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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수탈의 흔적을 만나는 군산 근대유산여행

소개

군산은 1899년 개항된 항구로 일제강점기 때 쌀 수탈의 상징적인 도시다. 해망굴, 군산세관, 시마타니금고, 임피역 등 수탈의 상징적인 문화유산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히로쓰가옥과 이영춘가옥,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도 만나볼 수 있다. 시마타니금고가 있는 발산초등학교 교정에는 시마타니가 수집한 문화재도 남아 있어 가슴을 더욱 먹먹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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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해망로 244-7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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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 군산세관
옛 군산세관

구 군산세관본관 건물이 완공된 것은 1908년으로,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나라 정부가 만든 근대식 건물이다. 옛 군산세관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군산항을 통해 드나들던 물품에 대해 세금을 책정하고 거두는 업무를 하였는데 이렇듯 군산항을 쌀을 비롯한 물자 수탈의 창구로 이용했던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수탈사를 목격한 곳으로써 역사적 의의가 큰 곳이라고 하겠다. 벨기에에서 수입해 온 적벽돌로 되어 있는 유럽 양식의 건물로 서울역사와 한국은행본점 건물과 같은 양식이다. 지붕은 연화조동판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 위에는 세 개의 뾰족한 탑이 있다. 외부는 벽돌로 짓고, 내부는 목조로 지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독일인이 건물을 설계하였으며, 1899년 5월 1일 인천세관 관할로 군산세관을 설치하였고, 1906년 청사를 계획, 1908년 6월 20일에 준공하였다. 1993년까지 85년 동안 군산세관 본관으로 사용되다가 바로 옆 기존 감시소 건물을 허물고 새 청사를 지어 이전하였다. 현재는 호남관세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박물관에는 세관의 기네스북, 영화 속 군산세관, 역대 세관장, 군산세관 100년의 역사과 관련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1일 2회의 문화관광해설을 들을 수 있다.

2 월명공원
월명공원

월명공원은 군산시 중심에 위치한 시민의 안식처이자 관광지로, 봄에는 벚꽃과 동백꽃, 가을에는 단풍으로 많은 이들을 끌어들인다. 1906년 해망정 인근 9,907평을 각국공원이라 명명한 것이 시작이다. 1910년 경술국치 후 각국 조계지역 법이 폐지되면서 군산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33년에는 수시탑이 있는 산 일대 6,088평을 추가 매입해 공원 면적을 확장했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삼림이 훼손되자, 1972년부터 수시탑에서 군산대 뒷산까지를 개발제한구역이자 공원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와 함께 군산공원이라는 명칭은 월명공원으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3 군산 신흥동 일본식가옥(히로쓰 가옥)
군산 신흥동 일본식가옥(히로쓰 가옥)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구 히로쓰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군산에서 포목점과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군산부협의회 의원을 지낸 일본인이 건립한 일본식 2층 목조 가옥이다. ‘히로쓰 게이사브로’가 지은 주택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식 주택의 특성이 잘 나타나는 건축물로 일제 강점기 군산에 거주하였던 일본 상류층 주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45년 해방 후 적산 가옥으로 구 호남 제분으로 넘어가 한국 제분의 소유로 되어 있고, 2005년 6월 18일 국가 등록 문화유산 제183호로 지정된 이후 군산시에서 관리하면서 관람객을 위해 개방하고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를 촬영하기도 하였으며, 수많은 한국 영화가 이 주택에서 촬영될 정도로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다.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군산 원도심의 남서쪽 가장자리인 신흥동의 주택가 안쪽에 남서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대규모 목조 주택 2층 건물로 벽체는 심벽에 목재 비늘판벽과 회벽으로 마감하였고, 지붕은 박공지붕과 합각지붕에 기와를 얹어 마감하였다. 자연석을 깐 기단 위에 방형 초석이 놓이고 그 위에 가느다란 사각기둥이 세워져 지붕 가구가 짜인 방식이다. 현관 부분의 지붕은 박공지붕과 모임지붕 형식인데, 처마 밑에 함석판을 덮은 차양이 덧달아져 있다. 2층 부분의 지붕은 합각지붕 형식으로 처리되었으며, 전면에 부섭지붕이 달려 있다. ‘ㄱ’ 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이 두 채 있고, 두 건물 사이에는 꾸며놓은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으며, 정원 내에는 큼직한 석등이 있다. 1층에는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일식 다다미방과 도코노마 등이 있어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으며, 아울러 이들의 농촌 수탈 역사를 알 수 있다. 본채 뒤쪽으로 뒷마당에는 또 다른 부속채와 우물, 화장실 등이 배치되어 있다.

4 동국사(군산)
동국사(군산)

동국사(東國寺)는 1909년 일본 승려 선응불관 스님에 의해 창건되어,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일본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며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온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그리하여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남겨진 유일한 일본식 사찰로, 대웅전과 요사채가 실내 복도로 이어진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단청이 있는 우리나라 사찰과는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의 많은 창문이 일본식 사찰의 특징을 나타낸다.조계종 제24교구인 고창 선운사의 말사로, 동국사의 대웅전은 2003년 7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동국사의 본래 이름은 금강선사였다. 금강선사는 1909년 일본인 승려 내전불관이 군산에 포교소를 개설하면서 창건한 조동종 사찰이다. 일본 불교는 1877년 부산 개항과 함께 일본 정부의 요청에 의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정토진종 대곡파가 포교를 개시하였으며, 1904년 군산에도 포교소를 개설하였다. 이후 일연종이 뒤를 이었다. 결국 일본 불교가 우리나라에 진출한 까닭은 순수한 불교 포교가 목적이 아니라, 한국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일본 불교를 포교하고자 1911년 6월 3일 자로 사찰령을 발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 불교는 전국에 별원, 출장소, 포교소 등을 건립하였다. 금강선사가 창건되기 전, 군산에는 본원사, 군산사, 안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금강사를 창건한 내전불관은 1909년 당시 77세의 고령으로 군산 지역을 순회하던 중, 군산 일조통에 있던 집을 빌려 포교소를 개설하였다. 1913년 7월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금의 동국사를 신축하였다

5 이영춘가옥
이영춘가옥

일제강점기 군산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던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 리헤이가 지은 별장주택으로 일 년에 봄철과 추수철에 농장을 방문할 때 임시 거처로 사용되던 별장과 같은 건물로 서구식과 한국식, 일본식의 여러 건축양식이 절충된 다양한 양식적 특성을 띄며,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며 이영춘 가옥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름다운 건물 외관으로 인해 빙점, 모래시계, 야인시대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 장소가 되고 있다. 쌍천 이영춘 박사는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데 호인 쌍천(雙川)은 두 가닥의 샘물 즉 육체적 질병을 치유하는 샘물과 영혼을 치유하는 샘물이라는 뜻이다.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1903년 10월 태어났다. 평양고보 사법과 시절 담임선생이던 경성제대 와타나베 교수의 소개로 전북 개정의 구마모토 농장에 소속된 2만여 명 소작농 가족을 돌보기 위해 1935년 4월 33세의 젊은 나이에 자혜의원 원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호 교사제와 의료보험 조합을 실시하였다.

6 군산 개정면 구 일본인농장 창고
군산 개정면 구 일본인농장 창고

시마타니금고는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의 대표 농장주였던 시마타니 야소야가 1920년대에 지은 금고용 건물이다. 시마타니는 우리 민족의 문화재 수집에 관심을 가지고 발산리 석등과 오층석탑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품을 불법 수집하였던 인물이다. 이 건물은 시마티니가 수집한 골동품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건물은 3층의 콘크리트 건물로 입구에는 철제 금고문이 달려 있고 창문은 쇠창살과 철판으로 이중 장금 장치가 되어 있다. 현재 발산초교 자리에 농장을 만들었던 시마타니 야소야는 일본의 야마구찌현 구카군 출신으로 일본에서 주조업으로 재산을 모은 후 일본 청주의 원료인 값싼 쌀을 찾아 군산에 온 자인데 그는 1903년 12월 당시 돈 7만원으로 발산리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면서 농장을 만들기 시작하여 1909년이 되자 임피 외에도 2개 면에 486정보의 농지를 소유한 농장주가 된다. 땅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했던 시마타니 독은 해방 후 자신의 농장을 지키기 위해서 미군정청에 한국인으로 귀화를 신청했고 다른 일본인이 떠난 후에도 끝까지 귀국을 거부했고 그 덕분에 그는 군산의 마지막 일본인 농장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결국 그도 미군정청의 강제적 권유로 손가방 2개만을 지닌 채 부산항에서 마지박 귀국선에 몸을 실어야 했다. 이 건물은 반지하인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어진 3층까지 하나의 구조물인 일체형으로 만들고 내부의 각층은 나무마루로 구분된 건물이다. 외부로 통하는 창문에는 쇠창살을 치고 그 바깥쪽으로 철문을 달아놓아 2중의 방범장치가 되어 있다. 출입문은 USA마크가 선명한 문을 달아 놓았는데 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에서 수입한 수입품임을 알 수 있다. 금고의 반지하에는 옷감과 음식류가 있었으며 2층에는 농장의 중요서류와 현금이 있었고, 3층에는 한국의 고 미술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7 군산 임피역사
군산 임피역사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에 자리한 임피역사는 1936년경 군산선의 철도역사로 건립된 건물이다. 1912년 호남선의 지선으로 완공된 군산선에 위치한 임피역사는 본래 임피 읍내리에 만들어져야 하는데 읍내리의 유림들이 풍수지리적 이유로 반대하여 술산리를 경유하게 되었다는 구전이 전한다. 일제강점기 때 군산선은 전라남북도의 농산물을 군산항을 통하여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요 교통로로서 수탈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임피역은 당시 농촌지역 소규모 간이역사의 전형적 건축형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며, 원형 또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적, 철도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1995년 4월 1일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2005년 9월30일 화물 취급이 중지되었다. 현재는 객차전시관·시실리광장·방죽공원을 조성하고 재래식 화장실·우물터·오포대 등을 만들어서 이 고장 출신 소설가 채만식의 작품의 이야기와 엮어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코스 구성

1

구 군산세관본관 건물이 완공된 것은 1908년으로,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나라 정부가 만든 근대식 건물이다. 옛 군산세관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군산항을 통해 드나들던 물품에 대해 세금을 책정하고 거두는 업무를 하였는데 이렇듯 군산항을 쌀을 비롯한 물자 수탈의 창구로 이용했던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수탈사를 목격한 곳으로써 역사적 의의가 큰 곳이라고 하겠다. 벨기에에서 수입해 온 적벽돌로 되어 있는 유럽 양식의 건물로 서울역사와 한국은행본점 건물과 같은 양식이다. 지붕은 연화조동판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 위에는 세 개의 뾰족한 탑이 있다. 외부는 벽돌로 짓고, 내부는 목조로 지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독일인이 건물을 설계하였으며, 1899년 5월 1일 인천세관 관할로 군산세관을 설치하였고, 1906년 청사를 계획, 1908년 6월 20일에 준공하였다. 1993년까지 85년 동안 군산세관 본관으로 사용되다가 바로 옆 기존 감시소 건물을 허물고 새 청사를 지어 이전하였다. 현재는 호남관세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박물관에는 세관의 기네스북, 영화 속 군산세관, 역대 세관장, 군산세관 100년의 역사과 관련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1일 2회의 문화관광해설을 들을 수 있다.

2

월명공원은 군산시 중심에 위치한 시민의 안식처이자 관광지로, 봄에는 벚꽃과 동백꽃, 가을에는 단풍으로 많은 이들을 끌어들인다. 1906년 해망정 인근 9,907평을 각국공원이라 명명한 것이 시작이다. 1910년 경술국치 후 각국 조계지역 법이 폐지되면서 군산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33년에는 수시탑이 있는 산 일대 6,088평을 추가 매입해 공원 면적을 확장했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삼림이 훼손되자, 1972년부터 수시탑에서 군산대 뒷산까지를 개발제한구역이자 공원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와 함께 군산공원이라는 명칭은 월명공원으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3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구 히로쓰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군산에서 포목점과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군산부협의회 의원을 지낸 일본인이 건립한 일본식 2층 목조 가옥이다. ‘히로쓰 게이사브로’가 지은 주택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식 주택의 특성이 잘 나타나는 건축물로 일제 강점기 군산에 거주하였던 일본 상류층 주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45년 해방 후 적산 가옥으로 구 호남 제분으로 넘어가 한국 제분의 소유로 되어 있고, 2005년 6월 18일 국가 등록 문화유산 제183호로 지정된 이후 군산시에서 관리하면서 관람객을 위해 개방하고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를 촬영하기도 하였으며, 수많은 한국 영화가 이 주택에서 촬영될 정도로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다.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군산 원도심의 남서쪽 가장자리인 신흥동의 주택가 안쪽에 남서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대규모 목조 주택 2층 건물로 벽체는 심벽에 목재 비늘판벽과 회벽으로 마감하였고, 지붕은 박공지붕과 합각지붕에 기와를 얹어 마감하였다. 자연석을 깐 기단 위에 방형 초석이 놓이고 그 위에 가느다란 사각기둥이 세워져 지붕 가구가 짜인 방식이다. 현관 부분의 지붕은 박공지붕과 모임지붕 형식인데, 처마 밑에 함석판을 덮은 차양이 덧달아져 있다. 2층 부분의 지붕은 합각지붕 형식으로 처리되었으며, 전면에 부섭지붕이 달려 있다. ‘ㄱ’ 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이 두 채 있고, 두 건물 사이에는 꾸며놓은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으며, 정원 내에는 큼직한 석등이 있다. 1층에는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일식 다다미방과 도코노마 등이 있어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으며, 아울러 이들의 농촌 수탈 역사를 알 수 있다. 본채 뒤쪽으로 뒷마당에는 또 다른 부속채와 우물, 화장실 등이 배치되어 있다.

4

동국사(東國寺)는 1909년 일본 승려 선응불관 스님에 의해 창건되어,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일본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며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온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그리하여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남겨진 유일한 일본식 사찰로, 대웅전과 요사채가 실내 복도로 이어진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단청이 있는 우리나라 사찰과는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의 많은 창문이 일본식 사찰의 특징을 나타낸다.조계종 제24교구인 고창 선운사의 말사로, 동국사의 대웅전은 2003년 7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동국사의 본래 이름은 금강선사였다. 금강선사는 1909년 일본인 승려 내전불관이 군산에 포교소를 개설하면서 창건한 조동종 사찰이다. 일본 불교는 1877년 부산 개항과 함께 일본 정부의 요청에 의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정토진종 대곡파가 포교를 개시하였으며, 1904년 군산에도 포교소를 개설하였다. 이후 일연종이 뒤를 이었다. 결국 일본 불교가 우리나라에 진출한 까닭은 순수한 불교 포교가 목적이 아니라, 한국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일본 불교를 포교하고자 1911년 6월 3일 자로 사찰령을 발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 불교는 전국에 별원, 출장소, 포교소 등을 건립하였다. 금강선사가 창건되기 전, 군산에는 본원사, 군산사, 안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금강사를 창건한 내전불관은 1909년 당시 77세의 고령으로 군산 지역을 순회하던 중, 군산 일조통에 있던 집을 빌려 포교소를 개설하였다. 1913년 7월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금의 동국사를 신축하였다

5

일제강점기 군산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던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 리헤이가 지은 별장주택으로 일 년에 봄철과 추수철에 농장을 방문할 때 임시 거처로 사용되던 별장과 같은 건물로 서구식과 한국식, 일본식의 여러 건축양식이 절충된 다양한 양식적 특성을 띄며,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며 이영춘 가옥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름다운 건물 외관으로 인해 빙점, 모래시계, 야인시대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 장소가 되고 있다. 쌍천 이영춘 박사는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데 호인 쌍천(雙川)은 두 가닥의 샘물 즉 육체적 질병을 치유하는 샘물과 영혼을 치유하는 샘물이라는 뜻이다.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1903년 10월 태어났다. 평양고보 사법과 시절 담임선생이던 경성제대 와타나베 교수의 소개로 전북 개정의 구마모토 농장에 소속된 2만여 명 소작농 가족을 돌보기 위해 1935년 4월 33세의 젊은 나이에 자혜의원 원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호 교사제와 의료보험 조합을 실시하였다.

6

시마타니금고는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의 대표 농장주였던 시마타니 야소야가 1920년대에 지은 금고용 건물이다. 시마타니는 우리 민족의 문화재 수집에 관심을 가지고 발산리 석등과 오층석탑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품을 불법 수집하였던 인물이다. 이 건물은 시마티니가 수집한 골동품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건물은 3층의 콘크리트 건물로 입구에는 철제 금고문이 달려 있고 창문은 쇠창살과 철판으로 이중 장금 장치가 되어 있다. 현재 발산초교 자리에 농장을 만들었던 시마타니 야소야는 일본의 야마구찌현 구카군 출신으로 일본에서 주조업으로 재산을 모은 후 일본 청주의 원료인 값싼 쌀을 찾아 군산에 온 자인데 그는 1903년 12월 당시 돈 7만원으로 발산리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면서 농장을 만들기 시작하여 1909년이 되자 임피 외에도 2개 면에 486정보의 농지를 소유한 농장주가 된다. 땅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했던 시마타니 독은 해방 후 자신의 농장을 지키기 위해서 미군정청에 한국인으로 귀화를 신청했고 다른 일본인이 떠난 후에도 끝까지 귀국을 거부했고 그 덕분에 그는 군산의 마지막 일본인 농장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결국 그도 미군정청의 강제적 권유로 손가방 2개만을 지닌 채 부산항에서 마지박 귀국선에 몸을 실어야 했다. 이 건물은 반지하인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어진 3층까지 하나의 구조물인 일체형으로 만들고 내부의 각층은 나무마루로 구분된 건물이다. 외부로 통하는 창문에는 쇠창살을 치고 그 바깥쪽으로 철문을 달아놓아 2중의 방범장치가 되어 있다. 출입문은 USA마크가 선명한 문을 달아 놓았는데 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에서 수입한 수입품임을 알 수 있다. 금고의 반지하에는 옷감과 음식류가 있었으며 2층에는 농장의 중요서류와 현금이 있었고, 3층에는 한국의 고 미술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7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에 자리한 임피역사는 1936년경 군산선의 철도역사로 건립된 건물이다. 1912년 호남선의 지선으로 완공된 군산선에 위치한 임피역사는 본래 임피 읍내리에 만들어져야 하는데 읍내리의 유림들이 풍수지리적 이유로 반대하여 술산리를 경유하게 되었다는 구전이 전한다. 일제강점기 때 군산선은 전라남북도의 농산물을 군산항을 통하여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요 교통로로서 수탈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임피역은 당시 농촌지역 소규모 간이역사의 전형적 건축형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며, 원형 또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적, 철도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1995년 4월 1일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2005년 9월30일 화물 취급이 중지되었다. 현재는 객차전시관·시실리광장·방죽공원을 조성하고 재래식 화장실·우물터·오포대 등을 만들어서 이 고장 출신 소설가 채만식의 작품의 이야기와 엮어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6시간
코스거리
24.7km
테마
자유여행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