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고인돌 왕국
소개
고인돌은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지만,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인돌은 한국의 고창, 화순, 강화도가 유일하다. 이중에서도 고창 지역에 가장 많은데 무려 1,500기가 넘는다. 6개의 고인돌 탐방 코스가 조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백미는 1~2코스다. 주변에 채석장이 많아 다양한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
코스 지도
조선시대 고창현의 읍성으로서 장성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 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고창읍성은 세 번의 전투가 이루어 졌으며, 첫 번째는 정유재란, 두 번째는 동학농민혁명, 세 번째는 6.25사변 때라고 전해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정읍, 흥덕을 연달아 점령한 농민군은 고창으로 이동하였다. 고창을 점령한 농민군은 고창읍성 내의 옥문(獄門)을 열어 죄수를 풀어주고, 읍성 앞에 살며 부정축재를 일삼았던 은대정의 집을 불태웠다. 전봉준은 농민군들에게 엄하게 규율을 지켜 무고한 백성에게 폐단을 끼치지 못하게 하였고, 또 애매하게 잡힌 죄수를 풀어주고 주린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농민군이 고창읍성을 점령하고 동헌을 파괴한 뒤 인부(印符)를 빼앗으려 할 때 고창현감은 도주해 버렸다고 한다.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축성된 고창읍성은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부분적으로 복원된 관아건물은 학습교육의 장소로 많은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출처 : 고창군청)
고창시외버스터미널에서 500m 거리에 위치한 고창 신재효판소리박물관은 판소리의 이론가이자 개작자, 후원가였던 동리 신재효 및 진채선, 김소희 등 다수의 명창을 기념하고 판소리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동리 신재효의 고택 자리에 설립되었다. 고택은 현재 사랑채만 유일하게 복원되어 있으며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고창 신재효판소리박물관의 로비에 들어서면 멋마당이 보이고 중정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전시실, 왼쪽은 학예연구실과 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원형 전시실 [명예의 전당]에는 명창들의 사진 패널들이 전시되어 있고, 소리마당은 판소리의 예술세계를 인식하고 재구성해 보는 곳이다. 동리 신재효와 고창의 소리꾼들을 조명하는 아니리마당, 디지털 영상을 통해 판소리를 경험해 보는 혼마당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전시 활동을 통해 판소리의 유형, 무형의 자료를 수집·보존·조사·연구·전시·해석하여 일반 대중에게 판소리 예술의 재교육과 감상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문화시설이다.
대산면, 성송면에 걸쳐 있는 고산은 해발 527m의 산이다. 고산은 높지는 않지만 주변 평야에 솟아 있어서 1,000m 높이의 다른 산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이다. 산 정상에선 주변 경치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고 울창한 송림과 여러 기암괴석이 산행하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고산에는 용추굴, 각시봉, 깃대봉, 매바위, 용두암, 거북바위, 촛대봉, 치마바위 등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고 복분자 산딸기 평전과 늪지대 등 자연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고산에는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수백여기 있으며, 후삼국시대에 쌓은 고산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고산산성의 길이는 약 5,000m 정도이고 높이 5m인데 지형에 따라 다르며 자연을 이용한 토석 혼축성이다. 축성 양식은 포곡형이고 석축의 공법은 내탁법을 써서 외면은 석축으로 쌓고 내면은 흙과 잡석으로 다져서 축성 하였다. 외면은 자연석을 수직 혹은 물림 쌓기로 아랫돌에 비해 윗돌을 5~6㎝씩 안으로 물려 쌓은 방식을 썼다. 성문은 남문과 북문의 형태가 남아 있으나 동문과 서문은 찾아볼 수 없다. 문헌에는 산성의 둘레가 8,100척이고 내유3천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성내에는 용지와 서봉사, 수고암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산성의 형태는 600m 정도가 남아 있고 거의 도태된 상태이다.
선운사는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도솔산(兜率山)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도솔산은 선운산(禪雲山)이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하였다.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유산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으며, 이후 그 자리에 선운사를 창건하였다. 검단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하여 절 이름을 ‘선운(禪雲)’이라 지었다고 한다. 현재 보물, 천연기념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등 다양한 성보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대웅전 뒤에는 수령 약 500년, 높이가 평균 6m는 되는 동백나무들의 군락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꽃이 만개하는 봄이면 사찰 뒤로 꽃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장관을 이룬다.
코스 구성
조선시대 고창현의 읍성으로서 장성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 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고창읍성은 세 번의 전투가 이루어 졌으며, 첫 번째는 정유재란, 두 번째는 동학농민혁명, 세 번째는 6.25사변 때라고 전해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정읍, 흥덕을 연달아 점령한 농민군은 고창으로 이동하였다. 고창을 점령한 농민군은 고창읍성 내의 옥문(獄門)을 열어 죄수를 풀어주고, 읍성 앞에 살며 부정축재를 일삼았던 은대정의 집을 불태웠다. 전봉준은 농민군들에게 엄하게 규율을 지켜 무고한 백성에게 폐단을 끼치지 못하게 하였고, 또 애매하게 잡힌 죄수를 풀어주고 주린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농민군이 고창읍성을 점령하고 동헌을 파괴한 뒤 인부(印符)를 빼앗으려 할 때 고창현감은 도주해 버렸다고 한다.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축성된 고창읍성은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부분적으로 복원된 관아건물은 학습교육의 장소로 많은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출처 : 고창군청)
고창시외버스터미널에서 500m 거리에 위치한 고창 신재효판소리박물관은 판소리의 이론가이자 개작자, 후원가였던 동리 신재효 및 진채선, 김소희 등 다수의 명창을 기념하고 판소리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동리 신재효의 고택 자리에 설립되었다. 고택은 현재 사랑채만 유일하게 복원되어 있으며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고창 신재효판소리박물관의 로비에 들어서면 멋마당이 보이고 중정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전시실, 왼쪽은 학예연구실과 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원형 전시실 [명예의 전당]에는 명창들의 사진 패널들이 전시되어 있고, 소리마당은 판소리의 예술세계를 인식하고 재구성해 보는 곳이다. 동리 신재효와 고창의 소리꾼들을 조명하는 아니리마당, 디지털 영상을 통해 판소리를 경험해 보는 혼마당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전시 활동을 통해 판소리의 유형, 무형의 자료를 수집·보존·조사·연구·전시·해석하여 일반 대중에게 판소리 예술의 재교육과 감상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문화시설이다.
대산면, 성송면에 걸쳐 있는 고산은 해발 527m의 산이다. 고산은 높지는 않지만 주변 평야에 솟아 있어서 1,000m 높이의 다른 산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이다. 산 정상에선 주변 경치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고 울창한 송림과 여러 기암괴석이 산행하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고산에는 용추굴, 각시봉, 깃대봉, 매바위, 용두암, 거북바위, 촛대봉, 치마바위 등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고 복분자 산딸기 평전과 늪지대 등 자연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고산에는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수백여기 있으며, 후삼국시대에 쌓은 고산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고산산성의 길이는 약 5,000m 정도이고 높이 5m인데 지형에 따라 다르며 자연을 이용한 토석 혼축성이다. 축성 양식은 포곡형이고 석축의 공법은 내탁법을 써서 외면은 석축으로 쌓고 내면은 흙과 잡석으로 다져서 축성 하였다. 외면은 자연석을 수직 혹은 물림 쌓기로 아랫돌에 비해 윗돌을 5~6㎝씩 안으로 물려 쌓은 방식을 썼다. 성문은 남문과 북문의 형태가 남아 있으나 동문과 서문은 찾아볼 수 없다. 문헌에는 산성의 둘레가 8,100척이고 내유3천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성내에는 용지와 서봉사, 수고암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산성의 형태는 600m 정도가 남아 있고 거의 도태된 상태이다.
선운사는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도솔산(兜率山)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도솔산은 선운산(禪雲山)이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하였다.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유산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으며, 이후 그 자리에 선운사를 창건하였다. 검단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하여 절 이름을 ‘선운(禪雲)’이라 지었다고 한다. 현재 보물, 천연기념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등 다양한 성보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대웅전 뒤에는 수령 약 500년, 높이가 평균 6m는 되는 동백나무들의 군락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꽃이 만개하는 봄이면 사찰 뒤로 꽃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장관을 이룬다.
- 소요시간
- 6시간
- 코스거리
- 23.77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6시간
- 코스거리
- 23.77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