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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코스

단종 유배를 따라가는 여행

소개

수양대군에 의해 상왕으로 물러난 단종은 단종복위운동으로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청령포로 유배를 가게 된다. 주천을 지나 군등치, 배일치를 지나 청령포에 이르는 길은 단종의 슬픔과 안타까움이 그대로 녹아 있는 여정이다. 선돌을 지나 만나는 장릉부터 영월 읍내의 관풍헌, 자력루, 유배지였던 청령포까지 둘러보는 여정이 애잔하면서도 스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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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남면 영월로 1472

코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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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돌 (강원고생대 국가지질공원)
선돌 (강원고생대 국가지질공원)

선돌에 가면 거대한 기암괴석이 ㄱ자로 굽은 강줄기와 함께 나타난다. 선돌은 일명 신선암이라고도 하는데 선돌은 푸른 강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마치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선돌은 영월읍 방절리 서강 안에 절벽을 이룬 곳에 위치해있는데 마치 큰 칼로 절벽을 쪼개 내리다 그친 듯한 형상을 이룬 입석을 말한다. 선돌은 기반암인 석회암이 물에 의한 용식작용으로 절리틈이 녹아서 형성된 지형으로 추측되고 있다. (출처 : 강원고생대 국가지질공원)

2 영월 장릉(단종) [유네스코 세계유산]
영월 장릉(단종) [유네스코 세계유산]

장릉은 조선 6대 단종(재위 1452~1455)의 능이다. 단종이 1457년(세조 3) 노산군(魯山君)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가 단종의 시신을 몰래 거두어 현재의 자리에 가매장하였다. 이후 1516년(중종 11) 묘를 찾아 봉분을 만들었고, 1580년(선조 13)에 석물을 세운 후 제사를 지냈다. 1698년(숙종 24) 단종으로 왕의 신분이 회복되어 능의 이름을 장릉이라 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조성하였다. 장릉은 일반적인 조선왕릉과 다르게 단종의 충신들을 위한 건조물이 있다. 장릉 입구에는 노산군묘을 찾아 제사를 올린 영월군수 박충원(朴忠元)의 뜻을 기린 낙촌비각(駱村碑閣), 재실 옆에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묘를 만든 엄흥도의 정려각(旌閭閣),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종친, 충신, 환관, 궁녀, 노비 등 268명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藏版屋)과 이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배식단(配食壇)이 있다.

3 보덕사(영월)
보덕사(영월)

보덕사는 신라 문무왕 8년(668) 의상조사가 ‘지덕사’라는 이름으로 세운 절이다. 1161년(의종 15)에 운허가 중창하였고, 그 뒤 원경국사가 극락보전, 염불당, 고법당, 침운루 등을 중건하였다. 1457년(세조 3)에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자 사찰 명을 ‘노릉사(魯陵寺)’로 개칭했다. 1705년(숙종 31)에는 한의와 천밀이 대금당을 건립하였다. 그 뒤 단종의 능인 장릉(사적)의 원찰로 지정되면서 영조 2년(1726)에 보덕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퇴락한 대현전, 목우실, 산신각·심검당, 칠성각, 사성각, 객방 등이 있다. 이중 극락보전은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 있는 극락보전은 조선 후기의 양식을 갖추고 있는 건축물이다. 이 극락보전 안에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영월 보덕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본존 아미타불상의 좌우에 관음, 대세지보살상을 협시로 삼존상을 이루고 있는데,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원문을 통해서 조선 숙종 13년인 강희 26년(1687)에 탁밀비구가 수화승을 맡아 조성한 불상임이 밝혀졌다. 보덕사의 해우소는 여느 화장실과 다르다. 해우소는 ‘근심을 해결하는 장소’라는 뜻의 사찰에서 화장실을 이르는 말이다. 전통적 형식을 지닌 보덕사 해우소는 앞뒤 2열로 나누어 각각 6칸씩의 대변소를 배치하여 남녀의 사용을 구분하면서 12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상량문을 통해 조선 고종 19년(1882)에 세운 건물임을 알 수 있는 이 해우소는 세워진 지 오래되었음에도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2026년 9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4 자규루 및 관풍헌
자규루 및 관풍헌

관풍헌은 조선시대 지방의 업무를 처리하던 관청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과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는 조계종 보덕사에서 포교당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약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규루라는 누각이 있다. 자규루는 단종(재위 1452∼1455)이 세조(재위 1455∼1468)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을 때 잠시 지내던 곳이다. 단종은 이 누각에 자주 올라가 자규시를 지었다고 한다. 자규란 피를 토하면서 구슬피 운다고 하는 소쩍새를 가리키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견주어 지은 것이다. 원래는 세종 10년(1428) 군수 신권근에 의해 지어져 ‘매죽루’라 불렸으나 단종의 자규시가 너무 슬퍼 누각이름을 매죽루에서 자규루로 바꿨다고 한다. 그 후 많이 퇴락해 민가가 들어섰는데, 정조 15년(1791)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이 이곳을 돌아다니다 그 터를 찾아 복원하였다. (출처 : 국가유산청)

5 영월 청령포
영월 청령포

청령포는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있는 이곳은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단종이 머무르던 곳이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그다음 해인 1456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봉 되었다. 이후 첨지 중추원사 어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으며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 생활을 했고,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출처 : 영월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코스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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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에 가면 거대한 기암괴석이 ㄱ자로 굽은 강줄기와 함께 나타난다. 선돌은 일명 신선암이라고도 하는데 선돌은 푸른 강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마치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선돌은 영월읍 방절리 서강 안에 절벽을 이룬 곳에 위치해있는데 마치 큰 칼로 절벽을 쪼개 내리다 그친 듯한 형상을 이룬 입석을 말한다. 선돌은 기반암인 석회암이 물에 의한 용식작용으로 절리틈이 녹아서 형성된 지형으로 추측되고 있다. (출처 : 강원고생대 국가지질공원)

2

장릉은 조선 6대 단종(재위 1452~1455)의 능이다. 단종이 1457년(세조 3) 노산군(魯山君)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가 단종의 시신을 몰래 거두어 현재의 자리에 가매장하였다. 이후 1516년(중종 11) 묘를 찾아 봉분을 만들었고, 1580년(선조 13)에 석물을 세운 후 제사를 지냈다. 1698년(숙종 24) 단종으로 왕의 신분이 회복되어 능의 이름을 장릉이라 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조성하였다. 장릉은 일반적인 조선왕릉과 다르게 단종의 충신들을 위한 건조물이 있다. 장릉 입구에는 노산군묘을 찾아 제사를 올린 영월군수 박충원(朴忠元)의 뜻을 기린 낙촌비각(駱村碑閣), 재실 옆에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묘를 만든 엄흥도의 정려각(旌閭閣),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종친, 충신, 환관, 궁녀, 노비 등 268명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藏版屋)과 이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배식단(配食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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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사는 신라 문무왕 8년(668) 의상조사가 ‘지덕사’라는 이름으로 세운 절이다. 1161년(의종 15)에 운허가 중창하였고, 그 뒤 원경국사가 극락보전, 염불당, 고법당, 침운루 등을 중건하였다. 1457년(세조 3)에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자 사찰 명을 ‘노릉사(魯陵寺)’로 개칭했다. 1705년(숙종 31)에는 한의와 천밀이 대금당을 건립하였다. 그 뒤 단종의 능인 장릉(사적)의 원찰로 지정되면서 영조 2년(1726)에 보덕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퇴락한 대현전, 목우실, 산신각·심검당, 칠성각, 사성각, 객방 등이 있다. 이중 극락보전은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 있는 극락보전은 조선 후기의 양식을 갖추고 있는 건축물이다. 이 극락보전 안에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영월 보덕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본존 아미타불상의 좌우에 관음, 대세지보살상을 협시로 삼존상을 이루고 있는데,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원문을 통해서 조선 숙종 13년인 강희 26년(1687)에 탁밀비구가 수화승을 맡아 조성한 불상임이 밝혀졌다. 보덕사의 해우소는 여느 화장실과 다르다. 해우소는 ‘근심을 해결하는 장소’라는 뜻의 사찰에서 화장실을 이르는 말이다. 전통적 형식을 지닌 보덕사 해우소는 앞뒤 2열로 나누어 각각 6칸씩의 대변소를 배치하여 남녀의 사용을 구분하면서 12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상량문을 통해 조선 고종 19년(1882)에 세운 건물임을 알 수 있는 이 해우소는 세워진 지 오래되었음에도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2026년 9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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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풍헌은 조선시대 지방의 업무를 처리하던 관청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과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는 조계종 보덕사에서 포교당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약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규루라는 누각이 있다. 자규루는 단종(재위 1452∼1455)이 세조(재위 1455∼1468)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을 때 잠시 지내던 곳이다. 단종은 이 누각에 자주 올라가 자규시를 지었다고 한다. 자규란 피를 토하면서 구슬피 운다고 하는 소쩍새를 가리키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견주어 지은 것이다. 원래는 세종 10년(1428) 군수 신권근에 의해 지어져 ‘매죽루’라 불렸으나 단종의 자규시가 너무 슬퍼 누각이름을 매죽루에서 자규루로 바꿨다고 한다. 그 후 많이 퇴락해 민가가 들어섰는데, 정조 15년(1791)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이 이곳을 돌아다니다 그 터를 찾아 복원하였다. (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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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는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있는 이곳은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단종이 머무르던 곳이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그다음 해인 1456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봉 되었다. 이후 첨지 중추원사 어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으며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 생활을 했고,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출처 : 영월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5시간
코스거리
8.5km
테마
자유여행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