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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고장에서 만나는 문인의 향기

소개

영양은 시인 조지훈과 소설 이문열, 오일도 등 문인을 배출한 문학의 고장이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태어난 주실마을, 재령 이씨의 집성촌이자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인 두들마을은 문학 뿐 아니라 마을의 역사와 풍경도 수려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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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길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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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양 두들마을
영양 두들마을

두들마을은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1640년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을 피해서 들어와 개척한 이후 그의 후손인 재령 이 씨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조선시대 1899년에는 이곳에 국립 병원격인 광제원이 있었다 하여 ‘원두들, 원리’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에는 석계 선생이 살았던 석계고택과 석계 선생이 학생들을 가르쳤던 석천서당을 포함하여 전통가옥 30여 채를 비롯하여 한글 최초의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쓴 정부인 장 씨를 기리는 안동 장 씨 유적비, 이문열이 세운 광산문학연구소 등이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화매천을 둘러친 절벽 바위에는 석계 선생의 넷째 아들인 이숭일이 새겨 놓은 동대, 서대, 낙기대, 세심대 등 유묵도 뚜렷하게 보인다. 1994년 정부로부터 문화마을로 지정되었다.

2 영양 주실마을
영양 주실마을

* 조지훈의 주실마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 속하는 주실 마을은 북쪽으로 일월산이 있고, 서쪽에는 청기면, 동쪽은 수비면, 남쪽은 영양읍과 맞닿아 있다. 조지훈이 태어난 주실 마을은 전통마을이면서도 실학자들과의 교류와 개화 개혁으로 이어진 진취적인 문화를 간직한 매우 유서 깊은 마을이기도 하다. 주실 마을에는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 경상북도 기념물) 이 마을 한복판에 널찍이 자리 잡고 있고, 옥천종택(玉川宗宅:경상북도 민속자료), 월록서당 등 숱한 문화자원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 조지훈 생가 시인이며 국문학자인 조지훈(1920∼1968)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조지훈은 경상북도 영양 출신으로 본명은 동탁(東卓)이다. 선생은 박목월·박두진과 공동으로 간행한 청록 집의 시편들에서 주로 민족사의 맥락과 고전미 세계에 대한 찬양과 선(禪) 세계를 노래하였는데, 유교 도덕주의의 격조 높은 자연 인식을 보인다는 점에서 시문학 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가옥은 몸체와 관리사로 나뉘어 있으며 몸체는 앞면 7칸·옆면 7칸 규모에 ㅁ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고, 전형적인 영남 북부지방 양반가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대문과 중문에는 태극기를 조각하여 채색한 것을 끼워두었고 집 주위는 고풍스러운 담을 둘렀다. 이 집은 이 지방 주택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조선 중기 인조(재위 1623∼1649) 때에 조정형이 지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일부 불탄 것을 1963년 복구하였다. 이곳은 조지훈 선생 외에 한말의 의병장이었던 조승기 선생과 선생의 조부인 조인석 선생 등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분들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 주곡동 옥천종택 한양 조 씨 옥천 조덕린 선생의 옛집으로 살림채인 정침과 글 읽는 별당인 초당, 가묘인 사당으로 구성된 17세기말 양반 주택의 대표적인 예이다. 살림채는 안동지방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ㅁ자 집의 평면구성을 하고 있다. 앞면 5칸의 가운데에 대문을 달고 왼쪽에 안사랑방을 두고 있다. 오른쪽에는 마구간을 고친 온돌방이 있고 부엌·고방이 있다. 살림채의 몸채는 양옆에 꺾여서 위치하는 부분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안마당을 향하여 개방된 6칸 대청이 있다. 대청의 오른쪽부터 도장방·안방이 접해 있고, 안방을 마루 쪽으로 1칸 더 내어 2칸으로 꾸몄다. 경상북도에 분포되어 있는 ㅁ자집 중에 대청과 안방의 윗머리에 도장방이 놓여있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이곳처럼 도장방의 바닥이 온돌이 아닌 마루로 깔려있는 예는 흔하지 않다. 초당은 조선 숙종 21년(1695)에 지은 것으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거나 노인이 머무는 곳이다. 이 지역의 전형적인 평면구성을 보이며 있으며, 정조 14년(1790)에 지은 건물로 가운데 칸이 좀 넓다. 안채의 오른편 뒤쪽에 배치되어 있으며 담장을 두르고 있다. 안동지방의 전형적인 평면구성을 보이고 있으나 안방이 동쪽으로 오고 사랑방이 서쪽으로 배치된 점이 다르다. 이러한 형식은 18세기부터 안방과 부엌이 서쪽으로 배치되는 평면구성으로 통일된다. * 월록서당 후학들을 교육하고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월하 조운도(1718∼1796) 선생이 의견을 내고 한양 조 씨·야성 정 씨·함양 오 씨가 주축이 되어 조선 영조 49년(1773)에 지었다고 한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를 가진 한 일자형 건물로 전망이 좋고 한적하여 공부하기 좋은 곳이다. 가운데 2칸은 마루를 만들어 대청으로 꾸몄고 양쪽은 방을 만들어 놓았는데 오른쪽은 ‘극복재(克復齋)’, 왼쪽에는 ‘존성재(存省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간직한 건물이다.

3 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
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

남부지방산림청은 인위적인 벌채와 환경적인 여건 변화로 쇠퇴되어가고 있는 금강소나무숲을 조선후기의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하여 울진 소광리, 영양 본신리, 봉화 고선·대현리 등 3개소에 [에코투어가 이끄는 금강소나무 생태경영림]을 조성하였다. 이곳 수비면 본신리 일대(1,839ha)의 금강 소나무림은 우리 주위의 꼬불꼬불한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가 곧고 마디가 길고 껍질이 유별나게 붉은 소나무 중 최고의 나무로 꼽히는 금강소나무(金剛松)가 자라고 있다. 이외에도 27종의 미적 가치가 뛰어난 나무들이 즐비하여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작은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면 자연과 하나 되어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1.5㎞(2시간 코스), 4㎞(4시간 코스) 생태 탐방로를 조성하여 자연생태계를 체험하게 한다.

코스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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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마을은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1640년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을 피해서 들어와 개척한 이후 그의 후손인 재령 이 씨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조선시대 1899년에는 이곳에 국립 병원격인 광제원이 있었다 하여 ‘원두들, 원리’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에는 석계 선생이 살았던 석계고택과 석계 선생이 학생들을 가르쳤던 석천서당을 포함하여 전통가옥 30여 채를 비롯하여 한글 최초의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쓴 정부인 장 씨를 기리는 안동 장 씨 유적비, 이문열이 세운 광산문학연구소 등이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화매천을 둘러친 절벽 바위에는 석계 선생의 넷째 아들인 이숭일이 새겨 놓은 동대, 서대, 낙기대, 세심대 등 유묵도 뚜렷하게 보인다. 1994년 정부로부터 문화마을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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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훈의 주실마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 속하는 주실 마을은 북쪽으로 일월산이 있고, 서쪽에는 청기면, 동쪽은 수비면, 남쪽은 영양읍과 맞닿아 있다. 조지훈이 태어난 주실 마을은 전통마을이면서도 실학자들과의 교류와 개화 개혁으로 이어진 진취적인 문화를 간직한 매우 유서 깊은 마을이기도 하다. 주실 마을에는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 경상북도 기념물) 이 마을 한복판에 널찍이 자리 잡고 있고, 옥천종택(玉川宗宅:경상북도 민속자료), 월록서당 등 숱한 문화자원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 조지훈 생가 시인이며 국문학자인 조지훈(1920∼1968)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조지훈은 경상북도 영양 출신으로 본명은 동탁(東卓)이다. 선생은 박목월·박두진과 공동으로 간행한 청록 집의 시편들에서 주로 민족사의 맥락과 고전미 세계에 대한 찬양과 선(禪) 세계를 노래하였는데, 유교 도덕주의의 격조 높은 자연 인식을 보인다는 점에서 시문학 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가옥은 몸체와 관리사로 나뉘어 있으며 몸체는 앞면 7칸·옆면 7칸 규모에 ㅁ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고, 전형적인 영남 북부지방 양반가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대문과 중문에는 태극기를 조각하여 채색한 것을 끼워두었고 집 주위는 고풍스러운 담을 둘렀다. 이 집은 이 지방 주택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조선 중기 인조(재위 1623∼1649) 때에 조정형이 지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일부 불탄 것을 1963년 복구하였다. 이곳은 조지훈 선생 외에 한말의 의병장이었던 조승기 선생과 선생의 조부인 조인석 선생 등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분들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 주곡동 옥천종택 한양 조 씨 옥천 조덕린 선생의 옛집으로 살림채인 정침과 글 읽는 별당인 초당, 가묘인 사당으로 구성된 17세기말 양반 주택의 대표적인 예이다. 살림채는 안동지방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ㅁ자 집의 평면구성을 하고 있다. 앞면 5칸의 가운데에 대문을 달고 왼쪽에 안사랑방을 두고 있다. 오른쪽에는 마구간을 고친 온돌방이 있고 부엌·고방이 있다. 살림채의 몸채는 양옆에 꺾여서 위치하는 부분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안마당을 향하여 개방된 6칸 대청이 있다. 대청의 오른쪽부터 도장방·안방이 접해 있고, 안방을 마루 쪽으로 1칸 더 내어 2칸으로 꾸몄다. 경상북도에 분포되어 있는 ㅁ자집 중에 대청과 안방의 윗머리에 도장방이 놓여있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이곳처럼 도장방의 바닥이 온돌이 아닌 마루로 깔려있는 예는 흔하지 않다. 초당은 조선 숙종 21년(1695)에 지은 것으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거나 노인이 머무는 곳이다. 이 지역의 전형적인 평면구성을 보이며 있으며, 정조 14년(1790)에 지은 건물로 가운데 칸이 좀 넓다. 안채의 오른편 뒤쪽에 배치되어 있으며 담장을 두르고 있다. 안동지방의 전형적인 평면구성을 보이고 있으나 안방이 동쪽으로 오고 사랑방이 서쪽으로 배치된 점이 다르다. 이러한 형식은 18세기부터 안방과 부엌이 서쪽으로 배치되는 평면구성으로 통일된다. * 월록서당 후학들을 교육하고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월하 조운도(1718∼1796) 선생이 의견을 내고 한양 조 씨·야성 정 씨·함양 오 씨가 주축이 되어 조선 영조 49년(1773)에 지었다고 한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를 가진 한 일자형 건물로 전망이 좋고 한적하여 공부하기 좋은 곳이다. 가운데 2칸은 마루를 만들어 대청으로 꾸몄고 양쪽은 방을 만들어 놓았는데 오른쪽은 ‘극복재(克復齋)’, 왼쪽에는 ‘존성재(存省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간직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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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방산림청은 인위적인 벌채와 환경적인 여건 변화로 쇠퇴되어가고 있는 금강소나무숲을 조선후기의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하여 울진 소광리, 영양 본신리, 봉화 고선·대현리 등 3개소에 [에코투어가 이끄는 금강소나무 생태경영림]을 조성하였다. 이곳 수비면 본신리 일대(1,839ha)의 금강 소나무림은 우리 주위의 꼬불꼬불한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가 곧고 마디가 길고 껍질이 유별나게 붉은 소나무 중 최고의 나무로 꼽히는 금강소나무(金剛松)가 자라고 있다. 이외에도 27종의 미적 가치가 뛰어난 나무들이 즐비하여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작은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면 자연과 하나 되어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1.5㎞(2시간 코스), 4㎞(4시간 코스) 생태 탐방로를 조성하여 자연생태계를 체험하게 한다.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7시간
코스거리
53.4km
테마
자유여행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