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까마귀가 살고 있는 금오산을 올라보자
소개
금오산은 아도화상이 저녁노을 속에 황금빛 까마귀가 날아가는 모습에서 유래한 산이다. 해발 976m의 산으로서 아름다움 뿐 아니라 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채미정, 임진왜란 때 정기룡장군이 지켜낸 금오산성, 도선 국사가 수도한 것으로 알려진 도선굴, 금오산 정상 아래에 위치한 약사암과 마애보살입상까지 유구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메타세퀘이아길을 지나 금빛까마귀를 만나러 금오산으로 떠나보자.
코스 지도
고려 말 학자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1768년 영조 44년에 세운 정자이다. 길재는 고려가 멸망한 뒤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은거하여 절의를 지켰다. 채미라는 이름은 중국의 충신 백이와 숙제가 고사리를 캐며 충절을 지킨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계류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 흥기문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팔작지붕 정자가 자리하고 왼쪽에는 구인재가 마주한다. 뒤편에는 숙종이 길재의 충절을 기려 지은 글을 보관한 경모각과 유허비각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정자 중앙에는 온돌방을 두고 사방에 우물마루를 놓았으며, 문을 들어 올리면 내부가 넓은 마루처럼 이어진다. 영남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평면 구조와 금오산 계곡, 숲이 어우러져 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운 경관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도립공원 내에 있는 해발 976m의 험준한 금오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금오산성을 처음 쌓은 연대가 문헌상에 있지 않아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고려 후기 왜구들이 내륙 깊숙이까지 빈번히 쳐들어와 인명을 살상하고 노략질을 일삼자, 인근 선산, 인동, 개령, 성주 백성들이 금오산에 피난하여 왜구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쌓고 군병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이곳에 군량과 무기를 비축하는 군창까지 두었다고 한다. 내성은 정상부에 테를 두른 모양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10리나 되며 험한 절벽에는 따로 성벽을 쌓지 않았다. 외성은 계곡을 감싼 둘레가 5리이며 내·외성벽의 길이는 6.3㎞나 된다. 조선 태종 10년(1410)에 국가적 계획으로 성을 크게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때 이 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이 인식되어 선조 28년(1596)에 다시 고쳐 쌓았다. 인조 17년(1639)에 외성을 쌓는 확장 공사가 시행되어 이중의 산성이 되었고, 고종 5년(1868)에 새로 고쳐 쌓았다. 기록에 의하면 성 안에 1개의 계곡과 여러 개의 연못, 우물이 있었으며 대혜창과 내성창이라는 창고, 군기고, 진남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내·외성의 문터, 적이 알 수 없게 만든 작은 성문인 암문의 형체, 건물 터들이 남아있다. 한편 성 안에는 고종 5년(1868) 무렵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금오산성 중 수송 공비가 성을 쓸쓸히 지키고 있다.
구미 금오산 중턱에 자리한 해운사는 구름도 쉬어간다는 이름처럼 산자락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 자리한 사찰이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대혈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오랫동안 폐사되었다가 1925년 철하 스님이 복원하면서 ‘해운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을 새로 짓고 불사를 이어오며 현재의 ‘해운사’에 이르렀다. 해운사 바로 위에는 금오산의 명소인 도선굴이 자리하고 있다. 고려 말 학자 길재가 해운사와 도선굴에 머물며 학문을 익혔다고 전해져 사찰과 함께 둘러볼 만하다. 또한 금오산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해운사 인근까지 이동할 수 있어 산길을 걸어 오르는 것보다 편하게 방문할 수 있다.
금오산은 소백산맥의 지맥에 솟은 산으로 1970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광시설이 갖추어졌으며, 산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져 기암절벽에 급경사가 많고, 산 아래에서 폭포까지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예로부터 영남 8경의 하나로 산 정상 부근에 약사암이 있고, 북쪽 중턱에 높이 38m의 명금폭포와 신라의 승려 도선이 세웠다는 해운사가 있다. 그 밖에 도선굴, 마애보살입상 등이 있다. 채미정을 지나 산으로 올라가는 어귀 위의 지점에서 해운사 옆까지 가설된 케이블카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데크와 계단 조성으로 가볍게 산책하기에도 좋고 케이블카 설치로 노약자도 접근하기 쉬운 산이며, 탐방코스도 잘 조성되어 있다.
약사암은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정상에 자리한 암자로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유적은 전하는 것이 없으며, 현존하는 당우도 모두 근세에 이루어진 것이다. 약사암의 중심 전각은 약사전인데 기암절벽 밑에 남향하여 건립되어 있으며 북쪽의 소봉상 아래도 남향한 요사 1동이 지어져 있다. 요사 좌측으로 300미터 지점의 바위에는 보살 입상이 선각되어 있다. 약사전 안에 봉안된 석조 약사여래 좌상은 수도산 수도암, 황악산 삼성암의 약사불과 함께 3형제 불상이라고 불리며, 세 불상이 함께 방광을 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이 절의 동쪽 암벽에는 약수가 용출하고 있는데, 옛날에는 이 구멍에서 쌀알이 하나씩 떨어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약사암은 옛날부터 참선 도량으로 유명해서 오늘날까지 수행승뿐만 아니라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코스 구성
고려 말 학자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1768년 영조 44년에 세운 정자이다. 길재는 고려가 멸망한 뒤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은거하여 절의를 지켰다. 채미라는 이름은 중국의 충신 백이와 숙제가 고사리를 캐며 충절을 지킨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계류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 흥기문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팔작지붕 정자가 자리하고 왼쪽에는 구인재가 마주한다. 뒤편에는 숙종이 길재의 충절을 기려 지은 글을 보관한 경모각과 유허비각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정자 중앙에는 온돌방을 두고 사방에 우물마루를 놓았으며, 문을 들어 올리면 내부가 넓은 마루처럼 이어진다. 영남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평면 구조와 금오산 계곡, 숲이 어우러져 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운 경관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도립공원 내에 있는 해발 976m의 험준한 금오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금오산성을 처음 쌓은 연대가 문헌상에 있지 않아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고려 후기 왜구들이 내륙 깊숙이까지 빈번히 쳐들어와 인명을 살상하고 노략질을 일삼자, 인근 선산, 인동, 개령, 성주 백성들이 금오산에 피난하여 왜구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쌓고 군병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이곳에 군량과 무기를 비축하는 군창까지 두었다고 한다. 내성은 정상부에 테를 두른 모양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10리나 되며 험한 절벽에는 따로 성벽을 쌓지 않았다. 외성은 계곡을 감싼 둘레가 5리이며 내·외성벽의 길이는 6.3㎞나 된다. 조선 태종 10년(1410)에 국가적 계획으로 성을 크게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때 이 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이 인식되어 선조 28년(1596)에 다시 고쳐 쌓았다. 인조 17년(1639)에 외성을 쌓는 확장 공사가 시행되어 이중의 산성이 되었고, 고종 5년(1868)에 새로 고쳐 쌓았다. 기록에 의하면 성 안에 1개의 계곡과 여러 개의 연못, 우물이 있었으며 대혜창과 내성창이라는 창고, 군기고, 진남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내·외성의 문터, 적이 알 수 없게 만든 작은 성문인 암문의 형체, 건물 터들이 남아있다. 한편 성 안에는 고종 5년(1868) 무렵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금오산성 중 수송 공비가 성을 쓸쓸히 지키고 있다.
구미 금오산 중턱에 자리한 해운사는 구름도 쉬어간다는 이름처럼 산자락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 자리한 사찰이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대혈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오랫동안 폐사되었다가 1925년 철하 스님이 복원하면서 ‘해운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을 새로 짓고 불사를 이어오며 현재의 ‘해운사’에 이르렀다. 해운사 바로 위에는 금오산의 명소인 도선굴이 자리하고 있다. 고려 말 학자 길재가 해운사와 도선굴에 머물며 학문을 익혔다고 전해져 사찰과 함께 둘러볼 만하다. 또한 금오산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해운사 인근까지 이동할 수 있어 산길을 걸어 오르는 것보다 편하게 방문할 수 있다.
금오산은 소백산맥의 지맥에 솟은 산으로 1970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광시설이 갖추어졌으며, 산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져 기암절벽에 급경사가 많고, 산 아래에서 폭포까지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예로부터 영남 8경의 하나로 산 정상 부근에 약사암이 있고, 북쪽 중턱에 높이 38m의 명금폭포와 신라의 승려 도선이 세웠다는 해운사가 있다. 그 밖에 도선굴, 마애보살입상 등이 있다. 채미정을 지나 산으로 올라가는 어귀 위의 지점에서 해운사 옆까지 가설된 케이블카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데크와 계단 조성으로 가볍게 산책하기에도 좋고 케이블카 설치로 노약자도 접근하기 쉬운 산이며, 탐방코스도 잘 조성되어 있다.
약사암은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정상에 자리한 암자로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유적은 전하는 것이 없으며, 현존하는 당우도 모두 근세에 이루어진 것이다. 약사암의 중심 전각은 약사전인데 기암절벽 밑에 남향하여 건립되어 있으며 북쪽의 소봉상 아래도 남향한 요사 1동이 지어져 있다. 요사 좌측으로 300미터 지점의 바위에는 보살 입상이 선각되어 있다. 약사전 안에 봉안된 석조 약사여래 좌상은 수도산 수도암, 황악산 삼성암의 약사불과 함께 3형제 불상이라고 불리며, 세 불상이 함께 방광을 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이 절의 동쪽 암벽에는 약수가 용출하고 있는데, 옛날에는 이 구멍에서 쌀알이 하나씩 떨어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약사암은 옛날부터 참선 도량으로 유명해서 오늘날까지 수행승뿐만 아니라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 소요시간
- 5시간
- 코스거리
- 9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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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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