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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코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의 역사체험

소개

강화도는 역사의 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시대 때 몽고군의 침입으로 수도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삼별초의 거점이기도 했으며, 조선시대 때에는 병자호란으로 왕세자 일행이 머물기도 했다. 병인양요 때 수탈당한 외규장각도 강화도에 있었다. 굵직한 역사가 남아 있는 강화도의 문화유산 답사코스로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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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동문안길21번길 16-1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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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흥궁
용흥궁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을 붙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기둥머리에서 보와 도리가 직교하여 직접 결구되는 민도리양식이다. 용흥궁은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2 강화 서도 중앙교회
강화 서도 중앙교회

강화도는 19세기 말 조선이 문호를 개방할 때 지리적 여건으로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탓에 서양인들의 선교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다. 당시에 세워진 교회 중 지금까지 강화도에 남아있는 것만 세 곳에 이른다. 1900년에 세운 성공회 강화 성당, 1906년에 세워진 강화 온수리 성공회 교회 그리고 서도 중앙 교회가 현존하고 있는 당시의 교회들이다. 그 중 서도 중앙 교회는 1923년 교인들의 건축 헌금으로 지어지기 시작해 7월에 완공된 한옥 예배당이다. 1978년 주문 교회에서 서도 중앙 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건물 내부는 중세 전기의 서양 교회 양식을 하고 있지만 매우 단순하여 예배실로 쓰이는 좁은 신랑과 측랑, 중앙의 강단으로만 구성돼 있다. 전면에는 강단 위에 설교대를 두었으며, 바닥은 마루를 깔았다. 이 건축물은 우리 전통 목조건물의 가구 형식을 바탕으로 서양 교회를 지었다는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으면서 지금도 종교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3 고려궁지
고려궁지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건물이다. 정궁 이외에도 행궁·이궁·가궐을 비롯하여 많은 궁궐이 있었다. 정문은 승평문이었고 양쪽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이 있었다. 39년 동안 사용되었고 1270년 강화조약이 맺어져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했다.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다. 그 후 다시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이 남아있다. 이곳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곳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4 강화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강화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강화 부근리 고인돌은 길이 710cm, 높이 260cm, 넓이 550cm의 커다란 돌을 사용했으며, 형태는 북방식 고인돌로서 고대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2000년 11월 29일 호주 케인즈 제24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고창, 화순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강화도 고인돌 유적은 고인돌의 제작 기겁과 선사시대의 다양한 무덤 형태 등에 대해 알 수 있는 공간으로 아이와 함께 역사 여행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5 강화도제적봉 평화전망대
강화도제적봉 평화전망대

강화평화전망대는 강화도 최북단인 양사면 제적봉에 위치한 전망대로, 북한 지역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민족 동질성 회복과 평화통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문화·관광 공간으로 조성되었으며, 2008년 9월 개관하였다. 전망대에서는 예성강 너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를 비롯해 연안군과 백천군 방면의 연백평야를 조망할 수 있다. 또한 북한 주민들의 생활 모습과 선전마을, 개성 송수신탑, 송악산 등을 살펴볼 수 있어 분단 현실을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6 강화 연미정
강화 연미정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에 위치한 연미정은 자연경관을 보며 풍류를 즐기거나 학문을 공부하던 정자로, 최초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전쟁을 거치며 여러 차례 시련을 겪고 파손된 것을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정자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의 겹처마로 돌기둥 위에 10개의 기둥을 얹어 건축한 민도리집이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강화도 동북단에 이르러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하여 연미정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코스 구성

1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을 붙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기둥머리에서 보와 도리가 직교하여 직접 결구되는 민도리양식이다. 용흥궁은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2

강화도는 19세기 말 조선이 문호를 개방할 때 지리적 여건으로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탓에 서양인들의 선교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다. 당시에 세워진 교회 중 지금까지 강화도에 남아있는 것만 세 곳에 이른다. 1900년에 세운 성공회 강화 성당, 1906년에 세워진 강화 온수리 성공회 교회 그리고 서도 중앙 교회가 현존하고 있는 당시의 교회들이다. 그 중 서도 중앙 교회는 1923년 교인들의 건축 헌금으로 지어지기 시작해 7월에 완공된 한옥 예배당이다. 1978년 주문 교회에서 서도 중앙 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건물 내부는 중세 전기의 서양 교회 양식을 하고 있지만 매우 단순하여 예배실로 쓰이는 좁은 신랑과 측랑, 중앙의 강단으로만 구성돼 있다. 전면에는 강단 위에 설교대를 두었으며, 바닥은 마루를 깔았다. 이 건축물은 우리 전통 목조건물의 가구 형식을 바탕으로 서양 교회를 지었다는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으면서 지금도 종교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3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건물이다. 정궁 이외에도 행궁·이궁·가궐을 비롯하여 많은 궁궐이 있었다. 정문은 승평문이었고 양쪽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이 있었다. 39년 동안 사용되었고 1270년 강화조약이 맺어져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했다.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다. 그 후 다시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이 남아있다. 이곳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곳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4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강화 부근리 고인돌은 길이 710cm, 높이 260cm, 넓이 550cm의 커다란 돌을 사용했으며, 형태는 북방식 고인돌로서 고대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2000년 11월 29일 호주 케인즈 제24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고창, 화순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강화도 고인돌 유적은 고인돌의 제작 기겁과 선사시대의 다양한 무덤 형태 등에 대해 알 수 있는 공간으로 아이와 함께 역사 여행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5

강화평화전망대는 강화도 최북단인 양사면 제적봉에 위치한 전망대로, 북한 지역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민족 동질성 회복과 평화통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문화·관광 공간으로 조성되었으며, 2008년 9월 개관하였다. 전망대에서는 예성강 너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를 비롯해 연안군과 백천군 방면의 연백평야를 조망할 수 있다. 또한 북한 주민들의 생활 모습과 선전마을, 개성 송수신탑, 송악산 등을 살펴볼 수 있어 분단 현실을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6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에 위치한 연미정은 자연경관을 보며 풍류를 즐기거나 학문을 공부하던 정자로, 최초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전쟁을 거치며 여러 차례 시련을 겪고 파손된 것을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정자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의 겹처마로 돌기둥 위에 10개의 기둥을 얹어 건축한 민도리집이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강화도 동북단에 이르러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하여 연미정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6시간
코스거리
32.6km
테마
자유여행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