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숲 강남 속에서 찾은 힐링
소개
서울 강남 한복판 선릉에는 조용한 숲이 하나 있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선릉과 정릉에는 고요함과 힐링이 있다. 봉은사의 넓은 앞마당과 불전도 강남의 삭막함 속에 잠깐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다음은 세련된 가로수길에서의 감각적인 도시를 즐겨보자.
코스 지도
선릉(宣陵)은 조선 9대 성종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 윤씨의 왕릉이다. 선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성종, 오른쪽 언덕(동쪽)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선릉은 1494년 성종이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인 1495년 광주 학당리인 현재의 자리에 조성하였다. 원래 이 자리는 4대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묘역이 있던 자리였으나, 선릉이 조성되면서 광평대군묘역은 현 강남구 수서동으로 옮겼다. 이후 1530년 정현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선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선릉은 정릉과 함께 1592년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능을 파헤쳐 재궁(梓宮)까지 불에 타는 피해를 당하여 1593년 7월에 다시 장례를 치렀다. 정릉(靖陵)은 조선 11대 중종의 왕릉이다. 중종은 1544년에 세상을 떠나 다음 해인 1545년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서쪽 언덕(현 고양 서삼릉 내 철종의 예릉 자리)에 능을 조성하고 능의 이름을 희릉과 함께 정릉이라 하였다. 그러나 정릉은 1562년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에 의해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문정왕후는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보우와 논의하여 중종의 능을 이곳으로 옮겼는데, 이는 문정왕후 본인이 중종의 묻히기를 원해서였다. 그러나 옮긴 정릉이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침수되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문정왕후는 세상을 떠난 후 정릉이 아닌 현재 서울 노원구 태릉에 묻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중종과 세 왕비(단경왕후, 장경왕후, 문정왕후)의 능은 모두 따로 흩어지게 되었다. 정릉은 선릉과 마찬가지로 1592년 임진왜란 때 능이 파헤쳐져 재궁(梓宮)이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고, 1593년 8월에 다시 장례를 치렀다.
봉은사는 서울의 중심지인 강남구 삼성동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이다. 794년 연화국사가 창건하였고 처음엔 견성사라고 하였다. 이후 1498년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가 성종의 능(선릉) 동편에 있던 이 절을 크게 중창하고 절 이름을 봉은사로 바꿨다. 조선조에는 조계종을 대표하는 선종 수사찰로, 근대에는 역경사업과 도제를 양성했던 동국역경원이 세워진 터전이다. 오늘날 봉은사는 수행 중심의 사찰 운영으로 새로운 불교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템플스테이를 비롯한 불교대학, 경전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외적으로 양질의 한국불교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복지 또한 실현하는 도심 대찰의 위상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 가로수길은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번화가로 주로 신사동 가로수길이라고 불린다. 현대 고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신사역 동쪽 도산대로와 삼거리까지 뻗은 도로를 이르며 서울 강남구 대표 상권 중 한 곳이다. 신사동 가로수길 주위로는 아기자기한 커피숍과 맛집, 디자이너들의 옷 매장들이 즐비해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과거 가로수길에는 갤러리와 영화사가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패션 중심으로 상권이 재구성되었다. 명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와 디자이너 매장과 다양한 뷰티 브랜드의 매장 또한 입점해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패션·뷰티 팝업 스토어들이 열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서울의 대표적 상업거리이다.
코스 구성
선릉(宣陵)은 조선 9대 성종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 윤씨의 왕릉이다. 선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성종, 오른쪽 언덕(동쪽)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선릉은 1494년 성종이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인 1495년 광주 학당리인 현재의 자리에 조성하였다. 원래 이 자리는 4대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묘역이 있던 자리였으나, 선릉이 조성되면서 광평대군묘역은 현 강남구 수서동으로 옮겼다. 이후 1530년 정현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선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선릉은 정릉과 함께 1592년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능을 파헤쳐 재궁(梓宮)까지 불에 타는 피해를 당하여 1593년 7월에 다시 장례를 치렀다. 정릉(靖陵)은 조선 11대 중종의 왕릉이다. 중종은 1544년에 세상을 떠나 다음 해인 1545년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서쪽 언덕(현 고양 서삼릉 내 철종의 예릉 자리)에 능을 조성하고 능의 이름을 희릉과 함께 정릉이라 하였다. 그러나 정릉은 1562년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에 의해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문정왕후는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보우와 논의하여 중종의 능을 이곳으로 옮겼는데, 이는 문정왕후 본인이 중종의 묻히기를 원해서였다. 그러나 옮긴 정릉이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침수되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문정왕후는 세상을 떠난 후 정릉이 아닌 현재 서울 노원구 태릉에 묻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중종과 세 왕비(단경왕후, 장경왕후, 문정왕후)의 능은 모두 따로 흩어지게 되었다. 정릉은 선릉과 마찬가지로 1592년 임진왜란 때 능이 파헤쳐져 재궁(梓宮)이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고, 1593년 8월에 다시 장례를 치렀다.
봉은사는 서울의 중심지인 강남구 삼성동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이다. 794년 연화국사가 창건하였고 처음엔 견성사라고 하였다. 이후 1498년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가 성종의 능(선릉) 동편에 있던 이 절을 크게 중창하고 절 이름을 봉은사로 바꿨다. 조선조에는 조계종을 대표하는 선종 수사찰로, 근대에는 역경사업과 도제를 양성했던 동국역경원이 세워진 터전이다. 오늘날 봉은사는 수행 중심의 사찰 운영으로 새로운 불교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템플스테이를 비롯한 불교대학, 경전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외적으로 양질의 한국불교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복지 또한 실현하는 도심 대찰의 위상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 가로수길은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번화가로 주로 신사동 가로수길이라고 불린다. 현대 고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신사역 동쪽 도산대로와 삼거리까지 뻗은 도로를 이르며 서울 강남구 대표 상권 중 한 곳이다. 신사동 가로수길 주위로는 아기자기한 커피숍과 맛집, 디자이너들의 옷 매장들이 즐비해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과거 가로수길에는 갤러리와 영화사가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패션 중심으로 상권이 재구성되었다. 명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와 디자이너 매장과 다양한 뷰티 브랜드의 매장 또한 입점해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패션·뷰티 팝업 스토어들이 열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서울의 대표적 상업거리이다.
- 소요시간
- 7시간
- 코스거리
- 37.12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7시간
- 코스거리
- 37.12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