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의 성지에서 애국정신을 새기다
소개
동학의 남접주(동학의 교단 조직인 접의 책임자)인 김주희 선생이 교세 확장을 위하여 1924년에 건립한 곳으로, 1925년 이곳을 본거지로 상주, 문경, 예천 등 경북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일제의 눈을 피해 교세 부흥을 도모하였던 곳이다.
코스 지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의 평지마을에 있는 동학의 교당이다. 현 소유자의 부친 김주희(1860∼1940)가 1915년에 이곳에 본거를 정하고 민족 고유의 종교인 동학의 포교와 교세확장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1924년에 지었다고 한다. 동·서·남·북재 4동의 건물이 사방에 배치되었고 곳간채는 왼쪽 뒤편에 있다. 중심 건물인 북재는 성화실, 사랑채인 동재는 접주실, 안사랑채인 서재는 남녀교도가 각각 반씩 사용하였으며, 행랑채인 남재는 남교도가 사용하였다. 원래는 모든 건물이 초가였으나, 후에 슬레트로 지붕을 고쳤다. 동학의 본부 건물이라는 특수한 예로 주목된다.
상주 임란북천전적지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중앙군과 향군이 왜군의 주력부대와 회전하여 900여 명이 순국한 호국의 성지이다. 1592년 왜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이를 막기 위해 조선의 중앙군 약 60여 명이 남하하였다. 이들과 상주 판관 권길, 박걸이 밤새워 소집한 장정 800여 명 등 900여 명이 17,000여 명의 왜병과 분전하여 전원이 순국한 곳이다. 그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충렬사를 건립하였고 그 당시 순국한 윤섬, 권길, 김종무, 이경류, 박호, 김준신, 김일, 박걸, 무명 열사의 위패를 배향하였다. 원래 상주 지역에 이를 기록한 비속(사의비)만 남아 있던 것을 1990년에 사당과 전시관을 세우고 옛 상주관아 부속 건물들을 이건하여 공원화하였다. 상주동헌의 문루였던 태평루와 조정의 사신이 사용하던 객사 상산관, 조선시대 1577년(선조 10년)에 상주목사 정곤수가 상주읍성 남문 밖에 건립하고 연당이라 이름 지어 선비들의 휴식처나 글 짓는 곳으로 사용하던 관정 침천정이 있다. 매년 양력 6월 4일 제향 행사를 거행하여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 후세들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된다.
충의사는 조선 선조 때 무장으로 임진왜란시 육전의 명장으로 큰 공을 세우신 정기룡장군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정기룡 장군은 1562년 (명종17년) 경남 하동군 금남면에서 출생하여, 20세 때 상주로 천거, 25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왕명에 의해 기룡으로 개명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적은 군사로 크고 작은 60여회의 싸움에서 많은 왜병을 물리쳤으며 상주판관으로 있을 당시 격전 끝에 상주성을 탈환하였다. 이후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도방어사, 3도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로 재직하다가 병사하였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신도비, 장군 묘소와 같이 1974년 지방문화재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78년 호국유적 정화 사업으로 당초 16.5㎡ 정도의 사당을 약 13,223㎡의 부지에 사당, 전시관, 관리사무소 등으로 확장 정비한 호국사상의 성지이다. 전시관에는 보물호인 5점(교서 2점, 교지, 신패, 옥대 각 1점)과 동산문화재(교지 19점, 매헌실기 판목 58판)를 전시하고 있다. 또한 매년 10월 무렵 지역 주민이 임진왜란 당시 상주성을 탈환하던 장면을 재현하여 장군의 호국사상을 홍보, 계승하고 있다.
코스 구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의 평지마을에 있는 동학의 교당이다. 현 소유자의 부친 김주희(1860∼1940)가 1915년에 이곳에 본거를 정하고 민족 고유의 종교인 동학의 포교와 교세확장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1924년에 지었다고 한다. 동·서·남·북재 4동의 건물이 사방에 배치되었고 곳간채는 왼쪽 뒤편에 있다. 중심 건물인 북재는 성화실, 사랑채인 동재는 접주실, 안사랑채인 서재는 남녀교도가 각각 반씩 사용하였으며, 행랑채인 남재는 남교도가 사용하였다. 원래는 모든 건물이 초가였으나, 후에 슬레트로 지붕을 고쳤다. 동학의 본부 건물이라는 특수한 예로 주목된다.
상주 임란북천전적지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중앙군과 향군이 왜군의 주력부대와 회전하여 900여 명이 순국한 호국의 성지이다. 1592년 왜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이를 막기 위해 조선의 중앙군 약 60여 명이 남하하였다. 이들과 상주 판관 권길, 박걸이 밤새워 소집한 장정 800여 명 등 900여 명이 17,000여 명의 왜병과 분전하여 전원이 순국한 곳이다. 그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충렬사를 건립하였고 그 당시 순국한 윤섬, 권길, 김종무, 이경류, 박호, 김준신, 김일, 박걸, 무명 열사의 위패를 배향하였다. 원래 상주 지역에 이를 기록한 비속(사의비)만 남아 있던 것을 1990년에 사당과 전시관을 세우고 옛 상주관아 부속 건물들을 이건하여 공원화하였다. 상주동헌의 문루였던 태평루와 조정의 사신이 사용하던 객사 상산관, 조선시대 1577년(선조 10년)에 상주목사 정곤수가 상주읍성 남문 밖에 건립하고 연당이라 이름 지어 선비들의 휴식처나 글 짓는 곳으로 사용하던 관정 침천정이 있다. 매년 양력 6월 4일 제향 행사를 거행하여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 후세들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된다.
충의사는 조선 선조 때 무장으로 임진왜란시 육전의 명장으로 큰 공을 세우신 정기룡장군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정기룡 장군은 1562년 (명종17년) 경남 하동군 금남면에서 출생하여, 20세 때 상주로 천거, 25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왕명에 의해 기룡으로 개명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적은 군사로 크고 작은 60여회의 싸움에서 많은 왜병을 물리쳤으며 상주판관으로 있을 당시 격전 끝에 상주성을 탈환하였다. 이후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도방어사, 3도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로 재직하다가 병사하였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신도비, 장군 묘소와 같이 1974년 지방문화재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78년 호국유적 정화 사업으로 당초 16.5㎡ 정도의 사당을 약 13,223㎡의 부지에 사당, 전시관, 관리사무소 등으로 확장 정비한 호국사상의 성지이다. 전시관에는 보물호인 5점(교서 2점, 교지, 신패, 옥대 각 1점)과 동산문화재(교지 19점, 매헌실기 판목 58판)를 전시하고 있다. 또한 매년 10월 무렵 지역 주민이 임진왜란 당시 상주성을 탈환하던 장면을 재현하여 장군의 호국사상을 홍보,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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