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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 마을 혜화동의 어제와 오늘

소개

혜화동 로터리를 거쳐 성균관과 종교, 창경궁의 자생식물원까지 명륜동 일대의 자연이 베푸는 무한한 색의 향연을 누리며 잠시 속세의 혼탁함을 잊어보자. 이 오래된 성안의 지역은 과거와 현재가 그 어느 지역보다 혼재한 곳이다. 그 특별한 아름다움도 함께 누려보자. 출처:이야기를 따라 한양 도성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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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04 (동숭동)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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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로
대학로

젊음의 열기가 가득한 대학로는 대한민국의 예술, 공연, 자유 등을 대표하는 문화 집결지라 할 수 있다. 대학로가 젊은이들에게 이처럼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던 것은 서울대학교 문리대와 법대가 자리한 시절부터이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주변 대학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다른 어떤 장소와도 비교 불가한 대학로만의 개성을 만들어갔다. 1975년 서울대학교는 관악산 아래로 캠퍼스를 이전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아름드리 마로니에 나무가 있어 ‘마로니에공원’이라 이름 붙은 공원이 조성되었다. 이후 젊은이들과 방문자들을 위한 연극, 뮤지컬 등의 크고 작은 문화시설들이 하나 둘 들어서게 되면서 비로소 오늘날의 대학로가 완성되었다. 서울시는 1985년 5월 대학로를 ‘문화예술의 거리’로, 인사동에 이어 두 번째로 2004년에 ‘문화지구’에 지정했다. 문화지구는 문화자원이 밀집된 장소를 선별해 시장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보호하고 관리할 필요성을 느껴 선정한다. 대학로의 공연 예술을 활성화시키고 방문객을 늘면서도 상업 관련 시설이 주가 되는 것은 지양하고 소극장 및 문화시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앞으로도 대학로만의 순수한 낭만과 예술이 번창하는 곳이기를, 대학로의 더욱 빛나는 내일을 소망한다.

2 서울 문묘와 성균관
서울 문묘와 성균관

서울 문묘와 성균관은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안에 있는 유적으로 1398년 조선 태조가 창건했다. 문묘는 유교를 집대성한 성인 공자를 비롯하여 옛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이고 성균관은 고려시대 국자감의 전통을 이어받은 조선시대 최고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중국 당나라 때 공자가 문선왕으로 추봉 됨에 따라 문선왕묘라고 부르다가 원나라 이후 문묘라고 하였다. 전묘후학의 건물 배치 형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제향 구역인 문묘는 앞에, 교육을 실시하는 강학 구역인 성균관은 뒤에 두었다. 제사를 담당한 제향 관련 건물로는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서무, 비각, 삼문(신삼문), 동삼문, 제기고, 전사청, 수복청, 향관청, 포주 등이 있다. 교육을 담당한 강학 관련 건물로는 명륜당을 비롯하여 동재·서재, 존경각, 육일각, 진사식당, 정록청, 비복청, 서리청, 비천당 등이 있다. 주요 건물인 대성전, 명륜당, 동무·서무, 삼문(신삼문)은 보물로 지정되고 나머지 유적들은 1964년 11월 10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명륜당 앞쪽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다. 조선시대에 제향과 유학 교육을 담당한 유교의 중심지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건축사 연구를 위한 자료로도 가치가 큰 유적이다.

3 종묘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宗廟)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이다. 종묘에는 본래의 건물인 정전과 별도의 사당인 영녕전을 비롯하여 여러 부속건물이 있다. 조선 건국 후 1395년(태조 4) ‘궁궐을 기준으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세운다’는 예에 따라 현재의 자리에 종묘를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현재의 정전만 있어서 ‘대묘, 태묘, 종묘’라고 불렀다. 조선은 제후국으로 5묘제(五廟制)의 예에 따라 개국시조(태조)와 재위 중인 왕의 4대 조상(고조·증조·조·부)을 모시는 제도로 종묘에 신주를 모셨다. 그러다가 세종대에 5묘제에 따라 태조를 제외하고 4대가 지난 왕의 신주를 두고 여러 차례 논의한 끝에 정전 옆에 새로운 별묘(別廟)를 지어 그 이름을 ‘영녕전’이라 하였다. 4대가 지난 왕의 신주는 모두 영녕전으로 옮겨 모셨다가, 연산군 대에 ‘세실(世室, 대대로 정전에 신주를 모심)’과 ‘조천(祧遷, 영녕전으로 신주를 옮김)’의 예로 신주를 모시게 되었다. 이러한 예에 따라 3년상(27개월)이 끝난 왕과 왕비의 부묘례(祔廟禮,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의식) 때 정전에 처음 신주가 모셔지고, 이후 ‘세실’ 또는 ‘조천’으로 정하여 정전과 영녕전에 각각 신주를 모시게 되었다. 모시는 신주가 늘어나면서 신실이 몇 차례 증축이 되어 현재의 정전 19칸, 영녕전 16칸의 규모가 되었다. 그 밖에 종묘 경내에는 망묘루(望廟樓, 종묘서(宗廟署)의 관원들이 제례에 관한 업무를 보던 곳), 향대청(香大廳,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곳), 재궁(齋宮, 왕과 세자가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던 곳), 전사청(典祀廳, 제사의 음식을 마련하는 곳) 등의 건물이 있다.

4 창경궁 대온실
창경궁 대온실

대온실(大溫室)은 1909년(융희 3)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유리로 둘러싼 서양식 온실이다. 준공 당시에는 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다. 1986년 창경궁 복원 이후에는 국내 자생 식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2004년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코스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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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열기가 가득한 대학로는 대한민국의 예술, 공연, 자유 등을 대표하는 문화 집결지라 할 수 있다. 대학로가 젊은이들에게 이처럼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던 것은 서울대학교 문리대와 법대가 자리한 시절부터이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주변 대학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다른 어떤 장소와도 비교 불가한 대학로만의 개성을 만들어갔다. 1975년 서울대학교는 관악산 아래로 캠퍼스를 이전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아름드리 마로니에 나무가 있어 ‘마로니에공원’이라 이름 붙은 공원이 조성되었다. 이후 젊은이들과 방문자들을 위한 연극, 뮤지컬 등의 크고 작은 문화시설들이 하나 둘 들어서게 되면서 비로소 오늘날의 대학로가 완성되었다. 서울시는 1985년 5월 대학로를 ‘문화예술의 거리’로, 인사동에 이어 두 번째로 2004년에 ‘문화지구’에 지정했다. 문화지구는 문화자원이 밀집된 장소를 선별해 시장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보호하고 관리할 필요성을 느껴 선정한다. 대학로의 공연 예술을 활성화시키고 방문객을 늘면서도 상업 관련 시설이 주가 되는 것은 지양하고 소극장 및 문화시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앞으로도 대학로만의 순수한 낭만과 예술이 번창하는 곳이기를, 대학로의 더욱 빛나는 내일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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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묘와 성균관은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안에 있는 유적으로 1398년 조선 태조가 창건했다. 문묘는 유교를 집대성한 성인 공자를 비롯하여 옛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이고 성균관은 고려시대 국자감의 전통을 이어받은 조선시대 최고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중국 당나라 때 공자가 문선왕으로 추봉 됨에 따라 문선왕묘라고 부르다가 원나라 이후 문묘라고 하였다. 전묘후학의 건물 배치 형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제향 구역인 문묘는 앞에, 교육을 실시하는 강학 구역인 성균관은 뒤에 두었다. 제사를 담당한 제향 관련 건물로는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서무, 비각, 삼문(신삼문), 동삼문, 제기고, 전사청, 수복청, 향관청, 포주 등이 있다. 교육을 담당한 강학 관련 건물로는 명륜당을 비롯하여 동재·서재, 존경각, 육일각, 진사식당, 정록청, 비복청, 서리청, 비천당 등이 있다. 주요 건물인 대성전, 명륜당, 동무·서무, 삼문(신삼문)은 보물로 지정되고 나머지 유적들은 1964년 11월 10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명륜당 앞쪽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다. 조선시대에 제향과 유학 교육을 담당한 유교의 중심지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건축사 연구를 위한 자료로도 가치가 큰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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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宗廟)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이다. 종묘에는 본래의 건물인 정전과 별도의 사당인 영녕전을 비롯하여 여러 부속건물이 있다. 조선 건국 후 1395년(태조 4) ‘궁궐을 기준으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세운다’는 예에 따라 현재의 자리에 종묘를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현재의 정전만 있어서 ‘대묘, 태묘, 종묘’라고 불렀다. 조선은 제후국으로 5묘제(五廟制)의 예에 따라 개국시조(태조)와 재위 중인 왕의 4대 조상(고조·증조·조·부)을 모시는 제도로 종묘에 신주를 모셨다. 그러다가 세종대에 5묘제에 따라 태조를 제외하고 4대가 지난 왕의 신주를 두고 여러 차례 논의한 끝에 정전 옆에 새로운 별묘(別廟)를 지어 그 이름을 ‘영녕전’이라 하였다. 4대가 지난 왕의 신주는 모두 영녕전으로 옮겨 모셨다가, 연산군 대에 ‘세실(世室, 대대로 정전에 신주를 모심)’과 ‘조천(祧遷, 영녕전으로 신주를 옮김)’의 예로 신주를 모시게 되었다. 이러한 예에 따라 3년상(27개월)이 끝난 왕과 왕비의 부묘례(祔廟禮,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의식) 때 정전에 처음 신주가 모셔지고, 이후 ‘세실’ 또는 ‘조천’으로 정하여 정전과 영녕전에 각각 신주를 모시게 되었다. 모시는 신주가 늘어나면서 신실이 몇 차례 증축이 되어 현재의 정전 19칸, 영녕전 16칸의 규모가 되었다. 그 밖에 종묘 경내에는 망묘루(望廟樓, 종묘서(宗廟署)의 관원들이 제례에 관한 업무를 보던 곳), 향대청(香大廳,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곳), 재궁(齋宮, 왕과 세자가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던 곳), 전사청(典祀廳, 제사의 음식을 마련하는 곳) 등의 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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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大溫室)은 1909년(융희 3)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유리로 둘러싼 서양식 온실이다. 준공 당시에는 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다. 1986년 창경궁 복원 이후에는 국내 자생 식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2004년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6시간
코스거리
9.22km
테마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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