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빛나는 경주의 야간투어 코스
소개
수학여행하면 먼저 떠오르는 경주는 신라의 문화와 역사가 잠들어있는 고고한 도시다. 그러나 경주의 밤은 잠들지 않는다. 밤에 가보면 더 아름다운 첨성대나 계림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코스 지도
경주 보문 단지는 경주 시가지에서 동쪽으로 약 10여㎞ 정도 떨어진 명활산 옛 성터에 보문호를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보문관광단지는 전 지역이 온천지구 및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있고 도로, 전기, 통신,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이 완비되어 있으며 컨벤션시티로의 육성, 보문관광단지와 연계한 감포 관광단지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등 국제적 수준의 종합관광 휴양 단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총 8,000,036㎡(242만 평)의 대지에 국제적 규모의 최고급 호텔, 가족단위의 콘도미니엄, 골프장, 각종 수상시설, 산책로, 보문호와 고사분수 등 수많은 위락시설을 갖춘 경주의 사랑방이라고 일컫는 종합관광 휴양지이다. 경주지역에는 특히 벚나무가 많다. 어느 특정 지역에만 많은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벚꽃 천지인 것이 다른 지역과 다르다. 4월 개화기 때에는 발길 닿는 곳마다 온통 벚꽃 천지이지만 그중에서 특히 이곳 보문호 주위와 불국사 공원 벚꽃이 한층 기염을 토한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꽃송이가 눈발처럼 날려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푼 장소이다. 신라가 멸망한 후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와 기러기 안과 오리 압을 써서 예전엔 안압지로 불렸으나 2011년에 경주 동궁과 월지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 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궁에는 임해전을 비롯해 총 27동의 건물이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현재는 3채만 복원되었고 그 건물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과 월지에 반사된 모습은 경주의 대표 야경명소로 뽑힌다.
경주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천문관측대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의 천문 관측과 과학 기술을 보여주는 국가유산이다. 전체 높이는 약 9m다. 네모난 기단 위에 술병 형태의 원통부를 세우고, 꼭대기에 우물 정(井)자 모양의 석재를 배치했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을 27단으로 쌓아 만들었다. 남동쪽에 난 창 아래의 내부는 막돌로 채워져 있으며, 창 위쪽부터 정상까지는 비어 있다. 정상부의 동쪽 절반은 판돌로 덮여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오늘도 사랑스럽개」 과거의 특별한 인연으로 묶인 보겸과 지아가 서로를 스쳐 지나갔던 첨성대는 경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다. 유적으로서 관람가치가 뛰어난 것은 물론 계절마다 다양한 꽃과 식물이 피어나 나들이를 즐기려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경주 계림은 첨성대(瞻星臺)와 월성(月城)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경주 김씨의 시조 알지(閼智)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 탈해왕(脫解王) 때 회공(瓠公)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金櫃)가 빛을 내며 걸려 있었다.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렸다. 뚜껑을 열자 궤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하여 성(姓)을 김(金), 이름을 알지라 하고, 본래 시림(始林), 구림(鳩林)이라 하던 이 숲을 계림(鷄林)으로 부르게 되었다. 계림은 신라의 국호(國號)로도 쓰이게 되었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후에 왕위는 박씨 왕족인 파사왕에게 계승되어 왕이 되지 못했고, 후대인 내물왕 대부터 신라 김씨가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경내의 비는 조선 순조(純祖) 3년(1803)에 세워진 것으로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신라 왕성 가까이에 자리한 계림은 신라 김씨 왕족의 탄생지로 여겨져 신성시되고 있다. 지금도 왕버들과 느티나무가 하늘을 가릴 듯이 우거져 있으며, 북쪽에서 서쪽으로 작은 실개천이 굽이쳐 흐른다. 대릉원-계림-반월성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옆에는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피어나 유적지의 운치를 한층 더해 준다.
경주 교촌마을은 신라 신문왕 2년(682)에 설립된 신라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있던 곳이다. 이 교육기관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고려시대에는 향학, 조선시대에는 향교로 이어졌다. 마을 이름이 교동, 교촌, 교리 등으로 불린 것도 모두 향교가 있던 곳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마을 주변에는 삼국유사 속 이야기보따리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 원효스님과 요석공주의 사랑을 이어준 문천교(蚊川橋) 터, 김유신이 살던 재매정, 월정교와 충담스님, 도화녀를 사랑한 진지왕, 선덕여왕이 만든 첨성대 등 수많은 이야기의 흔적이 교촌과 남천을 따라 펼쳐져 있다. 최부자 고택을 중심으로 향교와 전통한옥이 많이 남아있으며 가까운 곳에 월성, 월정교, 첨성대, 계림, 고분 등 소중한 신라유적이 있어 신라 문화 속의 조선 문화가 공존하는 특별한 곳이다. 또한 새롭게 복원·조성되어 문화유적의 원형을 잘 보존하면서도 관광객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관광지로 거듭났으며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 교량인 월정교가 복원되어 목조건축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야간에는 화려한 조명으로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야경 코스가 되었다.
코스 구성
경주 보문 단지는 경주 시가지에서 동쪽으로 약 10여㎞ 정도 떨어진 명활산 옛 성터에 보문호를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보문관광단지는 전 지역이 온천지구 및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있고 도로, 전기, 통신,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이 완비되어 있으며 컨벤션시티로의 육성, 보문관광단지와 연계한 감포 관광단지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등 국제적 수준의 종합관광 휴양 단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총 8,000,036㎡(242만 평)의 대지에 국제적 규모의 최고급 호텔, 가족단위의 콘도미니엄, 골프장, 각종 수상시설, 산책로, 보문호와 고사분수 등 수많은 위락시설을 갖춘 경주의 사랑방이라고 일컫는 종합관광 휴양지이다. 경주지역에는 특히 벚나무가 많다. 어느 특정 지역에만 많은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벚꽃 천지인 것이 다른 지역과 다르다. 4월 개화기 때에는 발길 닿는 곳마다 온통 벚꽃 천지이지만 그중에서 특히 이곳 보문호 주위와 불국사 공원 벚꽃이 한층 기염을 토한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꽃송이가 눈발처럼 날려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푼 장소이다. 신라가 멸망한 후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와 기러기 안과 오리 압을 써서 예전엔 안압지로 불렸으나 2011년에 경주 동궁과 월지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 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궁에는 임해전을 비롯해 총 27동의 건물이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현재는 3채만 복원되었고 그 건물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과 월지에 반사된 모습은 경주의 대표 야경명소로 뽑힌다.
경주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천문관측대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의 천문 관측과 과학 기술을 보여주는 국가유산이다. 전체 높이는 약 9m다. 네모난 기단 위에 술병 형태의 원통부를 세우고, 꼭대기에 우물 정(井)자 모양의 석재를 배치했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을 27단으로 쌓아 만들었다. 남동쪽에 난 창 아래의 내부는 막돌로 채워져 있으며, 창 위쪽부터 정상까지는 비어 있다. 정상부의 동쪽 절반은 판돌로 덮여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오늘도 사랑스럽개」 과거의 특별한 인연으로 묶인 보겸과 지아가 서로를 스쳐 지나갔던 첨성대는 경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다. 유적으로서 관람가치가 뛰어난 것은 물론 계절마다 다양한 꽃과 식물이 피어나 나들이를 즐기려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경주 계림은 첨성대(瞻星臺)와 월성(月城)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경주 김씨의 시조 알지(閼智)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 탈해왕(脫解王) 때 회공(瓠公)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金櫃)가 빛을 내며 걸려 있었다.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렸다. 뚜껑을 열자 궤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하여 성(姓)을 김(金), 이름을 알지라 하고, 본래 시림(始林), 구림(鳩林)이라 하던 이 숲을 계림(鷄林)으로 부르게 되었다. 계림은 신라의 국호(國號)로도 쓰이게 되었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후에 왕위는 박씨 왕족인 파사왕에게 계승되어 왕이 되지 못했고, 후대인 내물왕 대부터 신라 김씨가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경내의 비는 조선 순조(純祖) 3년(1803)에 세워진 것으로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신라 왕성 가까이에 자리한 계림은 신라 김씨 왕족의 탄생지로 여겨져 신성시되고 있다. 지금도 왕버들과 느티나무가 하늘을 가릴 듯이 우거져 있으며, 북쪽에서 서쪽으로 작은 실개천이 굽이쳐 흐른다. 대릉원-계림-반월성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옆에는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피어나 유적지의 운치를 한층 더해 준다.
경주 교촌마을은 신라 신문왕 2년(682)에 설립된 신라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있던 곳이다. 이 교육기관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고려시대에는 향학, 조선시대에는 향교로 이어졌다. 마을 이름이 교동, 교촌, 교리 등으로 불린 것도 모두 향교가 있던 곳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마을 주변에는 삼국유사 속 이야기보따리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 원효스님과 요석공주의 사랑을 이어준 문천교(蚊川橋) 터, 김유신이 살던 재매정, 월정교와 충담스님, 도화녀를 사랑한 진지왕, 선덕여왕이 만든 첨성대 등 수많은 이야기의 흔적이 교촌과 남천을 따라 펼쳐져 있다. 최부자 고택을 중심으로 향교와 전통한옥이 많이 남아있으며 가까운 곳에 월성, 월정교, 첨성대, 계림, 고분 등 소중한 신라유적이 있어 신라 문화 속의 조선 문화가 공존하는 특별한 곳이다. 또한 새롭게 복원·조성되어 문화유적의 원형을 잘 보존하면서도 관광객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관광지로 거듭났으며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 교량인 월정교가 복원되어 목조건축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야간에는 화려한 조명으로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야경 코스가 되었다.
- 소요시간
- 3시간
- 코스거리
- 11.10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3시간
- 코스거리
- 11.10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