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마을과 문화 유적 이야기
소개
성북동 유적 코스는 맑고 향기롭고 고느넉한 풍경 속으로 길상사에서 정릉에 이르는 길 코스다. 서울 도성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옛 자취와 터를 찾는 길로 그 시절 문화와 유적이 곳곳에 배어 있는 문화역사의 자취를 찾아가 보자. 출처:이야기를 따라 한양 도성을 걷다.
코스 지도
길상사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 삼각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다. 1987년에 김영한 여사가 법정스님의 무소유 청빈 사상에 감동받아 7,000여 평의 대지와 40여 동의 부동산을 기증하며 길상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법정스님은 1995년에 대법사로 등록하고, 1997년 12월 14일에 길상사로 개명하여 창건되었다. 길상사는 극락전, 설법전, 지장전, 범종각, 관세음보살상, 길상보탑, 길상화 공덕비, 법정스님 진영각 등 다양한 건축물과 시설을 자랑한다. 극락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두고,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보살로 봉안하고 있다. 2005년에 옛 건물을 재정비하여 지장전과 선열당(공양간)을, 2008년에는 설법전과 종각을 새로 지어 자연과 조화를 이룬 수행 공간으로 꾸몄다. 사찰 내에서는 불교와 가톨릭 신자인 최종태 조각가의 만남이 빚어낸 섬세하고 오묘한 관세음보살상이 많은 사람들을 온화하게 맞이하고 있다. 2013년에는 법정스님의 유품과 저서를 전시하는 진영각을 개원하였다. 설법전에서 불교대학, 불교입문, 요가, 사경, 선명상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교육도량으로서의 신행을 실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성북동에 위치한 최순우 옛집은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찾고 알린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거주한 주택이다. 1930년대 지어진 근대 한옥인 이 집은 곳곳에 선생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재 이곳은 2002년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확보하여 2004년 4월 일반 개방을 통해 공개되었다. 시민 모금으로 매입한 뒤 가족들이 살며 덧대어 쓴 공간을 덜어내고 낡은 곳을 보수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하였다. 최순우 선생이 쓰던 유품과 친필 원고, 문화예술인들이 보낸 연하장과 선물한 그림 등을 유족과 지인들에게 기증받아 상설 전시하고, 최순우 선생이 찾아 알린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과 교유한 문화예술인을 소개하는 기획전시, 다양한 시민 참여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안채는 전시공간으로, 동편 행랑채는 사무공간으로, 서편 행랑채는 회의실과 방문객의 휴게공간 등 서비스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릉은 조선 1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황후 강씨(~1396)의 능이다. 1396년(태조 5) 신덕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는 취현방(현 서울 중구 영국대사관 근처)에 정릉을 조성하고, 자신이 묻힐 자리까지 함께 만들었다. 그러나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정릉의 능역 100보 근처까지 집을 짓는 것을 허락하였다. 1408년(태종 8) 태조가 세상을 떠난 후 다음 해(1409년) 정릉이 도성 안에 있는 것이 예에 어긋난다 하여 사을한 산기슭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옛 정릉의 목재는 태평관(太平館)을 짓는 데 사용하였고, 병풍석과 난간석은 홍수로 무너진 청계천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다. 일반묘나 다름없었던 정릉은 260여 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에 왕릉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정릉의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이 있고 석양과 석호는 1쌍씩 배치하였다. 능침 석물 중 장명등과 석상(혼유석)을 받치는 고석(鼓石)만 옛 정릉의 석물이고 나머지는 현종 대에 다시 만든 석물이다. 장명등은 고려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왕릉 중 가장 오래된 석물이다. 능침 아래에 있는 비각에는 1개의 표석이 있는데 조선시대에 세운 ‘조선국 신덕왕후 정릉’의 표석을 대한제국 때 신덕왕후를 황후로 추존하면서 ‘대한 신덕고황후 정릉’으로 바꾸었다. 향로와 어로는 지형에 맞게 조성하여 한 번 꺾여있다.
코스 구성
길상사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 삼각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다. 1987년에 김영한 여사가 법정스님의 무소유 청빈 사상에 감동받아 7,000여 평의 대지와 40여 동의 부동산을 기증하며 길상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법정스님은 1995년에 대법사로 등록하고, 1997년 12월 14일에 길상사로 개명하여 창건되었다. 길상사는 극락전, 설법전, 지장전, 범종각, 관세음보살상, 길상보탑, 길상화 공덕비, 법정스님 진영각 등 다양한 건축물과 시설을 자랑한다. 극락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두고,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보살로 봉안하고 있다. 2005년에 옛 건물을 재정비하여 지장전과 선열당(공양간)을, 2008년에는 설법전과 종각을 새로 지어 자연과 조화를 이룬 수행 공간으로 꾸몄다. 사찰 내에서는 불교와 가톨릭 신자인 최종태 조각가의 만남이 빚어낸 섬세하고 오묘한 관세음보살상이 많은 사람들을 온화하게 맞이하고 있다. 2013년에는 법정스님의 유품과 저서를 전시하는 진영각을 개원하였다. 설법전에서 불교대학, 불교입문, 요가, 사경, 선명상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교육도량으로서의 신행을 실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성북동에 위치한 최순우 옛집은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찾고 알린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거주한 주택이다. 1930년대 지어진 근대 한옥인 이 집은 곳곳에 선생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재 이곳은 2002년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확보하여 2004년 4월 일반 개방을 통해 공개되었다. 시민 모금으로 매입한 뒤 가족들이 살며 덧대어 쓴 공간을 덜어내고 낡은 곳을 보수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하였다. 최순우 선생이 쓰던 유품과 친필 원고, 문화예술인들이 보낸 연하장과 선물한 그림 등을 유족과 지인들에게 기증받아 상설 전시하고, 최순우 선생이 찾아 알린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과 교유한 문화예술인을 소개하는 기획전시, 다양한 시민 참여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안채는 전시공간으로, 동편 행랑채는 사무공간으로, 서편 행랑채는 회의실과 방문객의 휴게공간 등 서비스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릉은 조선 1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황후 강씨(~1396)의 능이다. 1396년(태조 5) 신덕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는 취현방(현 서울 중구 영국대사관 근처)에 정릉을 조성하고, 자신이 묻힐 자리까지 함께 만들었다. 그러나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정릉의 능역 100보 근처까지 집을 짓는 것을 허락하였다. 1408년(태종 8) 태조가 세상을 떠난 후 다음 해(1409년) 정릉이 도성 안에 있는 것이 예에 어긋난다 하여 사을한 산기슭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옛 정릉의 목재는 태평관(太平館)을 짓는 데 사용하였고, 병풍석과 난간석은 홍수로 무너진 청계천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다. 일반묘나 다름없었던 정릉은 260여 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에 왕릉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정릉의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이 있고 석양과 석호는 1쌍씩 배치하였다. 능침 석물 중 장명등과 석상(혼유석)을 받치는 고석(鼓石)만 옛 정릉의 석물이고 나머지는 현종 대에 다시 만든 석물이다. 장명등은 고려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왕릉 중 가장 오래된 석물이다. 능침 아래에 있는 비각에는 1개의 표석이 있는데 조선시대에 세운 ‘조선국 신덕왕후 정릉’의 표석을 대한제국 때 신덕왕후를 황후로 추존하면서 ‘대한 신덕고황후 정릉’으로 바꾸었다. 향로와 어로는 지형에 맞게 조성하여 한 번 꺾여있다.
- 소요시간
- 5시간
- 코스거리
- 6.45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5시간
- 코스거리
- 6.45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