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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를 떠나 풍경을 만나는 곳

소개

속리산은 충북에서 유일한 국립공원이다. 신라시대 진표율사가 이곳을 지나는데 밭 갈던 소들이 무릎을 꿇자 농부들도 속세를 떠나 입산수도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속리산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왕으로부터 벼슬을 받은 정이품송, 팔상전, 쌍사자석등, 석련지 등 숱한 국보와 보물을 간직한 법주사가 있어 속세를 떠나 온전히 하루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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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99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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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은 속리 정이품송
보은 속리 정이품송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속리의 정이품송은 나이가 약 6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높이는 15m, 가슴둘레 4.5m, 가지의 길이는 동쪽 10.3m, 서쪽 9.6m, 북쪽 10m이며 총면적은 1158.3㎡에 이른다. 벼슬품계인 정 2품을 받은 나무로 속리산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소나무가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세조 10년(1464)에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가지에 걸리게 되었다. 이에 세조가 "가마가 걸린다"고 말하니 소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위로 들어 왕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 한다. 또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조는 이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정2품(현재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고, 이 소나무를 정이품소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소나무는 살아오는 동안 각종 재해를 입었는데, 특히 1980년대 초 솔잎혹파리의 피해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여 대규모 방충망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 소나무는 원래 삿갓 또는 우산을 편 모양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1993년 강풍으로 서쪽 큰 가지가 부러져 그 모습이 많이 상하였다. 하지만 전체적인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다우며, 크고 오래된 나무여서 생물학 및 생물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고, 임금을 섬기는 그 시대상을 잘 전해주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문화적인 가치 또한 크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2 보은 법주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보은 법주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뜻의 법주사는 속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진흥왕 14년(서기 553)에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성덕왕과 혜공왕이 중창하였는데 이때부터 대찰의 규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고려 홍건적의 침입 때는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을 왔다가 환궁하는 길에 들르기도 하였고 조선 태조는 즉위하기 전 백일기도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병에 걸렸던 세조는 복천암에서 사흘 기도를 올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60여 동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로서 위용을 떨치게 되었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사찰의 거의 모든 건물이 전소되어 1624년 인조 2년에 이르러 벽암스님에 의해 다시 중창하였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친 후 오늘에 이른다. 예전 법주사 가람배치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화엄신앙축과 용화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미륵신앙축이 팔상전에 직각으로 교차하고 있었으나, 1990년 높이가 33미터에 이르는 청동 미륵불을 조성하면서 그 배치가 흩어져 버렸다. 경내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용화전, 원통보전, 명부전, 능인전, 조사각, 진영각, 삼성각 등 전각과 종무소를 포함한 10여 채의 요사채들이 남아 있다. 이곳 법주사를 비롯한 속리산 일대에는 보은의 지정 문화재 절반 이상이 몰려 있는데 그중 법주사에는 국보가 3점이나 된다. 또, 천왕문과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 씨의 위패를 모셨던 선희궁 원단, 16 나한을 모시고 있는 능인전, 자기 몸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한 희견보살상, 그리고 쌀 80 가마는 너끈히 들어가는 석조와 쇠솥 등이 그것이다. 법주사는 천 년이 넘는 역사를 통한 미륵신앙이 전해져 내려왔던 곳으로써 기도와 예불 수행 등 기초적인 불교문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다. 팔상전은 5층 목탑으로서 우리나라 목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며, 신라 진흥왕 때에 의신이 세웠고 776년 병진이 중창해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팔상전은 1984년에 쌍봉사의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던 3층 목조탑이 소실됨으로써 한국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 된 중요한 건축물로 전체높이가 상륜까지 22.7m이며 현존하는 한국의 탑파 중 제일 높은 것이다. 또한 석연지는 8각의 지대석 위에 3단의 굄과 한 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구름 위에 둥둥 뜬 듯한 모습을 조식한 걸작품으로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고 있으며, 쌍사자 석등은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그 조성 연대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등의 간주석을 석사자로 대치한 이 석등은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8각의 지대석 위에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연화대 방석을 모두 하나의 돌에 조각한 것으로 다른 석등에 비해 화사석과 옥개석이 큰 것이 특징이다.

3 속리산국립공원(충북)
속리산국립공원(충북)

속리산국립공원은 속리산과 화양, 선유, 쌍곡 등 3개의 계곡을 합쳐 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다. 속리산은 기암 절경이 빼어난 산으로 한국 8경 중 하나로 꼽히며 태백산맥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나오는 소백산맥줄기 가운데 위치하여 충북 보은군, 괴산군, 경북 상주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속리산은 화강암을 기반으로 변성 퇴적암이 섞여 있어 화강암 부분은 날카롭게 솟아오르고 변성 퇴적암 부분은 깊게 파여 있다. 높고 깊은 봉우리와 계곡은 가히 절경을 이루고 있어 광명산, 미지산, 소금강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등산코스는 산불예방 및 자연휴식년제로 인해 통제되는 구간이 있으므로 자세한 사항은 공원관리사무소로 문의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사찰 중의 하나인 법주사를 중심으로 하여 동북쪽으로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 입석대, 문장대, 경업대 등 산속의 수많은 고적들과 천연기념물들이 이곳을 등산과 관광의 명소로 만든다.

코스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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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속리의 정이품송은 나이가 약 6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높이는 15m, 가슴둘레 4.5m, 가지의 길이는 동쪽 10.3m, 서쪽 9.6m, 북쪽 10m이며 총면적은 1158.3㎡에 이른다. 벼슬품계인 정 2품을 받은 나무로 속리산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소나무가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세조 10년(1464)에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가지에 걸리게 되었다. 이에 세조가 "가마가 걸린다"고 말하니 소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위로 들어 왕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 한다. 또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조는 이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정2품(현재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고, 이 소나무를 정이품소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소나무는 살아오는 동안 각종 재해를 입었는데, 특히 1980년대 초 솔잎혹파리의 피해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여 대규모 방충망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 소나무는 원래 삿갓 또는 우산을 편 모양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1993년 강풍으로 서쪽 큰 가지가 부러져 그 모습이 많이 상하였다. 하지만 전체적인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다우며, 크고 오래된 나무여서 생물학 및 생물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고, 임금을 섬기는 그 시대상을 잘 전해주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문화적인 가치 또한 크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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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뜻의 법주사는 속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진흥왕 14년(서기 553)에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성덕왕과 혜공왕이 중창하였는데 이때부터 대찰의 규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고려 홍건적의 침입 때는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을 왔다가 환궁하는 길에 들르기도 하였고 조선 태조는 즉위하기 전 백일기도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병에 걸렸던 세조는 복천암에서 사흘 기도를 올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60여 동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로서 위용을 떨치게 되었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사찰의 거의 모든 건물이 전소되어 1624년 인조 2년에 이르러 벽암스님에 의해 다시 중창하였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친 후 오늘에 이른다. 예전 법주사 가람배치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화엄신앙축과 용화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미륵신앙축이 팔상전에 직각으로 교차하고 있었으나, 1990년 높이가 33미터에 이르는 청동 미륵불을 조성하면서 그 배치가 흩어져 버렸다. 경내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용화전, 원통보전, 명부전, 능인전, 조사각, 진영각, 삼성각 등 전각과 종무소를 포함한 10여 채의 요사채들이 남아 있다. 이곳 법주사를 비롯한 속리산 일대에는 보은의 지정 문화재 절반 이상이 몰려 있는데 그중 법주사에는 국보가 3점이나 된다. 또, 천왕문과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 씨의 위패를 모셨던 선희궁 원단, 16 나한을 모시고 있는 능인전, 자기 몸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한 희견보살상, 그리고 쌀 80 가마는 너끈히 들어가는 석조와 쇠솥 등이 그것이다. 법주사는 천 년이 넘는 역사를 통한 미륵신앙이 전해져 내려왔던 곳으로써 기도와 예불 수행 등 기초적인 불교문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다. 팔상전은 5층 목탑으로서 우리나라 목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며, 신라 진흥왕 때에 의신이 세웠고 776년 병진이 중창해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팔상전은 1984년에 쌍봉사의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던 3층 목조탑이 소실됨으로써 한국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 된 중요한 건축물로 전체높이가 상륜까지 22.7m이며 현존하는 한국의 탑파 중 제일 높은 것이다. 또한 석연지는 8각의 지대석 위에 3단의 굄과 한 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구름 위에 둥둥 뜬 듯한 모습을 조식한 걸작품으로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고 있으며, 쌍사자 석등은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그 조성 연대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등의 간주석을 석사자로 대치한 이 석등은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8각의 지대석 위에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연화대 방석을 모두 하나의 돌에 조각한 것으로 다른 석등에 비해 화사석과 옥개석이 큰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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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국립공원은 속리산과 화양, 선유, 쌍곡 등 3개의 계곡을 합쳐 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다. 속리산은 기암 절경이 빼어난 산으로 한국 8경 중 하나로 꼽히며 태백산맥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나오는 소백산맥줄기 가운데 위치하여 충북 보은군, 괴산군, 경북 상주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속리산은 화강암을 기반으로 변성 퇴적암이 섞여 있어 화강암 부분은 날카롭게 솟아오르고 변성 퇴적암 부분은 깊게 파여 있다. 높고 깊은 봉우리와 계곡은 가히 절경을 이루고 있어 광명산, 미지산, 소금강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등산코스는 산불예방 및 자연휴식년제로 인해 통제되는 구간이 있으므로 자세한 사항은 공원관리사무소로 문의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사찰 중의 하나인 법주사를 중심으로 하여 동북쪽으로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 입석대, 문장대, 경업대 등 산속의 수많은 고적들과 천연기념물들이 이곳을 등산과 관광의 명소로 만든다.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7시간
코스거리
약 13.km (법주사-문장대 왕복 10.6km 포함)
테마
자유여행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