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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속의 제주도, 한밤마을의 돌담길을 걷다

소개

육지속의 제주도로 불리는 한밤마을은 부림 홍씨 집성촌으로 야트막한 돌담이 이어져 있어 고샅길을 따라 걷는 느낌이 제법 좋다. 한밤마을에는 돌담 뿐 아니라 군위 상매댁, 대율리 대청 등 전통 고택과 대율리 석조여래입상 등 문화재도 남아 있다. 이웃해 있는 자연절벽의 동굴 속에는 석굴암보다 조성시대가 앞선 군위삼존석굴도 남아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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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한티로 2137-3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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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밤마을
한밤마을

한밤마을은 대구 군위군 부계면에 자리한 곳으로 집집마다 야트막한 돌담들이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나누듯 정겨운 모습으로 둘러져 있는 마을이다. 1000년 세월에도 10리의 돌담과 고택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고 주변의 정자와 조경들이 아늑하여 찾은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950년경 부림 홍씨의 입향조 홍란이라는 선비가 이주해 오면서 마을 이름을 대야(大夜)라 불렀으나 이후 밤야(夜)자 대신 대율(大栗)로 고쳐 부르게 되어 대율리 한밤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2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대구광역시 군위군 팔공산 절벽의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 보다 연대가 앞선다. 이 석굴에는 700년경에 만들어진 삼존석불이 모셔져 있다. 가운데 본존불은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으며, 얼굴은 몸에 비하여 큰 편으로 삼국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친근한 미소 대신 위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옷은 얇게 걸치고 있어서 당당한 신체의 굴곡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옷자락은 넓은 무릎을 거쳐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같은 양식을 보여주는 좌우의 보살상은 각각의 머리에 작은 불상과 정병이 새겨진 관(冠)을 쓰고 있다. 가슴 앞에는 목걸이를 걸치고 팔에는 팔찌를 끼고 있으며, 옷은 길게 U자형의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고 있다. 이들 보살상은 날씬한 몸매에 어울리는 신체 비례와 목·허리·다리 3 부분을 비틀고 있는 모습에서 새롭게 수용된 중국 당나라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삼국시대 조각이 통일신라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높은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배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3 군위 인각사지
군위 인각사지

군위 인각사지는 군위군 화산의 북쪽 기슭 강가 퇴적지대에 자리 잡은 절터이다. 인각사는 선덕여왕 시절 원효가 세운 절이라 한다. 그 뒤 고려 때에 크게 고쳐 지었고, 일연이 충렬왕 10년(1284)부터 5년간 이 절에서 머물며 삼국유사를 지은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각사는 언제 세워졌는지 문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발굴조사 때 대웅전터로 생각되는 건물이 있던 곳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를 확인하여, 신라 후기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지금의 인각사에는 법당과 두 채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중요문화유산으로 인각사 보각국사 탑과 비(보물)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코스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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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마을은 대구 군위군 부계면에 자리한 곳으로 집집마다 야트막한 돌담들이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나누듯 정겨운 모습으로 둘러져 있는 마을이다. 1000년 세월에도 10리의 돌담과 고택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고 주변의 정자와 조경들이 아늑하여 찾은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950년경 부림 홍씨의 입향조 홍란이라는 선비가 이주해 오면서 마을 이름을 대야(大夜)라 불렀으나 이후 밤야(夜)자 대신 대율(大栗)로 고쳐 부르게 되어 대율리 한밤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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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군위군 팔공산 절벽의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 보다 연대가 앞선다. 이 석굴에는 700년경에 만들어진 삼존석불이 모셔져 있다. 가운데 본존불은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으며, 얼굴은 몸에 비하여 큰 편으로 삼국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친근한 미소 대신 위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옷은 얇게 걸치고 있어서 당당한 신체의 굴곡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옷자락은 넓은 무릎을 거쳐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같은 양식을 보여주는 좌우의 보살상은 각각의 머리에 작은 불상과 정병이 새겨진 관(冠)을 쓰고 있다. 가슴 앞에는 목걸이를 걸치고 팔에는 팔찌를 끼고 있으며, 옷은 길게 U자형의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고 있다. 이들 보살상은 날씬한 몸매에 어울리는 신체 비례와 목·허리·다리 3 부분을 비틀고 있는 모습에서 새롭게 수용된 중국 당나라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삼국시대 조각이 통일신라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높은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배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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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인각사지는 군위군 화산의 북쪽 기슭 강가 퇴적지대에 자리 잡은 절터이다. 인각사는 선덕여왕 시절 원효가 세운 절이라 한다. 그 뒤 고려 때에 크게 고쳐 지었고, 일연이 충렬왕 10년(1284)부터 5년간 이 절에서 머물며 삼국유사를 지은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각사는 언제 세워졌는지 문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발굴조사 때 대웅전터로 생각되는 건물이 있던 곳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를 확인하여, 신라 후기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지금의 인각사에는 법당과 두 채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중요문화유산으로 인각사 보각국사 탑과 비(보물)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5시간
코스거리
29km
테마
자유여행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