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못지 않은 문화재의 보고
소개
가야시대 및 신라시대의 유물 총 166종 276점 (토기류 85점, 마구류 42점, 장신구류 50점, 무구류 53점, 기타 46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교동고분군과 계성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코스 지도
창녕박물관은 1996년 창녕지역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할 목적으로 창녕유물전시관으로 처음 개관했다. 이후 1997년 1종 전문박물관인 창녕박물관으로 등록·승격되었으며 2018년 박물관 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어린이박물관을 포함한 교육관을 신축한 후 지금의 모습으로 재개관하였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의 바로 옆에 위치하며 비화가야시대 유적인 무덤과 그 내부에 부장 되었던 유물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유물전시관일 때에는 복제품만을 전시했지만 2011년 국가귀속문화유산 보관·관리기관으로 선정된 뒤부터는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인수하여 직접 전시하고 있다. 2개의 전시실과 시청각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건물은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이며 1층은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로 되어 있다. 지하에는 시청각실이 마련되어 있어 창녕군 관내의 문화유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시청각 자료를 방영하고 있다. 가야와 신라시대의 유물 총 166종 276점 (토기류 85점, 마구류 42점, 장신구류 50점, 무구류 53점, 기타 46점)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중앙홀에는 가야고분의 축조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모형관이 설치되어 있어, 가야시대 고분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창녕향교의 건립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 효종 원년에 한 차례 중건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했다고 한다. 1987년에 동재와 서재를 복원함으로써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향교의 공간은 교육과 제례의 두 영역으로 나뉜다. 유생이 학문을 연마하는 명륜당과 일상생활을 하는 동·서재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고, 공자와 저명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과 동·서무는 제례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창녕항교는 교육 공간을 앞쪽에, 제례 공간을 뒤쪽에 두는 전학후묘 양식으로 건물을 배치했고, 급한 경사지에 위치하여 향교의 권위적 성격이 잘 나타나 있다.
석빙고는 추운 겨울에 얼음을 채취하여 더운 여름까지 보관하여 사용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얼음 창고이다. 빙고 우측에 남아있는 비석에 의하면 '숭정기원후재임술이월초일일여사월초십일필'이라 새겨져 있어, 1742년에 현감 신서 등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구조 양식과 장빙의 풍속 등으로 봤을 때 조선시대 건축한 것으로 추정한다. 창녕 석빙고는 봉토가 거의 완전하며, 외부의 모양은 마치 거대한 고분처럼 보이고 뒤에 흐르는 개천과 직각이 되게 남북으로 구축했다. 빙실의 입구는 남쪽에 설치했는데, 좌우에 장대석을 옆으로 건너지르며 쌓아 올려서 천정을 구성하였으며 천정에는 외부로 통하는 환기공이 두 곳 있다. 벽은 잡석으로 쌓았으나 평평한 방벽이 되게 표면을 치석했다. 이러한 구조 양식은 석빙고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경주, 안동의 석빙고와 동일하고 규모에 있어서는 창녕 석빙고가 약간 작다.
영산호국공원은 1973년 도시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2년 5월 31일 전국 최초로 호국공원으로 재조성되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한국의 호국공원 중 손꼽히는 곳이다. 3대 국란호국의 성지(聖地)로서, 임진왜란 호국충혼탑, 3·1운동 봉화대 및 기념비, 6·25전쟁 영산지구 전적비가 있다. 임진왜란 호국충혼탑 뒤로는 물레방아가 돌고 있다. 영산군이 경상남도 최초로 3·1운동이 일어났던 곳임을 기념하여 이곳에서는 매년 3·1절 기념식이 거행된다. 공원 입구의 무지개형 다리는 보물인 만년교(萬年橋)로서, 조선 후기 남부지방의 홍예교(虹霓橋) 구축기술을 보인다고 하여 학술적 가치가 크다. 또한 인근에는 연지못, 영산 석빙고, 영산약수, 영축산성, 영산 읍성지, 영산 법화암 다층석탑, 부곡온천 관광특구, 우포늪 생태공원, 화왕산군립공원 등 여러 관광지가 있다.
코스 구성
창녕박물관은 1996년 창녕지역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할 목적으로 창녕유물전시관으로 처음 개관했다. 이후 1997년 1종 전문박물관인 창녕박물관으로 등록·승격되었으며 2018년 박물관 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어린이박물관을 포함한 교육관을 신축한 후 지금의 모습으로 재개관하였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의 바로 옆에 위치하며 비화가야시대 유적인 무덤과 그 내부에 부장 되었던 유물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유물전시관일 때에는 복제품만을 전시했지만 2011년 국가귀속문화유산 보관·관리기관으로 선정된 뒤부터는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인수하여 직접 전시하고 있다. 2개의 전시실과 시청각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건물은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이며 1층은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로 되어 있다. 지하에는 시청각실이 마련되어 있어 창녕군 관내의 문화유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시청각 자료를 방영하고 있다. 가야와 신라시대의 유물 총 166종 276점 (토기류 85점, 마구류 42점, 장신구류 50점, 무구류 53점, 기타 46점)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중앙홀에는 가야고분의 축조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모형관이 설치되어 있어, 가야시대 고분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창녕향교의 건립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 효종 원년에 한 차례 중건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했다고 한다. 1987년에 동재와 서재를 복원함으로써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향교의 공간은 교육과 제례의 두 영역으로 나뉜다. 유생이 학문을 연마하는 명륜당과 일상생활을 하는 동·서재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고, 공자와 저명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과 동·서무는 제례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창녕항교는 교육 공간을 앞쪽에, 제례 공간을 뒤쪽에 두는 전학후묘 양식으로 건물을 배치했고, 급한 경사지에 위치하여 향교의 권위적 성격이 잘 나타나 있다.
석빙고는 추운 겨울에 얼음을 채취하여 더운 여름까지 보관하여 사용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얼음 창고이다. 빙고 우측에 남아있는 비석에 의하면 '숭정기원후재임술이월초일일여사월초십일필'이라 새겨져 있어, 1742년에 현감 신서 등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구조 양식과 장빙의 풍속 등으로 봤을 때 조선시대 건축한 것으로 추정한다. 창녕 석빙고는 봉토가 거의 완전하며, 외부의 모양은 마치 거대한 고분처럼 보이고 뒤에 흐르는 개천과 직각이 되게 남북으로 구축했다. 빙실의 입구는 남쪽에 설치했는데, 좌우에 장대석을 옆으로 건너지르며 쌓아 올려서 천정을 구성하였으며 천정에는 외부로 통하는 환기공이 두 곳 있다. 벽은 잡석으로 쌓았으나 평평한 방벽이 되게 표면을 치석했다. 이러한 구조 양식은 석빙고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경주, 안동의 석빙고와 동일하고 규모에 있어서는 창녕 석빙고가 약간 작다.
영산호국공원은 1973년 도시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2년 5월 31일 전국 최초로 호국공원으로 재조성되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한국의 호국공원 중 손꼽히는 곳이다. 3대 국란호국의 성지(聖地)로서, 임진왜란 호국충혼탑, 3·1운동 봉화대 및 기념비, 6·25전쟁 영산지구 전적비가 있다. 임진왜란 호국충혼탑 뒤로는 물레방아가 돌고 있다. 영산군이 경상남도 최초로 3·1운동이 일어났던 곳임을 기념하여 이곳에서는 매년 3·1절 기념식이 거행된다. 공원 입구의 무지개형 다리는 보물인 만년교(萬年橋)로서, 조선 후기 남부지방의 홍예교(虹霓橋) 구축기술을 보인다고 하여 학술적 가치가 크다. 또한 인근에는 연지못, 영산 석빙고, 영산약수, 영축산성, 영산 읍성지, 영산 법화암 다층석탑, 부곡온천 관광특구, 우포늪 생태공원, 화왕산군립공원 등 여러 관광지가 있다.
- 코스거리
- 13.4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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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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