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지역의 유적지 돌아보기
소개
유적지를 본다는 것은 그 지역의 땅과 하늘과 숲에 묻힌 역사를 함께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 코스는 이야기가 담긴 걷기코스라 할 수 있겠다. 특히 광주호 호수생태원은 자연생태학습장이며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자연과 역사를 동시에 누려보자.
코스 지도
광주호[光州湖]의 호숫가 인근 184,948m²의 부지에 자연관찰원, 자연학습장, 잔디 휴식광장, 수변 습지 등 테마별 단지로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시내에서 약 30분 정도 거리에 있어, 시민들이 찾기가 좋아 2006년 3월에 개장한 후 아이들의 자연 생태학습장이자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된다.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공원으로, 추운 날씨가 아니라면 꽃이나 동·식물들의 생태 자료를 직접 볼 수 있다. 진달래, 개나리, 자산홍, 장미, 철쭉, 수국 등 형형색색의 야생화 17만 본이 심어진 테마별 꽃단지와 부엽식물원, 수변부 관찰 데크, 암석원, 그리고 때죽나무, 모과나무, 벽도동, 단풍나무 등 3,000여 그루의 나무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늪지에서 각종 새가 실제로 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메타세쿼이아 양편 가로수 사이로 목재 계단을 조성하였다.
담양은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중심지로, 면앙정, 식영정, 소쇄원, 환벽당, 취가정, 독수정 등 유서 깊은 정자와 원림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빼어난 자연경관과 풍요로운 환경은 예로부터 많은 문인과 학자를 불러들였으며, 퇴계 이황과 송강 정철 등 당대의 문인들이 이곳에서 가사문학의 꽃을 피웠다. 송순의 호에서 이름을 딴 면앙정은 면앙정가를 비롯한 여러 가사 작품이 탄생한 곳으로, 담양 가사문학의 뿌리를 이루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식영정은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이 탄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광주호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정자문화의 중심지로 손꼽힌다. 인근의 환벽당은 정철의 사촌인 김윤제가 머물던 곳으로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으며, 소쇄원은 조선 중엽 민간 정원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한 전통 원림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원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김덕령 장군의 일화가 전해지는 취가정과 고려 말 충절을 지킨 전신민이 머물렀던 독수정까지 둘러볼 수 있어, 담양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역사와 가사문학의 발자취를 함께 만날 수 있는 문화유산 여행지이다.
충효동 정려비각은 충장공 김덕령(1568~1596) 장군과 그의 부인 흥양 이 씨, 그 형 덕홍과 동생 덕진 일가족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충효리 마을 앞에 세운 비각이다. 이것이 여느 문과 다른 것은 이 비각 앞의 현판에 새겨 있는 내용에서 ‘1788년 정조가 윤음으로서, 표리비를 세우라’ 이르고 충효 지리(忠孝之里)라는 마을 이름을 지어 하사한 점이다. 비는 1789년(정조 13년)에 세운 것으로 전면에는 비명이 3행으로 새겨져 있다. 비의 크기는 총 높이 220㎝, 기단 높이 110㎝, 비신 높이 171㎝, 비신 너비 68㎝이며 비갓이 얹혀 있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비각의 건립 연대는 1792년이며, 그 뒤 수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비각 전면에는 전주 부윤 한용구가 쓴 정조어제윤음(正祖御製倫音)이란 현판이 있다.
광주호 동쪽 호안(湖岸)과 충효동 마을 사이의 도로변에 위치한 왕버들나무는 버들과의 딸린 갈잎 큰 키나무이다. 암수 나무가 딴 그루를 이루며, 4월에 꽃이 피고 열매는 5월에 익는다. 우리나라 경기도 이남 지역과 일부 중부 이남 지역, 중국 중부 지역에 분포하며 풍치림(風致林)과 정자목(亭子木)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물가나 들에서 자라며, 목재는 가구와 땔감 등으로 쓰인다. 충효동의 왕버들 3그루는 모두 광주시 나무로 지정되어 있는데 원래는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라 하여 마을의 상징 조경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매화와 왕버들 1그루는 말라죽었으며, 또 1그루의 왕버들과 소나무는 마을 앞 도로를 확·포장하면서 잘라 버려 지금은 왕버들 3그루만 남아 있다. 마을에서는 다시 왕버들 2그루를 식목하였으며, 소나무와 매화도 계속 식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충효동의 역사는 분명치 않으나 예부터 성이 있어 성안 또는 석저촌(石低村)이라 불려 왔다. 이 일대는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양산보(梁山甫)의 소쇄원(瀟灑苑)을 비롯하여 김윤제(金允悌)의 환벽당(環璧堂), 김성원(金成遠)의 식영정(息影亭)과 누하당(樓霞堂) 등의 원림(苑林) 정각(亭閣)이 많이 있어, 주변 조경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곳이다.
코스 구성
광주호[光州湖]의 호숫가 인근 184,948m²의 부지에 자연관찰원, 자연학습장, 잔디 휴식광장, 수변 습지 등 테마별 단지로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시내에서 약 30분 정도 거리에 있어, 시민들이 찾기가 좋아 2006년 3월에 개장한 후 아이들의 자연 생태학습장이자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된다.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공원으로, 추운 날씨가 아니라면 꽃이나 동·식물들의 생태 자료를 직접 볼 수 있다. 진달래, 개나리, 자산홍, 장미, 철쭉, 수국 등 형형색색의 야생화 17만 본이 심어진 테마별 꽃단지와 부엽식물원, 수변부 관찰 데크, 암석원, 그리고 때죽나무, 모과나무, 벽도동, 단풍나무 등 3,000여 그루의 나무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늪지에서 각종 새가 실제로 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메타세쿼이아 양편 가로수 사이로 목재 계단을 조성하였다.
담양은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중심지로, 면앙정, 식영정, 소쇄원, 환벽당, 취가정, 독수정 등 유서 깊은 정자와 원림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빼어난 자연경관과 풍요로운 환경은 예로부터 많은 문인과 학자를 불러들였으며, 퇴계 이황과 송강 정철 등 당대의 문인들이 이곳에서 가사문학의 꽃을 피웠다. 송순의 호에서 이름을 딴 면앙정은 면앙정가를 비롯한 여러 가사 작품이 탄생한 곳으로, 담양 가사문학의 뿌리를 이루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식영정은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이 탄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광주호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정자문화의 중심지로 손꼽힌다. 인근의 환벽당은 정철의 사촌인 김윤제가 머물던 곳으로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으며, 소쇄원은 조선 중엽 민간 정원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한 전통 원림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원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김덕령 장군의 일화가 전해지는 취가정과 고려 말 충절을 지킨 전신민이 머물렀던 독수정까지 둘러볼 수 있어, 담양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역사와 가사문학의 발자취를 함께 만날 수 있는 문화유산 여행지이다.
충효동 정려비각은 충장공 김덕령(1568~1596) 장군과 그의 부인 흥양 이 씨, 그 형 덕홍과 동생 덕진 일가족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충효리 마을 앞에 세운 비각이다. 이것이 여느 문과 다른 것은 이 비각 앞의 현판에 새겨 있는 내용에서 ‘1788년 정조가 윤음으로서, 표리비를 세우라’ 이르고 충효 지리(忠孝之里)라는 마을 이름을 지어 하사한 점이다. 비는 1789년(정조 13년)에 세운 것으로 전면에는 비명이 3행으로 새겨져 있다. 비의 크기는 총 높이 220㎝, 기단 높이 110㎝, 비신 높이 171㎝, 비신 너비 68㎝이며 비갓이 얹혀 있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비각의 건립 연대는 1792년이며, 그 뒤 수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비각 전면에는 전주 부윤 한용구가 쓴 정조어제윤음(正祖御製倫音)이란 현판이 있다.
광주호 동쪽 호안(湖岸)과 충효동 마을 사이의 도로변에 위치한 왕버들나무는 버들과의 딸린 갈잎 큰 키나무이다. 암수 나무가 딴 그루를 이루며, 4월에 꽃이 피고 열매는 5월에 익는다. 우리나라 경기도 이남 지역과 일부 중부 이남 지역, 중국 중부 지역에 분포하며 풍치림(風致林)과 정자목(亭子木)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물가나 들에서 자라며, 목재는 가구와 땔감 등으로 쓰인다. 충효동의 왕버들 3그루는 모두 광주시 나무로 지정되어 있는데 원래는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라 하여 마을의 상징 조경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매화와 왕버들 1그루는 말라죽었으며, 또 1그루의 왕버들과 소나무는 마을 앞 도로를 확·포장하면서 잘라 버려 지금은 왕버들 3그루만 남아 있다. 마을에서는 다시 왕버들 2그루를 식목하였으며, 소나무와 매화도 계속 식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충효동의 역사는 분명치 않으나 예부터 성이 있어 성안 또는 석저촌(石低村)이라 불려 왔다. 이 일대는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양산보(梁山甫)의 소쇄원(瀟灑苑)을 비롯하여 김윤제(金允悌)의 환벽당(環璧堂), 김성원(金成遠)의 식영정(息影亭)과 누하당(樓霞堂) 등의 원림(苑林) 정각(亭閣)이 많이 있어, 주변 조경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곳이다.
- 소요시간
- 5시간
- 코스거리
- 10.05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5시간
- 코스거리
- 10.05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