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군의 문화유적지 답사 2
소개
아름답고 수려한 지리산은 역사도 깊고 ‘한’도 깊다. 단속사 절터의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 정당매의 오묘한 자태와 조식 선생의 유적지를 돌며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잊을 수 없는 역사의 서글픔 빨치산 토벌의 역사가 담긴 전시관도 들러보자.
코스 지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지리산 줄기가 힘차께 뻗어 내려오다가 멈춘 옥녀봉 아래 남향으로 자리한 단속사 절터에는 동.서의 삼층석탑과 주춧돌이 어지러이 놓인 가운데 매화나무 고목이 한 그루 서 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의 매화나무로서는 수령이 가장 오래된 정당매(政堂梅)이다. 인재 강희안(1419~1464)의《양화소록(養花小錄에)》에 보면 우리 선조 통정공께서 소년시절에 지리산 단속사에서 글공부를 하실 때에 손수 매화 한 그루를 뜰 앞에 심어놓고, 시 한 수를 읊었다고 씌여 있다. 여기서 인재가 말하는 선조는 고려 말기의 문신인 통정(通亭) 강회백(1357~1402)으로 우왕2년(1376)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점점 높아져서 정당문학(政堂文學, 중서성과 문하성의 종2품 벼슬)겸 대사헌에 이르렀다. 공양왕 4년(1392) 정몽주가 살해된 뒤 진양에 유배되었다가 조선 건국 후 태조 7년(1398) 동북면 도순문사(都巡問使)가 되었다. 그는 경남 산청 출신으로 강희안의 조부가 되며 통정이 소년시절 정당매를 심고 시를 읊었다. 통정집에 기록된 또 하나의 시는 그가 46세로 일생을 마치기 전에 손수 심은 정당매를 찾아와 읊은 시로써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커다란 감동과 감회를 느끼게 한다. 단속사의 스님들이 공의 재덕(才德)을 생각하고 깨끗한 풍채와 고매한 품격을 사모하여 그 매화를 보면 곧 공을 본 듯 하였다. 해마다 흙으로 뿌리를 다져주고 북돋아 기르기를 때를 맞춰 알맞게 하였다. 그 가지의 모양이 가까스로 굽고 또 푸른 이끼가 나무줄기를 감싼 것이 《매보(梅譜)》에서 말한 고매(古梅)와 다름이 없으니 참으로 영남의 한 고물이라 하겠다. 이로부터 영남에 나랏일로 오는 사람들이 이 고을에 오면 누구든지 단속사를 찾아서 그 매화를 감상하고 우리 선조의 시운에 맞춰 시를 써서 문 위에 걸어놓곤 하였다. 이와 같이 단속사의 스님들은 이 매화나무를 극진히 보살피게 되었고, 통정공의 후손들과 영남에 내려오게 된 관리들이 정당매를 찾게 되었다. 이 매화나무의 나이는 통정공이 소년시절 단속사에서 글을 읽을 때 심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가 이 절에서 공부한 시기를 20세 이전의 등과하기 전으로 본다면 대체로 1376년 이전에 식재된 것으로 볼 수 있어 그 수령은 630년이 넘었을 것으로 본다. 현재 정당매는 높이 8m에 둘레가 1.5m로서 근간에서 4본의 지간이 생겨 위로 혹은 옆으로 뻗었다. 꽃의 색깔은 백색이며 홑꽃이다. 3월 20일 전후이면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뜨려 맑은 향기를 퍼뜨린다. 후손들은 이 정당매를 기념하기 위하여 비각을 짓고 비를 세웠다. 매각(梅閣)은 1915년에 매비의 건립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정당매각(政堂梅閣)'이란 넉자로 된 현판이 걸려 있으며, 비각 안에는 매각을 세운 연유를 기록한 ‘정당매각기(政堂梅閣記)'와 통정공의 매화원운(梅花原韻)의 시와 후손들의 시 여러 편이 걸려 있다. 현재 이 정당매는 1982년 11월 10일자로 경상남도의 도나무(고유번호 12~41호)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유명한 유학자인 조식 선생의 유적지이다. 조식 선생은 많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냈다. 조식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院里)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년(1561)에 세웠고, 순조 18년(1818)에 고쳐졌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이다. 덕천서원은 선조 9년(1576)에 세웠고, 앞면 5칸, 옆면 2칸의 현재 건물은 1926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세심정은 선조 15년(1582)에 처음 세웠다. (출처 : 국가유산청)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중심으로 6·25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지리산에서 활동한 빨치산을 주제로 빨치산들의 생활상, 군경의 토벌 상황과 양민들의 고통을 생생한 자료를 통하여 전시하고 있는 역사 공간으로 빨치산의 실체와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산 교육장이다. 2001년 건립한 2층 규모의 전시관으로, 1층 역사실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의 기간에 걸쳐 빨치산이 형성된 배경과 빨치산 관련 사건 등을 보여주고, 2층 생활실, 산청과 지리산실, 소영상실에서는 지리산에서의 빨치산과 토벌부대 생활상과 지리산이 간직한 역사·자연경관 및 산청의 문화관광자원에 대해 전시하고 있다. 영상실에서는 빨치산 관련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상영한다. 당시 빨치산과 군경토벌대가 사용한 총기류와 의복·공민증·화폐·나침의 등의 압수품, 토벌 작전 모형, 다양한 사진자료와 설명자료를 갖추고 있다. 야외전시장에서는 움집과 바위 동굴 등 빨치산의 지리산 아지트 8개를 복원하여 인형 모형과 함께 설치하였고, 탱크·장갑차·포 등의 무기류와 다양한 조형물들을 전시하였다.
관광자원이 풍부한 지리산 지역의 등산과 관광을 병행할 수 있는 휴양림이다. 가족 단위의 휴양과 산림 내 휴식 공간의 최적지로 여름철에는 피서지로, 가을철에는 단풍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 겨울철에는 설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지리산 국립공원 구역과 가까이 있어 지리산 등산과 병행할 수 있으며, 중산리 계곡과 자연학습원, 법계사, 지리산 야영장, 경상남도 환경교육원 등과 인접하여 있어 휴양림을 이용한 후 연계관광코스로도 제격이다.
코스 구성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지리산 줄기가 힘차께 뻗어 내려오다가 멈춘 옥녀봉 아래 남향으로 자리한 단속사 절터에는 동.서의 삼층석탑과 주춧돌이 어지러이 놓인 가운데 매화나무 고목이 한 그루 서 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의 매화나무로서는 수령이 가장 오래된 정당매(政堂梅)이다. 인재 강희안(1419~1464)의《양화소록(養花小錄에)》에 보면 우리 선조 통정공께서 소년시절에 지리산 단속사에서 글공부를 하실 때에 손수 매화 한 그루를 뜰 앞에 심어놓고, 시 한 수를 읊었다고 씌여 있다. 여기서 인재가 말하는 선조는 고려 말기의 문신인 통정(通亭) 강회백(1357~1402)으로 우왕2년(1376)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점점 높아져서 정당문학(政堂文學, 중서성과 문하성의 종2품 벼슬)겸 대사헌에 이르렀다. 공양왕 4년(1392) 정몽주가 살해된 뒤 진양에 유배되었다가 조선 건국 후 태조 7년(1398) 동북면 도순문사(都巡問使)가 되었다. 그는 경남 산청 출신으로 강희안의 조부가 되며 통정이 소년시절 정당매를 심고 시를 읊었다. 통정집에 기록된 또 하나의 시는 그가 46세로 일생을 마치기 전에 손수 심은 정당매를 찾아와 읊은 시로써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커다란 감동과 감회를 느끼게 한다. 단속사의 스님들이 공의 재덕(才德)을 생각하고 깨끗한 풍채와 고매한 품격을 사모하여 그 매화를 보면 곧 공을 본 듯 하였다. 해마다 흙으로 뿌리를 다져주고 북돋아 기르기를 때를 맞춰 알맞게 하였다. 그 가지의 모양이 가까스로 굽고 또 푸른 이끼가 나무줄기를 감싼 것이 《매보(梅譜)》에서 말한 고매(古梅)와 다름이 없으니 참으로 영남의 한 고물이라 하겠다. 이로부터 영남에 나랏일로 오는 사람들이 이 고을에 오면 누구든지 단속사를 찾아서 그 매화를 감상하고 우리 선조의 시운에 맞춰 시를 써서 문 위에 걸어놓곤 하였다. 이와 같이 단속사의 스님들은 이 매화나무를 극진히 보살피게 되었고, 통정공의 후손들과 영남에 내려오게 된 관리들이 정당매를 찾게 되었다. 이 매화나무의 나이는 통정공이 소년시절 단속사에서 글을 읽을 때 심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가 이 절에서 공부한 시기를 20세 이전의 등과하기 전으로 본다면 대체로 1376년 이전에 식재된 것으로 볼 수 있어 그 수령은 630년이 넘었을 것으로 본다. 현재 정당매는 높이 8m에 둘레가 1.5m로서 근간에서 4본의 지간이 생겨 위로 혹은 옆으로 뻗었다. 꽃의 색깔은 백색이며 홑꽃이다. 3월 20일 전후이면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뜨려 맑은 향기를 퍼뜨린다. 후손들은 이 정당매를 기념하기 위하여 비각을 짓고 비를 세웠다. 매각(梅閣)은 1915년에 매비의 건립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정당매각(政堂梅閣)'이란 넉자로 된 현판이 걸려 있으며, 비각 안에는 매각을 세운 연유를 기록한 ‘정당매각기(政堂梅閣記)'와 통정공의 매화원운(梅花原韻)의 시와 후손들의 시 여러 편이 걸려 있다. 현재 이 정당매는 1982년 11월 10일자로 경상남도의 도나무(고유번호 12~41호)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유명한 유학자인 조식 선생의 유적지이다. 조식 선생은 많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냈다. 조식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院里)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년(1561)에 세웠고, 순조 18년(1818)에 고쳐졌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이다. 덕천서원은 선조 9년(1576)에 세웠고, 앞면 5칸, 옆면 2칸의 현재 건물은 1926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세심정은 선조 15년(1582)에 처음 세웠다. (출처 : 국가유산청)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중심으로 6·25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지리산에서 활동한 빨치산을 주제로 빨치산들의 생활상, 군경의 토벌 상황과 양민들의 고통을 생생한 자료를 통하여 전시하고 있는 역사 공간으로 빨치산의 실체와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산 교육장이다. 2001년 건립한 2층 규모의 전시관으로, 1층 역사실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의 기간에 걸쳐 빨치산이 형성된 배경과 빨치산 관련 사건 등을 보여주고, 2층 생활실, 산청과 지리산실, 소영상실에서는 지리산에서의 빨치산과 토벌부대 생활상과 지리산이 간직한 역사·자연경관 및 산청의 문화관광자원에 대해 전시하고 있다. 영상실에서는 빨치산 관련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상영한다. 당시 빨치산과 군경토벌대가 사용한 총기류와 의복·공민증·화폐·나침의 등의 압수품, 토벌 작전 모형, 다양한 사진자료와 설명자료를 갖추고 있다. 야외전시장에서는 움집과 바위 동굴 등 빨치산의 지리산 아지트 8개를 복원하여 인형 모형과 함께 설치하였고, 탱크·장갑차·포 등의 무기류와 다양한 조형물들을 전시하였다.
관광자원이 풍부한 지리산 지역의 등산과 관광을 병행할 수 있는 휴양림이다. 가족 단위의 휴양과 산림 내 휴식 공간의 최적지로 여름철에는 피서지로, 가을철에는 단풍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 겨울철에는 설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지리산 국립공원 구역과 가까이 있어 지리산 등산과 병행할 수 있으며, 중산리 계곡과 자연학습원, 법계사, 지리산 야영장, 경상남도 환경교육원 등과 인접하여 있어 휴양림을 이용한 후 연계관광코스로도 제격이다.
- 소요시간
- 6시간
- 코스거리
- 39.42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6시간
- 코스거리
- 39.42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