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성곽길을 따라 걷기
소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덕수궁까지 이어지는 이 구간은 한양도성 내 5대 궁궐 중 두 곳을 돌아볼 수 있는 코스로, 거리가 온통 노란 은행잎으로 물들 때 걷는 것이 제 맛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이러 퇴계 이황 선생의 집터를 들르는 것도 잊지 말자. 출처:이야기를 따라 한양 도성을 걷다.
코스 지도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여 시민들에게 개방된 광화문 광장은 600년 역사를 지닌 서울의 중심거리 세종로를 차량 중심의 거리에서 인간 중심의 공간으로 전환하고 경복궁과 북악산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하여 세종로의 옛 모습인 육조거리 복원을 통한 역사·문화 체험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초입 구간인 ‘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에는 월대를 재현하고 해태 상을 복원하였으며 세종로 공원 주변 구간인 ‘육조거리의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에는 과거 한양의 중심거리였던 육조거리의 흔적을 재현하고 이를 형상화한 축소모형도 설치하였다.
사적으로 지정된 경희궁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이궁이다. 1617년(광해군 9)부터 짓기 시작하여 1623년(광해군 15)에 완성되었다. 경희궁의 처음 명칭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같은 발음이라 하여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바뀌었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西闕)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東闕)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이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탄 후 대원군이 중건하기 전까지는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이 되었고 서궐인 이곳 경희궁이 이궁으로 사용되었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이곳 경희궁을 이궁으로 사용하였는데,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다. 1820년대 무렵에 제작되었다고 추정하는 『서궐도안』을 보면 그 규모와 구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에 있던 건물의 상당수를 옮겨갔으며 특히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경희궁은 본격적인 수난을 맞이했다. 1910년 일본인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숭정전 등 경희궁에 남아있던 중요한 전각들이 대부분 훼손되었고 그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되었다. 이로 인해 경희궁은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으나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연구를 통해 숭정전 일곽과 몇몇 전각들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서소문본관)은 시대와 미술의 변화에 부응하고 서로를 채우며 성장해 가는 네트워크 미술관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자리 잡은 서울시립미술관은 1920년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옛 대법원 건물을 전면부만 그대로 보존한 채 신축하였다. 로비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서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2층에서 3층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을 통해 건물의 전면부와 유리로 이어지는 실내공간의 독특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충분한 자연광이 들어오는 밝은 실내는 관람객들의 촬영 장소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총 6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1층 전시실의 경우 가장 큰 전시실이며 2층에는 상설전시실인 천경자 컬렉션 전시실과 가나 아트 컬렉션 전시실이 있다. 지하에는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교육실과 강당 세마홀이 자리하고 있다. 미술 도서를 수집·정리하여 열람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술 전문 자료실인 도서자료실도 갖추고 있으며, 예술 서점, 카페 등의 편의시설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정동극장, 정동제일교회가 있는 고전미 넘치는 장소를 품은 정동길 옆에 있어 미술관 관람의 여운을 이어갈 수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경교장은 해방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공간이자,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역사적 현장이다. 서울시는 경교장을 복원하고 내부를 전시공간으로 조성하여 2013년 3월 2일부터 공개해 서울 시민에게 우리 근현대사를 알리는 소중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교장 복원공사는 1949년 백범 김구 서거 이후 오랜 기간 대사관 및 병원시설로 사용되면서 변형된 내부 공간을 철거하고 이 과정에서 옛 모습이 잘 남아있는 부분은 최대한 원형을 살렸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조선과 건축> (1938년 8월호)에 수록되어 있는 경교장 도면을 근거로 하여 복원하였다. 복원된 경교장은 서울역사박물관의 분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유물과 영상, 키오스크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덕수궁은 1897년에 선포된 황제국,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옛 이름은 경운궁이다. 덕수궁은 원래 조선 제 9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고, 그 후에도 월산대군의 후손이 살던 곳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도성의 궁들이 모두 소실되자 1593년(선조 26)부터 임시 궁궐로 사용하여 정릉동 행궁(貞陵洞 行宮)이라 불렸다. 이후 1611년(광해군 3) 경운궁(慶運宮)으로 이름이 정해지면서 정식 궁궐이 되었다가, 창덕궁이 중건되면서 다시 별궁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1897년(광무 1)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황궁에 맞게 규모를 확장하고 격식을 높였으며, 궁궐 내 서양식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전통 건축물과 서양식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1904년(광무 8) 대화재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고, 1907년 일제에 의해 고종이 황위에서 물러나자 궁의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덕수궁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었다. 동시에 공원화가 진행되어 궁궐로서의 면모를 잃게 되었다. 1946~47년에는 덕수궁 석조전에서 제1·2차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후 덕수궁의 복원이 꾸준히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코스 구성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여 시민들에게 개방된 광화문 광장은 600년 역사를 지닌 서울의 중심거리 세종로를 차량 중심의 거리에서 인간 중심의 공간으로 전환하고 경복궁과 북악산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하여 세종로의 옛 모습인 육조거리 복원을 통한 역사·문화 체험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초입 구간인 ‘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에는 월대를 재현하고 해태 상을 복원하였으며 세종로 공원 주변 구간인 ‘육조거리의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에는 과거 한양의 중심거리였던 육조거리의 흔적을 재현하고 이를 형상화한 축소모형도 설치하였다.
사적으로 지정된 경희궁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이궁이다. 1617년(광해군 9)부터 짓기 시작하여 1623년(광해군 15)에 완성되었다. 경희궁의 처음 명칭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같은 발음이라 하여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바뀌었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西闕)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東闕)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이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탄 후 대원군이 중건하기 전까지는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이 되었고 서궐인 이곳 경희궁이 이궁으로 사용되었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이곳 경희궁을 이궁으로 사용하였는데,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다. 1820년대 무렵에 제작되었다고 추정하는 『서궐도안』을 보면 그 규모와 구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에 있던 건물의 상당수를 옮겨갔으며 특히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경희궁은 본격적인 수난을 맞이했다. 1910년 일본인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숭정전 등 경희궁에 남아있던 중요한 전각들이 대부분 훼손되었고 그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되었다. 이로 인해 경희궁은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으나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연구를 통해 숭정전 일곽과 몇몇 전각들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서소문본관)은 시대와 미술의 변화에 부응하고 서로를 채우며 성장해 가는 네트워크 미술관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자리 잡은 서울시립미술관은 1920년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옛 대법원 건물을 전면부만 그대로 보존한 채 신축하였다. 로비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서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2층에서 3층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을 통해 건물의 전면부와 유리로 이어지는 실내공간의 독특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충분한 자연광이 들어오는 밝은 실내는 관람객들의 촬영 장소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총 6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1층 전시실의 경우 가장 큰 전시실이며 2층에는 상설전시실인 천경자 컬렉션 전시실과 가나 아트 컬렉션 전시실이 있다. 지하에는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교육실과 강당 세마홀이 자리하고 있다. 미술 도서를 수집·정리하여 열람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술 전문 자료실인 도서자료실도 갖추고 있으며, 예술 서점, 카페 등의 편의시설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정동극장, 정동제일교회가 있는 고전미 넘치는 장소를 품은 정동길 옆에 있어 미술관 관람의 여운을 이어갈 수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경교장은 해방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공간이자,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역사적 현장이다. 서울시는 경교장을 복원하고 내부를 전시공간으로 조성하여 2013년 3월 2일부터 공개해 서울 시민에게 우리 근현대사를 알리는 소중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교장 복원공사는 1949년 백범 김구 서거 이후 오랜 기간 대사관 및 병원시설로 사용되면서 변형된 내부 공간을 철거하고 이 과정에서 옛 모습이 잘 남아있는 부분은 최대한 원형을 살렸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조선과 건축> (1938년 8월호)에 수록되어 있는 경교장 도면을 근거로 하여 복원하였다. 복원된 경교장은 서울역사박물관의 분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유물과 영상, 키오스크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덕수궁은 1897년에 선포된 황제국,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옛 이름은 경운궁이다. 덕수궁은 원래 조선 제 9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고, 그 후에도 월산대군의 후손이 살던 곳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도성의 궁들이 모두 소실되자 1593년(선조 26)부터 임시 궁궐로 사용하여 정릉동 행궁(貞陵洞 行宮)이라 불렸다. 이후 1611년(광해군 3) 경운궁(慶運宮)으로 이름이 정해지면서 정식 궁궐이 되었다가, 창덕궁이 중건되면서 다시 별궁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1897년(광무 1)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황궁에 맞게 규모를 확장하고 격식을 높였으며, 궁궐 내 서양식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전통 건축물과 서양식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1904년(광무 8) 대화재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고, 1907년 일제에 의해 고종이 황위에서 물러나자 궁의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덕수궁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었다. 동시에 공원화가 진행되어 궁궐로서의 면모를 잃게 되었다. 1946~47년에는 덕수궁 석조전에서 제1·2차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후 덕수궁의 복원이 꾸준히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 소요시간
- 3시간
- 코스거리
- 2.89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3시간
- 코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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