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가야시대 소녀를 만나러 가다
소개
창녕은 가야와 신라의 유적이 남아 있는 문화유산의 고장이다. 가야시대의 고분군으로 알려진 교동, 송현동고분군에서는 인골이 수습되어 가야시대의 순장된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기도 했고, 국보로 지정된 신라 진흥왕이 세운 척경비와 술정리 동삼층석탑, 조선시대의 석빙고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문화유산을 만난다.
코스 지도
만옥정공원은 창녕공원이라고도 불리는 공원으로 작은 공원이지만 봄철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유명하다. 약 250년 전에 만옥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봄마다 명창 대회와 그네뛰기 대회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화왕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옆으로 나 있다. 공원 뒤쪽 언덕 위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인 국보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가 있는데 561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며 원래 창녕읍 화왕산록에 있던 것을 1924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공원에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물인 창녕객사,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퇴천삼층석탑, 창녕 척화비 등의 다양한 문화유산이 자리 잡고 있다.
석빙고는 추운 겨울에 얼음을 채취하여 더운 여름까지 보관하여 사용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얼음 창고이다. 빙고 우측에 남아있는 비석에 의하면 '숭정기원후재임술이월초일일여사월초십일필'이라 새겨져 있어, 1742년에 현감 신서 등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구조 양식과 장빙의 풍속 등으로 봤을 때 조선시대 건축한 것으로 추정한다. 창녕 석빙고는 봉토가 거의 완전하며, 외부의 모양은 마치 거대한 고분처럼 보이고 뒤에 흐르는 개천과 직각이 되게 남북으로 구축했다. 빙실의 입구는 남쪽에 설치했는데, 좌우에 장대석을 옆으로 건너지르며 쌓아 올려서 천정을 구성하였으며 천정에는 외부로 통하는 환기공이 두 곳 있다. 벽은 잡석으로 쌓았으나 평평한 방벽이 되게 표면을 치석했다. 이러한 구조 양식은 석빙고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경주, 안동의 석빙고와 동일하고 규모에 있어서는 창녕 석빙고가 약간 작다.
창녕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진한의 12개 나라 중 하나인 불사국으로, 비사벌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창녕읍 교리 및 송현리 일대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대형 고분군으로,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타타시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150여 기 정도가 확인되는데, 출토유물과 구조양상을 볼 때 5~6세기가 중심연대가 되는 고분군으로 파악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관룡사는 통일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경치가 좋기로도 유명하다.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 갑자기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태종 원년(1401)에 대웅전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며, 광해군 9년(1617)에 다시 짓고, 영조 25년(1749)에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관룡사 내에는 대웅전,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관룡사 석조여래좌상, 약사전(이상 보물), 관룡사 약사전 3층석탑(유형문화재), 부도 등의 많은 불교 유적들을 보유하고 있다.
코스 구성
만옥정공원은 창녕공원이라고도 불리는 공원으로 작은 공원이지만 봄철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유명하다. 약 250년 전에 만옥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봄마다 명창 대회와 그네뛰기 대회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화왕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옆으로 나 있다. 공원 뒤쪽 언덕 위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인 국보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가 있는데 561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며 원래 창녕읍 화왕산록에 있던 것을 1924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공원에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물인 창녕객사,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퇴천삼층석탑, 창녕 척화비 등의 다양한 문화유산이 자리 잡고 있다.
석빙고는 추운 겨울에 얼음을 채취하여 더운 여름까지 보관하여 사용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얼음 창고이다. 빙고 우측에 남아있는 비석에 의하면 '숭정기원후재임술이월초일일여사월초십일필'이라 새겨져 있어, 1742년에 현감 신서 등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구조 양식과 장빙의 풍속 등으로 봤을 때 조선시대 건축한 것으로 추정한다. 창녕 석빙고는 봉토가 거의 완전하며, 외부의 모양은 마치 거대한 고분처럼 보이고 뒤에 흐르는 개천과 직각이 되게 남북으로 구축했다. 빙실의 입구는 남쪽에 설치했는데, 좌우에 장대석을 옆으로 건너지르며 쌓아 올려서 천정을 구성하였으며 천정에는 외부로 통하는 환기공이 두 곳 있다. 벽은 잡석으로 쌓았으나 평평한 방벽이 되게 표면을 치석했다. 이러한 구조 양식은 석빙고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경주, 안동의 석빙고와 동일하고 규모에 있어서는 창녕 석빙고가 약간 작다.
창녕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진한의 12개 나라 중 하나인 불사국으로, 비사벌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창녕읍 교리 및 송현리 일대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대형 고분군으로,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타타시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150여 기 정도가 확인되는데, 출토유물과 구조양상을 볼 때 5~6세기가 중심연대가 되는 고분군으로 파악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관룡사는 통일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경치가 좋기로도 유명하다.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 갑자기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태종 원년(1401)에 대웅전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며, 광해군 9년(1617)에 다시 짓고, 영조 25년(1749)에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관룡사 내에는 대웅전,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관룡사 석조여래좌상, 약사전(이상 보물), 관룡사 약사전 3층석탑(유형문화재), 부도 등의 많은 불교 유적들을 보유하고 있다.
- 소요시간
- 8시간
- 코스거리
- 38.6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8시간
- 코스거리
- 38.6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