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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고인돌유적을 따라 걷다

소개

화순은 전북 고창, 강화도와 함께 고인돌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곳이다. 대신리에서 효산리에 이르는 길에는 핑매 바위를 비롯한 수많은 고인돌과 돌을 떼어냈던 채석장의 흔적도 만나볼 수 있다. 고인돌 유적을 한 바퀴 둘러보고, 또 다른 돌의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운주사의 천불천탑, 쌍봉사의 철감선사탑도 함께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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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능주면 정암길 30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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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순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 유허비
화순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 유허비

조선 중기 성리학자이며 개혁주의자였던 정암 조광조 선생이 1519년 기묘사화로 인해 능성에 귀양을 와 사약을 받았던 곳으로, 조광조 선생을 추모코자 세운 것이 적려유허비이다. 적려란 유배되어 간 곳을 이르며, 유허비는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히어 후세에 알리고자 세워 두는 비를 말한다. 이 적려유허비는 능성현 당시 북문이 있었던 곳 부근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귀부와 비신, 이수를 갖추고 있다. 귀부는 자연석에 가까운 암석으로 거북의 형태만 갖추었고 귀부도 형상만 다듬었다. 이곳에 유배당한 조광조 선생의 자취를 기록한 비문은 의정부 우찬 겸 성균관제주세자이사 송시열이 짓고 전서는 충청도 관찰사 겸 수군절도사 순찰사 민유중이, 글씨는 의정부 좌참찬 송준길이 썼으며 현종 8년(1667년) 4월에 능주목사 민여로가 건립하였다. 정암 조광조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과 유배하러 와서 살았던 초가집이 함께 있다.

2 화순 고인돌군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화순 고인돌군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화순 고인돌군은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고개의 양계곡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도곡면 효산리 일대에 분포한 총 980 여개의 석재 중 135기가 고인돌로 추정되며, 현재 상석의 하부가 매몰되어 있거나 도괴된 것 중 상석의 형태를 보이는 석재가 100여 기 이상이 남아 있다. 효산리 고인돌은 노출되어 확실한 고인돌이거나 고인돌을 축조하기 위해 채석하여 옮겨온 것을 포함하면 적어도 250여 기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춘양면 대신리 일대에 분포한 총 3,309 개의 석재 중 124기가 고인돌로 추정된다. 하부가 묻힌 석재나 상석의 형태를 보이는 것이 적어도 200여 기 이상이어서 원래 고인돌이거나 고인돌 상석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은 300여 기 이상이었을 것으로 본다. 조사된 지석묘 중 지석이 있는 기반식 고인돌은 23기이다. 화순 고인돌군의 대표적인 특징은 좁은 지역 안에 596여 기가 밀집되어 있고, 국내 최대 크기(무게)의 상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춘양 대신리에 있는 길이 7.3m, 폭 5.0m, 두께 4.0m의 지석묘는 무게가 280여 톤에 이르며 도곡 효산리의 가장 큰 고인돌은 길이 5.3m, 폭 3.6m, 두께 3.0m로 100여 톤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주변에서 발견된 석실과 상석 하에 노출된 석실 등이 있는 고인돌군이 있어 고인돌의 덮개돌 채석 과정을 알 수 있고, 채석장 아래에 지석이 고인 기반식 지석묘, 석실이 노출된 지석묘, 덮개돌이 없는 석실 등을 통해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 2000년 12월 2일 유네스코에서 고창, 강화 고인돌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국제적인 관광지로 부상하였다.

3 운주사
운주사

화순 8경 중 2경인 운주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 운주스님이 창건했다는 설,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있는데, 통일신라말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에 근거해 비보 사찰로 세웠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전해지고 있다. 비보 사찰이 [돕고 보호한다]는 의미로 풍수지리상 지세를 보완해 주는 방법으로, 인공적으로 탑이나 불상들을 조성하여 세워진 사찰을 의미하며 부처의 힘을 빌려 호국과 중생들의 안녕을 도모한 도선 스님의 지혜가 담긴 사찰이다. 임진왜란으로 사찰이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있었으나 18세기에 자우가 불상과 불탑을 수리하고 약사전을 중건하였다. 발굴 조사 과정에서 금동불입상을 비롯하여 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의 파편, 기와편 등 출토된 유물로 볼 때 늦어도 11세기 초인 고려 초기에는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운주사 골짜기 서쪽 언덕 위에 땅에 누워있는 한 쌍의 부부와불이 있다. 절 주변은 문화재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2017년 [화순 운주사 석탑군]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최종 등재되었다.

4 쌍봉사(화순)
쌍봉사(화순)

쌍봉사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곡성 태안사에 있는 혜철 부도비에 혜철이 신무왕 원년(839)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후 쌍봉사에서 여름을 보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839년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855년에는 철감선사가 이곳에서 선문을 개설하여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기초를 마련하고 개산조가 되는데 이때 쌍봉사의 사세가 확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최씨 무신정권 3대 집권자인 최항이 쌍봉사 주지를 지냈다는 점을 볼 때 사세가 대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점차 사세가 꺾여갔다. 1911년에는 사찰령의 시행으로 해남 대흥사의 말사로 편입되었다. 해방 후 대한불교 조계종의 성립으로 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의 말사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쌍봉사는 여러 번의 중창을 거듭하다가 1597년 정유재란 때 대웅전을 포함한 대부분의 건물과 재산이 소실되었다. 그 후 대웅전은 1628년(인조 6)에 중건되었고, 1690년, 1724년에 중창이 되었으나, 1950년 6·25 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고 대웅전과 극락전만이 보존되어 오다가 1984년 3층 목조탑 대웅전마저 소실되었다. 그 후 1986년에 대웅전이 복원되고 해탈문, 요사채, 종각이 건립되었다. 대웅전을 지나 왼편으로 난 대나무숲길을 오르면 통일신라시대 석조부도의 기본양식인 팔각 원당형의 전형인 철감선사탑이 있는데 부도 가운데 가장 화려한 작품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바로 옆에는 보물로 지정된 철감선사탑비가 있는데, 조각은 장식적이면서도 힘찬 기세를 지녔다.

코스 구성

1

조선 중기 성리학자이며 개혁주의자였던 정암 조광조 선생이 1519년 기묘사화로 인해 능성에 귀양을 와 사약을 받았던 곳으로, 조광조 선생을 추모코자 세운 것이 적려유허비이다. 적려란 유배되어 간 곳을 이르며, 유허비는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히어 후세에 알리고자 세워 두는 비를 말한다. 이 적려유허비는 능성현 당시 북문이 있었던 곳 부근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귀부와 비신, 이수를 갖추고 있다. 귀부는 자연석에 가까운 암석으로 거북의 형태만 갖추었고 귀부도 형상만 다듬었다. 이곳에 유배당한 조광조 선생의 자취를 기록한 비문은 의정부 우찬 겸 성균관제주세자이사 송시열이 짓고 전서는 충청도 관찰사 겸 수군절도사 순찰사 민유중이, 글씨는 의정부 좌참찬 송준길이 썼으며 현종 8년(1667년) 4월에 능주목사 민여로가 건립하였다. 정암 조광조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과 유배하러 와서 살았던 초가집이 함께 있다.

2

화순 고인돌군은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고개의 양계곡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도곡면 효산리 일대에 분포한 총 980 여개의 석재 중 135기가 고인돌로 추정되며, 현재 상석의 하부가 매몰되어 있거나 도괴된 것 중 상석의 형태를 보이는 석재가 100여 기 이상이 남아 있다. 효산리 고인돌은 노출되어 확실한 고인돌이거나 고인돌을 축조하기 위해 채석하여 옮겨온 것을 포함하면 적어도 250여 기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춘양면 대신리 일대에 분포한 총 3,309 개의 석재 중 124기가 고인돌로 추정된다. 하부가 묻힌 석재나 상석의 형태를 보이는 것이 적어도 200여 기 이상이어서 원래 고인돌이거나 고인돌 상석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은 300여 기 이상이었을 것으로 본다. 조사된 지석묘 중 지석이 있는 기반식 고인돌은 23기이다. 화순 고인돌군의 대표적인 특징은 좁은 지역 안에 596여 기가 밀집되어 있고, 국내 최대 크기(무게)의 상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춘양 대신리에 있는 길이 7.3m, 폭 5.0m, 두께 4.0m의 지석묘는 무게가 280여 톤에 이르며 도곡 효산리의 가장 큰 고인돌은 길이 5.3m, 폭 3.6m, 두께 3.0m로 100여 톤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주변에서 발견된 석실과 상석 하에 노출된 석실 등이 있는 고인돌군이 있어 고인돌의 덮개돌 채석 과정을 알 수 있고, 채석장 아래에 지석이 고인 기반식 지석묘, 석실이 노출된 지석묘, 덮개돌이 없는 석실 등을 통해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 2000년 12월 2일 유네스코에서 고창, 강화 고인돌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국제적인 관광지로 부상하였다.

3

화순 8경 중 2경인 운주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 운주스님이 창건했다는 설,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있는데, 통일신라말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에 근거해 비보 사찰로 세웠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전해지고 있다. 비보 사찰이 [돕고 보호한다]는 의미로 풍수지리상 지세를 보완해 주는 방법으로, 인공적으로 탑이나 불상들을 조성하여 세워진 사찰을 의미하며 부처의 힘을 빌려 호국과 중생들의 안녕을 도모한 도선 스님의 지혜가 담긴 사찰이다. 임진왜란으로 사찰이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있었으나 18세기에 자우가 불상과 불탑을 수리하고 약사전을 중건하였다. 발굴 조사 과정에서 금동불입상을 비롯하여 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의 파편, 기와편 등 출토된 유물로 볼 때 늦어도 11세기 초인 고려 초기에는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운주사 골짜기 서쪽 언덕 위에 땅에 누워있는 한 쌍의 부부와불이 있다. 절 주변은 문화재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2017년 [화순 운주사 석탑군]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최종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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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사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곡성 태안사에 있는 혜철 부도비에 혜철이 신무왕 원년(839)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후 쌍봉사에서 여름을 보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839년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855년에는 철감선사가 이곳에서 선문을 개설하여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기초를 마련하고 개산조가 되는데 이때 쌍봉사의 사세가 확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최씨 무신정권 3대 집권자인 최항이 쌍봉사 주지를 지냈다는 점을 볼 때 사세가 대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점차 사세가 꺾여갔다. 1911년에는 사찰령의 시행으로 해남 대흥사의 말사로 편입되었다. 해방 후 대한불교 조계종의 성립으로 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의 말사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쌍봉사는 여러 번의 중창을 거듭하다가 1597년 정유재란 때 대웅전을 포함한 대부분의 건물과 재산이 소실되었다. 그 후 대웅전은 1628년(인조 6)에 중건되었고, 1690년, 1724년에 중창이 되었으나, 1950년 6·25 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고 대웅전과 극락전만이 보존되어 오다가 1984년 3층 목조탑 대웅전마저 소실되었다. 그 후 1986년에 대웅전이 복원되고 해탈문, 요사채, 종각이 건립되었다. 대웅전을 지나 왼편으로 난 대나무숲길을 오르면 통일신라시대 석조부도의 기본양식인 팔각 원당형의 전형인 철감선사탑이 있는데 부도 가운데 가장 화려한 작품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바로 옆에는 보물로 지정된 철감선사탑비가 있는데, 조각은 장식적이면서도 힘찬 기세를 지녔다.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6.5시간
코스거리
50km(고인돌길 6.1km 포함)
테마
자유여행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