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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용으로 다시 태어난 문무대왕을 찾아서

소개

경주 시내에서 토함산을 넘어가면 기림사, 골굴사 등 사찰과 함께 삼국통일의 주역인 문무왕의 자취를 만나러 가는 길이 이어진다. 선무도로 유명한 골굴사에서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불을 만난 뒤 사세에 비해 차분하고 고즈넉한 기림사를 돌아본다. 수중릉으로 조성된 문무왕릉과 신문왕이 조성한 감은사지를 둘러보고 경주의 바다를 만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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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기림로 101-5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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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골굴암의 높은 암벽에 있는 자연굴을 이용하여 만든 12개의 석굴 중 가장 윗부분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이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그린 ‘골굴석굴’에는 목조전실이 묘사되었으나 지금은 바위에 흔적만 남아있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이 솟아있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은 가늘어진 눈, 작은 입, 좁고 긴 코 등의 표현에서 이전보다 형식화가 진전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입체감이 두드러진 얼굴에 비해 평면적인 신체는 어깨가 거의 수평을 이루면서 넓게 표현되었는데, 목과 가슴 윗부분은 손상되었다.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겨드랑이 사이에는 팔과 몸의 굴곡을 표시한 V자형 무늬가 있다. 암벽에 그대로 새긴 광배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머리광배와 불상 둘레의 율동적인 불꽃무늬를 통해 흔적을 살필 수 있다. 평면적인 신체와 얇게 빚은 듯한 계단식의 옷주름, 겨드랑이 사이의 U자형 옷주름 등이 867년에 조성된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와 유사한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 기림사
기림사

기림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사찰이며, 처음에는 임정사라 불리다 원효가 도량을 확장하면서 기림사로 개칭하였다. 기림사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랑 500년 이상 된 큰 보리수나무가 있는 지역과 보 박물관, 삼성각, 명부전, 관음전 등이 있는 지역이다. 대적광전은 기림사의 본전으로 배흘림기둥의 다포식 단층 맞배지붕의 건물이며 조선 초기 불상의 전형을 갖춘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대적광전과 진남루 사이 서쪽에 오백나한전이 있고, 그 바로 앞에 3층 석탑이 있다. 성보박물관에는 보물로 지정된 건칠보살 반가상과 비러자나불 복장전적과 목비, 석조 토제지미 등 많은 문화유산 자료들이 있다. 기림사에는 오종수라고 불리는 다섯 가지 맛을 내는 물이 유명하다. 차를 끓여 마시면 맛이 으뜸이라는 감로수와 그냥 마셔도 마음이 편안하다는 화정수, 기골이 장대해진다는 장군수, 눈이 맑아진다는 명안수, 물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오탁수가 그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장군이 태어날까 두려워 장군수의 물길을 막아버렸고 지금은 네 곳만 물이 솟아 나오고 있다. 기림사에서는 산사체험 프로그램과 템플스테이도 운영하는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율형과 예불 참여와 108배 등 스님과 함께하는 체험형이 있다. 계절별 테마로 구성되어 봄에는 녹차 만들기, 여름에는 용연폭포에서 명상의 길 체험, 가을에는 연차 시음하기 및 산사음악회 관람, 겨울에는 타종식과 동해의 해맞이도 볼 수 있다. 그 밖에 만다라 그리기, 마하사 여름수련회, 어린이 여름불교 학교도 체험해 볼 수 있다.

3 경주 감은사지
경주 감은사지

감은사는 동해안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지금은 3층석탑 2기와 금당 및 강당 등 건물터만 남아있다. 신라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웠다. 절이 다 지어지기 전에 왕이 죽자, 그 뜻을 이어받아 아들인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 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절 부근의 대왕암이며,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강당·금당·중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금당 앞에는 동·서쪽에 두 탑을 대칭적으로 세웠음을 밝혔다. 이 건물들은 모두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데, 이러한 배치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금당의 지하에는 배수시설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죽은 문무왕이 바다용이 되어 이 시설을 통해 왕래하였다고 전해진다. 금당 앞의 탑 2기는 우리나라의 석탑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석탑의 모범이 되고 있다. 감은사는 황룡사, 사천왕사와 함께 나라를 보호하는 호국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언제 절이 무너졌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4 경주 문무대왕릉
경주 문무대왕릉

신라 제30대 문무왕(재위 661~681년)의 수중릉으로 신라인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동해 봉길리 앞바다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있으며, 해수면 위로 동서 35m, 남북 36m, 높이 5.3m 정도 노출되어 있다. 문무왕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삼국 통일을 이루었다. 또한 병부, 창부 등 중앙 관청을 창설하였고, 지방 통치를 위한 5소경 제도와 9서당 10정의 군사 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국가 체제 완성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삼국 통일을 이룬 문무왕이 자신이 용이 되어 침입해 들어오는 왜구를 막겠다며, 자신의 시신을 불교식으로 화장하고 유골을 동해에 묻어 달라고 한 유언을 따라 장사한 것이다. 이 바위를 대왕암 또는 대왕바위라 하며, 바닷속 왕릉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대왕암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바위섬에 동서와 남북으로 십자 모양의 인공 수로를 만든 다음, 가운데 작은 못처럼 파서 항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 길이 3.7m, 폭 2.06m, 두께 0.9m의 넓적한 거북 모양의 돌을 물속 2m 깊이에 놓아 그 밑에 유골을 모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의 아들 신문왕은 동해 근처에 감은사를 세워 법당 아래 동해를 향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5 경주 이견대
경주 이견대

대왕암을 의미 있게 눈여겨볼 수 있는 곳이 두 군데 있다. 대본 초등학교 앞쪽에 있는 이견대와 동해구(東海口)라는 표지석 아래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기념비가 서 있는 자리이다. 이견대는 화려한 능묘를 마다하고 동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였다는 곳이며 그의 아들 신문왕이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배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유서 깊은 곳이다. 이견대라는 이름은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라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현재의 건물은 1970년 발굴조사 때 드러난 초석에 근거하여 최근에 지은 것이다. 동해구 표지석 아래로 내려가면 우현 고유섭 선생의 반일 의지를 기리기 위해 1985년 제자들이 세운 기념비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가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 명백한 침략을 내선 합일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우격다짐에 쐐기를 박듯, 이미 통일신라시대에 왜구의 침략을 경계한 문무왕의 호국의지를 돌이켜 생각하며 고유섭이 지은 ‘대왕암’이라는 시와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기념비가 대왕암이 바라다 보이는 자리에 나란히 세워져 있어 뜻이 더 깊다.

6 송대말 등대
송대말 등대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항 북쪽에 있는 송대말 등대는 육지 끝에서부터 암초들이 길게 뻗어 있어 작은 선박들의 사고가 빈번한 감포 앞바다의 해상 안전을 위해 처음에는 무인 등대로 건립되었으며, 이후 유인등대로 승격되어 운영하였고, 현재는 그 기능을 다 하여 사용되지 않고 있다. 대신 그 옆에 경주시 감포읍의 상징인 감은사지 석탑 모형을 본떠 새롭게 만든 5층 등대 건물을 지어 1, 2층은 빛 체험 전시관으로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3, 4, 5층은 기존 등대의 역할을 대신해 감포 앞바다를 비추고 있다. 전시관 1층에는 감포항과 송대말 등대의 역사에 대해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송대말이란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이라는 뜻으로 수령 300년~400년 정도 된 아름드리 해송림이 등대 주변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으며 등대 앞에는 관람객을 위한 나무 데크길이 설치되어 있어 산책하며 주변 경관을 둘러보기 좋으며 무엇보다 문무대왕릉, 양남주상절리와 함께 경주 동해안의 일출 명소로 손꼽히는 장소이다.

코스 구성

1

골굴암의 높은 암벽에 있는 자연굴을 이용하여 만든 12개의 석굴 중 가장 윗부분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이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그린 ‘골굴석굴’에는 목조전실이 묘사되었으나 지금은 바위에 흔적만 남아있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이 솟아있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은 가늘어진 눈, 작은 입, 좁고 긴 코 등의 표현에서 이전보다 형식화가 진전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입체감이 두드러진 얼굴에 비해 평면적인 신체는 어깨가 거의 수평을 이루면서 넓게 표현되었는데, 목과 가슴 윗부분은 손상되었다.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겨드랑이 사이에는 팔과 몸의 굴곡을 표시한 V자형 무늬가 있다. 암벽에 그대로 새긴 광배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머리광배와 불상 둘레의 율동적인 불꽃무늬를 통해 흔적을 살필 수 있다. 평면적인 신체와 얇게 빚은 듯한 계단식의 옷주름, 겨드랑이 사이의 U자형 옷주름 등이 867년에 조성된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와 유사한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

기림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사찰이며, 처음에는 임정사라 불리다 원효가 도량을 확장하면서 기림사로 개칭하였다. 기림사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랑 500년 이상 된 큰 보리수나무가 있는 지역과 보 박물관, 삼성각, 명부전, 관음전 등이 있는 지역이다. 대적광전은 기림사의 본전으로 배흘림기둥의 다포식 단층 맞배지붕의 건물이며 조선 초기 불상의 전형을 갖춘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대적광전과 진남루 사이 서쪽에 오백나한전이 있고, 그 바로 앞에 3층 석탑이 있다. 성보박물관에는 보물로 지정된 건칠보살 반가상과 비러자나불 복장전적과 목비, 석조 토제지미 등 많은 문화유산 자료들이 있다. 기림사에는 오종수라고 불리는 다섯 가지 맛을 내는 물이 유명하다. 차를 끓여 마시면 맛이 으뜸이라는 감로수와 그냥 마셔도 마음이 편안하다는 화정수, 기골이 장대해진다는 장군수, 눈이 맑아진다는 명안수, 물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오탁수가 그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장군이 태어날까 두려워 장군수의 물길을 막아버렸고 지금은 네 곳만 물이 솟아 나오고 있다. 기림사에서는 산사체험 프로그램과 템플스테이도 운영하는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율형과 예불 참여와 108배 등 스님과 함께하는 체험형이 있다. 계절별 테마로 구성되어 봄에는 녹차 만들기, 여름에는 용연폭포에서 명상의 길 체험, 가을에는 연차 시음하기 및 산사음악회 관람, 겨울에는 타종식과 동해의 해맞이도 볼 수 있다. 그 밖에 만다라 그리기, 마하사 여름수련회, 어린이 여름불교 학교도 체험해 볼 수 있다.

3

감은사는 동해안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지금은 3층석탑 2기와 금당 및 강당 등 건물터만 남아있다. 신라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웠다. 절이 다 지어지기 전에 왕이 죽자, 그 뜻을 이어받아 아들인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 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절 부근의 대왕암이며,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강당·금당·중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금당 앞에는 동·서쪽에 두 탑을 대칭적으로 세웠음을 밝혔다. 이 건물들은 모두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데, 이러한 배치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금당의 지하에는 배수시설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죽은 문무왕이 바다용이 되어 이 시설을 통해 왕래하였다고 전해진다. 금당 앞의 탑 2기는 우리나라의 석탑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석탑의 모범이 되고 있다. 감은사는 황룡사, 사천왕사와 함께 나라를 보호하는 호국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언제 절이 무너졌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4

신라 제30대 문무왕(재위 661~681년)의 수중릉으로 신라인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동해 봉길리 앞바다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있으며, 해수면 위로 동서 35m, 남북 36m, 높이 5.3m 정도 노출되어 있다. 문무왕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삼국 통일을 이루었다. 또한 병부, 창부 등 중앙 관청을 창설하였고, 지방 통치를 위한 5소경 제도와 9서당 10정의 군사 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국가 체제 완성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삼국 통일을 이룬 문무왕이 자신이 용이 되어 침입해 들어오는 왜구를 막겠다며, 자신의 시신을 불교식으로 화장하고 유골을 동해에 묻어 달라고 한 유언을 따라 장사한 것이다. 이 바위를 대왕암 또는 대왕바위라 하며, 바닷속 왕릉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대왕암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바위섬에 동서와 남북으로 십자 모양의 인공 수로를 만든 다음, 가운데 작은 못처럼 파서 항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 길이 3.7m, 폭 2.06m, 두께 0.9m의 넓적한 거북 모양의 돌을 물속 2m 깊이에 놓아 그 밑에 유골을 모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의 아들 신문왕은 동해 근처에 감은사를 세워 법당 아래 동해를 향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5

대왕암을 의미 있게 눈여겨볼 수 있는 곳이 두 군데 있다. 대본 초등학교 앞쪽에 있는 이견대와 동해구(東海口)라는 표지석 아래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기념비가 서 있는 자리이다. 이견대는 화려한 능묘를 마다하고 동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였다는 곳이며 그의 아들 신문왕이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배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유서 깊은 곳이다. 이견대라는 이름은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라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현재의 건물은 1970년 발굴조사 때 드러난 초석에 근거하여 최근에 지은 것이다. 동해구 표지석 아래로 내려가면 우현 고유섭 선생의 반일 의지를 기리기 위해 1985년 제자들이 세운 기념비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가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 명백한 침략을 내선 합일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우격다짐에 쐐기를 박듯, 이미 통일신라시대에 왜구의 침략을 경계한 문무왕의 호국의지를 돌이켜 생각하며 고유섭이 지은 ‘대왕암’이라는 시와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기념비가 대왕암이 바라다 보이는 자리에 나란히 세워져 있어 뜻이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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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감포항 북쪽에 있는 송대말 등대는 육지 끝에서부터 암초들이 길게 뻗어 있어 작은 선박들의 사고가 빈번한 감포 앞바다의 해상 안전을 위해 처음에는 무인 등대로 건립되었으며, 이후 유인등대로 승격되어 운영하였고, 현재는 그 기능을 다 하여 사용되지 않고 있다. 대신 그 옆에 경주시 감포읍의 상징인 감은사지 석탑 모형을 본떠 새롭게 만든 5층 등대 건물을 지어 1, 2층은 빛 체험 전시관으로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3, 4, 5층은 기존 등대의 역할을 대신해 감포 앞바다를 비추고 있다. 전시관 1층에는 감포항과 송대말 등대의 역사에 대해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송대말이란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이라는 뜻으로 수령 300년~400년 정도 된 아름드리 해송림이 등대 주변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으며 등대 앞에는 관람객을 위한 나무 데크길이 설치되어 있어 산책하며 주변 경관을 둘러보기 좋으며 무엇보다 문무대왕릉, 양남주상절리와 함께 경주 동해안의 일출 명소로 손꼽히는 장소이다.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7시간
코스거리
31km
테마
자유여행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