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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명월의 고장에서 빚어낸 명물

소개

천주교 연풍성지는 조선 정조(正祖) 15년(1791) 신해교난(辛亥敎難) 이후 연풍땅에 은거하여 신앙을 지켜가던 교인 추순옥(秋順玉), 이윤일(李尹一), 김병숙, 金말당, 金마루 등이 순조(純祖) 1년(180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처형당한 자리에 1974년부터 천주교회에서 성역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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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중앙로홍문2길 14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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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풍성지
연풍성지

천주교 연풍성지는 조선 정조 15년(1791) 신해교난 이후 연풍 땅에 은거하여 신앙을 지켜가던 교인 추순옥, 이윤일, 김병숙, 김말당, 김마루 등이 순조 1년(1801) 신유교난 때 처형당한 자리로, 1974년부터 천주교회에서 성역화한 곳이다. 성지 내에는 연풍향청 건물과 높이 8.5m의 십자가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한국천주교 103 성인의 한 사람인 루까 황석두의 입상과 묘가 있다. 순조 13년(1813) 연풍현 병방골에서 태어난 황석두 성인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일생을 종교에 헌신하다 병인박해 때 다블뤼주교, 오메트르신부, 위앵신부, 장주기 회장과 함께 충청도 갈매못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고 한다. 성지 왼쪽에는 순교현양비를 세웠으며, 문 앞에는 처형석을 유물로 전시하고 있다. 성지에 있는 연풍향청은 향청 이후 헌병주재소, 경찰지서 등으로 쓰이던 건물이었으나, 천주교회에서 구입하여 연풍 공소의 예배소로 사용하고 있다.

2 괴산 적석리 소나무
괴산 적석리 소나무

적석리 입석마을은 400년 전 조선 숙종 때 연일 정 씨의 선조가 정착하면서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고갯마루에 있는 입석암이라는 허물어진 절터와 입석마을 뒷산에 고려당골과 국사당이 있어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임을 짐작하게 한다. 입석고개는 영남에서 이화령(이유릿재)이나 새재를 넘어 괴산,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어 옛 선비들이 쉬어 넘던 애환의 역사가 있다. 고갯마루에 서 있는 소나무는 키 21.2m, 가슴높이 둘레 3.48m의 크기로 속리산의 정2품 송과 비슷한 모습이나, 줄기가 끝으로 가면서 5° 정도 기울어 비스듬하게 자랐다. 줄기의 윗부분은 적송 특유의 붉은빛을 띠며, 아랫부분은 나무껍질이 두껍다. 가지는 사방으로 균형 있게 뻗었다. 나이는 약 500년으로 추정되고 이화령터널 입구가 보이는 고갯마루에서 마을이 생기기 전부터 자랐다고 한다. 원래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던 국사당의 소나무와 같이 있었으나 국사당 소나무는 없어지고 입석고개 소나무만 생존하여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해방 전까지는 성황당이 있어 당제를 지냈으나 한국전쟁 이후 당집도, 제사도 없어졌다고 한다. 이 소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보살핌을 받아온 나무로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3 조령민속공예촌
조령민속공예촌
약 11분

코스 구성

1

천주교 연풍성지는 조선 정조 15년(1791) 신해교난 이후 연풍 땅에 은거하여 신앙을 지켜가던 교인 추순옥, 이윤일, 김병숙, 김말당, 김마루 등이 순조 1년(1801) 신유교난 때 처형당한 자리로, 1974년부터 천주교회에서 성역화한 곳이다. 성지 내에는 연풍향청 건물과 높이 8.5m의 십자가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한국천주교 103 성인의 한 사람인 루까 황석두의 입상과 묘가 있다. 순조 13년(1813) 연풍현 병방골에서 태어난 황석두 성인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일생을 종교에 헌신하다 병인박해 때 다블뤼주교, 오메트르신부, 위앵신부, 장주기 회장과 함께 충청도 갈매못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고 한다. 성지 왼쪽에는 순교현양비를 세웠으며, 문 앞에는 처형석을 유물로 전시하고 있다. 성지에 있는 연풍향청은 향청 이후 헌병주재소, 경찰지서 등으로 쓰이던 건물이었으나, 천주교회에서 구입하여 연풍 공소의 예배소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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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리 입석마을은 400년 전 조선 숙종 때 연일 정 씨의 선조가 정착하면서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고갯마루에 있는 입석암이라는 허물어진 절터와 입석마을 뒷산에 고려당골과 국사당이 있어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임을 짐작하게 한다. 입석고개는 영남에서 이화령(이유릿재)이나 새재를 넘어 괴산,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어 옛 선비들이 쉬어 넘던 애환의 역사가 있다. 고갯마루에 서 있는 소나무는 키 21.2m, 가슴높이 둘레 3.48m의 크기로 속리산의 정2품 송과 비슷한 모습이나, 줄기가 끝으로 가면서 5° 정도 기울어 비스듬하게 자랐다. 줄기의 윗부분은 적송 특유의 붉은빛을 띠며, 아랫부분은 나무껍질이 두껍다. 가지는 사방으로 균형 있게 뻗었다. 나이는 약 500년으로 추정되고 이화령터널 입구가 보이는 고갯마루에서 마을이 생기기 전부터 자랐다고 한다. 원래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던 국사당의 소나무와 같이 있었으나 국사당 소나무는 없어지고 입석고개 소나무만 생존하여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해방 전까지는 성황당이 있어 당제를 지냈으나 한국전쟁 이후 당집도, 제사도 없어졌다고 한다. 이 소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보살핌을 받아온 나무로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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