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의 문화유적 코스 2
소개
영덕의 문화유적지 두 번째 코스다. 평민 의병대장 신돌석 장군의 생가와 무안 박씨 종택 등 고택을 중심으로 대소산 봉수대 등 영덕이 안고 있는 역사 깃든 고즈넉한 유적지 코스다. 경북의 가택양식과 그 안에 잠든 역사를 돌아보자. 뿐만 아니라 영덕하면 떠올리는 영덕대게 어촌마을 체험도 빠뜨릴 수 없다.
코스 지도
신돌석장군 유적지는 어린 나이에 항일구국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의병 신돌석 장군(1878~1908)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다. 신돌석 장군은 을사조약 이후 의병을 일으켜 영덕, 영양, 울진 등에서 일본군을 섬멸하는 등의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 되었다. 신돌석장군 생가지는 장군의 부친인 신석주가 1850년경 초가로 건립하였으나, 1940년경 일본관헌들이 독립의지를 꺾기 위해 불태워 소실되었다. 1942년에 기와집으로 다시 지었으며, 1995년에 현재의 초가집으로 복원되었다. 유적지 내에는 태백산 호랑이라는 별칭처럼 호랑이 옷을 입은 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이 있고 실내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내부에는 신돌석 의병장의 약력, 설화, 태백산 전투 등의 내용과 일제 침략의 만행과 그에 항쟁하던 의병 활동의 기록, 일본군의 무기와 형장구, 당시 의병들이 사용하던 장도 화승총, 창검류 둥 유물 18점 전시되어 있다. 외부에는 27세 나이에 나라를 걱정해 평해 월송정에 올라 우국충정의 마음을 읽었다는 월송정 시비와 장군의 어릴 적 설화부터 의병 활동을 알 수 있는 일대기를 이야기 형식의 기록물과 신돌석 장군 돌 들기 체험, 활쏘기 체험이 있어 어린이들도 쉽고 재미있게 구한말 의병 활동을 이해하고 호국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은 임진왜란 때 경주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박의장의 넷째 아들 박선(1596~1669)이 맏형 박유를 위하여 1600년 중반에 집을 완성했다. 야산을 뒤로하고 앞들을 내려다보며 남향으로 놓여 있으며, 건물 전체가 대문채, 정침, 내삼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10칸, 측면 7칸의 ㅁ자형이고, 사랑채는 팔작지붕, 안채는 맞배지붕이다.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치면서 부분적으로 구조 변형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가운데 설주의 유구와 사랑대청의 대들보, 상부에 파련대공 등 품격을 지니고 있는 큰 규모의 종택으로 무의공의 위세와 조선 중기의 건축기법을 발견할 수 있다. 불천위 사당 앞에는 고택과 함께 세월을 보낸 370년 된 회화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하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던 시설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에 국경이 명확해지면서 봉수 시설을 체계적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약 12㎞마다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놓았다. 그중 영덕대소산봉수대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조선시대의 통신수단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대소산 봉수대에 서면 멀리 영덕 축산항과 영해면을 조망할 수 있으며 일출 명소이기도 하다.
코스 구성
신돌석장군 유적지는 어린 나이에 항일구국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의병 신돌석 장군(1878~1908)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다. 신돌석 장군은 을사조약 이후 의병을 일으켜 영덕, 영양, 울진 등에서 일본군을 섬멸하는 등의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 되었다. 신돌석장군 생가지는 장군의 부친인 신석주가 1850년경 초가로 건립하였으나, 1940년경 일본관헌들이 독립의지를 꺾기 위해 불태워 소실되었다. 1942년에 기와집으로 다시 지었으며, 1995년에 현재의 초가집으로 복원되었다. 유적지 내에는 태백산 호랑이라는 별칭처럼 호랑이 옷을 입은 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이 있고 실내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내부에는 신돌석 의병장의 약력, 설화, 태백산 전투 등의 내용과 일제 침략의 만행과 그에 항쟁하던 의병 활동의 기록, 일본군의 무기와 형장구, 당시 의병들이 사용하던 장도 화승총, 창검류 둥 유물 18점 전시되어 있다. 외부에는 27세 나이에 나라를 걱정해 평해 월송정에 올라 우국충정의 마음을 읽었다는 월송정 시비와 장군의 어릴 적 설화부터 의병 활동을 알 수 있는 일대기를 이야기 형식의 기록물과 신돌석 장군 돌 들기 체험, 활쏘기 체험이 있어 어린이들도 쉽고 재미있게 구한말 의병 활동을 이해하고 호국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은 임진왜란 때 경주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박의장의 넷째 아들 박선(1596~1669)이 맏형 박유를 위하여 1600년 중반에 집을 완성했다. 야산을 뒤로하고 앞들을 내려다보며 남향으로 놓여 있으며, 건물 전체가 대문채, 정침, 내삼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10칸, 측면 7칸의 ㅁ자형이고, 사랑채는 팔작지붕, 안채는 맞배지붕이다.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치면서 부분적으로 구조 변형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가운데 설주의 유구와 사랑대청의 대들보, 상부에 파련대공 등 품격을 지니고 있는 큰 규모의 종택으로 무의공의 위세와 조선 중기의 건축기법을 발견할 수 있다. 불천위 사당 앞에는 고택과 함께 세월을 보낸 370년 된 회화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하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던 시설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에 국경이 명확해지면서 봉수 시설을 체계적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약 12㎞마다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놓았다. 그중 영덕대소산봉수대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조선시대의 통신수단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대소산 봉수대에 서면 멀리 영덕 축산항과 영해면을 조망할 수 있으며 일출 명소이기도 하다.
- 소요시간
- 5시간
- 코스거리
- 13.69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5시간
- 코스거리
- 13.69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