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마음자리를 찾아가는 완주 사찰 기행
소개
완주의 사찰, 화암사와 송광사는 단아하고 고즈넉하여 여유 있게 머물며 나를 돌아보기에 좋은 여행지다. 안도현 시인이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라 칭찬한 화암사와 봄날의 벚꽃이 장관을 펼치는 송광사, 함께 이어지는 위봉산성을 걸으며 혼자만의 낭만적인 추억도 만들어보자. 화암사에서 송광사로 가는 길의 대아호도 좋다.
코스 지도
화암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자리한 전통 사찰로 행사를 최소화하고 수행 중심의 사찰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창건자와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중창비에 따르면 원효와 의상이 이곳에서 수행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 초 성달생의 시주로 해총이 중창하고 극락전을 완성하면서 대가람의 모습을 갖추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중창을 거쳐 극락전을 포함한 주요 전각이 재건되었으며 현재는 명부전, 산신각, 우화루, 적묵당, 요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문화유산으로는 화암사 동종, 중창비, 괘불도가 있으며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사찰이다.
완주 종남산 자락에 자리한 사찰로,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통일신라 말이다. 설악산 억성사에서 수행하던 체징 선사가 중국 유학길에 영험한 도량으로 이름난 백련사에 잠시 머물렀는데, 백련사는 종남산 남쪽의 영험한 샘물 옆에 지은 절이라고 전해진다. 체징 선사가 귀국한 뒤 백련사를 송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전소되었으나, 1636년부터 벽암 각성대사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가람으로 크게 중창하였다. 경내는 대웅전을 비롯해 지장전, 약사전, 관음전, 십자각, 금강문, 향로전, 적묵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과 국내 유일의 십자형 누각인 종루, 소조사천왕상과 함께 2024년 보물로 지정된 금강문 등 소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템플스테이와 불교학당을 운영하며, 새벽예불과 108배, 참선, 스님과의 다담을 통해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위봉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위봉산(추줄산)에 자리하고 있는 고찰이다. 고려 말 나옹스님이 중건하였고, 조선 세조 때는 선석, 석잠 두 스님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 말에 포련대사에 의한 60여 칸 건물 중수를 거쳐 1312년에는 전국 31 본산(일종이나 일파의 기본이 되는 큰 절) 중 하나로 전북 일원의 50여 말사를 관할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급속히 퇴락했다. 폐사 직전인 1988년 법중스님이 부임 후 바로 도량 정비를 시작하여 퇴락한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보수하였고, 여러 시주의 동참으로 100여 칸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현재는 보광명전, 극락전, 관음전, 삼성각, 나월당, 요사채 등을 갖추고 있고, 건물에 50~60명의 대중이 상주하고 있는 대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위봉산성은 조선 숙종 원년(1675년)에 쌓은 것으로, 둘레가 약 16km에 이르는 대단한 규모이다.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과 조경묘에 있던 태조의 초상화와 그의 조상을 상징하는 나무 패를 피난시키기 위해 이 성을 쌓았다. 실제 동학 농민봉기로 전주가 함락되었을 때 초상화와 나무 패를 이곳으로 가져왔다. 성 안에는 초상화와 위패를 모실 소형 궁전을 두었으나 오래전에 헐려 없어졌다. 성의 동·서·북쪽에 각각 문을 냈는데, 지금은 전주로 통하는 서쪽에 반월형 문 하나만이 남아있다. 성 안에는 위봉사와 전주 팔경의 하나인 위봉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코스 구성
화암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자리한 전통 사찰로 행사를 최소화하고 수행 중심의 사찰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창건자와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중창비에 따르면 원효와 의상이 이곳에서 수행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 초 성달생의 시주로 해총이 중창하고 극락전을 완성하면서 대가람의 모습을 갖추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중창을 거쳐 극락전을 포함한 주요 전각이 재건되었으며 현재는 명부전, 산신각, 우화루, 적묵당, 요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문화유산으로는 화암사 동종, 중창비, 괘불도가 있으며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사찰이다.
완주 종남산 자락에 자리한 사찰로,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통일신라 말이다. 설악산 억성사에서 수행하던 체징 선사가 중국 유학길에 영험한 도량으로 이름난 백련사에 잠시 머물렀는데, 백련사는 종남산 남쪽의 영험한 샘물 옆에 지은 절이라고 전해진다. 체징 선사가 귀국한 뒤 백련사를 송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전소되었으나, 1636년부터 벽암 각성대사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가람으로 크게 중창하였다. 경내는 대웅전을 비롯해 지장전, 약사전, 관음전, 십자각, 금강문, 향로전, 적묵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과 국내 유일의 십자형 누각인 종루, 소조사천왕상과 함께 2024년 보물로 지정된 금강문 등 소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템플스테이와 불교학당을 운영하며, 새벽예불과 108배, 참선, 스님과의 다담을 통해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위봉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위봉산(추줄산)에 자리하고 있는 고찰이다. 고려 말 나옹스님이 중건하였고, 조선 세조 때는 선석, 석잠 두 스님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 말에 포련대사에 의한 60여 칸 건물 중수를 거쳐 1312년에는 전국 31 본산(일종이나 일파의 기본이 되는 큰 절) 중 하나로 전북 일원의 50여 말사를 관할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급속히 퇴락했다. 폐사 직전인 1988년 법중스님이 부임 후 바로 도량 정비를 시작하여 퇴락한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보수하였고, 여러 시주의 동참으로 100여 칸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현재는 보광명전, 극락전, 관음전, 삼성각, 나월당, 요사채 등을 갖추고 있고, 건물에 50~60명의 대중이 상주하고 있는 대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위봉산성은 조선 숙종 원년(1675년)에 쌓은 것으로, 둘레가 약 16km에 이르는 대단한 규모이다.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과 조경묘에 있던 태조의 초상화와 그의 조상을 상징하는 나무 패를 피난시키기 위해 이 성을 쌓았다. 실제 동학 농민봉기로 전주가 함락되었을 때 초상화와 나무 패를 이곳으로 가져왔다. 성 안에는 초상화와 위패를 모실 소형 궁전을 두었으나 오래전에 헐려 없어졌다. 성의 동·서·북쪽에 각각 문을 냈는데, 지금은 전주로 통하는 서쪽에 반월형 문 하나만이 남아있다. 성 안에는 위봉사와 전주 팔경의 하나인 위봉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 소요시간
- 6시간
- 코스거리
- 약 50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6시간
- 코스거리
- 약 50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