불공을 보살피는 승려가 죽어있었다. 승려는 왕비와 짜고 소지왕을 해치려 한 것이었다. 왕비는 곧 사형되었으며 왕은 노인이 건네준 봉투 덕분에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 연못은 글이 적힌 봉투가 나온 곳이라 해서 서출지라 부른다. 소지왕 10년은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40년 전이다. 신라 눌지왕 시대에 묵호자가 불교를 전하러 왔으나 펴지 못했다. 소지왕 시대 아도 스님 역시 불교 전파에 실패했다. 법흥왕 15년 이차돈의 순교로 비로소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것이다. 당시 신라 귀족들은 민속신앙 특히 조상을 섬기는 신앙이 강해 쉽게 불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출지의 전설은 전통적 민속신앙 속에 새로운 불교문화가 전래되는 과정에 빚어지는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7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 불상군은 칠불암 내에 있는 바위 면에 새겨진 7구의 불상들을 지칭한다. 동쪽을 향한 넓은 바위 면에 삼존 상이 있고, 삼존상 바로 앞의 네모난 돌기둥에는 면마다 불 좌상이 새겨져 있다. 본존과 두 보살로 된 삼존상, 돌기둥의 네 면에 새겨진 사방불을 합쳐 모두 7구의 불상들이 새겨져 있으므로 암자의 이름을 칠불암이라 부른다. 이곳에 원래 있던 사찰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 불상 군의 핵심 불상은 삼존불 중앙의 불좌상이다. 이 불상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가사를 걸치고 항마촉지인(좌선할 때의 손 모양에서 오른손을 풀어서 오른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사방불은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손 모양을 취하고 있는데, 정면에 해당하는 동쪽 면의 불상은 약그릇을 지니고 있어 약사 불임을 알 수 있다. 삼존 상의 뒤쪽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또 돌기둥 위에 홈이 파여 있고, 주변에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이곳이 원래 지붕을 덮은 석굴 사원으로 추정된다. 이 주변에서 「약 사경」과 「금강경」을 새긴 석경의 파편들이 발견되어 복과 장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민간의 약사 신앙과 관련된 사찰로 보인다.

8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경주 남산은 유물·유적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가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후기까지의 불상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그중에 하나인 높이 1.4m의 마애보살 반가상은 칠불암(七佛庵) 위에 곧바로 선 남쪽 바위에 새겨져 있다.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머리에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있어서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지그시 감은 두 눈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구름 위의 세계에서 중생을 살펴보고 있는 듯하다. 오른손에는 꽃을 잡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천의(天衣)는 아주 얇아 신체의 굴곡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보이며 옷자락들은 대좌(臺座)를 덮고 길게 늘어져 있다. 머리 광배와 몸 광배를 갖춘 광배 (光背) 자체를 불상이 들어앉을 공간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보살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며, 통일신라시대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코스 구성

1

경주 남산 동쪽 기슭 부처 골짜기의 한 바위에 깊이가 1m나 되는 석굴을 파고 만든 여래좌상이다. 이 석불은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삼국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으로 인하여 계곡 이름을 부처 골짜기라고 부르게 되었다.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덮어쓴 것 같은데, 이것은 귀 부분까지 덮고 있다. 얼굴은 둥그렇고 약간 숙여져 있으며, 부은 듯한 눈과 깊게 파인 입가에서는 내면의 미소가 번지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아래로 길게 흘러내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는데, 옷자락이 물결무늬처럼 부드럽게 조각되어 전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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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이 일대는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다. 남쪽의 큰 바위에는 목조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석탑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남쪽면의 불상을 주존으로 하여 남향 사찰을 경영했었음을 알 수 있다. 9m나 되는 사각형의 커다란 바위에 여러 불상을 회화적으로 묘사하였다. 남쪽 바위면에는 삼존과 독립된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고, 동쪽 바위면에도 불상과 보살, 승려, 그리고 비천상을 표현해 놓았다. 불상, 보살상 등은 모두 연꽃무늬를 조각한 대좌와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 한 광배를 갖추었으며 자세와 표정이 각기 다르다. 비천상은 하늘을 날고 승려는 불상과 보살에게 공양하는 자세이지만, 모두 마멸이 심해 자세한 조각 수법은 알 수 없다. 서쪽 바위면에는 석가가 그 아래에 앉아서 도를 깨쳤다는 나무인 보리수 두 그루와 여래상이 있다. 하나의 바위면에 불상·비천·보살·승려·탑 등 다양한 모습들을 정성을 다하여 조각한 것은 장인의 머릿속에 불교의 세계를 그리려는 뜻이 역력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조각 양식은 많이 도식화되었으나 화려한 조각을 회화적으로 배치하여 보여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특이한 것이다.

3

신라시대의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 있는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석불좌상으로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한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게 솟아 있으며, 둥근 얼굴에서는 은은하게 내면적인 웃음이 번지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힘없이 축 늘어진 느낌이며, 군데군데 평행한 옷주름을 새겨 넣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고 왼손은 배부분에 대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데 다소 연약해 보인다. 불상과는 별도로 마련해 놓은 광배(光背)는 매우 장식적인데, 광배 안에는 작은 부처와 보상화·덩쿨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특히 광배 뒷면에는 모든 질병을 구제한다는 약사여래불을 가느다란 선으로 새겨 놓았는데, 이러한 형식은 밀양 무봉사나 경북대 광배 등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예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4

이 능은 신라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의 무덤이다. 경문왕의 맏아들로서 왕위를 이었다. 헌강왕은 불교와 국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문치를 지향하였다. 재위 기간에 해마다 풍년이 들어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헌강왕이 죽은 후에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이 있는 곳은 경주 남산 북동쪽의 자락이다. 무덤은 높이 4.2m, 지름 15.3m의 둥근형태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무덤 밑둘레에 돌을 4단으로 쌓았다. 1993년에 발굴조사로 석실 내부 구조를 확인했다. 동남쪽으로 널길이 있고, 서쪽으로 석실을 배치하였다. 석실 입구에 돌문, 문지방, 폐쇄석 등이 있으며, 서쪽 벽 접하여 시신을 안치한 시상이 있다.

5

통일전은 삼국 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고, 다가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국민의 전당이다. 경내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통일을 위한 격전을 생생히 보여주는 기록화가 긴 회랑을 따라 전시되어 있다. 통일전은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만큼, 초·중등학생들의 이념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삼국 통일 당시의 전투 장면이 여러 액자에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며, 남산 답사 중 잠시 호국영령에게 참배하고, 넓은 잔디밭에서 쉬어가는 것도 좋다.

6

신라 21대 소지왕이 서기 488년 정월 보름날 행차에 나설 때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말했다. “이 까마귀 가는 곳을 살피십시오” 왕은 장수를 시켜 따라가게 했다. 동남산 양피촌 못 가에 이르러 장수는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이때 갑자기 못 가운데서 풀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장수께서는 이 글을 왕에게 전하시오” 노인은 글이 써진 봉투를 건넨 뒤 물속으로 사라졌다. 왕이 봉투를 받아보자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적혀있었다. 이를 본 신하가 말했다. “두 사람은 평민이고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킴이오니 열어보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왕은 신하의 조언에 따라 봉투를 뜯었다. ‘사금갑(射琴匣)’ 즉 ‘거문고 갑을 쏘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대궐로 간 왕은 왕비의 침실에 세워둔 거문고 갑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거문고 갑 속에는 왕실에서 불공을 보살피는 승려가 죽어있었다. 승려는 왕비와 짜고 소지왕을 해치려 한 것이었다. 왕비는 곧 사형되었으며 왕은 노인이 건네준 봉투 덕분에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 연못은 글이 적힌 봉투가 나온 곳이라 해서 서출지라 부른다. 소지왕 10년은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40년 전이다. 신라 눌지왕 시대에 묵호자가 불교를 전하러 왔으나 펴지 못했다. 소지왕 시대 아도 스님 역시 불교 전파에 실패했다. 법흥왕 15년 이차돈의 순교로 비로소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것이다. 당시 신라 귀족들은 민속신앙 특히 조상을 섬기는 신앙이 강해 쉽게 불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출지의 전설은 전통적 민속신앙 속에 새로운 불교문화가 전래되는 과정에 빚어지는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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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 불상군은 칠불암 내에 있는 바위 면에 새겨진 7구의 불상들을 지칭한다. 동쪽을 향한 넓은 바위 면에 삼존 상이 있고, 삼존상 바로 앞의 네모난 돌기둥에는 면마다 불 좌상이 새겨져 있다. 본존과 두 보살로 된 삼존상, 돌기둥의 네 면에 새겨진 사방불을 합쳐 모두 7구의 불상들이 새겨져 있으므로 암자의 이름을 칠불암이라 부른다. 이곳에 원래 있던 사찰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 불상 군의 핵심 불상은 삼존불 중앙의 불좌상이다. 이 불상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가사를 걸치고 항마촉지인(좌선할 때의 손 모양에서 오른손을 풀어서 오른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사방불은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손 모양을 취하고 있는데, 정면에 해당하는 동쪽 면의 불상은 약그릇을 지니고 있어 약사 불임을 알 수 있다. 삼존 상의 뒤쪽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또 돌기둥 위에 홈이 파여 있고, 주변에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이곳이 원래 지붕을 덮은 석굴 사원으로 추정된다. 이 주변에서 「약 사경」과 「금강경」을 새긴 석경의 파편들이 발견되어 복과 장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민간의 약사 신앙과 관련된 사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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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은 유물·유적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가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후기까지의 불상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그중에 하나인 높이 1.4m의 마애보살 반가상은 칠불암(七佛庵) 위에 곧바로 선 남쪽 바위에 새겨져 있다.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머리에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있어서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지그시 감은 두 눈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구름 위의 세계에서 중생을 살펴보고 있는 듯하다. 오른손에는 꽃을 잡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천의(天衣)는 아주 얇아 신체의 굴곡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보이며 옷자락들은 대좌(臺座)를 덮고 길게 늘어져 있다. 머리 광배와 몸 광배를 갖춘 광배 (光背) 자체를 불상이 들어앉을 공간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보살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며, 통일신라시대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7시간
코스거리
9.5km
테마
자유여행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