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장군에서 왕건까지, 백제부터 고려의 시간을 만나다
소개
나지막한 논산의 들녘을 따라 백제에서 고려에 이르는 역사의 현장들이 자리 잡고 있다. 신라와의 황산벌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계백의 무덤과 고려의 태조 왕건이 삼국을 통일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개태사, 고려시대 은진미륵불이 서 있는 관촉사를 돌아본다.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폐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인 돈암서원과 탑정저수지도 의미 있는 탐방지다.
코스 지도
개태사(논산)는 천호산(371.6m) 서쪽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936년(태조 19)에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을 무찌르고 후삼국을 통일한 것을 기념하여 황산을 천호산이라 개칭하고 창건하였다. 또한 후백제를 세웠다가 고려로 귀부한 견훤이 병사한 곳으로도 전해진다. 이곳에는 태조의 영정을 모시는 진전이 있었으며, 국가에 변고가 있을 때에는 신탁을 받는 등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 이르러 왜구의 침입을 받아 쇠퇴하였다가 조선시대와 1930년대에 점차적으로 재건되었다. 이곳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사지석불입상,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개태사철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5층 석탑과 석조가 있다. 그중 예전에 이 절에서 쓰던 철확, 즉 큰 가마솥은 승려들의 식사를 위해 국을 끓이던 것으로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이다.
돈암서원은 사계 김장생(1548~1631)의 강학 기반을 배경으로 건립된 서원이다. 황강 김계휘가 건립한 정회당과 김장생이 건립한 양성당에서 수학한 김장생의 제자들이 후에 스승을 추모하며 기리기 위하여 돈암서원을 건립하였다. 서원 내에는 사당인 숭례사와 강당인 응도당, 정회당과 양성당, 산앙루, 장판각 등 다수의 건축물과 돈암서원의 연혁을 밝힌 원정비 등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그중 응도당은 고대의 가옥제도를 전범으로 하여 지은 건축물로 유명하다. 2019년 7월 6일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개최된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돈암서원을 비롯한 한국의 서원 9개소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결정하였다. 당시 한국의 서원은 조선후기 교육 및 사회적 활동으로 널리 보편화되었던 성리학의 증거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인정받았고, 각각의 서원마다 세계유산으로서의 진정성과, 완전성, 보존관리계획 등도 충분한 요건을 갖추었다고 평가받았다.
탑정저수지는 논산 시내 동쪽에서 논산천을 막아 조성한 저수지이다. 탑정호라고도 불리며, 충남에서 두 번째로 넓은 호수로 알려져 있다. 겨울철에도 잘 얼지 않는 자연조건은 물론, 주변에 논산평야 등 대규모 농경지가 위치해 있어 풍부한 먹이로 철새들의 충분한 서식 조건을 지니고 있으며, 최근 겨울철새들의 새로운 월동지로 부각되고 있다. 탑정저수지에는 10월 말에서 3월 초까지 대략 100여 종의 다양한 철새들이 날아든다. 탑정저수지에 월동하고 있는 철새는 천연기념물 큰고니, 천연기념 원앙, 국제보호조인 가창오리, 고방오리, 알락오리, 쇠오리 등 4만여 마리의 월동 철새들의 낙원이 되고 있다. 또한 탑정호에는 동양 최대 길이의 출렁다리가 있는데, 다리 전체를 스크린 삼아 미디어파사드 분수쇼 및 음악 분수(동절기 제외) 등을 진행하고 있어 출렁다리를 위한 방문객이 많아지고 있다.
백제 말기 성충[成忠]·흥수[興首]와 더불어 백제 3 충신으로 꼽히는 계백의 유허지로 최후의 결전장이던 황산벌과 가까운 곳에 있다. 1966년 묘를 발견할 당시, 봉분이 반 이상 붕괴되어 내광이 노출되었으며 광벽까지 일부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부적면 사람들이 지석[支石]을 안치하고 내광 회벽을 완봉한 후 봉분 둘레 47.6m, 지름 15.15m, 높이 6.5m로 복묘하였다. 1976년 5월 19일에는 봉토를 만들고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전 백제계백장군지묘[傳百濟階伯將軍之墓]라고 쓰여 있다. 계백(階伯 ;?~660)은 백제의 장군이다. 554년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641년 의자왕[義慈王]의 즉위이래 백제는 고구려와 제휴하면서 신라를 자주 공격했다. 그러나 고립된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노리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더욱이 의자왕의 실정으로 국내가 혼란해지고, 고구려가 연개소문의 정변 등 국내 문제로 백제와의 동맹에 소극적으로 되자 백제의 위기는 점차 현실화되었다. 결국 660년(의자왕 20)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의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炭峴]과 백강[白江]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의자왕은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죽기를 각오하고 출전하여 1당 100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을 싸워 이겼으나 백제군은 결국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이 전사했다. 이 황산벌전투로 백제는 비운의 종말을 맞이했으며, 계백장군은 통한을 품고 이곳에 묻혀 있다.
관촉사(논산)은 논산 시내 남부 반야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사찰로 논산 8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명승지다. 관촉사에는 독특한 볼거리가 많은데, 그중 으뜸은 ‘은진미륵’이라 불리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높이 18m의 석불이 온화하고 자비로운 얼굴을 하고 있어 ‘백제의 미소’로 표현되곤 한다. 은진미륵 앞에 선 석등과 오층석탑, 석문 등도 귀중한 유물이다. 불경을 넣어둔 윤장대의 축을 잡고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관촉사에 있는 유물 중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국보, 석등은 보물, 석문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석조비로자나불입상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관촉사 앞마당에 서면 풍요로운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코스 구성
개태사(논산)는 천호산(371.6m) 서쪽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936년(태조 19)에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을 무찌르고 후삼국을 통일한 것을 기념하여 황산을 천호산이라 개칭하고 창건하였다. 또한 후백제를 세웠다가 고려로 귀부한 견훤이 병사한 곳으로도 전해진다. 이곳에는 태조의 영정을 모시는 진전이 있었으며, 국가에 변고가 있을 때에는 신탁을 받는 등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 이르러 왜구의 침입을 받아 쇠퇴하였다가 조선시대와 1930년대에 점차적으로 재건되었다. 이곳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사지석불입상,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개태사철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5층 석탑과 석조가 있다. 그중 예전에 이 절에서 쓰던 철확, 즉 큰 가마솥은 승려들의 식사를 위해 국을 끓이던 것으로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이다.
돈암서원은 사계 김장생(1548~1631)의 강학 기반을 배경으로 건립된 서원이다. 황강 김계휘가 건립한 정회당과 김장생이 건립한 양성당에서 수학한 김장생의 제자들이 후에 스승을 추모하며 기리기 위하여 돈암서원을 건립하였다. 서원 내에는 사당인 숭례사와 강당인 응도당, 정회당과 양성당, 산앙루, 장판각 등 다수의 건축물과 돈암서원의 연혁을 밝힌 원정비 등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그중 응도당은 고대의 가옥제도를 전범으로 하여 지은 건축물로 유명하다. 2019년 7월 6일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개최된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돈암서원을 비롯한 한국의 서원 9개소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결정하였다. 당시 한국의 서원은 조선후기 교육 및 사회적 활동으로 널리 보편화되었던 성리학의 증거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인정받았고, 각각의 서원마다 세계유산으로서의 진정성과, 완전성, 보존관리계획 등도 충분한 요건을 갖추었다고 평가받았다.
탑정저수지는 논산 시내 동쪽에서 논산천을 막아 조성한 저수지이다. 탑정호라고도 불리며, 충남에서 두 번째로 넓은 호수로 알려져 있다. 겨울철에도 잘 얼지 않는 자연조건은 물론, 주변에 논산평야 등 대규모 농경지가 위치해 있어 풍부한 먹이로 철새들의 충분한 서식 조건을 지니고 있으며, 최근 겨울철새들의 새로운 월동지로 부각되고 있다. 탑정저수지에는 10월 말에서 3월 초까지 대략 100여 종의 다양한 철새들이 날아든다. 탑정저수지에 월동하고 있는 철새는 천연기념물 큰고니, 천연기념 원앙, 국제보호조인 가창오리, 고방오리, 알락오리, 쇠오리 등 4만여 마리의 월동 철새들의 낙원이 되고 있다. 또한 탑정호에는 동양 최대 길이의 출렁다리가 있는데, 다리 전체를 스크린 삼아 미디어파사드 분수쇼 및 음악 분수(동절기 제외) 등을 진행하고 있어 출렁다리를 위한 방문객이 많아지고 있다.
백제 말기 성충[成忠]·흥수[興首]와 더불어 백제 3 충신으로 꼽히는 계백의 유허지로 최후의 결전장이던 황산벌과 가까운 곳에 있다. 1966년 묘를 발견할 당시, 봉분이 반 이상 붕괴되어 내광이 노출되었으며 광벽까지 일부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부적면 사람들이 지석[支石]을 안치하고 내광 회벽을 완봉한 후 봉분 둘레 47.6m, 지름 15.15m, 높이 6.5m로 복묘하였다. 1976년 5월 19일에는 봉토를 만들고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전 백제계백장군지묘[傳百濟階伯將軍之墓]라고 쓰여 있다. 계백(階伯 ;?~660)은 백제의 장군이다. 554년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641년 의자왕[義慈王]의 즉위이래 백제는 고구려와 제휴하면서 신라를 자주 공격했다. 그러나 고립된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노리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더욱이 의자왕의 실정으로 국내가 혼란해지고, 고구려가 연개소문의 정변 등 국내 문제로 백제와의 동맹에 소극적으로 되자 백제의 위기는 점차 현실화되었다. 결국 660년(의자왕 20)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의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炭峴]과 백강[白江]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의자왕은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죽기를 각오하고 출전하여 1당 100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을 싸워 이겼으나 백제군은 결국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이 전사했다. 이 황산벌전투로 백제는 비운의 종말을 맞이했으며, 계백장군은 통한을 품고 이곳에 묻혀 있다.
관촉사(논산)은 논산 시내 남부 반야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사찰로 논산 8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명승지다. 관촉사에는 독특한 볼거리가 많은데, 그중 으뜸은 ‘은진미륵’이라 불리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높이 18m의 석불이 온화하고 자비로운 얼굴을 하고 있어 ‘백제의 미소’로 표현되곤 한다. 은진미륵 앞에 선 석등과 오층석탑, 석문 등도 귀중한 유물이다. 불경을 넣어둔 윤장대의 축을 잡고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관촉사에 있는 유물 중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국보, 석등은 보물, 석문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석조비로자나불입상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관촉사 앞마당에 서면 풍요로운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 소요시간
- 6시간
- 코스거리
- 24.3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6시간
- 코스거리
- 24.3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