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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과 작별인사를 나누다

소개

남해대교는 하동군 노량리와 남해군 노량리를 잇는 다리다. 노량은 임진왜란의 7년 전쟁을 끝내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이 펼쳐졌던 전장의 바다이자 순국의 바다였다. 남해대교를 건너자마자 만나는 이순신 장군의 위패가 모셔진 충렬사와 장군의 길잃은 흉탄에 맞아 숨을 거둔 관음포 앞바다가 보이는 이충무공 유적 등이 남아 있고, 이순신 영상관에서는 당시 장엄했던 해전을 3D입체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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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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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해대교
남해대교

남해의 관문인 남해대교는 당시에는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 불렸다. 남해대교는 길이 660m, 높이 80m의 현수교로 1973년 개통되었으며, 약 10만의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 지방자치 가장 화려했던 개통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대와 환희를 받은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붉은 남해대교를 걸어가는 게 행운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시절도 있었으며 수학여행, 신혼여행 장소로 사랑을 받아 왔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치러진 곳으로, 남해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남해 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다. 남해대교를 건너면 남해대교를 조망할 수 있는 휴게공간인 남해각이 있으며, 남해각 주변으로는 벚꽃터널이 가득하다. 주변 관광지로는 남해 충렬사, 남해 척화비 등이 있다.

2 남해 충렬사
남해 충렬사

벚꽃터널 길을 지나 노량마을로 들어오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충렬사가 있다. 충렬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이순신 장군의 가묘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1598년 11월 19일 돌아가신 충무공의 유해는 충렬사 자리에 안치되어 있다가, 1599년 2월 11일 전라 땅 고금도를 거쳐 외가 동네인 아산 현충사 자리에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충렬사는 장군이 돌아가신지 34년이 지난 1633년에 한 칸의 초사를 건립하여 제사를 봉행하면서 시작된다. 남해 충렬사는 규모가 작지만 1973년 6월 11일,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우암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쓴 이충무공묘비와 사우 그리고 충무공비와 충민공비, 내삼문, 외삼문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청해루와 장군의 가묘가 잘 정리되어 있다.

3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들어오면 관음포 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 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맨 처음 육지에 오른 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이락사가 순국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 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 전의 그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 채 오솔길을 이루고 있다.

4 화방사(남해)
화방사(남해)

화방사는 망운사 자락에 있는 신라시대에 지은 사찰로 용문사, 보리암과 함께 남해군 3대 사찰 중 하나이다. 창건당시에는 연죽사라 불렀고,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근거지로 쓰이다가 불에 타 없어진 것을 현 위치로 옮기면서 절 이름을 화방사라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응진전, 명부전, 칠성각, 일주문, 채진루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과 마주보고 있는 채진루는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산내 암자로 망운암이 있다. 사찰 내 유물로는 옥종자, 금고, 이충무공비문목판 등이 있다.

코스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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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관문인 남해대교는 당시에는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 불렸다. 남해대교는 길이 660m, 높이 80m의 현수교로 1973년 개통되었으며, 약 10만의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 지방자치 가장 화려했던 개통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대와 환희를 받은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붉은 남해대교를 걸어가는 게 행운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시절도 있었으며 수학여행, 신혼여행 장소로 사랑을 받아 왔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치러진 곳으로, 남해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남해 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다. 남해대교를 건너면 남해대교를 조망할 수 있는 휴게공간인 남해각이 있으며, 남해각 주변으로는 벚꽃터널이 가득하다. 주변 관광지로는 남해 충렬사, 남해 척화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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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터널 길을 지나 노량마을로 들어오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충렬사가 있다. 충렬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이순신 장군의 가묘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1598년 11월 19일 돌아가신 충무공의 유해는 충렬사 자리에 안치되어 있다가, 1599년 2월 11일 전라 땅 고금도를 거쳐 외가 동네인 아산 현충사 자리에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충렬사는 장군이 돌아가신지 34년이 지난 1633년에 한 칸의 초사를 건립하여 제사를 봉행하면서 시작된다. 남해 충렬사는 규모가 작지만 1973년 6월 11일,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우암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쓴 이충무공묘비와 사우 그리고 충무공비와 충민공비, 내삼문, 외삼문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청해루와 장군의 가묘가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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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들어오면 관음포 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 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맨 처음 육지에 오른 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이락사가 순국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 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 전의 그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 채 오솔길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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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방사는 망운사 자락에 있는 신라시대에 지은 사찰로 용문사, 보리암과 함께 남해군 3대 사찰 중 하나이다. 창건당시에는 연죽사라 불렀고,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근거지로 쓰이다가 불에 타 없어진 것을 현 위치로 옮기면서 절 이름을 화방사라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응진전, 명부전, 칠성각, 일주문, 채진루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과 마주보고 있는 채진루는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산내 암자로 망운암이 있다. 사찰 내 유물로는 옥종자, 금고, 이충무공비문목판 등이 있다.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6시간
코스거리
40.4km
테마
자유여행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