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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코스

800년을 이어온 신명 나는 탈판

소개

하회별신굿탈놀이는 하회마을 사람들이 고려 때부터 해온 탈놀이다. 별신굿은 ‘별난 굿’을 뜻하는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5~10년에 한 번씩 큰 굿판을 벌였기에 붙은 이름이다. 느긋한 걸음으로 화회마을을 둘러보라. 흙과 돌로 반듯하게 쌓아 올린 담장과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 정겨운 초가, 수령 600년에 이르는 삼신목, 강변에 자리한 만송정, 절벽 위에서 마을을 굽어볼 수 있는 부용대 등 볼거리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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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나바우길 13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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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동한지
안동한지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하회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안동한지는 우리 고유의 멋과 얼이 간직된 전통 한지 생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학생들에게는 학습의 장(場)으로 이용할 수 있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안동한지는 안동의 관광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안동한지의 특징은 풍산의 풍부한 물과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닥나무를 원료로 하여 노련한 기술자의 투철한 장인정신이 결부되어 순 한지(純紙)를 전통의 방법으로 생산하여 우수한 지질(紙質)과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주요 생산품목으로는 서예용으로 쓰는 국내 백닥화선지, 일반 화선지, 문 바를 때 쓰는 창호지, 중지, 운용지, 벽지용 피지, 미사라시 운용지, 족자에 배접할 때 쓰는 배접지, 장판지, 책 만들 때 쓰는 책지, 고급 인테리어용으로 쓰는 요철지, 전문 화가가 쓰는 100호, 120호, 한지 공예품 만들 때, 또는 포장지로 쓰는 색한지 등 60여종을 들 수 있다.

2 안동 하회마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안동 하회마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회마을은 풍산 류 (柳)씨가 대대로 살아오던 전형적인 집성촌으로 한국 전통가옥의 미(美)가 살아 숨 쉬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의 대유학자 겸암 류운룡 선생과 서애 류성룡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한 안동 하회마을은 1999년 4월 21일에는 방한 3일째였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한국 전통의 고장으로서 방문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이곳 하회(河回)라는 지명은 낙동강물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S자형을 이루면서 마을을 감싸도는 데서 유래했다. 동으로는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이 있고 그 줄기의 끝이 마을까지 뻗어서 아주 낮은 구릉을 이루고 있다. 집들은 구릉을 중심으로 낮은 곳을 향하여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집의 좌향이 일정하지 않고 동서남북 각각으로 집들이 앉혀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을 중심부에는 류씨들의 집인 큰 기와집이 자리 잡고 있으며 원형이 잘 보존된 초가집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앞쪽에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멋들어지게 깎아지른 부용대,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울창한 노송숲이 절경을 이룬다. 한편, 부용대 앞에 물길이 다시 열려 나룻배를 이용할 수 있다. 하회마을에서는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상설공연으로 진행하고, 매년 가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진행하며 주변에는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다는 봉정사, 고산서원, 귀래정, 계명산 자연휴양림, 학가산 자연휴양림, 와룡산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특히 2010년 7월 31일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한국의 역사마을’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두 마을의 등재로 한국의 세계유산은 석굴암ㆍ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이상 1995), 창덕궁, 수원 화성(1997),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ㆍ화순ㆍ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 그리고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 조선왕릉(2009)에 이어 통산 10번째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하회마을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는 안동소주와 유명한 서원이 많아 생기게 되었다는 헛제삿밥, 안동 간고등어, 안동 국시 등이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해발 64m 절벽에서 줄을 타고 수많은 불꽃이 다가온다. 강에는 달걀 불이 유유히 떠내려오고, ‘낙화(洛花)야!’라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불꽃이 절벽 아래로 폭포처럼 떨어진다. 한국식 불꽃놀이 축제 선유줄불놀이는 그곳에 모인 이들의 염원을 담아낸 거대한 정화의식이다.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겠다는 구산영은 실명의 위기 속에서도 희망과 소원이 별빛처럼 빛나는 그곳에서 환하게 미소 짓는다.

3 하회세계탈박물관
하회세계탈박물관

하회마을 입구에 위치한 하회세계탈박물관은 1995년에 개관한 한국 최초의 탈 전문 박물관이다. 하회마을에서 전승되어 온 하회별신굿탈놀이에 사용되는 탈을 비롯해 국내외 다양한 탈을 수집·전시하고 있다. 탈은 독특한 조형미를 지닌 예술 작품인 동시에 각 시대와 지역의 문화와 삶, 다양한 상징성을 담고 있는 역사적 유물이다. 이곳에서는 우리 전통 탈의 특징과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 세계 여러 지역의 탈을 함께 만나며 서로 다른 문화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은 상설전시실 5개관과 특별전시실 1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탈을 통해 우리 문화와 세계의 여러 문화를 비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 내에는 탈 써보기, 탈 트릭아트, 탈 캐릭터 본뜨기, 포토존, 탈 도장 모으기 등 무료 체험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전시와 함께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전시된 탈 하나하나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살펴보며 탈이 지닌 예술적·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4 병산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병산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병산서원은 고려 중기부터 안동 풍산에 있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豐岳書堂)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은 지방 유림의 자제들이 모여 공부하던 곳이었다. 고려 말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 무렵, 당시 풍악서당의 유생들은 난리 중에도 학문에 열중하고 있었고 이에 크게 감동한 공민왕은 많은 서책과 사패지(賜牌地)를 하사하며 유생들을 격려하였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나 서당 근처에 서당 근처에 민가가 들어서고 길이 생기면서 주변이 차츰 시끄러워졌다. 이에 유림들이 서당을 옮길 곳을 물색하는 중 마침 부친상을 당해 하회마을에 머물고 있던 서애 류성룡 선생에게 자문을 구했다. 선생이 병산 자락을 가장 적당한 곳으로 추천하자, 유림들은 그 뜻을 따라 1575년(선조 8) 서당을 지금의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원'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1614년(광해 6)에 우복 정경세, 창석 이준, 동리 김윤안, 정봉 안담수 등 문인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존덕사를 창건하여 선생의 위판을 봉안하였다. 선생의 위판은 1620년(광해 12) 합향하는 과정에서 여강서원(주향 퇴계 이황)으로 옮겼다가 1629년(인조 7)에 다시 병산에 복향하였다. 당시 서애 선생의 위판을 여강서원과 병산서원에 봉안하는 문제를 두고 “일읍양원병향(一邑兩院竝享)”과 “일읍봉안(一邑奉安)”등 의견이 있었으나 주자의 예에 따라 한 고을 두 서원에 병향해도 무방하다 하여 두 서원에 병향하게 되었다. 1662년(현종 3)에 선생의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柳袗, 1582~1635) 공의 위패를 종향하였다. 병산서원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고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출처 : 병산서원 홈페이지)

5 안동시립박물관
안동시립박물관

안동시립박물관은 본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안동시 성곡동 안동댐 민속 경관지 안에 자리하고 있다. 안동댐 수몰로 인해 자칫 묻혀버렸을 수도 있는 전통 가옥 등을 이전하여 독특한 선조들의 생활양식을 보존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또한 민속문화, 불교문화, 유교문화가 공존하여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하면서 전통성과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는 안동 문화의 중심에 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전통공예체험, 전통놀이 체험, 전통문화체험 등 시민 대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어 연 2회 모집하고 전통문화 보급을 위해 모든 수업은 무료로 진행된다.

6 안동호
안동호

낚시터와 휴양지로 인기 좋은 곳, 안동호는 낙동강 최상류를 막아 4대 강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호수이다. 안동댐의 크기는 댐높이 83m, 길이 612m로 소양강 댐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주변의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선착장이 있어 유람선을 이용할 수 있고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특히 안동호에서 서식하고 있는 배스는 힘이 좋고 맛이 담백하여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연중 배스 국제낚시대회가 개최되고 있어 주민소득증대는 물론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인근에 도산서원, 하회마을 등의 명승지가 있다. 안동호와 역조정지 등은 경치가 뛰어나서 호반 관광 명소로 이름이 높다. 안동댐 주변에는 도산서원·안동 석빙고 등의 문화재가 있고 안동민속촌·안동민속박물관·드라마 촬영장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보조 댐 근처에는 안동댐을 조성하면서 수몰된 지역의 민속 문화재들을 그대로 옮겨와 야외 박물관으로 꾸민 민속 경관지도 있다.

7 안동 임청각
안동 임청각

5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임청각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을 지내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독립투쟁의 토대를 마련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다. 종손인 석주는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의병기지를 세워 독립운동에 첫 발을 내디뎠고 서양의 정치 과학 문명을 받아들여 구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임청각 사람들이 펼친 독립운동은 빼어나고 장엄하다. 경학사를 조직하여 동포사회의 안정을 이루면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했다. 만주에서 자금이 떨어져 하루를 견디기 힘들자 석주는 임청각을 팔기로 했다. 몇차례 매도계약서를 작성했으나 여의치 않자 문중에서 일부 자금을 마련해 줬다. 또한 임청각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살림집 중 가장 오래된 집으로 조선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원(李原 : 1368∼429)의 여섯째 아들인 영산현감 이증(李增)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여기에 자리잡음으로써 입향조가 되었고 이증의 셋째 아들로 중종 때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李洺)이 건축했다. 임청각은 영남산기슭의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하여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지어진 전통한옥이며, 99칸 기와집으로 알려진 이 집은 안채, 중채, 사랑채, 사당, 행랑채, 별채는 물론 아담한 별당(군자정)과 정원까지 조성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다. (출처 : 임청각 공식홈페이지)

코스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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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하회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안동한지는 우리 고유의 멋과 얼이 간직된 전통 한지 생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학생들에게는 학습의 장(場)으로 이용할 수 있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안동한지는 안동의 관광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안동한지의 특징은 풍산의 풍부한 물과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닥나무를 원료로 하여 노련한 기술자의 투철한 장인정신이 결부되어 순 한지(純紙)를 전통의 방법으로 생산하여 우수한 지질(紙質)과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주요 생산품목으로는 서예용으로 쓰는 국내 백닥화선지, 일반 화선지, 문 바를 때 쓰는 창호지, 중지, 운용지, 벽지용 피지, 미사라시 운용지, 족자에 배접할 때 쓰는 배접지, 장판지, 책 만들 때 쓰는 책지, 고급 인테리어용으로 쓰는 요철지, 전문 화가가 쓰는 100호, 120호, 한지 공예품 만들 때, 또는 포장지로 쓰는 색한지 등 60여종을 들 수 있다.

2

하회마을은 풍산 류 (柳)씨가 대대로 살아오던 전형적인 집성촌으로 한국 전통가옥의 미(美)가 살아 숨 쉬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의 대유학자 겸암 류운룡 선생과 서애 류성룡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한 안동 하회마을은 1999년 4월 21일에는 방한 3일째였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한국 전통의 고장으로서 방문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이곳 하회(河回)라는 지명은 낙동강물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S자형을 이루면서 마을을 감싸도는 데서 유래했다. 동으로는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이 있고 그 줄기의 끝이 마을까지 뻗어서 아주 낮은 구릉을 이루고 있다. 집들은 구릉을 중심으로 낮은 곳을 향하여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집의 좌향이 일정하지 않고 동서남북 각각으로 집들이 앉혀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을 중심부에는 류씨들의 집인 큰 기와집이 자리 잡고 있으며 원형이 잘 보존된 초가집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앞쪽에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멋들어지게 깎아지른 부용대,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울창한 노송숲이 절경을 이룬다. 한편, 부용대 앞에 물길이 다시 열려 나룻배를 이용할 수 있다. 하회마을에서는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상설공연으로 진행하고, 매년 가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진행하며 주변에는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다는 봉정사, 고산서원, 귀래정, 계명산 자연휴양림, 학가산 자연휴양림, 와룡산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특히 2010년 7월 31일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한국의 역사마을’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두 마을의 등재로 한국의 세계유산은 석굴암ㆍ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이상 1995), 창덕궁, 수원 화성(1997),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ㆍ화순ㆍ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 그리고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 조선왕릉(2009)에 이어 통산 10번째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하회마을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는 안동소주와 유명한 서원이 많아 생기게 되었다는 헛제삿밥, 안동 간고등어, 안동 국시 등이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해발 64m 절벽에서 줄을 타고 수많은 불꽃이 다가온다. 강에는 달걀 불이 유유히 떠내려오고, ‘낙화(洛花)야!’라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불꽃이 절벽 아래로 폭포처럼 떨어진다. 한국식 불꽃놀이 축제 선유줄불놀이는 그곳에 모인 이들의 염원을 담아낸 거대한 정화의식이다.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겠다는 구산영은 실명의 위기 속에서도 희망과 소원이 별빛처럼 빛나는 그곳에서 환하게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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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입구에 위치한 하회세계탈박물관은 1995년에 개관한 한국 최초의 탈 전문 박물관이다. 하회마을에서 전승되어 온 하회별신굿탈놀이에 사용되는 탈을 비롯해 국내외 다양한 탈을 수집·전시하고 있다. 탈은 독특한 조형미를 지닌 예술 작품인 동시에 각 시대와 지역의 문화와 삶, 다양한 상징성을 담고 있는 역사적 유물이다. 이곳에서는 우리 전통 탈의 특징과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 세계 여러 지역의 탈을 함께 만나며 서로 다른 문화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은 상설전시실 5개관과 특별전시실 1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탈을 통해 우리 문화와 세계의 여러 문화를 비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 내에는 탈 써보기, 탈 트릭아트, 탈 캐릭터 본뜨기, 포토존, 탈 도장 모으기 등 무료 체험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전시와 함께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전시된 탈 하나하나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살펴보며 탈이 지닌 예술적·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4

병산서원은 고려 중기부터 안동 풍산에 있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豐岳書堂)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은 지방 유림의 자제들이 모여 공부하던 곳이었다. 고려 말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 무렵, 당시 풍악서당의 유생들은 난리 중에도 학문에 열중하고 있었고 이에 크게 감동한 공민왕은 많은 서책과 사패지(賜牌地)를 하사하며 유생들을 격려하였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나 서당 근처에 서당 근처에 민가가 들어서고 길이 생기면서 주변이 차츰 시끄러워졌다. 이에 유림들이 서당을 옮길 곳을 물색하는 중 마침 부친상을 당해 하회마을에 머물고 있던 서애 류성룡 선생에게 자문을 구했다. 선생이 병산 자락을 가장 적당한 곳으로 추천하자, 유림들은 그 뜻을 따라 1575년(선조 8) 서당을 지금의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원'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1614년(광해 6)에 우복 정경세, 창석 이준, 동리 김윤안, 정봉 안담수 등 문인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존덕사를 창건하여 선생의 위판을 봉안하였다. 선생의 위판은 1620년(광해 12) 합향하는 과정에서 여강서원(주향 퇴계 이황)으로 옮겼다가 1629년(인조 7)에 다시 병산에 복향하였다. 당시 서애 선생의 위판을 여강서원과 병산서원에 봉안하는 문제를 두고 “일읍양원병향(一邑兩院竝享)”과 “일읍봉안(一邑奉安)”등 의견이 있었으나 주자의 예에 따라 한 고을 두 서원에 병향해도 무방하다 하여 두 서원에 병향하게 되었다. 1662년(현종 3)에 선생의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柳袗, 1582~1635) 공의 위패를 종향하였다. 병산서원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고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출처 : 병산서원 홈페이지)

5

안동시립박물관은 본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안동시 성곡동 안동댐 민속 경관지 안에 자리하고 있다. 안동댐 수몰로 인해 자칫 묻혀버렸을 수도 있는 전통 가옥 등을 이전하여 독특한 선조들의 생활양식을 보존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또한 민속문화, 불교문화, 유교문화가 공존하여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하면서 전통성과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는 안동 문화의 중심에 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전통공예체험, 전통놀이 체험, 전통문화체험 등 시민 대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어 연 2회 모집하고 전통문화 보급을 위해 모든 수업은 무료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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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터와 휴양지로 인기 좋은 곳, 안동호는 낙동강 최상류를 막아 4대 강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호수이다. 안동댐의 크기는 댐높이 83m, 길이 612m로 소양강 댐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주변의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선착장이 있어 유람선을 이용할 수 있고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특히 안동호에서 서식하고 있는 배스는 힘이 좋고 맛이 담백하여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연중 배스 국제낚시대회가 개최되고 있어 주민소득증대는 물론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인근에 도산서원, 하회마을 등의 명승지가 있다. 안동호와 역조정지 등은 경치가 뛰어나서 호반 관광 명소로 이름이 높다. 안동댐 주변에는 도산서원·안동 석빙고 등의 문화재가 있고 안동민속촌·안동민속박물관·드라마 촬영장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보조 댐 근처에는 안동댐을 조성하면서 수몰된 지역의 민속 문화재들을 그대로 옮겨와 야외 박물관으로 꾸민 민속 경관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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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임청각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을 지내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독립투쟁의 토대를 마련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다. 종손인 석주는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의병기지를 세워 독립운동에 첫 발을 내디뎠고 서양의 정치 과학 문명을 받아들여 구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임청각 사람들이 펼친 독립운동은 빼어나고 장엄하다. 경학사를 조직하여 동포사회의 안정을 이루면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했다. 만주에서 자금이 떨어져 하루를 견디기 힘들자 석주는 임청각을 팔기로 했다. 몇차례 매도계약서를 작성했으나 여의치 않자 문중에서 일부 자금을 마련해 줬다. 또한 임청각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살림집 중 가장 오래된 집으로 조선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원(李原 : 1368∼429)의 여섯째 아들인 영산현감 이증(李增)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여기에 자리잡음으로써 입향조가 되었고 이증의 셋째 아들로 중종 때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李洺)이 건축했다. 임청각은 영남산기슭의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하여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지어진 전통한옥이며, 99칸 기와집으로 알려진 이 집은 안채, 중채, 사랑채, 사당, 행랑채, 별채는 물론 아담한 별당(군자정)과 정원까지 조성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다. (출처 : 임청각 공식홈페이지)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1박 2일
코스거리
105.38km
테마
자유여행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