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의 시간을 오감으로 느끼는 하룻밤
소개
충남 서산시 한다리마을은 경주 김씨 집성촌이다.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이 서흥부사로 재직할 때 임꺽정을 토벌하고 얻은 사패지를 근거로 약 500년 전 들어와 집성촌을 이뤘다. 이곳의 고풍스러움과 정갈한 전통음식체험도 잊지 말자.
코스 지도
서산마애삼존불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백제 후기인 7세기경에 바위에 불상을 새긴 것으로 백제의 미소가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는 문화재이자 예술 작품이다. 본존인 석가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편에는 가부좌를 틀고 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이, 왼편에는 제화갈라보살입상이 새겨져 있다. 불상의 광배까지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고 특히 본존의 연꽃과 불꽃무늬의 광배가 살아 있다. 때로는 근엄하게, 때로는 온화해 보이는 불상의 얼굴은 해가 비치는 시간에 따라 달리 보여 더욱 신비롭다. 서산 지역은 백제 후기에 수도 웅진(공주), 사비(부여)와 중국 등을 연결하는 서해 항구가 있었다. 이것 역시 이러한 서산의 역사와 관련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멸망 후 지역 내에서만 알려져 있다가 1959년경에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져 1962년에는 역사·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용현계곡 내에 위치해 있으며 서산아라메길 천년미소길의 경유지이므로 연계하여 관광해도 좋다. 주변에는 용현계곡 외에 서산 보원사지, 용현자연휴양림, 고풍저수지 등이 있다.
이곳은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보원사가 있었던 터로 천년의 세월과 많은 불교 문화재를 품고 있다. 이곳의 주요 문화재는 사찰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4m 높이의 당간지주와 오 층 석탑, 석조, 법인국사탑과 법인국사비가 있는데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그 가치가 크다. 한때 사찰에 머문 승려가 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도 깊은 산속에 자리한 절터가 한눈에 아우르지 못할 만큼 크다.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과 철조여래좌상, 철불좌상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지금도 절터 곳곳에서 천년 고찰의 위용을 짐작하게 하는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87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특히 백제시대에는 이 지역이 중요시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로 재건되어 가고 있다. 주변에는 같은 백제 불교 문화재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있고, 그 외에도 용현계곡, 가야산, 고풍저수지 등이 있다. 그리고 서산 아라메길 천년미소길과 천년미소길 순환 코스가 경유하므로 연계하여 관광해도 좋다.
개심사는 운산면 신창리에 위치한 충남 4대 사찰 중의 하나로써 백제 의자왕 14년인 654년에 혜감국사가 창건하여 고려 충정왕 2년인 1350년에 처능대사에 의하여 중수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대웅전의 기단만이 백제 때의 것이고 건물은 조선 성종 6년(1475)에 산불로 소실된 것을 조선 성종 15년(1484)에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물 제143호인 대웅전은 창건당시의 기단 위에 조선 성종 15년(1484)에 중창한 다포식과 주심포식을 절충한 건축양식으로 그 작법이 미려하여 건축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사찰을 중심으로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 그리고 석가탄신일을 전후하여 만개하는 벚꽃은 주위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사찰 주변이 온통 벚꽃으로 만발해 마치 속세의 시름을 잊은 선경에 와 있는 듯한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출처 : 서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서산 해미읍성은 1491년 조선 성종 때 축조된 대표적인 평지 읍성으로 둘레 약 1.8㎞의 석성과 동문·남문·서문이 잘 보존된 역사 유적이다. 복원 사업을 거쳐 현재는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어 성곽을 따라 걸으며 조선 시대의 건축과 방어 체계를 살펴볼 수 있다. 넓은 성내와 고즈넉한 풍경이 어우러져 역사와 산책을 함께 즐기기 좋은 명소이다. 이곳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당시 수많은 신자가 고문과 순교를 당한 장소로 감옥터와 회화나무, 자리개돌 등 당시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유적이 남아 있다. 성곽 곳곳에 남겨진 역사적 흔적은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과 신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역사 교육과 문화 탐방지로도 의미가 깊은 공간이다.
코스 구성
서산마애삼존불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백제 후기인 7세기경에 바위에 불상을 새긴 것으로 백제의 미소가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는 문화재이자 예술 작품이다. 본존인 석가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편에는 가부좌를 틀고 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이, 왼편에는 제화갈라보살입상이 새겨져 있다. 불상의 광배까지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고 특히 본존의 연꽃과 불꽃무늬의 광배가 살아 있다. 때로는 근엄하게, 때로는 온화해 보이는 불상의 얼굴은 해가 비치는 시간에 따라 달리 보여 더욱 신비롭다. 서산 지역은 백제 후기에 수도 웅진(공주), 사비(부여)와 중국 등을 연결하는 서해 항구가 있었다. 이것 역시 이러한 서산의 역사와 관련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멸망 후 지역 내에서만 알려져 있다가 1959년경에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져 1962년에는 역사·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용현계곡 내에 위치해 있으며 서산아라메길 천년미소길의 경유지이므로 연계하여 관광해도 좋다. 주변에는 용현계곡 외에 서산 보원사지, 용현자연휴양림, 고풍저수지 등이 있다.
이곳은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보원사가 있었던 터로 천년의 세월과 많은 불교 문화재를 품고 있다. 이곳의 주요 문화재는 사찰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4m 높이의 당간지주와 오 층 석탑, 석조, 법인국사탑과 법인국사비가 있는데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그 가치가 크다. 한때 사찰에 머문 승려가 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도 깊은 산속에 자리한 절터가 한눈에 아우르지 못할 만큼 크다.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과 철조여래좌상, 철불좌상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지금도 절터 곳곳에서 천년 고찰의 위용을 짐작하게 하는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87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특히 백제시대에는 이 지역이 중요시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로 재건되어 가고 있다. 주변에는 같은 백제 불교 문화재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있고, 그 외에도 용현계곡, 가야산, 고풍저수지 등이 있다. 그리고 서산 아라메길 천년미소길과 천년미소길 순환 코스가 경유하므로 연계하여 관광해도 좋다.
개심사는 운산면 신창리에 위치한 충남 4대 사찰 중의 하나로써 백제 의자왕 14년인 654년에 혜감국사가 창건하여 고려 충정왕 2년인 1350년에 처능대사에 의하여 중수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대웅전의 기단만이 백제 때의 것이고 건물은 조선 성종 6년(1475)에 산불로 소실된 것을 조선 성종 15년(1484)에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물 제143호인 대웅전은 창건당시의 기단 위에 조선 성종 15년(1484)에 중창한 다포식과 주심포식을 절충한 건축양식으로 그 작법이 미려하여 건축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사찰을 중심으로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 그리고 석가탄신일을 전후하여 만개하는 벚꽃은 주위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사찰 주변이 온통 벚꽃으로 만발해 마치 속세의 시름을 잊은 선경에 와 있는 듯한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출처 : 서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서산 해미읍성은 1491년 조선 성종 때 축조된 대표적인 평지 읍성으로 둘레 약 1.8㎞의 석성과 동문·남문·서문이 잘 보존된 역사 유적이다. 복원 사업을 거쳐 현재는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어 성곽을 따라 걸으며 조선 시대의 건축과 방어 체계를 살펴볼 수 있다. 넓은 성내와 고즈넉한 풍경이 어우러져 역사와 산책을 함께 즐기기 좋은 명소이다. 이곳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당시 수많은 신자가 고문과 순교를 당한 장소로 감옥터와 회화나무, 자리개돌 등 당시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유적이 남아 있다. 성곽 곳곳에 남겨진 역사적 흔적은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과 신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역사 교육과 문화 탐방지로도 의미가 깊은 공간이다.
- 소요시간
- 1박 2일
- 코스거리
- 28.24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1박 2일
- 코스거리
- 28.24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