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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에서 옛 선비들의 풍류를 느끼다

소개

절경이 뛰어난 수승대는 거창을 대표하는 명소다. 삼국시대 때 백제가 신라로 사신들을 보내면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해 수송대로 불렸던 곳이다. 이후 1543년 퇴계 이황이 수송대의 내력을 듣고 아름답지 못하다 하여 수승대(搜勝臺) 고칠 것을 권하여 이름이 바뀌었다. 수승대 주변으로 구연서원, 요수정뿐 아니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황산마을 옛 담장과 정온 선생 고택 등이 있어 수려한 경치 속에서 문화유산답사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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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은하리길 2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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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창 수승대
거창 수승대

이곳은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고 조선 때는 안의현에 속해 있다가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 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후 조선 중종 때 요수신권(樂水 愼權) 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당(龜淵書堂)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대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 하여 암구대(岩龜臺)라 하고 경내를 구연동(龜淵洞)이라 하였다.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退溪 李滉) 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그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대의 면에다 새김에서 비롯되었다. 경내에는 구연서원(龜淵書院)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관수루(觀水樓) 전사청(典祠廳) 요수정(樂水亭) 함양제(涵養齊) 정려(旌閭)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와 유적비(遺蹟碑) 암구대(岩龜臺) 등이 있는데 이는 유림과 거창 신 씨 요수종중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으며, 솔숲과 물과 바위가 어울려 경치가 빼어나고 또한 자고암과 주변에는 고란초를 비롯한 희귀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2 황산마을
황산마을

황산마을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위치한 전통한옥마을로 수승대국민관광단지 건너편에 있다. 1540년(조선 중종 35년)에 요수 신권 선생이 이곳에 은거하며 1540년 구연재를 세우고 후학들을 양성했던 이후로 거창 신 씨의 집성촌 마을이 되었다. 이 구연재는 1573년 신권선생이 죽자 사림에서 구연서원으로 개칭하고 석곡 성팽년과 함께 배향하였다. 이후 황산마을은 18세기 중엽 조선 영조 때 노론계 학자인 황고 신수이 선생이 입양을 하면서 번성하게 되었다. 이곳 가옥들은 대개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된 건축물로 대한제국 말기와 일본 강점기 시대의 지방 반가의 전통 한옥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남아 있는 한옥은 약 50여 호로 안채와 사랑채를 갖추고 있고 모두 기와집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씨족 부농촌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의 담장은 제법 큰 자연석을 이용한 토석담으로 약 1.2㎞에 걸친 활처럼 휘어진 전통 담장길은 전통고가와 잘 어우러져 매우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마을에 들어서면 입구에 높이 15m, 수령 600년에 이르는 안정좌 나무라 부르는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 중앙에는 거창 황산리 신 씨 고가가 자리 잡고 있는데 1927년 옛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건물로 원학고가라고도 부른다. 이 가옥은 경상남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후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사랑채는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장식물로 꾸며져 있어 당시 큰 지주였던 집주인의 재력을 엿볼 수 있다. 안채는 많이 개수되어 전통한옥의 격식에서는 많이 벗어난 모습을 보여 준다. 수승대국민관광단지에 깨끗한 민박과, 호텔 등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지만, 이곳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황산전통한옥마을에서 옛 조상들의 주거생활을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거창은 오래전부터 산이 높고 물이 맑은 고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낮에는 시원한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밤에는 황산마을에서 전통한옥체험을 한다면 여름휴가철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일 것이다. 황산전통한옥마을은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에서 가깝고, 인근에 송계사계곡, 거창조각공원, 금원산자연휴양림, 월성계곡, 거창박물관, 화계사, 쌍계사계곡 등의 관광지가 있다.

3 거창 동계종택
거창 동계종택

조선 중기의 문신 정온이 태어난 집으로, 후손들이 1820년에 다시 짓고 정온의 신위를 사당에 모시고 있는 곳이다. 고택은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 남쪽 지방임에도 추위가 심해 북방식인 겹집 형태로 지어졌고, 호서지방이 가까워 비가 잦아 비를 피하려 사랑채 누마루는 겹지붕 형태로 건축되었으며, 이는 고건축학적으로 특이한 것으로 눈썹지붕이라고도 한다. 사랑채는 꺾인 부분을 누마루로 꾸미고 눈썹지붕을 설치한 점이 특이하다. 안채와 사랑채는 북부지방 가옥의 특징인 겹집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기단은 낮고 툇마루를 높게 설치한 남부지방 고유의 특징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집의 학술적 가치를 찾을 수 있으며, 조선 후기 양반주택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또한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코스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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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고 조선 때는 안의현에 속해 있다가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 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후 조선 중종 때 요수신권(樂水 愼權) 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당(龜淵書堂)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대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 하여 암구대(岩龜臺)라 하고 경내를 구연동(龜淵洞)이라 하였다.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退溪 李滉) 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그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대의 면에다 새김에서 비롯되었다. 경내에는 구연서원(龜淵書院)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관수루(觀水樓) 전사청(典祠廳) 요수정(樂水亭) 함양제(涵養齊) 정려(旌閭)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와 유적비(遺蹟碑) 암구대(岩龜臺) 등이 있는데 이는 유림과 거창 신 씨 요수종중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으며, 솔숲과 물과 바위가 어울려 경치가 빼어나고 또한 자고암과 주변에는 고란초를 비롯한 희귀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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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마을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위치한 전통한옥마을로 수승대국민관광단지 건너편에 있다. 1540년(조선 중종 35년)에 요수 신권 선생이 이곳에 은거하며 1540년 구연재를 세우고 후학들을 양성했던 이후로 거창 신 씨의 집성촌 마을이 되었다. 이 구연재는 1573년 신권선생이 죽자 사림에서 구연서원으로 개칭하고 석곡 성팽년과 함께 배향하였다. 이후 황산마을은 18세기 중엽 조선 영조 때 노론계 학자인 황고 신수이 선생이 입양을 하면서 번성하게 되었다. 이곳 가옥들은 대개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된 건축물로 대한제국 말기와 일본 강점기 시대의 지방 반가의 전통 한옥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남아 있는 한옥은 약 50여 호로 안채와 사랑채를 갖추고 있고 모두 기와집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씨족 부농촌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의 담장은 제법 큰 자연석을 이용한 토석담으로 약 1.2㎞에 걸친 활처럼 휘어진 전통 담장길은 전통고가와 잘 어우러져 매우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마을에 들어서면 입구에 높이 15m, 수령 600년에 이르는 안정좌 나무라 부르는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 중앙에는 거창 황산리 신 씨 고가가 자리 잡고 있는데 1927년 옛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건물로 원학고가라고도 부른다. 이 가옥은 경상남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후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사랑채는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장식물로 꾸며져 있어 당시 큰 지주였던 집주인의 재력을 엿볼 수 있다. 안채는 많이 개수되어 전통한옥의 격식에서는 많이 벗어난 모습을 보여 준다. 수승대국민관광단지에 깨끗한 민박과, 호텔 등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지만, 이곳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황산전통한옥마을에서 옛 조상들의 주거생활을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거창은 오래전부터 산이 높고 물이 맑은 고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낮에는 시원한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밤에는 황산마을에서 전통한옥체험을 한다면 여름휴가철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일 것이다. 황산전통한옥마을은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에서 가깝고, 인근에 송계사계곡, 거창조각공원, 금원산자연휴양림, 월성계곡, 거창박물관, 화계사, 쌍계사계곡 등의 관광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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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정온이 태어난 집으로, 후손들이 1820년에 다시 짓고 정온의 신위를 사당에 모시고 있는 곳이다. 고택은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 남쪽 지방임에도 추위가 심해 북방식인 겹집 형태로 지어졌고, 호서지방이 가까워 비가 잦아 비를 피하려 사랑채 누마루는 겹지붕 형태로 건축되었으며, 이는 고건축학적으로 특이한 것으로 눈썹지붕이라고도 한다. 사랑채는 꺾인 부분을 누마루로 꾸미고 눈썹지붕을 설치한 점이 특이하다. 안채와 사랑채는 북부지방 가옥의 특징인 겹집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기단은 낮고 툇마루를 높게 설치한 남부지방 고유의 특징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집의 학술적 가치를 찾을 수 있으며, 조선 후기 양반주택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또한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5시간
코스거리
4km
테마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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