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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여인의 전설이 강물 되어 흐르네

소개

고마나루는 공주의 관문으로 백제시절 서해에서 금강을 따라 올라온 배가 드나들던 나루터다. 또 인간세상을 동경한 곰 여인의 전설이 어린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고마나루에는 곰 사당이 남아있다. 시간이 넉넉하면 고마나루에서 시작한 공주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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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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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곡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마곡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주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慈藏)이 창건한 사찰이다. 마곡사라는 이름은 신라의 보철화상이 설법전도할 때 모인 신도가 삼밭의 삼대 같다고 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의 대사찰이었으나 현재는 대웅보전, 대광보전, 영산전, 사천왕문, 해탈문 등이 남아있다. 그 외 오층석탑, 괘불 1폭, 목패, 조선 세조가 탔던 연, 청동향로, 고서적들이 있다. 고려 후기 불교문화의 대표적 유산인 금물과 은물로 베껴 쓴 필사 불경도 여러 점 전해진다. 마곡사 일대는 조선조 십승지지, 즉 전란기에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특별한 지역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중환의『택리지』에 따르면 마곡사는 임진왜란의 전란을 피하였으며, 6·25전쟁 때도 병화를 입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선정되었으며 사찰 내 여러 문화재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와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2 공주 공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주 공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웅진백제(475~538)를 지킨 왕성이다.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 능선과 계곡을 따라 흙으로 쌓은 포곡형(包谷形) 산성이다. 백제시대에는 웅진성, 고려시대공주산성,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 인조가 이괄의 난(1624)을 피해 산성에 머문 이후 쌍수산성으로도 불렀다. 조선 선조·인조 때 지금과 같은 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고, 이후 지속적으로 사용된 공산성에서 시대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백제문화제 기간에는 공산성 앞에서 금강신관공원까지 부교로 건널 수 있다. 금서루에서는 백제왕국의 위풍당당함을 ‘웅진성수문병근무교대식’으로 볼 수 있고, 금강신관공원에서는 밤풍경이 아름다운 공산성 감상이 가능하다. (출처 : 공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3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적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백제 웅진시기(475~538년) 왕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곳이다. 무령왕릉을 포함한 이 일대의 고분들은 모두 7기가 전해지는데, 금강의 남쪽 구릉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호분과 6호분이 있고, 동북쪽에는 1∼4호분이 있다. 1∼6호분은 일제 강점기에 조사되어 고분의 구조와 형식이 밝혀졌고, 무령왕릉은 1971년 5호분과 6호분의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다. 1~5호분은 백제의 대표적 무덤 양식인 돌로 만든 굴식돌방무덤이고, 6호분과 무령왕릉은 당시 중국에서 널리 유행하던 무덤 양식인 벽돌무덤이다. 벽돌무덤은 백제에서 이전에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양식의 무덤으로, 이는 백제가 중국 남조 양나라와 활발히 교류를 했다는 증거이다. 특히 무령왕릉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석수와 도자기를 비롯하여 일본산 금송으로 만든 목관, 태국 및 인도와의 교류를 의미하는 장신구 등이 발견되어 백제의 수준 높은 국제적 문화교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4 국립공주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은 1946년 4월 1일 웅진 백제 문화를 중심으로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 전시하기 위해 개관했다. 웅진백제를 주제로 하는 전시실과 충청남도의 역사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실이 있으며, 다양한 주제의 특별전시도 수시로 열리고 있다. 전시 외에도 다채로운 문화행사와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5 공주 고마나루
공주 고마나루

금강 및 연미산을 포함한 무령왕릉 서쪽으로 펼쳐진 낮은 언덕과 금강변 나루 일대로, 공주지역의 태동지이자 곰과 인간에 얽힌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명승지다. 고마나루는 공주의 옛 지명으로서 ‘고마(固麻)’는 곰의 옛말로 한자로 ‘웅진(熊津)’이라 썼다. 신라 신문왕 때는 웅천주(熊川州), 경덕왕 때는 웅주(熊州)라 하였으며, 고려 태조 때(940년) 공주(公州)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백제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하던 교통로였고, 나당연합군의 장군 소정방이 백제 공격을 위해 금강을 거슬러와 주둔했으며, 백제 멸망 후에는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던 곳으로써 백제 역사의 중심무대이자 국제적 교통의 관문이었다. 또한 금강의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올리던 웅진단(熊津壇) 터가 남아있는 등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국가의 제사 공간이었으며, 서민들의 생활터이자 물길로서 민중의 애환이 짙게 서려 역사적 가치가 큰 곳이다. 처녀곰과 나무꾼 총각에 얽힌 아름답고 슬픈 전설이 전해오는데, 고마나루 북쪽 연미산 중턱에는 전설 속 곰이 살았다는 곰굴이 고마나루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곰의 원한을 풀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나루터 인근에 곰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고마나루는 백제 역사의 중심에 있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클 뿐 아니라 금강변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450여 주의 솔밭이 금강과 연미산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는, 역사 문화적·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경승지다. (출처 : 국가유산청)

6 계룡산 도자예술촌
계룡산 도자예술촌

계룡산 도자예술촌는 공주시 반포면에 자리 잡고 있다. 5천여 평 규모로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30대에서 40대 초반의 도예인 18명이 철화분청의 전승복원을 목적으로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도자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1993년 형성한 공동체 마을로 동시 일괄적으로 입주한 전국 최초의 도예촌이다. 입촌 이후 현재 12명의 도예가가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철화분청사기축제, 도자체험프로그램운영 등의 운영으로 계룡산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코스 구성

1

공주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慈藏)이 창건한 사찰이다. 마곡사라는 이름은 신라의 보철화상이 설법전도할 때 모인 신도가 삼밭의 삼대 같다고 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의 대사찰이었으나 현재는 대웅보전, 대광보전, 영산전, 사천왕문, 해탈문 등이 남아있다. 그 외 오층석탑, 괘불 1폭, 목패, 조선 세조가 탔던 연, 청동향로, 고서적들이 있다. 고려 후기 불교문화의 대표적 유산인 금물과 은물로 베껴 쓴 필사 불경도 여러 점 전해진다. 마곡사 일대는 조선조 십승지지, 즉 전란기에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특별한 지역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중환의『택리지』에 따르면 마곡사는 임진왜란의 전란을 피하였으며, 6·25전쟁 때도 병화를 입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선정되었으며 사찰 내 여러 문화재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와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2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웅진백제(475~538)를 지킨 왕성이다.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 능선과 계곡을 따라 흙으로 쌓은 포곡형(包谷形) 산성이다. 백제시대에는 웅진성, 고려시대공주산성,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 인조가 이괄의 난(1624)을 피해 산성에 머문 이후 쌍수산성으로도 불렀다. 조선 선조·인조 때 지금과 같은 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고, 이후 지속적으로 사용된 공산성에서 시대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백제문화제 기간에는 공산성 앞에서 금강신관공원까지 부교로 건널 수 있다. 금서루에서는 백제왕국의 위풍당당함을 ‘웅진성수문병근무교대식’으로 볼 수 있고, 금강신관공원에서는 밤풍경이 아름다운 공산성 감상이 가능하다. (출처 : 공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3

사적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백제 웅진시기(475~538년) 왕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곳이다. 무령왕릉을 포함한 이 일대의 고분들은 모두 7기가 전해지는데, 금강의 남쪽 구릉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호분과 6호분이 있고, 동북쪽에는 1∼4호분이 있다. 1∼6호분은 일제 강점기에 조사되어 고분의 구조와 형식이 밝혀졌고, 무령왕릉은 1971년 5호분과 6호분의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다. 1~5호분은 백제의 대표적 무덤 양식인 돌로 만든 굴식돌방무덤이고, 6호분과 무령왕릉은 당시 중국에서 널리 유행하던 무덤 양식인 벽돌무덤이다. 벽돌무덤은 백제에서 이전에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양식의 무덤으로, 이는 백제가 중국 남조 양나라와 활발히 교류를 했다는 증거이다. 특히 무령왕릉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석수와 도자기를 비롯하여 일본산 금송으로 만든 목관, 태국 및 인도와의 교류를 의미하는 장신구 등이 발견되어 백제의 수준 높은 국제적 문화교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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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주박물관은 1946년 4월 1일 웅진 백제 문화를 중심으로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 전시하기 위해 개관했다. 웅진백제를 주제로 하는 전시실과 충청남도의 역사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실이 있으며, 다양한 주제의 특별전시도 수시로 열리고 있다. 전시 외에도 다채로운 문화행사와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5

금강 및 연미산을 포함한 무령왕릉 서쪽으로 펼쳐진 낮은 언덕과 금강변 나루 일대로, 공주지역의 태동지이자 곰과 인간에 얽힌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명승지다. 고마나루는 공주의 옛 지명으로서 ‘고마(固麻)’는 곰의 옛말로 한자로 ‘웅진(熊津)’이라 썼다. 신라 신문왕 때는 웅천주(熊川州), 경덕왕 때는 웅주(熊州)라 하였으며, 고려 태조 때(940년) 공주(公州)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백제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하던 교통로였고, 나당연합군의 장군 소정방이 백제 공격을 위해 금강을 거슬러와 주둔했으며, 백제 멸망 후에는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던 곳으로써 백제 역사의 중심무대이자 국제적 교통의 관문이었다. 또한 금강의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올리던 웅진단(熊津壇) 터가 남아있는 등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국가의 제사 공간이었으며, 서민들의 생활터이자 물길로서 민중의 애환이 짙게 서려 역사적 가치가 큰 곳이다. 처녀곰과 나무꾼 총각에 얽힌 아름답고 슬픈 전설이 전해오는데, 고마나루 북쪽 연미산 중턱에는 전설 속 곰이 살았다는 곰굴이 고마나루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곰의 원한을 풀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나루터 인근에 곰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고마나루는 백제 역사의 중심에 있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클 뿐 아니라 금강변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450여 주의 솔밭이 금강과 연미산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는, 역사 문화적·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경승지다. (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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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도자예술촌는 공주시 반포면에 자리 잡고 있다. 5천여 평 규모로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30대에서 40대 초반의 도예인 18명이 철화분청의 전승복원을 목적으로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도자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1993년 형성한 공동체 마을로 동시 일괄적으로 입주한 전국 최초의 도예촌이다. 입촌 이후 현재 12명의 도예가가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철화분청사기축제, 도자체험프로그램운영 등의 운영으로 계룡산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코스일정
기타
소요시간
1일
코스거리
54.45km
테마
자유여행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