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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코스

안동호를 따라 퇴계 선생을 만나러 가볼까?

소개

안동은 양반의 고장이자 유교의 정신적 중심지다. 퇴계 이황 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산서원 뿐 아니라 퇴계 선생의 태실과 종택까지 퇴계 선생의 일생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안동시내에 위치한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과 인근에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전탑인 법흥사지 7층 전탑도 안동에서 꼭 찾아봐야 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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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청각길 63 (법흥동)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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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동 임청각
안동 임청각

5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임청각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을 지내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독립투쟁의 토대를 마련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다. 종손인 석주는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의병기지를 세워 독립운동에 첫 발을 내디뎠고 서양의 정치 과학 문명을 받아들여 구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임청각 사람들이 펼친 독립운동은 빼어나고 장엄하다. 경학사를 조직하여 동포사회의 안정을 이루면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했다. 만주에서 자금이 떨어져 하루를 견디기 힘들자 석주는 임청각을 팔기로 했다. 몇차례 매도계약서를 작성했으나 여의치 않자 문중에서 일부 자금을 마련해 줬다. 또한 임청각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살림집 중 가장 오래된 집으로 조선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원(李原 : 1368∼429)의 여섯째 아들인 영산현감 이증(李增)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여기에 자리잡음으로써 입향조가 되었고 이증의 셋째 아들로 중종 때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李洺)이 건축했다. 임청각은 영남산기슭의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하여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지어진 전통한옥이며, 99칸 기와집으로 알려진 이 집은 안채, 중채, 사랑채, 사당, 행랑채, 별채는 물론 아담한 별당(군자정)과 정원까지 조성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다. (출처 : 임청각 공식홈페이지)

2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통일신라시대 칠층전탑으로 높이는 17m, 기단부 7.5m이다. 이 일대의 지명을 법흥리라 부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법흥사(法興寺)에 세워진 전탑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1487년(성종 18)에 개축된 바 있다. 기단(基壇)은 단층에 평면은 방형이고 현재는 지표에 팔부중상(八部衆像) 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양각한 화강석 판석을 1면에 6매씩 세우고 남면 중앙에는 계단을 설치하였다. 팔부중상이나 사천왕상들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서로 제작연대에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배치순서도 무질서하다. 또한 기단상면은 비스듬히 둥글게 시멘트를 칠하여 어느 정도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그 이유는 단층기단 측면에 이렇게 많은 조상(彫像)을 배치한 예가 없기 때문이다. 칠층전탑의 구조는 탑신부(塔身部)는 각 층을 길이 약 28㎝, 너비 약 14㎝, 두께 약 6㎝의 진회색의 무늬 없는 전돌로 어긋나게 쌓았다. 초층옥신은 매우 높고 남면 중앙 하반부에 화강석으로 테를 둘러 작은 감실(龕室)을 개설하였다. 내부는 위를 방추형으로 줄여 1면 48㎝의 방형 구멍이 정상에 나 있어 찰주공(擦柱孔)으로 보인다. 2층 옥신은 초층옥신의 높이에 비하여 약 4분의 1로 높이가 급격히 줄었을 뿐 3층 이상의 체감률은 심하지 않아 7층이라는 높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전탑 특유의 형태로서 처마 상하에 층단이 나타나며 처마는 수평이고 각 층 옥개의 너비는 석탑에 비하여 현저히 감축되었다. 밑의 받침 수는 초층부터 9단·8단·7단·6단·5단·3단이고, 옥개 상면의 층단 수는 초층부터 12단·10 단· 9단·8단·7단·6단·5단으로 상층으로 갈수록 차츰 체감되었다. 현재 낙수면에는 극히 일부에 기와를 입혔을 것으로 보이며 전탑에 앞서 목탑이 존재하였고 전 탑은 목탑을 모방한 것임을 보여준다. 상륜부(相輪部)는 현재 노반(露盤)만이 남아 있으나 영가지(永嘉誌)에 기록된 ‘부동오이(府東五里)’에 있다는 ‘법흥사전탑(法興寺塼塔)’이 이 전탑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법흥사전탑에 관하여 ‘상유금동지식이고철면납관주성객사소용집물(上有金銅之飾 李股撤面納官鑄成客舍所用什物)’이라는 기록이 있어 원래는 금동 상륜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연미사(안동)
연미사(안동)

연미사는 경북 안동시 이천동 오도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본사 고운사의 말사로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제자 중 한 명인 명덕이 바위에 불상을 새겨 모시고 연구사라고 한 것이 시초이다. 그 뒤 불상을 덮은 지붕이 제비와 비슷하여 연자루라 하였고, 승려가 거주하는 요사가 제비 꼬리에 해당하고 법당이 제비부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연미사라 불렀다. 연미사라는 이름은 원래 조선시대 영남 지역에서 한양으로 오가는 길 여행객이 쉬어가는 숙소인 연비원, 속칭 제비원이라 불렀다는 데서 비롯됐다고도 한다. 연미사에 있는 보물인 이천동 석불의 잔잔한 미소는 안동의 상징적인 얼굴로 잘 알려져 있다. 속칭 제비원 미륵불이라고도 불리는 이 석불은 바로 연미사의 오랜 역사에서 홀로 남은 고마운 부처이자 우리 불교사에서도 몇 되지 않는 대표적인 미륵불이다. 또한, 이 석불은 대표적 민요인 성주풀이에도 나올 만큼 백성들이 오랜 세월 동안 뿌리내리려 한 민간신앙의 대상과도 닿아 있다. 연미사가 사찰로서는 매우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미륵불이 담고 있는 미술적, 민족적 유산 가치는 뛰어나다.

4 봉정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봉정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천등산 봉정사는 도심에서 멀지 않아 잠시 일상을 벗어나 한적한 여유를 즐기기 좋은 사찰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간직하고 있으며, 맑은 공기와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 속에서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또한 한국 산중 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수행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렸으며, 능인스님이 바위굴에서 수행하던 중 하늘의 선녀가 등불을 내려 굴 안을 밝혀 주었다는 전설에서 '천등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이후 능인스님이 종이 봉황을 접어 날렸는데 이곳에 내려앉아 머물렀다고 하여 봉황새 봉(鳳) 자와 머무를 정(停) 자를 따서 '봉정사'라 이름하였다. 창건 이후 여섯 차례 중수되었으며, 극락전과 대웅전을 비롯한 다양한 국보와 보물, 후불벽화, 목조관세음보살좌상, 화엄강당, 고금당 등 소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이 밖에도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삼층석탑과 영산암, 지조암, 중암 등의 부속암자가 있으며, 고려 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간 아름다운 사찰로도 전해진다. (출처 : 봉정사)

5 도산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산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상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이 직접 거처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 사후에 건립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년), 퇴계 선생이 낙향한 뒤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세운 곳으로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퇴계 선생이 직접 설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 부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선조 9년)에 완공되었다. 1570년 퇴계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에 모시기로 결정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574년, 지방 유림의 뜻을 모아 사당을 건립하여 위패를 봉안하였으며 전교당과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년)에는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 편액을 하사 받아 사액(賜額) 서원이 되었고 이로써 영남 유학의 총본산 역할을 하게 되었다. 1615년(광해군 7년)에는 사림이 조목(趙穆)을 종향(從享)하였으며 1792년(정조 16년) 정조 임금이 치제(致祭)를 내리고 도산별과(陶山別科)를 시행하였다. 1796년(정조 20년)에는 시사단(試士壇)을 세웠고 1819년(순조 19년)에는 장서고(藏書庫)인 동광명실(東光明室)이 건립되었다. 1870년(고종 7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서도 제외되었으며 1930년(경오년)에는 서광명실(西光明室)을 중건하였고 1932년(임신년)에는 하고 직사(下庫直舍)를 이전하였다. 1969년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필지(324,945㎡)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증축 사업이 진행되어 우리나라 유학 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되었다. 1977년에는 도산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었으며, 관리·운영 조례를 제정·공포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예능 16기 출연진이 한복을 입고 랜덤으로 파트너를 매칭한 장소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옷 색깔로 파트너가 정해질 때마다 시청자들이 대리 설렘과 긴장감을 느낀 장소이기도 하다. 인근에 조성된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서당 내부 뿐만 아니라 왕버들, 시사단 등 서원의 다양한 명물을 만날 수 있다.

코스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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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임청각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을 지내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독립투쟁의 토대를 마련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다. 종손인 석주는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의병기지를 세워 독립운동에 첫 발을 내디뎠고 서양의 정치 과학 문명을 받아들여 구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임청각 사람들이 펼친 독립운동은 빼어나고 장엄하다. 경학사를 조직하여 동포사회의 안정을 이루면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했다. 만주에서 자금이 떨어져 하루를 견디기 힘들자 석주는 임청각을 팔기로 했다. 몇차례 매도계약서를 작성했으나 여의치 않자 문중에서 일부 자금을 마련해 줬다. 또한 임청각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살림집 중 가장 오래된 집으로 조선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원(李原 : 1368∼429)의 여섯째 아들인 영산현감 이증(李增)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여기에 자리잡음으로써 입향조가 되었고 이증의 셋째 아들로 중종 때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李洺)이 건축했다. 임청각은 영남산기슭의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하여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지어진 전통한옥이며, 99칸 기와집으로 알려진 이 집은 안채, 중채, 사랑채, 사당, 행랑채, 별채는 물론 아담한 별당(군자정)과 정원까지 조성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다. (출처 : 임청각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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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통일신라시대 칠층전탑으로 높이는 17m, 기단부 7.5m이다. 이 일대의 지명을 법흥리라 부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법흥사(法興寺)에 세워진 전탑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1487년(성종 18)에 개축된 바 있다. 기단(基壇)은 단층에 평면은 방형이고 현재는 지표에 팔부중상(八部衆像) 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양각한 화강석 판석을 1면에 6매씩 세우고 남면 중앙에는 계단을 설치하였다. 팔부중상이나 사천왕상들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서로 제작연대에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배치순서도 무질서하다. 또한 기단상면은 비스듬히 둥글게 시멘트를 칠하여 어느 정도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그 이유는 단층기단 측면에 이렇게 많은 조상(彫像)을 배치한 예가 없기 때문이다. 칠층전탑의 구조는 탑신부(塔身部)는 각 층을 길이 약 28㎝, 너비 약 14㎝, 두께 약 6㎝의 진회색의 무늬 없는 전돌로 어긋나게 쌓았다. 초층옥신은 매우 높고 남면 중앙 하반부에 화강석으로 테를 둘러 작은 감실(龕室)을 개설하였다. 내부는 위를 방추형으로 줄여 1면 48㎝의 방형 구멍이 정상에 나 있어 찰주공(擦柱孔)으로 보인다. 2층 옥신은 초층옥신의 높이에 비하여 약 4분의 1로 높이가 급격히 줄었을 뿐 3층 이상의 체감률은 심하지 않아 7층이라는 높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전탑 특유의 형태로서 처마 상하에 층단이 나타나며 처마는 수평이고 각 층 옥개의 너비는 석탑에 비하여 현저히 감축되었다. 밑의 받침 수는 초층부터 9단·8단·7단·6단·5단·3단이고, 옥개 상면의 층단 수는 초층부터 12단·10 단· 9단·8단·7단·6단·5단으로 상층으로 갈수록 차츰 체감되었다. 현재 낙수면에는 극히 일부에 기와를 입혔을 것으로 보이며 전탑에 앞서 목탑이 존재하였고 전 탑은 목탑을 모방한 것임을 보여준다. 상륜부(相輪部)는 현재 노반(露盤)만이 남아 있으나 영가지(永嘉誌)에 기록된 ‘부동오이(府東五里)’에 있다는 ‘법흥사전탑(法興寺塼塔)’이 이 전탑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법흥사전탑에 관하여 ‘상유금동지식이고철면납관주성객사소용집물(上有金銅之飾 李股撤面納官鑄成客舍所用什物)’이라는 기록이 있어 원래는 금동 상륜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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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사는 경북 안동시 이천동 오도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본사 고운사의 말사로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제자 중 한 명인 명덕이 바위에 불상을 새겨 모시고 연구사라고 한 것이 시초이다. 그 뒤 불상을 덮은 지붕이 제비와 비슷하여 연자루라 하였고, 승려가 거주하는 요사가 제비 꼬리에 해당하고 법당이 제비부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연미사라 불렀다. 연미사라는 이름은 원래 조선시대 영남 지역에서 한양으로 오가는 길 여행객이 쉬어가는 숙소인 연비원, 속칭 제비원이라 불렀다는 데서 비롯됐다고도 한다. 연미사에 있는 보물인 이천동 석불의 잔잔한 미소는 안동의 상징적인 얼굴로 잘 알려져 있다. 속칭 제비원 미륵불이라고도 불리는 이 석불은 바로 연미사의 오랜 역사에서 홀로 남은 고마운 부처이자 우리 불교사에서도 몇 되지 않는 대표적인 미륵불이다. 또한, 이 석불은 대표적 민요인 성주풀이에도 나올 만큼 백성들이 오랜 세월 동안 뿌리내리려 한 민간신앙의 대상과도 닿아 있다. 연미사가 사찰로서는 매우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미륵불이 담고 있는 미술적, 민족적 유산 가치는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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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등산 봉정사는 도심에서 멀지 않아 잠시 일상을 벗어나 한적한 여유를 즐기기 좋은 사찰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간직하고 있으며, 맑은 공기와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 속에서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또한 한국 산중 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수행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렸으며, 능인스님이 바위굴에서 수행하던 중 하늘의 선녀가 등불을 내려 굴 안을 밝혀 주었다는 전설에서 '천등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이후 능인스님이 종이 봉황을 접어 날렸는데 이곳에 내려앉아 머물렀다고 하여 봉황새 봉(鳳) 자와 머무를 정(停) 자를 따서 '봉정사'라 이름하였다. 창건 이후 여섯 차례 중수되었으며, 극락전과 대웅전을 비롯한 다양한 국보와 보물, 후불벽화, 목조관세음보살좌상, 화엄강당, 고금당 등 소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이 밖에도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삼층석탑과 영산암, 지조암, 중암 등의 부속암자가 있으며, 고려 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간 아름다운 사찰로도 전해진다. (출처 :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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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상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이 직접 거처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 사후에 건립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년), 퇴계 선생이 낙향한 뒤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세운 곳으로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퇴계 선생이 직접 설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 부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선조 9년)에 완공되었다. 1570년 퇴계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에 모시기로 결정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574년, 지방 유림의 뜻을 모아 사당을 건립하여 위패를 봉안하였으며 전교당과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년)에는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 편액을 하사 받아 사액(賜額) 서원이 되었고 이로써 영남 유학의 총본산 역할을 하게 되었다. 1615년(광해군 7년)에는 사림이 조목(趙穆)을 종향(從享)하였으며 1792년(정조 16년) 정조 임금이 치제(致祭)를 내리고 도산별과(陶山別科)를 시행하였다. 1796년(정조 20년)에는 시사단(試士壇)을 세웠고 1819년(순조 19년)에는 장서고(藏書庫)인 동광명실(東光明室)이 건립되었다. 1870년(고종 7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서도 제외되었으며 1930년(경오년)에는 서광명실(西光明室)을 중건하였고 1932년(임신년)에는 하고 직사(下庫直舍)를 이전하였다. 1969년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필지(324,945㎡)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증축 사업이 진행되어 우리나라 유학 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되었다. 1977년에는 도산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었으며, 관리·운영 조례를 제정·공포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예능 16기 출연진이 한복을 입고 랜덤으로 파트너를 매칭한 장소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옷 색깔로 파트너가 정해질 때마다 시청자들이 대리 설렘과 긴장감을 느낀 장소이기도 하다. 인근에 조성된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서당 내부 뿐만 아니라 왕버들, 시사단 등 서원의 다양한 명물을 만날 수 있다.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7시간
코스거리
45.3km
테마
자유여행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