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쉼이 흐르는 안동 1박2일 여행 코스.
소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 안동에서의 여행 코스! 부용대, 솔밭식당, 하회별신굿탈놀이, 병산서원을 경유하며 전통 문화를 즐기고, 안동대장금찜닭, 관광커뮤니티센터 여기, 이상루 고택을 지나 봉정사, 낙강물길공원, 까치구멍집, 안동포타운, 만휴정까지 이어지는 여행 길에 휴식하며 힐링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코스 지도
부용대는 안동 대표 관광지로 하회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부용대는 연꽃을 바라보는 전망대라는 뜻으로 연꽃 같은 모습의 안동 하회마을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마을 전체를 한 바퀴 휘감아 지나가는 낙동강과 하회마을 주위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태백산맥의 모습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다. 하회마을을 여행할 때 부용대를 들르는 것을 추천한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예능 16기 출연진이 돗자리 데이트를 즐기던 장소다. 낙동강변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속마음을 터놓은 뒤, 부용대를 배경으로 커플 사진을 남기는 것으로 데이트가 마무리되었다.
병산서원은 고려 중기부터 안동 풍산에 있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豐岳書堂)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은 지방 유림의 자제들이 모여 공부하던 곳이었다. 고려 말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 무렵, 당시 풍악서당의 유생들은 난리 중에도 학문에 열중하고 있었고 이에 크게 감동한 공민왕은 많은 서책과 사패지(賜牌地)를 하사하며 유생들을 격려하였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나 서당 근처에 서당 근처에 민가가 들어서고 길이 생기면서 주변이 차츰 시끄러워졌다. 이에 유림들이 서당을 옮길 곳을 물색하는 중 마침 부친상을 당해 하회마을에 머물고 있던 서애 류성룡 선생에게 자문을 구했다. 선생이 병산 자락을 가장 적당한 곳으로 추천하자, 유림들은 그 뜻을 따라 1575년(선조 8) 서당을 지금의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원'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1614년(광해 6)에 우복 정경세, 창석 이준, 동리 김윤안, 정봉 안담수 등 문인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존덕사를 창건하여 선생의 위판을 봉안하였다. 선생의 위판은 1620년(광해 12) 합향하는 과정에서 여강서원(주향 퇴계 이황)으로 옮겼다가 1629년(인조 7)에 다시 병산에 복향하였다. 당시 서애 선생의 위판을 여강서원과 병산서원에 봉안하는 문제를 두고 “일읍양원병향(一邑兩院竝享)”과 “일읍봉안(一邑奉安)”등 의견이 있었으나 주자의 예에 따라 한 고을 두 서원에 병향해도 무방하다 하여 두 서원에 병향하게 되었다. 1662년(현종 3)에 선생의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柳袗, 1582~1635) 공의 위패를 종향하였다. 병산서원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고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출처 : 병산서원 홈페이지)
안동 관광커뮤니티센터 ‘여기’는 탈춤축제가 개최되는 탈춤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넓은 공간과 넉넉한 좌석을 보유하고 있으며 안동시 소재 관광 관련 사업체 및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공간 대여를 해주고 있다. 또한 무인카페를 운영하고 있어 사전에 준비하지 않아도 다양한 음료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안동 지역의 관광 기념품 또한 만나볼 수 있다. 식료품부터 생활 잡화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천등산 봉정사는 도심에서 멀지 않아 잠시 일상을 벗어나 한적한 여유를 즐기기 좋은 사찰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간직하고 있으며, 맑은 공기와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 속에서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또한 한국 산중 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수행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렸으며, 능인스님이 바위굴에서 수행하던 중 하늘의 선녀가 등불을 내려 굴 안을 밝혀 주었다는 전설에서 '천등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이후 능인스님이 종이 봉황을 접어 날렸는데 이곳에 내려앉아 머물렀다고 하여 봉황새 봉(鳳) 자와 머무를 정(停) 자를 따서 '봉정사'라 이름하였다. 창건 이후 여섯 차례 중수되었으며, 극락전과 대웅전을 비롯한 다양한 국보와 보물, 후불벽화, 목조관세음보살좌상, 화엄강당, 고금당 등 소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이 밖에도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삼층석탑과 영산암, 지조암, 중암 등의 부속암자가 있으며, 고려 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간 아름다운 사찰로도 전해진다. (출처 : 봉정사)
안동댐 수력발전소 입구 좌측에 위치한 낙강물길공원은 주변 수자원 환경과 어울리는 숲길과 정원을 조성하여 탐방객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힐링공간을 제공을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작은 연못을 끼고 메타세쿼이아와 전나무가 자라고, 연못 위의 돌다리, 오솔길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어 한국의 지베르니라고 불린다. 나무 아래 곳곳의 벤치가 있어 안동시민은 물론 여행객들로 사랑받는 휴식처이며, 곳곳에 숨어있는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면 마치 모네가 된 듯한 환상을 가져다준다. 또한 안동댐가지 에두른 산책로와 월영공원까지 이어지는 수변데크가 있어 평상시 산책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안동포마을은 안동포의 명맥을 이어오는 곳이다. 안동포란 신라시대에는 화랑도 옷감으로 사용되고 조선시대에는 궁중 진상품으로 명성을 누려온 옷감으로 현재 이곳 금소리 안동포마을에서는 영세성과 중국산 삼베의 수입 등의 이중고 속에서도 안동포의 전통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동시는 옛 안동포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금소리를 농어촌 특산 단지로 지정하여 대마 재배면적 확대와 안동포의 고부가가치화 등의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안동포의 맥을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이 배수가 잘 되는 사질토로 삼베의 재료인 대마가 자라기 쉬운 기후 조건 때문이다. 마을 안에는 안동포의 역사와 제작방법, 생산품을 전시 판매하는 안동포 전시관과 안동포의 전승과 개발, 활성화를 노력하는 빛타래길쌈마을이 있다.
만휴정은 보백당 김계행공의 정자이다.1500년(연산군 6)에 건립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중수를 거치면서 변형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일부만 조선후기 양식을 보이고 있다. 김계행은 조선 초의 문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연산군 폭정을 만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땅으로 낙향했다. 그 후 설못(현 소산2리)가에 조그마한 정자를 지었으나 길 옆인 관계로 더욱 조용한 장소를 찾아 이 정자를 건립하였다. 길안면 묵계서원에서 개울건너 산곡 간에 들어서면 웅장한 계곡에 반석위로 폭포를 동반한 곡간수(谷澗水)가 흐르는 절경을 이루는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품위가 느끼져는 만휴정의 구조를 살펴보면 홑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처마 앙곡과 안허리가 매우 날카로워 정자의 맛을 더욱 살리고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전면쪽 3칸은 삼면이 개방된 누마루형식으로 누각 주위 삼면에는 계자각난간을 돌렸다. 뒤쪽 3칸은 어칸이 마루로 전면의 누마루와 연접되어 있으며 후벽의 문하부는 궁판이 높직하게 끼워져 있다.양 퇴칸은 온돌방을 들였는데 방의 앞부분은 일반적인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으나 마루쪽으로는 띠살무늬의 세짝 들어열개문이 설치되어 있다. 전면쪽을 고스란히 개방하여 툇마루로 구성한 예는 흔하지 않으며 약계정과 유사한 평면형식을 보이고 있다. 기둥 상부에는 연봉장식이 가미된 2익공양식의 촛가지가 돌출되어 있어 조선후기 작품으로 간주되지만 말기의 번잡한 양식과는 달리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창방위에는 연꽃을 새긴 화반을 놓았는데 비교적 공을 들여 조각하였다. 상부는 5량가로 대량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놓았으며 그 위에 제형판대공을 올렸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예능 예능 16기에 등장하는 안동의 명소다. 한적한 숲에서 찾아올 이를 기다리는 만휴정과 유일한 길인 외나무다리가 꼭 출연진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코스 구성
부용대는 안동 대표 관광지로 하회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부용대는 연꽃을 바라보는 전망대라는 뜻으로 연꽃 같은 모습의 안동 하회마을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마을 전체를 한 바퀴 휘감아 지나가는 낙동강과 하회마을 주위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태백산맥의 모습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다. 하회마을을 여행할 때 부용대를 들르는 것을 추천한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예능 16기 출연진이 돗자리 데이트를 즐기던 장소다. 낙동강변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속마음을 터놓은 뒤, 부용대를 배경으로 커플 사진을 남기는 것으로 데이트가 마무리되었다.
병산서원은 고려 중기부터 안동 풍산에 있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豐岳書堂)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은 지방 유림의 자제들이 모여 공부하던 곳이었다. 고려 말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 무렵, 당시 풍악서당의 유생들은 난리 중에도 학문에 열중하고 있었고 이에 크게 감동한 공민왕은 많은 서책과 사패지(賜牌地)를 하사하며 유생들을 격려하였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나 서당 근처에 서당 근처에 민가가 들어서고 길이 생기면서 주변이 차츰 시끄러워졌다. 이에 유림들이 서당을 옮길 곳을 물색하는 중 마침 부친상을 당해 하회마을에 머물고 있던 서애 류성룡 선생에게 자문을 구했다. 선생이 병산 자락을 가장 적당한 곳으로 추천하자, 유림들은 그 뜻을 따라 1575년(선조 8) 서당을 지금의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원'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1614년(광해 6)에 우복 정경세, 창석 이준, 동리 김윤안, 정봉 안담수 등 문인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존덕사를 창건하여 선생의 위판을 봉안하였다. 선생의 위판은 1620년(광해 12) 합향하는 과정에서 여강서원(주향 퇴계 이황)으로 옮겼다가 1629년(인조 7)에 다시 병산에 복향하였다. 당시 서애 선생의 위판을 여강서원과 병산서원에 봉안하는 문제를 두고 “일읍양원병향(一邑兩院竝享)”과 “일읍봉안(一邑奉安)”등 의견이 있었으나 주자의 예에 따라 한 고을 두 서원에 병향해도 무방하다 하여 두 서원에 병향하게 되었다. 1662년(현종 3)에 선생의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柳袗, 1582~1635) 공의 위패를 종향하였다. 병산서원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고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출처 : 병산서원 홈페이지)
안동 관광커뮤니티센터 ‘여기’는 탈춤축제가 개최되는 탈춤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넓은 공간과 넉넉한 좌석을 보유하고 있으며 안동시 소재 관광 관련 사업체 및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공간 대여를 해주고 있다. 또한 무인카페를 운영하고 있어 사전에 준비하지 않아도 다양한 음료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안동 지역의 관광 기념품 또한 만나볼 수 있다. 식료품부터 생활 잡화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천등산 봉정사는 도심에서 멀지 않아 잠시 일상을 벗어나 한적한 여유를 즐기기 좋은 사찰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간직하고 있으며, 맑은 공기와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 속에서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또한 한국 산중 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수행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렸으며, 능인스님이 바위굴에서 수행하던 중 하늘의 선녀가 등불을 내려 굴 안을 밝혀 주었다는 전설에서 '천등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이후 능인스님이 종이 봉황을 접어 날렸는데 이곳에 내려앉아 머물렀다고 하여 봉황새 봉(鳳) 자와 머무를 정(停) 자를 따서 '봉정사'라 이름하였다. 창건 이후 여섯 차례 중수되었으며, 극락전과 대웅전을 비롯한 다양한 국보와 보물, 후불벽화, 목조관세음보살좌상, 화엄강당, 고금당 등 소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이 밖에도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삼층석탑과 영산암, 지조암, 중암 등의 부속암자가 있으며, 고려 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간 아름다운 사찰로도 전해진다. (출처 : 봉정사)
안동댐 수력발전소 입구 좌측에 위치한 낙강물길공원은 주변 수자원 환경과 어울리는 숲길과 정원을 조성하여 탐방객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힐링공간을 제공을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작은 연못을 끼고 메타세쿼이아와 전나무가 자라고, 연못 위의 돌다리, 오솔길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어 한국의 지베르니라고 불린다. 나무 아래 곳곳의 벤치가 있어 안동시민은 물론 여행객들로 사랑받는 휴식처이며, 곳곳에 숨어있는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면 마치 모네가 된 듯한 환상을 가져다준다. 또한 안동댐가지 에두른 산책로와 월영공원까지 이어지는 수변데크가 있어 평상시 산책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안동포마을은 안동포의 명맥을 이어오는 곳이다. 안동포란 신라시대에는 화랑도 옷감으로 사용되고 조선시대에는 궁중 진상품으로 명성을 누려온 옷감으로 현재 이곳 금소리 안동포마을에서는 영세성과 중국산 삼베의 수입 등의 이중고 속에서도 안동포의 전통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동시는 옛 안동포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금소리를 농어촌 특산 단지로 지정하여 대마 재배면적 확대와 안동포의 고부가가치화 등의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안동포의 맥을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이 배수가 잘 되는 사질토로 삼베의 재료인 대마가 자라기 쉬운 기후 조건 때문이다. 마을 안에는 안동포의 역사와 제작방법, 생산품을 전시 판매하는 안동포 전시관과 안동포의 전승과 개발, 활성화를 노력하는 빛타래길쌈마을이 있다.
만휴정은 보백당 김계행공의 정자이다.1500년(연산군 6)에 건립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중수를 거치면서 변형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일부만 조선후기 양식을 보이고 있다. 김계행은 조선 초의 문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연산군 폭정을 만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땅으로 낙향했다. 그 후 설못(현 소산2리)가에 조그마한 정자를 지었으나 길 옆인 관계로 더욱 조용한 장소를 찾아 이 정자를 건립하였다. 길안면 묵계서원에서 개울건너 산곡 간에 들어서면 웅장한 계곡에 반석위로 폭포를 동반한 곡간수(谷澗水)가 흐르는 절경을 이루는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품위가 느끼져는 만휴정의 구조를 살펴보면 홑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처마 앙곡과 안허리가 매우 날카로워 정자의 맛을 더욱 살리고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전면쪽 3칸은 삼면이 개방된 누마루형식으로 누각 주위 삼면에는 계자각난간을 돌렸다. 뒤쪽 3칸은 어칸이 마루로 전면의 누마루와 연접되어 있으며 후벽의 문하부는 궁판이 높직하게 끼워져 있다.양 퇴칸은 온돌방을 들였는데 방의 앞부분은 일반적인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으나 마루쪽으로는 띠살무늬의 세짝 들어열개문이 설치되어 있다. 전면쪽을 고스란히 개방하여 툇마루로 구성한 예는 흔하지 않으며 약계정과 유사한 평면형식을 보이고 있다. 기둥 상부에는 연봉장식이 가미된 2익공양식의 촛가지가 돌출되어 있어 조선후기 작품으로 간주되지만 말기의 번잡한 양식과는 달리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창방위에는 연꽃을 새긴 화반을 놓았는데 비교적 공을 들여 조각하였다. 상부는 5량가로 대량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놓았으며 그 위에 제형판대공을 올렸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예능 예능 16기에 등장하는 안동의 명소다. 한적한 숲에서 찾아올 이를 기다리는 만휴정과 유일한 길인 외나무다리가 꼭 출연진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 소요시간
- 약 2시간 36분
- 코스거리
- 112km
- 테마
- 자유여행
후기
- 소요시간
- 약 2시간 36분
- 코스거리
- 112km
- 테마
- 자유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