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교 강화 당일치기 여행 코스
소개
서울 근교 한적한 강화도에서 여행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당일치기 코스를 소개한다. 막걸리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금풍양조장, 사적으로 지정된 대한 성공회 강화성당, 유서깊은 전등사까지 즐길 수 있는 강화도 여행코스이다.
코스 지도
금풍양조장은 강화도 전통주의 역사이다. 100년 전통의 막걸리는 강화도 최고의 친환경 쌀을 원료로 하여 고급화 과학화를 위해 정진하고 있다. 2021년 강화도 최초로 지역 특산주(탁주, 약주) 면허를 획득, 지역 원료 소비와 세계화 주류 제조라는 목표를 가지고 전진하고 있으며, 특징적인 것은 쌀 포대를 업사이클링 한 패키지를 제작하여 새로운 이목을 끌고 있다.
강화성당은 고요한 (Chari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 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1981년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유산으로 처음 지정된 이래 강화군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인천지방유형 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가 2001년 1월에 국가사적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전등사는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 호국불교 근본도량으로 역사와 권위를 간직한 사찰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삼랑성은 단군이 세 아들(三郞)을 시켜 쌓았던 고대의 토성이었고, 삼국시대에는 토성 자리에 석성을 쌓아 올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등사가 창건된 것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처음 전등사를 창건한 분은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이었다. 당시 아도 화상은 강화도를 거쳐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 때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그때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이후 고려 왕실에서는 삼랑성 안에 가궐을 지은 후 진종사를 크게 중창시켰으며, 16년이 지난 충렬왕 때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라 사찰 명칭을 바꾸었다. 이후 조선 광해군 때인 1614년에 화재로 인해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가 지경 스님을 중심으로 재건을 시작하여 1621년 2월에 전등사의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전등사에는 대웅전, 약사전, 범종 등 대한민국의 보물이 있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사고가 경내에 있다. 또, 동문 쪽에는 전등사가 호국불교의 진원지임을 증명하는 양헌수승전비가 있다. 병인양요 때 전략적 요충지였던 전등사에 쳐들어온 프랑스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고종 10년인 1873년에 건립한 것이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템플스테이가 준비되어 있으며, 당일형, 체험형, 휴식형으로 나뉘어 있다. 당일형은 짧은 시간 틈을 내 한국의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고, 체험형은 계절 또는 참가자들의 특성에 따라 사찰마다 조금씩 다른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휴식형은 말 그대로 사찰에 머물며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강화평화전망대는 강화도 최북단인 양사면 제적봉에 위치한 전망대로, 북한 지역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민족 동질성 회복과 평화통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문화·관광 공간으로 조성되었으며, 2008년 9월 개관하였다. 전망대에서는 예성강 너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를 비롯해 연안군과 백천군 방면의 연백평야를 조망할 수 있다. 또한 북한 주민들의 생활 모습과 선전마을, 개성 송수신탑, 송악산 등을 살펴볼 수 있어 분단 현실을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코스 구성
금풍양조장은 강화도 전통주의 역사이다. 100년 전통의 막걸리는 강화도 최고의 친환경 쌀을 원료로 하여 고급화 과학화를 위해 정진하고 있다. 2021년 강화도 최초로 지역 특산주(탁주, 약주) 면허를 획득, 지역 원료 소비와 세계화 주류 제조라는 목표를 가지고 전진하고 있으며, 특징적인 것은 쌀 포대를 업사이클링 한 패키지를 제작하여 새로운 이목을 끌고 있다.
강화성당은 고요한 (Chari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 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1981년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유산으로 처음 지정된 이래 강화군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인천지방유형 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가 2001년 1월에 국가사적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전등사는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 호국불교 근본도량으로 역사와 권위를 간직한 사찰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삼랑성은 단군이 세 아들(三郞)을 시켜 쌓았던 고대의 토성이었고, 삼국시대에는 토성 자리에 석성을 쌓아 올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등사가 창건된 것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처음 전등사를 창건한 분은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이었다. 당시 아도 화상은 강화도를 거쳐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 때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그때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이후 고려 왕실에서는 삼랑성 안에 가궐을 지은 후 진종사를 크게 중창시켰으며, 16년이 지난 충렬왕 때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라 사찰 명칭을 바꾸었다. 이후 조선 광해군 때인 1614년에 화재로 인해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가 지경 스님을 중심으로 재건을 시작하여 1621년 2월에 전등사의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전등사에는 대웅전, 약사전, 범종 등 대한민국의 보물이 있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사고가 경내에 있다. 또, 동문 쪽에는 전등사가 호국불교의 진원지임을 증명하는 양헌수승전비가 있다. 병인양요 때 전략적 요충지였던 전등사에 쳐들어온 프랑스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고종 10년인 1873년에 건립한 것이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템플스테이가 준비되어 있으며, 당일형, 체험형, 휴식형으로 나뉘어 있다. 당일형은 짧은 시간 틈을 내 한국의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고, 체험형은 계절 또는 참가자들의 특성에 따라 사찰마다 조금씩 다른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휴식형은 말 그대로 사찰에 머물며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강화평화전망대는 강화도 최북단인 양사면 제적봉에 위치한 전망대로, 북한 지역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민족 동질성 회복과 평화통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문화·관광 공간으로 조성되었으며, 2008년 9월 개관하였다. 전망대에서는 예성강 너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를 비롯해 연안군과 백천군 방면의 연백평야를 조망할 수 있다. 또한 북한 주민들의 생활 모습과 선전마을, 개성 송수신탑, 송악산 등을 살펴볼 수 있어 분단 현실을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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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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