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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계곡에서 탁족을 즐기다

소개

괴산은 산세가 수려하고 쌍곡, 갈론계곡, 화양구곡, 선유구곡 등 맑고 깨끗한 계곡이 많은 고장이다. 그중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화양구곡과 선유구곡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말년에 은거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계곡의 기암괴석과 맑은 물줄기 속에서 보내는 시간은 마음속까지 깨끗하게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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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205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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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양구곡
화양구곡

화양구곡은 청천면 화양리에 위치한 계곡으로 넓게 펼쳐진 반석 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의 울창한 숲이 장관이다. 조선 중기에 우암 송시열선생이 이곳에 머물렀던 곳으로 중국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지었다. 화양구곡은 주차장 옆에 위치한 제1곡인 경천벽을 출발점으로 제9곡인 파천까지의 3.1㎞ 거리를 가리킨다. 구름이 맑게 비치는 옥빛 연못 같은 제2곡 운영담을 지나면 동그란 구멍이 무늬처럼 새겨진 제3곡 읍궁암, 제4곡 금사담이 나타나는데 이 일대가 바로 송시열 유적지다. 금사담 건너편에는 송시열이 후학을 길렀다는 암서재가 자리 잡고 있다. 인근에 복원된 만동묘와 화양서원도 송시열과 관련이 깊다. 계곡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큰 바위가 첩첩이 쌓인 제5곡 첨성대, 구름을 찌를 듯 높다는 제6곡 능운대가 나온다. 암벽마다 새긴 구곡 이름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다. 용이 누워 꿈틀거리는 모습을 닮았다는 제7곡 와룡암부터는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청학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는 제8곡 학소대를 지나면 최종 목적지인 제9곡 파천(혹은 파곶)이 나온다. 파천은 흰 바위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흐르는 물결이 용의 비늘을 꿰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파천에는 수백 년 전부터 자신이 다녀갔음을 인증하는 이름과 벼슬 이름이 바위 곳곳에 새겨져 있다. 군자산 남쪽의 화양구곡은 자동차를 이용해 구곡을 즐길 수도 있는데 일방통행이므로 반드시 입구인 제1곡에서 제9곡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구곡 중간중간에 쉼터가 있어 잠깐씩 멈춰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 화양구곡 제1곡 기암이 가파르게 솟아 있는 경천벽 제2곡 맑은 물이 모여 소를 이룬 운영담 제3곡 우암 송시열이 제자였던 임금 효종이 죽자 매일 새벽마다 이 바위에 올라 엎드려 통곡했다는 읍궁암 제4곡 맑은 물 속에 보이는 모래가 금싸라기 같고 송시열 유적지 일대인 금사담 제5곡 평평한 큰 바위가 첩첩이 겹쳐 있고 그 위에서 성진을 관측할 수 있는 첨성대 제6곡 바위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한 능운대 제7곡 바위 전체형태가 마치 용이 꿈틀 거리는 것 같은 와룡암 제8곡 백학이 이곳에 집을 짓고 새끼를 쳤다 하여 붙여진 학소대 제9곡 개울 한복판에 흰 바위가 펼쳐진 파천

2 채운암
채운암

화양구곡의 하나인 암서재를 지나서 산자락에 있는 사찰로, 1277년(고려 충렬왕 3) 도일선사가 창건하였으며 수도암이라고 부르다가 조선 광해군 2년 혜식선사가 중창하고 채운암이라 개칭하였다. 원래 현재의 위치에서 화양천을 건너 마주 보이는 첨성대 안쪽계곡에 있었다. 현 위치에는 효종 4년(1655) 혜일선사가 [환장사]를 창건하였다. 그 후 한말 왜병들의 방화로 대웅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전소되었고, 건너편에 있던 채운암이 1948년 홍수로 매몰되자 그 요사채 일부를 이곳에 옮겨 환장사와 채운암을 합쳐 증축하고 채운암이라 이름하였다 전한다. 채운암에는 목조여래좌상이 대웅전 본존불로 봉안되어 있고 한국전쟁 때 인민군이 3번이나 불태우려 했지만 타지 않자 겁을 먹고 물러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불상은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 설법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불상의 제작 연대를 밝혀주는 유물이 불상 속에서 발견되었다. 조선 경종 3년(1723)에 만들었다는 기록을 통해 조선 후기 불상 연구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불상이다. 화양동 9곡의 빼어난 경치 속에 묻혀 있는 고찰로서, 주변에 소나무와 참나무, 굴참나무 등이 울창하여 절경을 이루며, 삼림욕장으로 이용된다. 상류의 파천은 개울 전체에 희고 매끄러운 바위가 용의 비늘처럼 깔려 있다. 특히 우암 송시열이 산수에 반해 은둔하면서 화양서원터, 암서재, 만동묘 등 많은 자취를 남겼다. 주변에 낙영산, 가령산, 선유구곡, 고산구곡, 옥양동계곡 등의 관광지가 있다.

3 괴산 송시열 유적
괴산 송시열 유적

청천 우암 송시열유적은 화양동계곡 안에 있는 화양서원터(華陽書院址)와 만동묘터(萬東廟址)를 중심으로 암서재, 읍궁암, 애각사적, 묘소와 신도비 등 송시열과 관련된 사적들로 구성되었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은거하였던 곳에 세워진 서원으로써 조선시대 학자들의 결집장소였으며,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보내준 중국 명나라 황제 신종,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써 유지가 잘 남아있다. 암서재는 송시열이 만년에 화양동에 은거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읍궁암은 효종(孝宗)의 승하로 북벌이 좌절되자 효종의 기일마다 이곳에 올라 통곡하였다고 전한다. 이 외에도 화양동에는 충효절의, 비례부동 등 많은 애각사적이 산재해 있어 송시열의 북벌애국사상과 민족자존정신이 깃든 유적의 성격과 조선성리학의 중심지로서 일제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되고 왜곡된 사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4 공림사
공림사

공림사는 낙영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신라 경문왕때에 자정선사가 창건한 고찰로 알려져 있다. 자정선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던 중 그 법력과 덕화가 세간에 두루 알려지자 왕이 선사를 국사에 봉하고 입궐을 청하였으나, 세상을 떠나온 사람이 다시 세간으로 나갈 수 없다고 사양했다고 한다. 왕이 선사의 덕화에 감동받아 왕명으로 사원을 창건하고 공림사의 사명을 지어 액자를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 중기에는 법주사보다 더 흥하였지만, 이후 임진왜란으로 대웅전만 남고 소실되었던 것을 인조 때 중창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공비들이 절에 출몰한다는 이유로 토벌군에 의해 전소되어 폐사되었다. 공림사에는 부도, 사적비, 석조, 일주문 등의 유물이 있으며, 중건 시 세운 대웅전, 관음전, 삼성각, 감인선원 등 건물이 있다. 공림사 사적비는 1688년에 세운 것으로, 경내의 요사채 동쪽 언덕 아래에 있다. 앞면에는 공림사의 유래와 연력을 비롯해서 비의 건립 경위 등을 적었는데, 시주자, 승려, 주지, 각수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적비는 비문이 완전하여 조선 중기의 사회상과 지역의 동태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절 앞에 조성된 느티나무 숲과 절을 품고 있는 웅장하고 흰 바위산인 낙영산은 천년고찰 공림사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코스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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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구곡은 청천면 화양리에 위치한 계곡으로 넓게 펼쳐진 반석 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의 울창한 숲이 장관이다. 조선 중기에 우암 송시열선생이 이곳에 머물렀던 곳으로 중국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지었다. 화양구곡은 주차장 옆에 위치한 제1곡인 경천벽을 출발점으로 제9곡인 파천까지의 3.1㎞ 거리를 가리킨다. 구름이 맑게 비치는 옥빛 연못 같은 제2곡 운영담을 지나면 동그란 구멍이 무늬처럼 새겨진 제3곡 읍궁암, 제4곡 금사담이 나타나는데 이 일대가 바로 송시열 유적지다. 금사담 건너편에는 송시열이 후학을 길렀다는 암서재가 자리 잡고 있다. 인근에 복원된 만동묘와 화양서원도 송시열과 관련이 깊다. 계곡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큰 바위가 첩첩이 쌓인 제5곡 첨성대, 구름을 찌를 듯 높다는 제6곡 능운대가 나온다. 암벽마다 새긴 구곡 이름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다. 용이 누워 꿈틀거리는 모습을 닮았다는 제7곡 와룡암부터는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청학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는 제8곡 학소대를 지나면 최종 목적지인 제9곡 파천(혹은 파곶)이 나온다. 파천은 흰 바위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흐르는 물결이 용의 비늘을 꿰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파천에는 수백 년 전부터 자신이 다녀갔음을 인증하는 이름과 벼슬 이름이 바위 곳곳에 새겨져 있다. 군자산 남쪽의 화양구곡은 자동차를 이용해 구곡을 즐길 수도 있는데 일방통행이므로 반드시 입구인 제1곡에서 제9곡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구곡 중간중간에 쉼터가 있어 잠깐씩 멈춰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 화양구곡 제1곡 기암이 가파르게 솟아 있는 경천벽 제2곡 맑은 물이 모여 소를 이룬 운영담 제3곡 우암 송시열이 제자였던 임금 효종이 죽자 매일 새벽마다 이 바위에 올라 엎드려 통곡했다는 읍궁암 제4곡 맑은 물 속에 보이는 모래가 금싸라기 같고 송시열 유적지 일대인 금사담 제5곡 평평한 큰 바위가 첩첩이 겹쳐 있고 그 위에서 성진을 관측할 수 있는 첨성대 제6곡 바위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한 능운대 제7곡 바위 전체형태가 마치 용이 꿈틀 거리는 것 같은 와룡암 제8곡 백학이 이곳에 집을 짓고 새끼를 쳤다 하여 붙여진 학소대 제9곡 개울 한복판에 흰 바위가 펼쳐진 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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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구곡의 하나인 암서재를 지나서 산자락에 있는 사찰로, 1277년(고려 충렬왕 3) 도일선사가 창건하였으며 수도암이라고 부르다가 조선 광해군 2년 혜식선사가 중창하고 채운암이라 개칭하였다. 원래 현재의 위치에서 화양천을 건너 마주 보이는 첨성대 안쪽계곡에 있었다. 현 위치에는 효종 4년(1655) 혜일선사가 [환장사]를 창건하였다. 그 후 한말 왜병들의 방화로 대웅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전소되었고, 건너편에 있던 채운암이 1948년 홍수로 매몰되자 그 요사채 일부를 이곳에 옮겨 환장사와 채운암을 합쳐 증축하고 채운암이라 이름하였다 전한다. 채운암에는 목조여래좌상이 대웅전 본존불로 봉안되어 있고 한국전쟁 때 인민군이 3번이나 불태우려 했지만 타지 않자 겁을 먹고 물러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불상은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 설법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불상의 제작 연대를 밝혀주는 유물이 불상 속에서 발견되었다. 조선 경종 3년(1723)에 만들었다는 기록을 통해 조선 후기 불상 연구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불상이다. 화양동 9곡의 빼어난 경치 속에 묻혀 있는 고찰로서, 주변에 소나무와 참나무, 굴참나무 등이 울창하여 절경을 이루며, 삼림욕장으로 이용된다. 상류의 파천은 개울 전체에 희고 매끄러운 바위가 용의 비늘처럼 깔려 있다. 특히 우암 송시열이 산수에 반해 은둔하면서 화양서원터, 암서재, 만동묘 등 많은 자취를 남겼다. 주변에 낙영산, 가령산, 선유구곡, 고산구곡, 옥양동계곡 등의 관광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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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 우암 송시열유적은 화양동계곡 안에 있는 화양서원터(華陽書院址)와 만동묘터(萬東廟址)를 중심으로 암서재, 읍궁암, 애각사적, 묘소와 신도비 등 송시열과 관련된 사적들로 구성되었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은거하였던 곳에 세워진 서원으로써 조선시대 학자들의 결집장소였으며,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보내준 중국 명나라 황제 신종,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써 유지가 잘 남아있다. 암서재는 송시열이 만년에 화양동에 은거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읍궁암은 효종(孝宗)의 승하로 북벌이 좌절되자 효종의 기일마다 이곳에 올라 통곡하였다고 전한다. 이 외에도 화양동에는 충효절의, 비례부동 등 많은 애각사적이 산재해 있어 송시열의 북벌애국사상과 민족자존정신이 깃든 유적의 성격과 조선성리학의 중심지로서 일제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되고 왜곡된 사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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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림사는 낙영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신라 경문왕때에 자정선사가 창건한 고찰로 알려져 있다. 자정선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던 중 그 법력과 덕화가 세간에 두루 알려지자 왕이 선사를 국사에 봉하고 입궐을 청하였으나, 세상을 떠나온 사람이 다시 세간으로 나갈 수 없다고 사양했다고 한다. 왕이 선사의 덕화에 감동받아 왕명으로 사원을 창건하고 공림사의 사명을 지어 액자를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 중기에는 법주사보다 더 흥하였지만, 이후 임진왜란으로 대웅전만 남고 소실되었던 것을 인조 때 중창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공비들이 절에 출몰한다는 이유로 토벌군에 의해 전소되어 폐사되었다. 공림사에는 부도, 사적비, 석조, 일주문 등의 유물이 있으며, 중건 시 세운 대웅전, 관음전, 삼성각, 감인선원 등 건물이 있다. 공림사 사적비는 1688년에 세운 것으로, 경내의 요사채 동쪽 언덕 아래에 있다. 앞면에는 공림사의 유래와 연력을 비롯해서 비의 건립 경위 등을 적었는데, 시주자, 승려, 주지, 각수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적비는 비문이 완전하여 조선 중기의 사회상과 지역의 동태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절 앞에 조성된 느티나무 숲과 절을 품고 있는 웅장하고 흰 바위산인 낙영산은 천년고찰 공림사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7시간
코스거리
20km
테마
자유여행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